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 진짜! 왜 아저씨가 여깄는 거야!!"

"뭐, 난 귀요미 공연 구경오는 것도 안되냐?"
"아니 오는 건 둘째치고! 공연장에서 치킨판은 왜 벌이는데~!! 여긴 나만을 위한 무대라고!! 아저씨 때문에 관객들 시선이 분산됐잖아!! 진짜 뭐하자느읍..."


공연이 끝난 뒤의 대기실에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글은 리첼이 머리 끝까지 화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것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하기사 이글이 한 행동은 충분히 화날 만 했다. 치킨에 맥주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오다니, 하나씩만 싸들고 와도 관객석 매너가 없다고 욕을 얻어먹을 판에 근 40마리에 15리터 가까이 되는 치킨과 맥주를 관객석에 배포해버린 탓에 시선이 분산돼버렸으니 리첼이 화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하, 나 참... 알았다 알았어! 일단 그거나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말해두는데 내가 고작 이런 닭다리 순살간장프라이드 세트에 넘어가리라 생각했... 다면..."


그러나 리첼의 분노도 얼마 가지 않았다. 이글이 입에 물려준 치킨을 씹자 그 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역시 화를 달래는 데엔 맛있는 걸 먹이는 게 최고였다. 촉촉한 육즙과 함께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닭다리살의 쫄깃함과 튀김옷의 바삭함. 특제 간장소스의 달달함에 리첼의 분노는 어느 샌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하하, 역시 애네, 애야~"

"아냐~!!"

"그나저나 꼬맹이. 아직 술 못 사지?"

"응, 난 아직 나이도 안 찼으니까... 그래도 내년이면 살 수 있어!"

"오호~ 그럼 지금은 술 못 마시겠다."

"아니 뭐 아저씨야 마시려면 그냥 지금 사서 마실 수도 있잖아? 돈 많겠다, 나이도 다 찼겠다."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린애는 어린애라는 듯. 씨익 웃으며 어린애라고 하는 이글에게 리첼은 소리를 빽 질렀다. 언제쯤 나는 그 사람에게 애 취급을 받는 날을 벗어날런지... 리첼은 뜬금없이 나이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는 건지 술 못 사냐는 이글에게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도 내년이면 살 수 있는데, 뜬금없이 지금은 술 못 마시겠다는 이글을 보고 의아한 느낌이 들어 역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아저씨는 돈도 많고, 나이도 다 찼으니 지금 당장 마실 수 있지 않던가?


"난 꼬맹이랑 같이 마시고 싶어서 그래!"

"뭐 마시는 거야 가능하지 않겠어?"

"어, 그런가? 그럼 좀 있다 사올게!"


아니나 다를까, 미성년자인 자신이랑 같이 술을 마시고 싶었다는 이글을 보고 리첼은 허망한 듯 어이없는 듯, 허망함 반 어이없음 반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대단한 포부도 아니었다. 그냥 자기랑 같이 마시고 싶은 거였다니... 까짓거 질러볼까 하는 마음에 마시는 거야 가능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좀 있다 사오겠다는 이글의 대답이 돌아왔다.


"날건달 아저씨... 아저씨! 술 취해서 꼬장부리기 없기다!!"
"알았어! 짜슥, 걱정은... 여기서 딱 기다려! 금방 사올게~"

"알았어!"


"어? 뭐야. 얘 어디로 사라진 거야?"


분명 대기실에 있겠다고 했는데, 어디로 간 걸까? 그 활기찬 아이가... 언니한테 갔나? 싶은 마음에 이글은 대기실 안에서 기다리다 말고 건물 밖으로 나가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 때, 골목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그 꼬맹이의 비명소리였다. 이글은 지체 없이 옆구리에 찬 태도를 뽑아들고는 골목을 향해 달렸다.


"으아악!!"

"아~ 이거 참... 거 언니가 빚진 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니가 빨리 갚아야지."

"으으... 알았어. 다음 달..."

"이거 보여? 만기납부일이 지난 달로 되어있는데. 얼른! 갚을! 생각이나!"

"뭐냐 니들? 꼬맹이한테 뭐하는 짓이냐?"

"아저씨는 가... 그냥..."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누군가가 리첼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다음 달에 갚겠다는 리첼의 말은 만기납부일이 지난달로 되어 있다는 말과 함께 연달아 날아오는 주먹에 묻혀 사라졌다. 기가 찼다. 내 사람한테 감히 주먹질을... 그런데 일단 무슨 사정인지는 들어봐야 했다. 이글은 한 대 더 치려던 불량배의 주먹을 손으로 잡아 막아내고는, 그냥 가라면서 팔을 잡아당기는 리첼을 손짓 한 번으로 털어냈다.


"그거 줘봐. 니 손에 든 그거 말야. 내놔보라고!"

"뭐야 얘는?"
"상관없어. 자. 봐."

"뭐야... 너 빚쟁이였냐? 아냐. 잠깐만... 이거 수취인이 리사 스트라우스, 멜빈 리히터로 되어있잖아."

"맞아... 호라이즌 애들이... 빚을 좀 졌는데..."

"야. 애먼 꼬맹이 건들지 말고 걔네한테 가서 갚으라 그래. 뭔 엉뚱한 애를 잡고 있어."


손에 쥔 칼로 불량배를 가리키며 이글은 손에 든 문서를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문서를 꼼꼼히 읽어봤더니 채무를 변제하라는 문서였다. 그녀가 나 몰래 빚을 진 게 있었나 싶은 의문도 잠시뿐, 어딘가 수상한 점이 있어 문서를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채무자 항목에 '리사 스트라우스, 멜빈 리히터'라고 적혀있었다. 옆에서 호라이즌 애들이 빚을 좀 졌다는 그녀의 대답이 들려오자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었다. 이글은 칼을 어깨에 걸치고는 불량배들에게 엉뚱한 애를 왜 잡고 있냐고 따졌다.


"백번 양보해서 리사 그 꼬맹이까지야 걔는 우울증에 체력도 없지 집안 빽도 없지 거의 금치산자나 다름없으니 그렇다 치자. 근데 내가 문제삼고 싶은 건 걔가 아니라 여기 적힌 멜빈이라는 이 새끼. 이 새끼를 문제삼고 싶은 거라서 말야. 이 새끼는 사지 멀쩡하지 일도 잘하지 집안도 멀쩡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얘 때문에 꼬맹이를 후려잡고 있는 건 너네로서도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시끄럽고. 우린 돈만 받으면 끝이야."

"아~ 하하. 그러니까 얘넨 그냥 구실이다. 이거지? OK. 논리적 설득이 안 먹힌다면..."


사실 리사 정도야 어느 정도는 그럴 만한 온당한 이유가 있어서 이글도 어쩔 수 없지만 납득했다. 체력도 없고 우울증에다 집안 빽 같은 것도 없는 거의 금치산자나 다름없는 상태인데다 분명 리사의 사인이 아니라 리첼의 사인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지만 멜빈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사지도 멀쩡하고 일도 잘 하고 집안도 멀쩡하고, 이글의 말대로 충분히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되는데도 리첼에게 덮어씌우는 건 여러 모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돈만 받으면 끝이라는 불량배의 대답에 이글은 한 손으로 검을 고쳐잡고는...


"으악!!"
"썰어주지."


냅다 불량배의 상반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잘려나간 불량배의 팔이 땅에 떨어졌고, 이어 피가 분수처럼 뿜어나오며 불량배의 복부가 대각선으로 상하분리되어 땅에 떨어졌다. 두 토막난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웅덩이를 이루자, 불량배들도 그제서야 누굴 잘못 건드렸다는 걸 깨닫고는 가져온 몽둥이를 챙겨들었다. 못이 박힌 살상용 무장이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건만, 이글은 리첼과 달리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칼을 다시 칼집에 밀어넣었다.


"이... 이 녀석이!! 얘들아!!"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아홉 명. 끝이야? 더 없어?"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이야 싱겁다. 느려 느려~ 발목 좀 베자!!"


한 번 잘못 후려맞으면 살이 찢길 수도 있다. 벌벌 떨고 있는 리첼을 손으로 달래 안심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손가락으로 불량배들 수를 세며 이글은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척 보니 쇠몽둥이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쇠몽둥이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은 위협적이었을 테니 당황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두세명 정도 불량배들이 달려들자 이글은 여유있게 공격을 피하고는 허리의 칼손잡이에 손을 댔다.


"아~ 새끼들 진짜 가만히 좀 있지. 발목을 베야 되는데 목을 베게 만들어."

"야! 다굴이다!!"

"하하!! 한 명 더!!"


순식간에 불량배들의 목이 날아갔다. 발목 좀 베자는 이글의 말과 달리 불량배들의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어 땅에 떨어졌다. 둔탁한 소음과 함께 이글의 등 뒤를 몽둥이가 거세게 가격했지만 이글은 오히려 재밌다는 듯 뒤돌아 검을 휘둘러 또 한 명을 좌우로 반토막냈다.


"으악!! 으아악!! 이 새끼들이...!!"

"죽어!! 죽어!! 괴물 자식!!"
"보자보자하니까...! 누구한테 괴물이래!!"


그걸 마지막으로 남은 네 명 정도의 불량배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제아무리 홀든가의 검사라 한들 사방에서 원진으로 둘러싸고 들어오는 공격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신나게 두드려 맞으며 옷이 쇠몽둥이에 박힌 못에 찢겨나가고, 살에도 상처가 나 피가 흘렀건만, 이글은 멀쩡히 살아남아서는 괴물이란 말에 발끈해 다시금 칼을 휘둘렀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마무리!!!"


원진포위를 떨쳐냈으니 이제는 반격뿐, 이글은 온 힘을 다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처음엔 불량배들이 든 몽둥이를, 그 다음엔 불량배들의 본체를 신나게 썰어버리고, 마지막으로 검을 크게 휘둘러 이전에 불량배였던 살조각들을 날려버렸다.


"으악...!! 아, 젠장... 이거 벨져 형아가 사준 건데... 형아한테 한 소리 듣겠네. 그건 그렇고 괜찮냐?"


그러나 역시 너무 많이 얻어맞았는지, 체력의 소모는 어쩔 수가 없었다. 벨져가 사준 옷이었는지 벨져를 언급하며 혼잣말을 하던 이글은 비틀비틀거리는 몸으로 구석에서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무 말 없이 구석에서 떨고만 있던 리첼이 그의 손을 잡은 순간 은은한 미소와 함께 괜찮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하하, 스릴있네..."

"진짜 아저씨는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


구해주러 왔건만 결국 결말은 꼴사납게 구해주려던 그녀에게 기대어 같이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결말이었다. 스릴있다며 웃는 이글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리첼은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냐고 툴툴댔다.


"미안하지만 이게 나, 이글 홀든이다. 하하하하~"

"아, 진짜... 날백수한테 구해지니까 솔직히 쪽팔려..."

"뭐야? 요게~ 못 하는 말이 없어!"

"그래도 고마워... 구해줘서..."
"별 말씀을... 아~ 벨져 형아한테 뭐라고 이야기한담..."


그래도 한량이라는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는지 기운이 없는데도 쓸데없이 웃는 이글을 보고 리첼은 날백수한테 구해지니까 솔직히 쪽팔리다고 또 툴툴댔다. 내심 고마운 마음은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구하러 와준 게 그였으니까... 구해줘서 고맙다는 그녀에게 이글은 이마 뽀뽀로 대신 대답하고는 벨져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냐며 혼자서 푸념했다.

파르페르파의 포스타입입니다 찾아와봤자 별거 없어요 이거저거 할만큼 하는 포스타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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