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ME!>의

2부입니다. 







BGM: Quadro nuevo / Tango jalousie







   기계 소리만이 울리는 조용한 병실에는 민석이 누워 있었다. 몸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팔과 다리는 모두 골절되었고, 척추에도 손상이 가 한동안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백현 쪽으로 받치지 않게 핸들을 돌렸으나, 그렇게 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민석은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았다. 백현인 어떻게 됐을까. 어디에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서울에서 런던까지 오며 한 고생은 고생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기 동생들이 당하는 걸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새벽의 조용한 병실 문이 열렸다. 민석은 고개를 돌리지 못 해 시선만 옮겼다. 그 곳에는 깔끔하게 수트를 빼입은 시우민이 있었다. 민석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어졌다. 차분하게 들어온 시우민은 의자를 끌어다 민석의 침대 옆에 앉았다. 민석은 눈이 빠질 듯 그를 노려 보았다. 시우민은 가볍게 턱을 괴고 그런 민석을 보았다.





    “좋아 보이네.”





    꼼짝도 못 할 만큼 큰 부상을 당해 누워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우민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민석을 보았다. 민석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고, 그 표정은 그 어떤 것보다 차갑고 무서웠다.





    “애들은 안 죽이기로 했잖아.”





    이렇게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국정원에서 마주 한 날, 민석은 그대로 시우민과 그 부하들에게 납치되었다. 그리고 국정원 내의 정보를 제공할 것을 강요 받았다. 물론 민석은 그런 정보를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시우민이 꺼내든 것을 보고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생체 내장형 카메라와 녹음기였다. 종인을 통해 익숙하게 본 것이라 민석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진 시우민의 말에 그는 별 수 없이 함께 런던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이거, 너희 팀에 하나일 것 같아?


    결국 스위치는 시우민이 잡고 있는 것이었다. 시우민은 그에게 걸릴 게 없었다. 그 점을 민석은 빠르게 간파했고, 차라리 원하는 대로 해주고 끝내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동생들은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했다. 분명, 약속을 했다. 하지만 민석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참았다. 시우민은 그런 민석을 보며 씨익 웃더니 손을 뻗어 민석의 가슴팍을 다독였다. 꼭, 아기를 재우는 다정한 손짓 같았다.





    “민석아.”

    “...”

    “두 형제가 있었어.”





    민석은 가볍게 눈을 감았다. 이 새끼가 정말.





    “형제는 둘 다 지옥에서 태어났지. 맞아, 그건 정말 지옥이었어.”

    “...”

    “근데 둘에게 기회가 온 거야. 둘 다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하지만 어떤 건 진짜 천국이고 다른 건 천국을 가장한 또 다른 지옥이었지.”

    “...”

    “그래서 진짜 천국에는 누가 갔게?”





    시우민이 생긋 웃었다. 그러면서도 다정하게 가슴팍을 두드리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형은 지옥에서 죽을 만큼 버티고 또 버텼어. 살아 남아야 했으니까.”

    “...”

    “근데, 동생이 자꾸 형을 밟잖아.”

    “...”

    “올라오지 말라고. 넌 거기 있어야 한다고.”

    “야.”

    “그럼 형이 화가 나, 안 나?”





    가만히 가슴팍을 토닥이던 시우민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그리고 그가 입고 있던 병원복을 꽉 쥐었다. 민석은 고개도 돌리지 못 하고 그를 노려 보았다. 그러다 시우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수트 재킷의 단추를 채우는 것조차 민석과 똑같았다. 





    “그래서 그래.”

    “그거랑 약속이랑은 별개지.”

    “약속?”





    약속이라는 말에 시우민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아, 하고 생긋 웃었다.





    “난 약속 지켰는데?”

    “이게 어떻게 지킨 ㄱ...”

    “안 죽인다고 했지 안 건드린다고는 안 했잖아.”

    “...”

    “근데 너는 그런 약속 안 했어.”





    시우민의 손이 다시 민석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민석의 명치를 꾹 눌렀다. 민석은 아파서 숨도 못 쉴 정도였다. 숨만 헐떡거리며 그가 누르는 압력을 받아내는데 그의 귓가에 시우민이 작게 속삭였다.





    “너도 안 죽일 거란 약속은 안 했다고.”

    “...”

    “일 다 끝날 때까지 여기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동생아.”





    빙긋 웃은 시우민이 손을 뗐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민석은 숨을 겨우 골랐다. 그런 민석을 흐뭇하게 보던 시우민이 이내 수트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었다.





    “형은 열심히 너인 척 하고 올게.”

    “... 씨발 새끼...”

    “어어, 진짜 민석이는 그런 말 안 써요. 그쵸?”





    민석처럼 다정하게 웃은 시우민이 이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병실의 문이 닫혔고, 민석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를 굴리자. 김민석, 생각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대는 런던에 발을 내딛었다. 그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종대를 필두로 한 팀은 모두들 말끔하게 수트를 입고 있었고, 그들은 백현과 세훈이 있는 병실을 찾았다. 팀 엑소더스의 의무팀이 들어와 백현과 세훈을 이동시켰고, 종대는 모두가 바쁜 방 한가운데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세훈은 아마 칼로 수십 곳을 찔린 것 같았다. 그리고 백현은 다리가 골절되어 장장 열네 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종대는 바쁜 의무팀원들을 보다가 옆에 서 있던 보좌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민석은?”

    “찾고 있습니다.”

    “... 박찬열은?”

    “... 감지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찾고 있습니다.”





    박찬열까지 실종됐다 이거지. 종대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병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팀을 이끌고 차로 향했다. 그의 뒤로 열 명도 넘는 요원들이 뒤따랐고, 종대는 맨 앞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꾹 눌러 참았다.


    런던 본부에 도착해서는 각자의 방을 살펴 보았다. 그러다 종대는 세훈의 방에서 할 말을 잃었다. 분명 하얀 침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침대는 검붉은 색의 피가 가득 물들어 있었다. 종대는 한참동안 침대를 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세훈이 누워 있었을 침대를 어루만졌다. 종대는 밖에서 지키고 있던 요원이 이제 가셔야 한다고 말할 때까지 침대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런던 본부를 정리하고 다시 뉴욕으로 향하려던 때에, 경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종대는 가볍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

    [코드 왜 해제했어?]





    종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대는 코드 블랙을 해제했다. 그리고 요원들의 모든 위치를 공개했다. 그래서 의무팀이 그들을 데려갈 수 있던 것이었다. 종대는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전해야 할까. 아무리 도경수라도, 요원 세 명이, 그것도 자기의 형제들이 그렇게 당했다는 걸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런던은 끝났어.”





    종대가 잠시 말을 안 했던 것처럼,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마디에 경수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 뉴욕 갈게.”

    [... 사상자는?]

    “몰라.”

    [...]

    “변백현이랑 오세훈은 의무팀에서 보고 있고, 나머지 두 명은 어딨는지 몰라.”

    [김종대.]

    “제발.”

    [...]

    “나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 좀 알아 주라.”





    종대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일 다 끝나면... 할 말이 있어.”

    [...]

    “어쨌든 급한 일부터 끝내자. 경수야. 응?”

    [... 알겠어. 김준면한테는 일단 말 안 할게.]

    “응, 그래야 할 것 같다.”

    [근데 너까지 여기로 오면 어떡해.]





    그의 말에 종대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정신없는 공항 내부를 보았다. 그는 잠시 그 인파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시우민이 이렇게까지 우릴 잡고 싶어 하는데,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게 피차 낫지 않겠어?”

    [... 김민석은... 시우민이랑 같이 있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 다음은, 뉴욕일 거고.”





    경수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종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경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무튼, 알았다. 도착 시간 알려줘.]

    “어. 마중은 안 와도 된다.”

    [갈 생각도 없었어.]

    “아, 왜애!”

    [어른답게 굴어라.]

    “왜요!”





    종대와 경수는 그렇게 통화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경수에게 그렇게 징징거리던 종대의 표정이 싹 바뀌었고, 그는 옆에 서 있는 수행원을 손짓으로 불렀다. 수행원이 가볍게 허리를 숙였고, 종대는 그의 귓가에 작게 중얼거렸다.





    “뉴욕팀 전자기기 전부 녹취 따놓으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특히, 도경수.”





    예, 하고 대답한 수행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걸음을 옮겼다. 종대는 팔짱을 끼고 앉아 날카로운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경수는 통화를 끊고 한참동안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새벽 두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에 경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종인의 방이었다. 경수는 노크 없이 그대로 문을 조용히 열었다. 불이 꺼진 방 안에는 종인의 곤한 숨소리만이 들렸다. 경수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종인은 잠에 깊게 빠져 그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경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바로 위에 올라타 상체를 제압했다. 자다가 놀라서 깬 종인은 경수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시우민.”





    시우민, 이라는 말에 종인의 표정이 바뀌었다. 당황한 것 같았다. 경수는 그의 목을 팔로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김민석이랑 시우민, 넌 구별할 수 있지?”

    “...”

    “있냐고 물었다.”

    “... 어.”

    “무슨 차이야.”





    종인은 한 번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경수가 그의 목을 한 번 더 눌렀다. 큿, 하고 목이 졸린 종인은 그럼에도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가볍게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타투.”

    “타투?”

    “어. 시우민은 목 뒤에 타투가 있어.”

    “그건 목 가리면 안 보이잖아.”





    경수의 말에 종인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목이 졸린 상태에서도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눈빛이 달라.”

    “...”

    “너희 셋, 형제처럼 자랐다면서?”

    “...”

    “그럼 딱 보면 알 걸. 누가 시우민이고, 누가 김민석인지.”





    경수는 한참동안 종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팔을 뗐다. 졸렸던 목을 매만지며 몸을 일으킨 종인은 경수의 등을 바라보았다. 경수는 침대에서 내려와 가만히 서 있었다. 종인은 그런 그를 보다가 큭큭 웃었다.





    “왜?”

    “...”

    “시우민이 런던 애들 다 죽이기라도 했대?”

    “...”

    “걔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

    “한 번만 더.”





    순식간이었다. 종인이 다시 침대에 눕혀지고 그의 얼굴 바로 옆 베개에 칼이 꽂혔다. 허벅지에 차고 있던 잭나이프를 휙 돌려 꽂은 경수의 눈빛이 형형했다. 





    “내 가족들 가지고 웃으면 가만 안 둔다.”

    “...”

    “넌 내 가족 아니야.”





    경수는 꽤 오랫동안 종인을 노려보고 꽂았던 칼을 뽑았다. 베개에 있던 솜이 살짝 삐져 나왔고, 경수는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와 방에서 나갔다. 종인은 천장을 향해 대자로 누워 멍하니 위만 보았다. 그러다 가볍게 중얼거렸다.





    “좋겠다, 너희는.”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런 가족도 있고.”








Stuck in lim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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