[주의] A/B의 경우 보통 A는 본편, B는 해당 회차의 외전으로 진행된다고 보시면 좋습니다.

- 과외선생 1, 2편의 내용이 일부 포함이 되어 있으므로 이전 편을 읽고 난 뒤 읽으신다면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매주 본편 게제 예정)





과외선생

-  02 B. 너를 처음 만난 그때 (By 정국)




오랜만에 돌아온 꿀맛같은 주말 아침. 넓은 방에 놓여 있는 침대에서 뒹굴더라도, 늦게 일어나더라도 이 집에서는 아무도 나를 깨울 수 없다. 사실 내가 좀 성질이 있는 사람이라서, 우리 집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나 형, 누나들은 '잠자는 전정국을 깨우면 뼈도 못추린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시고. 

흠, 물론 그 중에 두 사람만 빼고. 한 사람은 막내 아들하고 주말 아침을 먹고 싶어하셔서 시간이 될 때 들르시던 우리 아버지 전 회장님,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리 외삼촌 김 남준 비서님.

똑똑똑, 똑똑똑. 아씨 누구야! 잠자는 전정국을 깨우려는 못된 사람이 있어서 얼굴 표정이 당연히 찌푸려졌지만, 이에 들리는 소리때문에 곧바로 표정이 누그러졌다. 바로 철두철미하면서도 몇 살 차이 안나는 조카를 밀착해서 챙겨주는 우리 남준이 삼촌. 



 "선생님이 서울역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데리러 가야하니까 도련님 아니 조카님. 그러니까 좀 준비하세요."

 "으.... 지금 몇 시에요? 삼촌?"

 "정국 조카님.. 지금 한 시 넘었는데? 자꾸 이러면 오늘 점심 없어."

 "우씨, 너무해! 외삼촌, 일어나서 준비할테니까 그러지마요." 



 도대체 몇 번째 협박하는 건지, 삼촌에게 괜히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았지만 남준이 삼촌은 그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빨리 준비하라고 채근이었다. 하긴 삼촌이 애인인 석진이 형도 못 만나고, 주말까지 이렇게 신경써주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될 만했다. 

저렇게 걱정하는 거 보면 이제 다음주면 고등학교 3학년인데,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서 집안 사람들에게 꿇리지 않을 정도로 대학은 가야하지 않을까. 




사실 막내이고 어릴 때 많이 아파서 입원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집에서는 그저 건강하게 커가나길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프다는 컴플렉스에 갇혀서 내 자신을 가두어놓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검도, 태권도 등 다양한 운동에 취미를 가지고 몸을 튼튼하게 단련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중학교 때부터 청소년 축구팀 선수로 뛰면서 열심히 운동도 하면서, 내가 이 분야에서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룹에서도 문화나 스포츠 쪽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도 꽤 괜찮다는 반응이었고.

그런데 예체능 분야는 늘 일부 천재이거나 혹은 운 좋은 일부 수재들에게만 기회가 열려 있었고, 결국 선수로 진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다행히 중학교 때도 선수 생활과 공부를 병행했던 덕분에, 뭔가 체육 쪽이 그래도 내게 잘 맞다고 생각해서 체육교육과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성적은 그럭저럭 나왔지만 문과이면서도 국어와 사회는 중상위권을 넘어가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평소에 잘 부탁드리지 않았던 아버지께 이야기를 드려서 과외를 받고 싶다고 졸랐다.



"정국아, 무리는 하지 말거라. 아버지는 많은 걸 안 바라니까, 너 만큼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

"아버지, 꼭 하고 싶어서 그래요. 저 열심히 할게요."

"그러마, 그럼 처남한테 이야기해서 좋은 선생님들 모셔올테니 기다려보자꾸나."

"네, 감사합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준이 삼촌이 두 선생님을 소개해주었고, 1년 동안 선생님들과 열심히 수업을 들으면서 성적도 꽤 올릴 수 있었다. 늘 비문학은 전부 틀리거나 시간이 부족해서 무조건 찍었던 내가, 한 개 지문 정도 빼고 나머지는 모두 풀 수 있었다. 

성적이 오른 만큼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스트레스가 생겨서일까 선생님들께 질문을 하거나 짜증을 낼 때가 많아졌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한 게 독이었는지 선생님들 표정도 서서히 바뀌어갔고, 결국에는 2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에는 말도 없이 수업에 나오지 않으시기도 했다.

지랄맞는 성격때문에 또 누군가를 힘들게 한 거 같아서 자책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공부와는 담을 쌓기 시작했다. 책 자체를 쳐다보기 싫었고, 결국 11월 학력평가에서는 정말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야 말았다. 

예전에 꾸준히 성적이 오르면서 서울권에 있는 체육 관련 학과는 갈 수 있었는데, 이 성적이라면 서울은 커녕 수도권에 이름있는 대학교에도 갈 수 없다고 담임 선생님께서 못박으셔서 내 기분은 더욱 별로였다.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 학교에서 팀을 나누어서 학교 탐방을 하려고 하니까 신청서에 어디로 갈지 적어야했다. 기분도 딱히 별로였고, 공부에 대한 방향도 의미도 흔들렸기 때문에 대학 자체에 대한 흥미도 사라졌었다. 



"야, 꾹아. 너 어디로 갈 거야?"

"윤기, 난 모르겠는데. 넌 어디로 갈거야?"

"짜식, 이 형아는 서울대 갈 건데~ 서울대학교가 그렇게 좋다던데 한 번 보러 가려고."

"얼씨구, 서울대. 민윤기도 가는데, 나도 같이 가면 되겠네!"

"좋았어! 후후"



2학년 5반 8번 전정국, 서울대학교.

이때 아무 생각없이 윤기 녀석을 따라가보겠다고, 적어놓았던 서울대학교.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휘갈겨썼던 몇 글자는, 살면서 몇 안 되는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날, 그 사람을 처음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때 윤기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지금 내 옆에 박지민은 없었겠지?



과외선생

-  02 B. 너를 처음 만난 그때 (By 정국)



그날 하필이면 바람이 매서워서 삼촌은 내게 교복 위에 코트를 꼭 걸쳐 입어라고 성화였다. 안 춥구만, 남자가 되서 추워하면 되겠냐고 삼촌한테 허세를 한껏 부려보았지만.... 역시나 겨울 바람은 너무나도 매서웠다. 

마치면 연락하라던 삼촌에게 오늘은 윤기하고 놀다갈테니 먼저 들어가라면서 손짓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서울대학교는 뉴스에서 보던 것과 너무 똑같아보였다. 하필 오늘 사람이 좀 붐비는 거 보니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싶었다.


'원서접수는 각 단과대학에서 받으니, 지원학과가 속한 단과대학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학교 정문을 지나 선생님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장소로 가면서, 오늘 정시모집 원서접수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구나. 늘 삼촌이 차로 데려다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적은 별로 없었는데,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꼈다. 

한참 정신없이 걷다가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고, 학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친구들과 구경해보기 시작했다. 뭐 성적과는 상관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체육 쪽의 학과는 있을까 싶었는데 우리를 인솔해주신 선생님께서 내게 체육교육과도 있으니 한 번 구경해보라고 권하셨다.



"정국이는 저기 사범대학 가서 체육교육과 구경하고 와. 윤기 너도 지구과학교육과 생각하고 있으니까 둘이 같이 사범대학 쪽으로 가면 되겠다. 그런데 사범대는 저기 안 쪽에 있으니까 표지판 잘 보고, 여기에 2시까지 오는 거다 알겠지?"

"네, 선생님! 다녀오겠습니다."



윤기와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있게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가방 문을 활짝 열고 다니면서 '나 여기 있소'라고 광고하는 거 같은 앞의 사람.



"꾹아, 저 사람 봐봐. 문 다 열고 다니는데 저러다 뭐 떨어지는 거 아니야? 뭔가 어리버리한 거 보니까 우리처럼 오늘 서울대 처음 온 사람인가봐."

"그런가 보네."


그런데 마침, 가방에서 두꺼운 하얀 종이와 사진 몇 장이 툭하고 가방에서 떨어져 길에서 놔뒹굴어졌다. 갈색 코트를 입었던 남자는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사진만 멍하니 길가에 놓여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원서접수일이라고 했는데,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는 혹시나 싶어서 지나치다가 떨어져있던 종이를 주워서 그 남자를 쫓아가보았다. 중요할텐데 이렇게 무방비하게 갈 줄이야...



"야, 전정국! 너 어디가!"

"윤기야, 나 이거 잠깐만 주고 올게. 우리 사범대 앞에서 만나자!"

"그래, 좀 있다 봐!"



나보다 한 뼘 이상 작은 키였지만 꽤 걸음이 빠른지 벌써 저 만치에 도착해서 길을 찾고 있었던 남자. 본의 아니게 원서를 살펴보니, 역시나 정시모집을 지원하는 학생이었다.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박 지 민. 1984년 10월 13일 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사회교육전공'


사범대학이라는 글자에 괜히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이렇게 덜렁거리는 사람이 선생님이 되면 어떡하지 싶어서 걱정도 되었던 나. 지금 생각해보면 오지랖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지만, 아무 고민없이 그에게 달려가보았다. 다행히 원서접수처를 찾았는데 원서가 없어서 이곳저곳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퍽 귀여워 보였던 건 왜 일까. 한참 지켜보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그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저기요!"

"뭐에요? 왜 자꾸 만지세요."



꽤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내가 왜 그 쪽을 만지냐니! 나는 본인 원서랑 사진 이렇게 들고 와준 건데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 반응 조차도 좀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하고 원서 떨어트리셨는데, 길가에서부터 쫓아왔는데 계속 안 받으셔서 따라왔어요."

"네?"



침착하고 담담하게 전한 내 이야기를 듣더나 괜히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진 이 사람. 뭔가 좀 귀여운데, 웃음이 나오면 안되는데도 자꾸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귀엽다, 귀여워. 나하고 두 살 차이 나는 데도 정말 형 같지 않네.



"아니세요... 크크... 오늘 원서접수하시는 거에요?"

"네, 그런데 고맙습니다. 그쪽 아니었으면 저 원서도 못 냈을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보답해드려야할지. 아까 전에는 정말 죄송해요..."



아까 전에는 꽤 앙칼짖게 쏘아붙이더니 이제는 미안하다고 꼬리를 내리는 모양이 고양이 같았다. 그래도 미안하다고 하니까 뭐 이 정도로 해야지. 그리고 보답을 해줄 거 까지는 없는데, 본의 아니게 그쪽 이름하고 학교도 알게 되었으니까. 뭐 어떤 말을 꺼내야할까 고민을 잠깐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애타게 나를 찾는 윤기 녀석이 달려오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야, 전정국! 한창 찾았잖아. 우리 여기로 오는 거 아닌데, 왜 그렇게 빨리 뛰어갔어?"

"미안, 윤기야! 뭐 좀 찾을 게 있어서. 나 바로 갈게!"

"저....."

"그럼 저는 가볼게요. 꼭 원서 잘 접수하셔서 합격하세요, 형!"



아쉽지만 뭐 언젠가는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원서랑 사진 찾아줬는데, 합격 못하면 안 됩니다! 윤기에게 뛰어가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수줍게 찍었던 그의 증명사진 하나가 내 주머니 속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2002년의 그 겨울,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 이야기도 못했던 그를 보면서, 뭔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건 비밀이다.







꺄.. 여러분 이게 무슨 일인가요... 갑자기 글이란 게 폭발하고 있네요:::^^

2편을 쓰면서 지민이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득차서 재미란 게 사라지지 않았나 싶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외전을 준비해서 정국이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사실 <과외선생>에서는 정국이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고민이 들었는데, 역시 '나는 선생, 너는 학생'이라고 삽질할 선생님께 대들고.. 확 휘어잡는 집착공(수에게만 다정한 공)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겠어요.... 


그럼 다음 화에서 만날게요~^^ 뜨밤 되thㅔ여 ㅋㅋㅋ


P.S : 여러분 공지 확인하시고, <과외선생>에서 이런 내용 다뤄달라는 요청 격하게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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