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실종자 명단이다.”


 언제나 그렇듯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알래스터 무디가 들고 온 소식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실종자- 라고는 해도 사망한 자들이나 다름없는 이름의 주인들은 언제나 죽음을 먹는 자들과 불사조 기사단, 오러 등등 다양한 집단들에 속해 있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꽤나 다양한 충격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직접 명단을 읽어주는 일은 드물었는데, 기다란 양피지를 손에 놓지 않는 무디를 보며 어떤 이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는 인상을 찡그리기도 했다.


 “조용!! 이제부터 입을 여는 녀석들은 햄스터로 변해 하루 종일 쳇바퀴나 굴리게 될 거다!!”


 무디가 윽박지르자 사위가 한 순간에 조용해졌다.

 시리우스는 턱을 괴고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약간 무료하게까지 보이는 표정에 제임스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시리우스가 살짝 시선을 들어 제임스를 바라보자 약간 긴장된 기색이 어린 그의 얼굴에 약간의 웃음기가 어렸다.


 “오, 패디. 넌 궁금하지도 않은 표정이네.”

 “미안하지만, 프롱스. 난 실종자 수색도 같이 하고 있다고. 그 멍청한 추종자 집단만 빼면 저 명단은 이미 다 알아.”

 “오. 맞아. 우리 자기는 추적 실력도 매우 뛰어났지?”

 “마치 개처럼.”


 덧붙여진 피터의 말에 시리우스가 피식 웃었다. 뭐, 그렇지. 성의 없게 응수한 그는 다시 무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부터 얼굴이 따끔따끔한 것이, 아무래도 무디의 마법 눈은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둥근 파란 눈동자에 시리우스는 느리게 허리를 폈다. 제임스도, 피터도 시리우스를 따라 다시 무디의 걸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흉흉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데, 아마 그는 이미 둘을 햄스터로 변신시키기로 작정한 기색이었다.

 꽤나 긴 명단은 30분을 넘기고서야 ‘Y’의 끝 무렵에 이르렀다.

 무디의 마법 눈이 한 번씩 닿은 자들은 조금 기죽은 얼굴로 햄스터로 변할 걸 기다리고 있었고, 동료를 실종자 명단에서 발견한 자들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색이었다. 원한 관계의 죽음을 먹는 자 이름을 들은 몇몇의 사람들은 화색을 띠기도 했다. 다만, 시리우스는 실종자 명단 중에 이번에도 저가 끔찍이 싫어하는 몇몇 친척들의 이름이 없다는 것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변함없이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는 모양이지. 망할 놈들.


 “요크, 테네샤(York, Tenesha).”


 낯선 마녀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무디는 손에 쥔 양피지를 접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디가 여전히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씰룩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좀 더 주의를 경계하라고 한탕 설교할 생각일 듯싶었다. 무디의 파란 눈이 빙그르르 주변을 살피더니 그 시선이 정확히 시리우스 블랙에게 멈춰 섰다. 인간의 눈과 마법의 눈이 드물게 같은 방향을 향한 것을 보고 피터는 불안하게, 그리고 제임스는 조금 안쓰러움을 담아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정작 시리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긋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무디. 제 친애하는 사촌들이 드디어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이라도 알려주려는 거예요? 그런 건 제일 먼저 말해줘도 되는데.”


 좋아할 사람들도 많을 테고. 시리우스의 말에 몇몇 사람들은 조금 질린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시리우스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블랙인 그가 이곳에 합류해서 함께 싸우던 그 순간부터 그를 독종이라며, 그리고 위험하다며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 정도야 이미 알고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

 무디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마치 시리우스에게서 진심을 읽어내려는 듯 그를 살폈다. 저를 살펴보는 시선이 처음 그가 불사조의 기사단에 발을 들였을 때처럼 고요히 들끓고 있었다. 은근히 길어지는 침묵에 누군가가 침을 삼키려는 무렵, 노련한 오러가 입을 열었다.


 “네 동생.”

 “………….”

 “레귤러스 악튜러스 블랙이 실종되었다더군.”


 시리우스 옆에 앉아있던 피터가 헛숨을 들이켰다. 제임스가 경직된 얼굴로 무디와 제 친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부분, 그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시리우스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속을 읽어낼 수 없는 은회색 눈동자는 그저 짜증스럽게만 보였다.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긴 그가 대수롭지 않게 툭 말을 내뱉었다.


 “또 시험이라도 하는 건가요? 벨라트릭스 그 미친년이나 나시사 같은 그 빌어먹을 사촌들하고 몇 번이나 싸운 거로는 아직도 모자라나 보죠, 알래스터?”


 서늘하게 가라앉은 은회색 눈동자가 무디를 바라보았다. 무디를 찢어죽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그의 머릿속에 스친 누군가가 떠오른 건지, 드물게 선명한 적의로 타오르는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쪽 집안 인간들이 뒤지든 말든, 그건 나와 아무 상관도 없어. 오히려 내가 직접 찢어죽이고 싶은 지경이라고 말했을 텐데?”


 다소 과격한 발언에 또 다시 누군가가 인상을 찡그렸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더니, 제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시리우스는 분명 든든한 아군이었지만 동시에 꺼림칙하게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어릴 땐 동생이랑은 사이가 좋다고 들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중얼거린 소리는 다행이도 시리우스 귀에는 닿지 않는 듯 했다.

 무디 역시 그런 시리우스를 주의 깊게 바라보더니 이내 손 안에 쥔 양피지를 곁에 서있던 어린 오러에게 건네주었다. 마침내 마법의 눈이 떨어지고, 시리우스도 조금 표정을 풀었다.


 “좋아. 그쪽에 정말로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군.”

 “………….”

 “다시는 시험하지 않지.”


 시리우스는 그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서 제임스가 그런 그를 불안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


 시리우스는 그 후로도 쭉, 제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본인은 그토록 증오하는 집안이었지만, 그래도 블랙인 이상 그는 꽤 다양한 어둠의 마법에 능통한 편이었고, 타고난 마법과 추적 실력으로 죽음을 먹는 자들을 찾아내고, 잡았다. 가끔가다 동료들과 농담 따먹기도 하는 모습은 정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평소의 시리우스 블랙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그를 보며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그 말을 꺼내는 이는 커다란 수사슴과, 자그마한 쥐의 공격을 받게 되는 징크스에 걸려 그마저도 쉬쉬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시리우스가 비번인 날이었다.

 비번이어도 항상 본부에서 간간히 단원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아니면 남의 임무까지 함께 받던 시리우스가 드물게 정말 ‘쉬겠다’라고 말해 어떤 이들에게는 잔잔한 파란이 일었다. 수고스런 일은 도맡지 않고, 늘 알게 모르게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기사단의 일에는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그였다. 설마 과로로 몸이 안 좋기라도 한 건가 싶어 시리우스와 친분이 있는 자들은 간간히 마루더즈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들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오랜만에 비번을 알차게 사용하고 싶대.”


 ―그게 그들이 주는 답의 전부였다.

 약간의 의문스런 시리우스의 비번 날이 저물고, 주간 조 단원들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각자 자신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오늘 하루도 살아남았다는 감사와 안도가 어린, 그러면서도 지친 기색이 완연한 모습들이었다.

 제임스도 앓는 소리를 내며 본부를 벗어났다. 게으르게 보일 정도로 느린 움직임으로 어느 한 골목가로 들어간 그는 주변을 확인하고는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직후, 알파드 블랙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의 집에서 열 병 째 파이어 위스키를 막 따려고 하던 시리우스는 갑자기 제 집에 들이닥친 제임스에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늦게 돌아가면 포터 부인이 화낼 텐데, 프롱스.”

 “오, 우리 사랑스런 백합 아가씨를 혼자 두는 건 많이 슬프지만, 그녀도 이해해줄 거야. 어느 멍멍이가 걱정된다고 포터 부인도 그랬거든.”


 과장되게 유쾌할 정도로 말하는 제임스에 피식 웃은 시리우스가 또 다른 파이어 위스키를 땄다. 이미 바닥에 뒹구는 병도 어마어마한데, 이렇게 들이붓다가는 내일 시리우스를 본부에서 보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임스는 병 채로 술을 위장에 그대로 부으려는 시리우스의 팔을 붙들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붉은 기가 어린 시리우스의 눈이 데구르르 제임스에게 향했다.


 “뭐, ‘시리우스 블랙, 술병으로 사망.’ 이런 기사를 남기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만 마시는 게 좋을 걸.”

 “……기사 어지간히도 낼 게 없는 작자들이 아직도 널렸나보지?”

 “음, 그보다는 우리 바보 같은 멍멍이는 인기인이잖아?”

 “빌어먹을 그 놈의 인기.”


 시리우스가 투덜거리며 결국 병을 내려놓았다. 대신 그는 빈 술잔을 빙빙 돌리며 허전함을 달랬다. 제임스는 시리우스 맞은편에 의자를 빼고 거기에 걸터앉았다. 고동색 식탁 위로 굴러다니는 위스키 병과, 그리고 그 아래 흩어진 양피지를 본 제임스가 조용히 얼굴을 굳혔다. 레귤러스 블랙, 더 없이 익숙하기 짝이 없는 그 이름이 수없이 등장하는 양피지였다. 난폭하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휘갈겨진 글씨와 낙서가 가득한 양피지 한 장을 손에 쥐자 시리우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네 동생의 죽음을 조사하고 있었구나.”

 “…….”


 이미 예측이라도 했다는 투였다. 시리우스는 술잔을 돌리던 손을 멈췄다.


 “무디가 확인하라고 시켰어?”

 “그런 것 같아?”

 “…….”


 시리우스는 침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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