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철x한태주























태주는 기분이 이상했다.

내일이면 1989년 1월 1일이었다.

자신이 이 곳에 오고, 해가 바뀌는 걸 보게 될 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매년 새해가 태주에게 어떤 의미를 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주었다.

2018년과 1988년 중 88년을 선택한 자신이 새해를 맞이하게 된 건, 상상도 하지 못 한 일이었다.


강력 3반은 88년의 마지막 날에 그 동안 골머리를 쌓게 했던 소매치기 조직을 잡아 넣고 홀가분하게 한 해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의 조서를 작성하고, 파일철로 깔끔하게 정리한 태주는 퇴근하는 3반 식구들을 보며 가만히 한 숨을 쉬었다.



"뭐 해. 안 갈거야?"



그러던 중 사무실에서 터덜터덜 걸어나오는 동철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동철은 태주와 함께 잠복근무를 며칠 해서 그런지 퀭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긴장이 풀린 태주가 피식 웃었다.



"웃어-? 왜, 뭐! 내 꼴이나 니 꼴이나 거기서 거기야, 인마."

".. 압니다. 그냥.. 그냥 긴장이 좀 풀렸어요."

"일단 집에나 빨리 가자. 피곤해 죽겠다."

"그래요."



태주는 자신에게 손짓하는 동철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철은 천천히 움직이는 태주의 팔을 끌어당겨 그의 어깨를 감싸안았고, 태주는 잠시 놀랐다가 다시 피식 웃으며 동철의 허리에 제 팔을 감고 함께 걸었다.



-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오는 길에 산 소주 몇 병과 통닭 두 마리를 방에 던져두고, 정신 없이 서로의 옷을 벗기며 욕실로 들어갔다.

사흘 정도를 제대로 씻지도 못 하고 양치만 겨우 했던 터라, 씻고픈 마음이 컸지만, 그만큼 붙어먹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끌어당겼다.



"하아, 하- 일단, 일단- 씻고..."

"한 번에 두 가지를 할 줄 알아야지. 안 그래?"

"아니, 잠시- 읍, 흐읏"



욕실 문을 닫자마자, 샤워기를 틀어 몸을 적시며 동철은 태주의 입을 맞추고, 몸을 더듬었다.

태주는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예고없이 제 유두를 꼬집는 손길에 신음해야했다.



-



샤워를 마친 태주는 다리에 힘이 풀려 동철에게 안긴 채 방으로 들어왔다.

어기적대며 옷을 대충 챙겨입다가 겨울의 한기에 소름이 끼친 태주는 이불을 깔고, 덮는 이불을 하나 더 꺼내 몸에 둘둘 말았다.

동철은 연탄을 채우고 들어와 옷을 챙겨 입은 뒤 널브러진 술과 통닭을 들고 와 조촐한 술상을 차렸다.



"많이 추워?"

"하아.. 추운 것도 추운거고.. 누구땜에 힘 다 빼서 힘도 없습니다."

"이리 와, 그럼."

"..."



태주는 이불을 둘둘 만 채 의심스런 눈초리로 동철을 노려봤다.

동철은 피식 웃으며 팔을 벌렸다.



"나도 이제 피곤해서 더 못 하니까 얼른 와."

".. 그래놓고.."

"아, 얼른-"



동철은 계속해서 저를 노려보는 태주를 끌어당겨 제 앞에 앉히고, 이불 째로 태주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계속해서 째려보던 태주는 그 포근함에 금새 눈을 풀고 동철에게 기댔다.



"88년이 얼마 안 남았네요."

"그치? 시간 참 빨라~"

".. 신기해요. 89년이라니. 영원히 88년일 것 같았는데."



동철은 술잔을 채워 태주에게 한 잔을 넘겨주며 대답했다.



"당연한거지. 네가 왔다던 2018년까지 넌 항상 나랑 있을거야."

"... 좋네요, 그거."



태주는 그 말에 안도감을 느끼며 술 잔을 비웠다.

며칠 만에 맞는 휴식과, 씻은 후의 노곤함과, 섹스 후의 피곤함이 몰리는 가운데 알코올 향이 강한 소주가 목으로 넘어가자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몸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태주는 아예 동철의 쇄골에 뒤통수를 기댄 채 눈을 감고 한 숨을 내쉬었다.

너무 편안했고, 행복했다.



"많이 졸려?"



동철은 그런 태주의 맘도 모른 채 걱정스레 물었다.

태주는 그에 고개를 더 젖혀 동철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냥.. 좋아서요."

"난 또-.. 술만 먹지 말고, 안주도 먹어. 오늘 밥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초승달 처럼 휘는 태주의 눈을 따라 씩 웃던 동철은 닭다리를 뜯어 태주의 입에 물려주며 말했다.

태주는 입에 물린 닭다리를 오물오물 씹으며 행복감을 만끽했다.


두 사람은 말 없이 먹고 마시기만 했지만, 중간중간 이유 없이 키득댔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 마시던 두 사람은 사왔던 통닭과 소주 세 병을 모두 없앴고, 동철은 곧바로 일어나 뒷정리를 하고, 태주 또한 따라 일어나 손을 씻었다.



=삐빅- 삐빅-

"89년이에요."



손목시계 알람에 시간을 확인한 태주는 자신의 뒤를 이어 싱크대에서 손을 씻던 동철에게 다가가 말했다.

동철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태주는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제.. 이제.. 89년이에요. 1989년."

"그래. 맞아."

"아.. 나는.. 나는-"



태주는 심장이 점점 크게 뛰어 말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었다.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88년을 선택하고, 계절이 바뀌는게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할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더 이상 이명도, 현기증도 나지 않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긴 했어도, 이렇게 벅차지는 않았다.


비로소 진짜 자신이 이 곳에 정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철을 사랑하고, 강력 3반을 아끼긴 했지만, 진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 이제 더 이상 88년이 아닌 89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정말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장님.."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또 뭐가 들려?"



동철은 한동안 악몽으로 괴로워했다가 아무런 이상 없이 잠잠해진 태주가 다시 이상해진건가 싶어 걱정스레 물었다.

태주의 얼굴을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았는데, 태주는 그대로 동철의 목을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하아.. 사랑해요. 진짜. 진짜로-"

"그럼 그 동안은 가짜였어?"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사랑해요, 계장님."

"알아. 나도 사랑하니까 나 봐봐."



동철은 광대를 한 껏 올린 채 힘이 잔뜩 들어간 태주의 팔을 톡톡 쳤다.

태주는 그에 팔을 풀고 동철을 올려다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태주의 눈을 보자마자 동철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네가 먼저 안긴거야."

".. 몰라, 그래요. 그렇다고 치자."

"큭큭, 안 재울거야."

"재우기만 해 봐."



둘은 아까보다 더 격정적으로 입을 맞추기 시작했고, 새해 첫 날 아침은 뜬 눈으로 맞이해야했다.


태주는 행복했다.

동철과 함께.

오랜만에 뭐 먹음.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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