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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렌고쿠 공에게.


9월은 참 좋은 계절입니다. 여름의 열기를 잊지 못해 습관적으로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바삐 드나드는 바람이 선선하게 감겨오고, 그 독촉에 못이기는 척 손을 움직이는 것이 불쾌하지 않은 날이지요. 오랜만입니다, 렌고쿠 공. 낯선 편지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어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옳은지 모를뿐더러, 원체 말주변이 없는 저의 소리가 또 어떤 실수를 불러올지도 모르겠더군요. 오랜 고민 끝에 펜을 들었습니다. 눌러 쓴 글자라면 이 복잡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정리가 될까 싶어서요. 서론이 참 길었습니다. 아래부터는 저의 부끄러운 옛일을 들추어내고자 하니, 부디 혼자 읽어주십시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볼까요. 자랑은 아니지만, 여성 편력이 수수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많은 만남과 그만큼의 이별을 겪었죠. 관계의 끝에는 언제나 ‘당신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고백하자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저는 상대에게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언제나 관계의 선을 긋고 선이 곧 금이 되어 관계를 깨었죠. 모두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사람의 관계는 쌍방이라,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이어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저의 마음이 진실하기만 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면 관계의 평생을 입에 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관계는 쌍방이라,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이어갈 수 없어요. 제아무리 이쪽에서 이어붙인다고 하더라도 반대쪽이 태워버린다면 인연은 남지 않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당신과 나처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좋아한다.” 그리고 “나와 사귀어주겠나?” 속삭이던 입술이 “미안해.” 다시 “더이상은 너를 좋아하지 않아.” 통보하던 그때 그날을요. 누가 알까요. 별이 새파랗게 익은 밤, 짝을 찾아 우는 매미 울음소리가 시끄러이 울리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어느 인간의 무리 한 쌍이 헤어졌음을.

미안합니다. 나쁜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어요. 당신과의 만남과 이별이 저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귀하고 또 귀한, 인생의 값진 경험이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제 뜻대로 되는 법이 없다는 것을 당신과의 만남 때부터 알았습니다.

고백받은 그 자리에서 저는 당신을 거절했죠.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남자이지 않습니까? 당신 또한 그렇듯이. 그러므로 저는 당신의 왼손 약지에 평생을 새길 수 없고, 맺어져 생명의 꽃을 피우기는커녕 반려로서의 영원을 약속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었죠. 그대 같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해도 좋은 것이냐고. 당신이 무어라고 답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벌써부터 슬픈 소리를 하는구나. 세상에 영원 같은 것은 없어. 어제의 만남이 오늘 또 내일로 이어지는 것뿐이지. 미래는 아무도 알지 못해, 영원 같은 것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만을 생각하자. 우리는 영원이 아니어도 괜찮잖아. 서로가 곁에 있어 행복하다면 그뿐인 거다.


바보 같은 말, 바보 같은 남자. 그러나 그 말대로 현재에 충실히 하는 것이 썩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해버린 자신이 제일 바보 같았습니다. 저는 당신을 거절했어야만 했어요. 끝까지요. 나는 여전히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과의 만남으로 인생의 별것조차 아니었던 것들을 생각만 해도 쓰리게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자면 목요일의 밤이요, 혹은 말라빠진 고체 향수요. 어쩌면 어느 건물 2층의 카페와 같은 것들이요.

부모님께 혼이 나 쫓겨나왔던 날, 나의 짐을 덧씌우기 미안해 거짓으로 둘러대었던 농담에 당신은 ‘너는 농담이 참 서툴구나.’ 하며 웃었지요. 목요일 밤이었어요. 그날이 우리의 첫날이 될 줄은 당신도 나도 몰랐을 겁니다. 예기치 못한 맺음에도 당신은 마치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불과 한살이지만 나보다 어린 당신보다 미숙한 나의 모습에 남몰래 부끄러워했음을 이제야 고백할 수 있게 되었군요.

처음 그대 말처럼 나는 그다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당신은 한곳에 앉아있는 것보다 거리를 거니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운동에는 흥미가 없습니다만, 당신과 함께 걷는 것은 퍽 즐거웠습니다. 스치며 눈에 닿는 거리의 가게 가게마다 걸음을 멈춰서 새로운 추억을 쌓는 것이 어찌 그리 행복하던지요. 당신과 함께 걷는 거리에서는 여름에도 가을에도 언제나 벚꽃의 향이 났습니다.

그 향을 간직하고파 남몰래 쥐었던 작은 향수를 어찌 알았는지, 어느 날인가 그대가 같은 것을 구매했더군요. 플라스틱으로 만든 유리에 상표를 출력한 스티커조차 제대로 달라붙지 않는 싸구려 향수였습니다. 시계 하나조차 함부로 착용하지 않는 당신이 사기에는 너무나도 촌스러운 물건이었어요. 할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당신을 만류하고 싶었습니다. 당신 카드 영수증에 그깟 싸구려 향수를 샀다는 흠집조차 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화를 내는 나에게 당신이 말했지요.


너무 화내지 말아줘, 기유. 나는 그냥 너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건 싸구려였어요. 싸구려였다고요. 향이 좋다면 값은 중한 것이 아니라던 당신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진중했기에 더는 화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렌고쿠 공. 싸구려란 것이 어찌하여 그리 불리겠습니까. 향이 나빠서가 아니지요. 오래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를 가져가면 큼큼한 냄새만이 남아, 잔향조차 남지 않은 그 시원찮은 고체 향수가 아직도 서랍장 안을 뒹굽니다.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이리저리 굴러 나무 벽을 긁는 향수를 언제 버려야 좋을지 의견을 주시겠습니까? 공유하기로 했던 것을 제멋대로 처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쯤에서 한 가지 섭섭한 일을 털어놓아도 괜찮을까요. 당신, 커피를 좋아하지 않더군요. 몰랐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보고 있었거든요. 당신이 그렇게 가르쳐줬잖아요.


기유. 이런 곳에서 사람과 대화할 때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거다.


그렇게 일러준 그대가 어느 새부터인가 나와 대화할 때마다 핸드폰을 바라보던 것을 어떻게 몰랐을까요. 들끓는 불안을 애써 모른 척했던 것이 바로 나의 실수였는지요. 활기 넘치는 당신을 한적한 2층 카페 한구석에 앉혀놓고 바라만 보던 것이 나의 패인이었나 봅니다. 진즉에 알아챘어야 했습니다. 당신을 놓아줄 때가 왔다는 것을.

어느 목요일 밤의 매미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리는 듯합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모르지 않아요. 렌고쿠 쿄쥬로는 끝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똑똑히 알고 있어요. 다만 제가 당신에게 두고두고 생각나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아니요, 사실은 당신이 나를 놓은 것을 후회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겠지요. 여름은 진즉에 지나가 버리지 않았습니까.


받아줘, 토미오카.

오랜 친우잖나.


당신의 딱 하나 잔인했던 점은 바로 나를 이 자리에 초대한 것입니다. 고작 그것뿐이라 아쉽습니다. 차라리 그대가 더 나쁜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요, 마음껏 미워할 수라도 있게. 농담입니다. 좋은 날이니 한 번쯤 웃었으면 해서요. 우습지 않았다면 미안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농담에는 영 재주가 없지 않습니까.

결혼을 축하합니다, 렌고쿠 공. 당신의 내일이 늘 오늘 같기를. 행복하십시오. 모처럼 내어주신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토미오카 기유.



추신. 축의금이 모자라지 않기를.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넣고 싶지만 아무래도 정해진 한계를 넘을 수 없는 모양이라서요. 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제 몫의 답례품을 당신이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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