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나는 루이스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마엘이나 로랑 부인께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어쩐지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는 기묘한 의심과 한바탕 싸워야 했다. 그 싸움 끝에 내린 결론은 그들을 의심할 자격도 내겐 없다는 것이었다. 난 그들 때문에 무대에 서고, 누리지 못했을 것을 누리는 여자였다. 나는 그들의 과거가 어땠는지 간에, 그들의 현재를 보기로 했다. 사람은 변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마엘, 내 공연 시간을 늘려보는 건 어때요? 이십 분은 너무 짧잖아요.”


 내가 공연 시작 전 해금을 닦으며 물었다. 내 공연시간은 이십 분 남짓하였다. 이 짧은 공연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면 마엘의 능력과 더불어 해금의 인기, 나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런 인기에는 공연 시간을 늘리는 걸로 보답해야죠.”


“글쎄요, 클로시엣. 나는 잘 모르겠어요. 이십 분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인기있는 가수들의 공연 시간은 모두 짧아요. 자신의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서죠.”


 난 희소성이라는 단어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마엘의 말을 옳았다. 만약 내가 공연을 두 시간 내내 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고리타분한 해금 연주자로 간주할테지.


“알겠어요, 마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 준비 잘해요, 밖에서 관객 분들을 맡고 있을게요.”


 마엘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며 방을 떠났다. 나는 그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는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로랑 부인처럼 우아하고 존귀하지는 못했지만, 그처럼 자신만의 매력을 살릴 줄 아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무대로 통하는 복도에 섰다. 그곳은 내게 이제 익숙했다. 편안하게 해금을 만지작거리며 오늘도 무사한 이 십분이 되기를 기대했다.


“저 년은 아직도 하는군!”


 나는 그림자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었다.


“뮤즈?” 내가 뒤를 돌아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 발걸음을 재촉하며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다녔다. 어떤 문을 열면 공이나 철골물 같은 공연에 쓰이는 장치들이 보관되어 이었고, 어느 한 문은 프릴이 달린 드레스와 같은 의상들이 보관되어있었다.


 “제기랄!” 뮤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스스로 지옥문을 연 것 같았다. 복도 오른편 다섯 번째문, 그건 괴기한 세계로의 문이었다.


 내가 들었던 목소리는 뮤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괴물의 목소리였다. 그 괴물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키는 다섯 살 꼬마만했지만, 다리에는 털이 수북히 자라있었고, 얼굴도 그와 어울리지 않게 늙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키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큰 남자와 머리가 두 개로 갈라져 자라있는 여자, 심지어는 팔 다리가 잘린 채 뒤뚱뒤뚱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내 다리가 떨려 금방이라고 쓰러질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이방인 보는 듯이 바라보았다.


“우리를 발견했어!” 얼굴 전체가 털로 뒤덮인 사람이 말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


“망했어. 끝장이야.” 한 때는 뮤즈였던 괴물이 대답했다.


 그들은 나를 보며 무어라 쑥덕되는 것 같았다. 대머리의 한 남는 나를 보며 체셔 고양이의 불쾌한 미소를 지었다.


‘클로시엣입니다!’


 멀리서 마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연이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는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무대로 나가려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몸은 단단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저 년도 우리와 똑같네.” 머리 두 개 달린 여자가 나를 보며 킬킬거렸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우리에 대해서 아무 말도 못할걸?”


 마엘이 복도를 뛰어오며 나를 찾았다. 그리고 끝내 다섯 번 째 방에 넋 놓고 서있는 나와, 그 괴기스러운 생명체들을 발견했다.


“마엘…”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다. 마엘에게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에 칼이라도 박혀있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붉어진 눈으로 마엘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멍청한 것들!” 그는 그들에게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조용히 있으라고 했잖아.”


 검은 파도가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도망쳤다. 차라리 꿈이길 바랬다. 루이스의 말에 시달린 내가 악몽에 시달리는 것이길 바랬다. 나는 내 뺨을 몇 번이고 후려쳤다. 하지만 꿈에서 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붉어진 눈시울과 두 뺨, 그리고 흐르다 못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나는 무대로 나갔다. 로랑 부인을 비롯한 관객들은 나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은 모든 진상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드디어 알아챘구나. 그들의 눈이 말했다.


 나는 관객들이 들어오는 문으로 나갔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로비에 나는 홀로 서있었다. 나는 그제야 주저 앉아 흐느꼈다. 

아니 님 진짜 글 잘 쓰시네요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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