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이님께 드리는 연성 마니또. 키워드는 ‘앤더스’와 ‘고양이’. +특별한 인물.
* 앤더스가 마법사 탑에서 지내던 시절 맞이한 겨울 휴일의 이야기.
* 개인 설정이 포함돼 있습니다. 테다스 휴일 전통이라든지, 옛날의 앤더스는 어웨이크닝 때보다 조금 덜 쾌활한 성격이었고 어웨이크닝의 모습은 누군가에게서 옮은 것이라든지.





차가운 것이 피부에 닿아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부터 잔뜩 흐린 하늘이었다. 곧 내리려나 싶기는 했다. 눈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쌓이기라도 했다간 그걸 치우는 건 어차피 자기네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저놈의 템플러들은 뒷짐 지고 목석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번득이는 감시의 눈을 투구 사이로 빛내면서. 

마법사 협회 내의 마법사들은 사실상 탑 안에 갇힌 죄수들이나 다름없었다. 다들 수련생이나 견습 마도사, 수석 마도사 등의 제각기 직함을 달고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대외용에 지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질서와 규칙이 있고, 합리적인 법도가 존재하는 번듯한 사회 구성원이랍니다, 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으로 취급해주지도 않는 주제에. 

앤더스는 작게 혀를 차고는 대충 비질을 했다. 어차피 눈이 쌓이면 다시 해야 한다. 그러니 맨날 하는 아침 일과에 불과한 마당 청소 따위 성실하게 할 이유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정문 쪽이 약간 번잡스러운 것 같아 시선을 돌리니, 몇몇의 사람들이 짐가방을 들고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행색을 보니 대부분 협회 마법사들이었고, 다들 외출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뭣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하다 앤더스는 문득 떠올려냈다. 그렇지, 오늘은…


“오늘은 안 나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살짝 쾌활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앤더스는 흥미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왜 나가야 되는데?”
“엥? 진짜 안 나가?”
“뭐야, 그 당연히 나갈 줄 알았다는 듯한 말투는?”

진심으로 뜻밖이라는 듯이 뒤통수를 긁적이는 팔 아래로 마법사 의복 소맷단이 늘어져 내렸다. 

“그야 오늘은 특별하니까.”

앤더스는 한숨을 쉬었다. 특별한 날. 그렇다. 전통에 따르면 오늘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날이다. 며칠 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며, 보통 그 기간 동안 가족들을 만나러 가곤 한다. 원래 탑을 떠날 수 없는 마법사들도 일 년 동안 유일하게 딱 한 번 이 날에만 떨어져 사는 친지나 가족을 만나는 것이 허락된다. 

“나한테 만나러 갈 사람이 어딨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는 앤더스를 향해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이라기보단, 너라면 오늘은 꼭 나가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무래도 방어가 허술해질 테니까.”

연휴 시작 날, 마법사들조차 바깥 출입이 허락되는 특별한 날. 그 엄중한 경비도 아무래도 이런 날엔 조금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여섯 번의 탈출 상습범 앤더스잖아? 또 탈출을 하려면 오늘을 노리지 않을까 했거든.”
“…일곱 번이야.”

앤더스가 조용히 정정했다.

“애초에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고. 숨막힐 만큼 모든 일에 하나하나 제한을 두는 마법사 협회가 일 년에 한 번이라지만 마법사들을 바깥에 나가게 해주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구속 수단이 있기 때문이잖아.”
“아… 속박의 피.”

그렇다. 속박의 피를 협회가 쥐고 있는 한, 마법사들은 어디든 도망치지 못한다. 그것을 알고 협회는 마법사들을 보내주는 것이다. 힘을 과시하듯이.

“하지만 지금껏 탈출 시도를 한 게 속박의 피를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신경 안 쓰고 계속 시도했잖아.”
“아무튼, 오늘은 안 나가.”
“흐음. 뭐 상관 없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넌 뭐야? 남이 탈출하는 데 관심이 왜 그렇게 많아?”

앤더스의 궁금증 어린 시선을 받은 그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따라오라는 턱짓을 했다.

잠시 후 마굿간 뒤쪽 구석진 곳까지 앤더스를 데려온 그는 쉿, 하고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조심조심 몸을 수그렸다. 작은 통나무 가지들 위에 지붕처럼 덮여 있는 낡아빠진 헝겊 쪼가리를 걷어내니 드러난 것을 보고 앤더스는 저도 모르게 얕게 숨을 삼켰다.

어미 품 속에 가만히 안긴 새끼 고양이들 서너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잠들어 있었다.

“귀엽지?”

앤더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키우는 애들이야?”

앤더스가 묻자 그는 푸흐,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동물을 키워. 걸리면 다 빼앗기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어미 고양이가 여기서 새끼를 낳았더라고. 그냥 천만 덮어주고 가끔 생각나면 보러 오는 것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앤더스는 나름 정성을 들여 만든 나무 기둥이라든지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단단히 고정된 천, 그리고 청결을 유지하고 있는 물그릇 등을 눈치챘다. 아마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여기에 쏟고 있을 것이다.

“나는 칼 테클라. 칼이라고 불러.”
“…앤더스야.”
“응. 잘 부탁해.”

여전히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그는 손을 내밀었다. 앤더스는 무심코 그 손을 맞잡았다. 이 탑에 머무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그런데 내가 탈출하는 거하고 얘들이 무슨 상관이야?”
“아, 그러니까 새끼들이 슬슬 우유 말고 뭘 먹을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이야. 바깥에 마땅한 고양이 먹이 같은 거 팔지 않을까 싶어서. 돈은 줄 거였는데.”
“…‘외출’이 아니고 ‘탈출’입니다만?”
“응. 근데 너 번번이 실패하고 잡혀 오잖아.”
“이 새끼가?”

…취소다.
앤더스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때 그때 좋아하는 것을 막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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