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유쾌한 하시마다도 좋아했지만 시리어스하고 어두운 하시마다가 더 취향이었다.









발이 무겁다. 이미 밤이 깊은 시각,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나의 불안한 발소리뿐이다. 찌걱ㅡ발바닥의 땀이 나무바닥과 마찰해 곱지 않은 소리를 낸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굳은 듯이 멈춰 선다. 스스로 그런 소리에 소스라친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제 와서?

 

 

 

다시 천천히 걷는다. 이전보다는 수월하다. 아니, 사실 이건 거짓말이다.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다리가 뻣뻣하게 마비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걸었다. 가야 할 곳이 있었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있었다. 나는 계속 바닥을 응시하고 있던 눈을 들어 어둠에 파묻힌 복도를 응시했다. 간간히 길을 밝혀주던 횃불도, 아직까지 잠에 들지 않은 누군가가 켜 놓은 호롱불의 자그마한 불빛조차 새어나오지 않는 복도는 온전히 밤의 발이 내려져 있었다. 나는 끝이 없는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발을 내딛을수록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의 추한 모습, 나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는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빛의 부재에 익숙해진 시야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것은 이 끝,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길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돌아서야 한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정신이, 저주스러울 정도로 또렷한 목소리로 강하게 말한다. 이 이상은, 안 돼. 더 이상은, 안 돼. 그 말은 내게 지독한 쓴맛과 함께 실날같은 빛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빛. 마음의 평온으로 이어지는 그 찬란한 빛에 매달리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 앞에서 단죄받고 싶었다. 한없는 굴종을 바치고 싶었다. 망설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수백 번, 수천 번은 생각했었다. 너무나도 분명한 갈림길. 시시할 정도로 분명한 답. 이상적인 선택. 나는 언제나 그 길로 갈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돌아섬으로.

 

 

 

나는 다시 멈춰서려고 했다. 이번에야말로 돌아서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내 발은 복도의 끝에, 내가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그 장지문 앞에 도달해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이 내 심장을 움켜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차가움은 내 가슴에 불꽃을 심었다. 격렬한 아픔, 솟구치는 환희와 기쁨. 그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아닌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갈증으로 죽어가는 자가 샘의 환각을 보고 느끼는 것과 같은, 덧없고 무의미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나를 점령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돌아설 수 없었다.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 나를 강제로 끌고가지 않는 한, 영원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ㅡ이곳에, 그가 있으니까.

 

 

나는 장지문 앞으로 다가섰다. 잠잠하던 방 안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나는 홀로 방 안에 있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너는 또다시 외로움에 지쳐 잠이 들었을까? 아니면 이미, 답해줄 이 하나 없는 그 쓸쓸함에 익숙해진 것일까? 조용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그는 기척을 숨기려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문 앞에서 멈춰섰다. 나는 손을 뻗어 장지문을 만졌다.

 

 

눈을 감으면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언제나처럼 무심한 표정을 하고, 가벼운 옷만을 걸친 채 말없이 문을 바라보고 있을 그 모습이. 그의 시선은 흔들리는 일이 없었다. 특별한 감정을 담는 일도 없었다. 그 눈은 지독하게 건조했다. 이따금씩 감정을 내비치긴 했지만 그것은 따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내게 보여준 것은 경멸과 비웃음, 욕망이 담긴 시선뿐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자신을 혐오했다. 그저 욕정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그 행위에, 그가 나를 원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자신을 증오했다.

  장지문에 닿아있는 손에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져왔다. 그의 손이, 내 손의 맞은편에 닿아 있었다. 실루엣만이 보이는 마른 손이 내 손가락을 지그시 눌렀다. 접해있는 손가락 끝에서부터 미약한 온기가 느껴져 왔다.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여, 그의 손을 찾았다. 그의 손과 내 손이 겹쳐졌다. 나는 장지문에 기대듯이 머리를 댔다.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위태로운 충만감이 가슴을 채웠다. 그는 아직 살아있다. 그는 아직 내 곁에 있다......나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그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끝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가 내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는데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마다라.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속삭이는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하시라마.

 

 

 

닿아있는 손 끝에, 약한 힘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가 내 부름에 응답하는 일은 아마 영원히 없으리라. 귓가에 스치는 이 약한 목소리도, 결국은 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를 만나고 나의 세계는 환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환상 속에서 산다. 그와 내가 있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얼굴 가득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 그가 내게 손을 내민다. 그 어릴 때의 나는 그 미소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얼마나 사랑스럽게 여겼던가. 미치도록 가슴이 아프다고 느꼈던가.

 

 

 

그 때의 우리는, 어찌나 순수하게 서로를 사랑했었는가.

 

 

뺨과 입술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작고 어색했던 입맞춤. 꼭 마주잡은 두 손이 나눴던 서로의 체온. 용기를 짜내어 너의 이마에 키스했을 때, 바로 주먹을 날리면서도 얼굴을 잔뜩 붉히던 네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함께 놀고 수련했던 그 여울처럼, 너와의 추억들은 꺼내 볼수록 반짝반짝 빛이 났다.

 

 

너도 나처럼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날의 시간을.

 

 

 

닿아있는 것은 손뿐. 그것도 종이 한 장으로 가로막혀 서로의 온기, 무게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와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몸을 섞고 입을 맞춰도, 너는 나에게서 한없이 멀어지기만 한다. 내 손을 잡아 침실로 이끄는 너의 손길은, 나를 밀어내는 손이었다. 유혹하는 너도, 유혹당하는 나도, 결국엔 서로에게서 한 발짝씩 물러서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겐 더 나았다. 네가 느껴진다. 겹겹이 내려진 어둠의 장막 속에서, 나는 너를 느낀다. 너의 심장소리가, 너의 약한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머리를 댄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다라......마다라......

 

 

대답해줘. 제발....... 나는 그렇게 그에게 자비를 구걸하고, 사랑을 구걸했다. 이 방문 앞에 올 때마다, 나는 그에게 온전히 나를 내맡겼다. 나는 그의 노예가 될 수 있었다. 이미 마음은 오래 전부터, 그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도,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만둘 수 없었다. 추한 것은, 벌을 받아야 할 것은 아직까지 그를 놓지 못하는 나인데도, 모든 책임을 그 탓으로 돌리고 그를 남창으로 매도하는 다른 자들에게 반박하지 못하는 나의 위선에, 야비함에 토악질이 난다. 그의 비웃음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화를 내는 나의 어린애같은 모습이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그는 장애물이라고, 그만 없어지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싫었다. 너를 외면하려고 드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저주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곳에는 문틀에 비스듬히 기댄 그가 서 있었다. 그의 옷 사이로 흰 쇄골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어두운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랑해.

 

 

그 한 마디가, 그의 눈에 생기를 되찾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그에게 반했던 그 순간의 모습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부질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이미 그런 말로 그를 되돌리기는 너무도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부인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말조차 하지 못한다.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악마처럼 웃는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는다.

 

 

 

문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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