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없던 폭풍에 부서지고 파도에 휩쓸린 그것들이

이제는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버린 그것들이

나의 전부라고 믿었던 적이 있소


산산히 부서진 잔해와 빛바랜 기억들에 발이 걸리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면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소


쓰라린 바람에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때면

당신의 목소리와 그 품이

그렇게도 그립더이다


굳게 닫혀있던 창문을 열어 밤바람을 깊숙히 들이마시던

간만에 평안히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날

조용히 다가온 목소리가 그렇게나 반가웠다오


여기,

여기로 와

보여줄게 있어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못이기는 척 따라갔었소


부서진 조각을 넘고 빛바랜 기억을 헤치며

희미한 목소리를 따라서 나아가다 보니

어쩐지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싶더이다


검게 그을려 외면했던 그 풍경은

어느새 무수한 조각들이 강을 이루며 빛나고 있었다오

부서지고 빛바래 흩어졌다 생각했던 것들이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오


당신이 사랑했던 것들이 여기 남아있었다며

나의 무수한 조각들이 강을 이루며 빛나고 있었다오

내가 한때 원하고 바랬던 그 모습으로


- 2020. 06. 15. 다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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