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BGM : 후니아 - 여자로 보여



[국뷔] 취중진담

W. BAEBAE




훅하고 나오는 입김이 새하얗다.



"..."



뽀도독 발걸음을 따라 움직이는 소리가 겨울을 알린다. 



"아, ... "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사랑이 고프다. 어쩌면 네가, 곁에 같이 걸을 수 없는 네가 많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드는 날에, 시원한 도로를 미끄러지며 달리고 있는 순간에 네가 고프다. 막연한 너는 그렇게 내 삶의 일부로 되어가고 있었다




"김태형-, 나 왔어"



익숙한 친구놈의 목소리에 잠시 상념에 젖어 바라보던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지민을 바라본다. 뽀드득 소리가 나는 눈길을 한껏 뒤집어 쓴 지민이 새하얗다. 머리와 어깨로, 허리와 다리에 뭍은 겨울 툴툴 털어내는 지민이 나를 바라보며 뭐야, 혼자 자작했냐며 타박한다.



"날이 좋아서-, 먼저 시작했지~"




사랑한 날이 있었다.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울기도 웃기도 서로를 달래주며 그 공간 속 단 둘뿐이라 여기던 그 때가 있었다. 분명 우리에게도.




"애는, 애는 어쩌고"




비식 웃으며 와인잔에 담긴 와인을 흔들어 보이니 지민이 타박을 멈추고 태극이의 거취를 먼저 묻는다. 정확히는 내 전 남편과 나의 아이의 행방을. 다행이 쇼파쪽 자리인지라 볼록하니 솟은 내 옆자리의 겉옷을 들어보인다. 새근히 잠든 태극이를 내려다 보니 지민이 앉았던 자리에 금새 일어나 내 옆자리를 내려다 본다.





"미친놈. 애를 데려왔어?? 바에?? 술집에???"


"그럼 어째 애는 집에 혼자두고와? 볼 사람도 없는데?"


"야이!!, 그럼 집에서 보자하지!"


"... 그냐앙, 날이.. "




날이 좋잖아. 그냥. 눈 오는날 이니까. 

너에게 반지를 받던 날도 이렇게 고요히 눈이 내리던 날과 같았었는데.

와인이 아닌 곱창집을 갔었어야 했다고 일단 오픈한 와인만 마시고 집으로 옮기자고도 하다가, 그냥 애도 있고 바로 일어나서 집에 가져가서 마실까?하기도 하다가, 애 이렇게 자다가 감기 들면 어쩌냐며 마치 제 자식인 것처럼 수선을 떠는 지민을 보다 웃음이 났다. 너 전정국 같아-, 라며 웃으니 지민이 부산떨던 움직임을 멈추고 털썩 자리에 앉더니 나를 마주하며 말한다. 



"...미친놈."


"응. 나 원래 정상은 아니지. 나....오늘, 법원 다녀왔어"


"뭐어!? 전정국이 진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어???"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진짜...너도 너지만, 전정국도 병신이구나??"




지민의 말에 답 없이 웃었다. 한 모금도 마실 줄 모르던 와인은, 네가 알려준 술이었는데. 투명한 잔에 검붉음을 가득 담긴 술을 바라보다가, 새근히 잠든 태극이의 심장 부근의 오르내림으로 시선이 내려갔다. 움직이는 작은 심장 위로 손을 가져다 대어 본다. 내 손바닥이 뜨거운지 당신과 내가 만들어 낸이 경이로운 생명의 심장 박동이 더 세찬지 알 수 없지만 그 일렁임을 긴 손으로 토닥거리며 다독인다. 우리 아가- 너의 꿈이 나의 삶보다 달고, 너의 잠이 나의 술보다 부디 영롱하기를-.






*



[형,]




정국이 부른다. 

나란히 서로의 앞에 놓여진 투명한 유리잔에 콜콜콜 따라지는 와인의 빛깔이 마치 우리의 사랑처럼 붉디 붉다. 





[...할 말 있어요.]




순하디 순한 눈매가 나를 담고는 조심스레 떨리기 시작한다. 미성의 목소리가 한 자 한 자 숨과 함께 틀림 없이 내뱉으려고 노력하는 입모양이 예뻤다. 정국의 오피스텔 안, 온 집안에는 조명 대신 놓여진 향초로 가득했고,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멋들어지지 않았지만 네가 몇날 몇일 혹은 그 섬섬옥수 같은 손으로 이리저리 데이고 치이며 만든 흔적들이 가득한 파스타가 놓여져 있다. 중간에는 딸기가를 가듬 담은 케잌까지. 




[할... 말?]




거사를 앞둔 너의 결연한 표정에 덩달한 긴장했던 나는 목소리가 떨렸다. 애써 피어오르는 긴장감을 무마하고자 물컵에 따라진 물을 마셔본다. 꿀꺽하고 긴장감을 애써 감추는데 너의 굳게 닫혔던 입술이 열린다.




[나랑...결혼 해줘요.]




식탁 위로 조심스레 올라 온 반지가 내 앞으로 스윽-, 밀려 온다. 너의 떨림과 너의 긴장과 너의 사랑이 한꺼번에 폭풍우 처럼 밀려온다. 감동과 놀람 그리고 너의 그 긴장감까지 모두 밀려와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어떤 말로 밀려 나오지 못했다. 




[잘할게요.]


[나....그... 결혼, 할 줄.. 약간, 모르는데...?]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엉성한 답변으로 나가자 거절이 아니란 뜻을 알아 차린 정국이 살풋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서 내 옆자리로 넘어왔다. 옆자리에 앉은 정국이 내 어깨를 돌려 잡고는 말했다.




[내가 열심히 배워서, 내가 더 잘 할게요.]


[....응?]


[나 형 없으면 안되요.]




내 완벽한 이상형인데, 형 나 버릴거에요? 나 이렇게 막, 마구 먹고 버릴거에요?라고 물어오는 정국에게 더 당혹한 내가 아아니!! 정국이 내가 책임져야지!!!! 해!! 해 결혼!!! 하자 형이랑! 이라고 막무가내로 허락했던 그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 날도 이렇게 와인이 가득 담긴 와인 두 잔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나, 와인... 마실 줄 모르는데...]


[같이 마셔요. 마시는 법이 어딨어. 우리 같이 짠-, 하고 기분 좋게 마시면 되지]


[와인... 처음먹어봐... 히-]




어색함에 웃음으로 떼우며 있고, 잔을 어디를 잡아야 할지 몰라 허우적 거리는 내 손을 다정히 잡아준 정국이 와인잔 다리에 손을 안착시켜 주고는 부드럽게 잔을 돌렸다. 내 손에 잡혀있지만 정국의 손에 움직이던 잔이 내 입술이 아닌 정국의 입술로 갔다. 한 모금을 마시는가 싶더니, 혀로 조금 굴리고는 잡혀있던 와인 글라스를 테이블에 안착시키고는 그 손으로 내 양볼을 부여잡고 입을 맞췄다. 벌어진 입새 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흘려들어온 와인은 참, 달았고 따뜻했다. 




[흐으읍-.]


[흡,]




입술 촉촉히 적셔진 와인을 혀끝으로 입술까지 핧아내니 포도의 새큰하고 알코올의 진한 향기가 모두 정국의 것이었다. 




[...어때요?]




어떠냐 묻는 정국의 얼굴이 마냥 소년 같았다. 소년같은 그의 얼굴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당신과 함께하는 이 따뜻함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서 정국의 볼을 잡아와 닿아서 따뜻하게 부어오른 입술에 다시 촉-, 입을 맞췄다.




[맛있다-, 엄청!]




절로 벌어지는 네모 웃음에 정국이 다시 내 앞의 와인잔의 잔을 들어 아까보다 더 많이 입가에 머금는 정국의 행동을 보며, 나 역시 조금더 정국에게로 가까이 고쳐 앉아 정국의 목 뒤로 팔을 감고 기다린다. 올려다 보는 너의 얼굴은 늘, 참, 많이 잘생겼다.




[...태형이 주세요- 와인♥]




한 병의 와인도 채 다 마시지 못하고 우리는 와인보다 더 검붉게 서로를 애태웠고, 입술에 머금었고, 사랑했다. 와인 잔이 부족해서 넘쳐 흐르는 와인처럼 우리의 사랑은 흐르고 흘러 침대를 모두 질척하게 적실정도로-.



너의 끝엔


꽃이 있길



문영진 作



BAEBAE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