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mama!milk - a piacere 







1.

용역팀장에게 3층 영상을 전달받고서, 지성이 가져온 파일들을 개인 PC에 옮겼다. 그걸 밤새 확인하는데 하나하나 열어볼 때마다 역겹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토악질을 하다 겨우 진정되어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차고 문의 알림이 떴다.

 

 

 

“ ...... ”

 

 

 

차고를 열 수 있도록 등록되어있는 건 저와 세훈 뿐이었다. 테라스 밖으로 나가 난간에 기대어 차고와 연결된 통로를 지켜보니, 역시나 외부 현관을 지나 터덜터덜 마당으로 들어선 세훈이 휘적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걸음걸이라 1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어주니, 술을 좀 마셨는지 달달한 알코올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 ...... ”

“ ...... ”

 

 

 

세훈은 문을 열어준 그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별다른 말 없이 집안을 둘러보았다.

 

 

 

“ 지우는. ”

“ 방에서 자. ”

 

 

 

그러곤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실로 넘어가 소파에 털썩 앉는다. 시간은 이제 막 새벽 3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마신 거야? 그의 물음에 세훈은 잠시 미간을 긁적이더니, 이내 슬핏 웃으며 응, 하고 대답했다.

 

 

 

“ 영민이 새끼가 술 한 잔 하자고 조르길래. ”

“ 걔 한국 들어왔어? ”

“ 들어온 지가 언젠데. 벌써 들어왔지. ”

“ 어때. ”

“ 뭐, 그냥. 어찌나 똥폼을 잡아대던지, 꼴 같지도 않아. ”

 

 

 

만사가 귀찮은 듯 소파에 등을 기대어 긴 숨을 내쉬던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설하는 부엌으로 건너가 차 한 잔을 타왔다.

 

 

 

“ 루이보스야, 마셔. 어지간히 취한 것 같은데. ”

“ 근래 이렇게까지 마신 적이 있나 싶다. ”

“ 대리 불러줄 테니 마시고 가. ”

“ 마시고 갈 거였으면 곧장 집에 갔겠지. ”

“ 왜 이래, 진짜. ”

“ 애 일어나기 전엔 갈 테니 걱정마. ”

 

 

 

곧장 안방으로 향하는 그를 설하가 붙잡았다.

 

 

 

“ 잘 거면 손님방에서 자. 내 침대에서 잘 생각 말고. ”

“ ...... ”

 

 

 

그러곤 소파에 벌러덩 눕더니, 목이 갑갑한지 타이를 빠르게 풀어 테이블 위에 툭 던져놓고선 단추 두어 개를 더 풀어낸다. 세훈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 귓방망이 맞았다며. ”

 

 

 

평소엔 쓰지도 않는 저급한 단어를 섞어 쓰던 그가 장난스럽게 씨익 웃는다.

 

 

 

“ 언제 맞은 건데 이제 얘길 들은 거야? 당신 비서실장도 나이가 드니 느려지긴 하구나. ”

 

 

 

그 말에 끌끌 웃는다.

 

 

 

“ 가만 보면 너 진짜 웃긴 거 알아? ”

“ ...... ”

“ 분명 그 자리에 너와 내 와이프 뿐이었을 텐데, 귓방망이 맞은 걸 어떻게 알았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왜 이제 알았는지를 먼저 묻는 거야? ”

“ 알아봤자 스트레스만 받지. ”

 

 

 

귀여워 죽겠다면서 벨트까지 풀더니 테이블 위에 툭 던진다.

 

 

 

“ 미리 알고 있었는데 나한테 보고할 타이밍 재다 이제 말한 모양이야. 그래서 좀 한 마디 하긴 했어. ”

 

 

 

긴 다리를 쭉 뻗어 소파 가득 누워있는 그를 피곤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설하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 아침에 애랑 마주칠 일 만들지 말고 손님방 가서 자. ”

“ 됐어, 진짜 애 깨기 전에 갈 거야. 그냥 네 얼굴 보러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마. ”

“ ..이불 가져다줄게. ”

“ 설하야. ”

 

 

 

돌아선 그의 손을 붙잡은 세훈이 장난기가 살짝 어린 얼굴로 물었다.

 

 

 

“ 진짜 귓방망이는 왜 얻어맞은 거야? ”

 

 

 

그러더니 혼자 웃긴지 클클거리며 웃는다. 설하는 웃음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어 웃음도 안 나왔다.

 

 

 

“ 이미 네가 우리 집에 왔으니, 한 대 더 예약이야. ”

“ 아, 설마 내가 너한테 집적거릴 때마다 맞는 거야? ”

“ 응. ”

 

 

 

세훈이 멈칫한다.

 

 

 

“ 네 와이프가 그러더라. 자기 남편한텐 아무 말도 안 할 거라고. 네가 알아서 처신 잘하라고. ”

“ 그래서. ”

“ 뭘. ”

“ 처신 잘하겠다 했어? ”

 

 

 

차 한 모금을 더 마시더니 셔츠 소매 단추를 푼다.

 

 

 

“ 그냥 때리고 싶을 때마다 오라 했어. ”

“ ...... ”

“ 그리고 아마 지금쯤,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온 널 기다리면서 날 어떻게 때려야 아플지 고민하고 있겠지. ”

 

 

 

이에 그는 더 이상 표정을 숨기지 못하겠는지 팔로 제 얼굴을 가리며 푸학,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점점 울 것처럼 미소 짓더니, 이내 온몸이 방전된 사람처럼 작게 졸려, 이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그걸 말없이 바라보던 설하가 방에서 이불을 가져와 덮어준다.

 

 

 

“ 너 하나 지키겠다고 내가 무슨 짓까지 했는데 ”

“ ...... ”

“ ..어디 감히. ”

 

 

 

이불을 따뜻하게 덮어준 후, 설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애써 참으며 서재로 돌아갔다.

 

 

 

 

 

 

 

 

 

 

 




 

 

 

 

 

2.

다들 어디서 며느리 시집살이시키는 법을 따로 배워오는지, 집안사람들이 저의 심기를 건드리는 정도가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오늘은 또 아침부터 사람을 깨워서는 본인들의 쇼핑 놀이에 따라오기를 강요했다. 이미 자기들끼리 모든 치장을 끝내고 거실에서 기다리고 앉아있는 꼴을 보니, 향은 눈이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이번에도 애써 참으며 따라나섰다. 물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짐꾼’이란 역할 뿐이었지만.

 

 

 

“ 어우, 무겁지. 어깨 아프겠다. ”

“ ...... ”

“ 무거우면 양손으로 들어. 그럼 무게 중심이 잡혀서 좀 덜 할 거야. ”

 

 

 

얼마 전 장현조가 난리 친 이후로 대놓고 꼽을 주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만큼 얄미운 방법으로 절 괴롭혀댔다. 목소리부터 몸짓, 행동, 표정 하나하나가 전부 사람을 돌게 만들었다. ‘시집살이’란 학문이 있다면 분명 박사 학위까지 한 큐에 땄을 인간들이다.

 

 

 

“ ...... ”

 

 

 

홀로 매장 한편에 우두커니 앉아 열심히 구두를 신어보는 장현조의 누이들을 멍하니 지켜보는데, 뜬금없이 전화가 걸려 왔다. 급하게 나오느라 가방도 못 챙기는 바람에 서둘러 코트 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을 꺼내니, 설마 했던 장현조였다.

 

 

 

“ 왜. ”

- 뭐해.

“ ...... ”

 

 

 

그냥 다 말해버릴까.

 

 

 

“ ...그냥 쇼핑 나왔어. ”

- 누구랑.

“ 혼자. ”

 

 

 

갑자기 현조가 웃기 시작한다. 앞에선 그의 누이들이 뭐가 더 예쁘냔 질문에 알맞게 대답한 매장 직원들을 향해 그럼 다른 건 안 어울리냐며 사람을 들들 볶고 있었다. 그걸 한심한 눈초리로 보고 있던 향은 괜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재차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진짜야, 혼자 나왔어.

 

 

 

- 너 혼자 나가는데 누나들이 가만히 있던?

“ 그럼 가만히 있지, 어디다 묶어놓겠냐? ”

- 아아, 내가 아는 누나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서, 그냥 한 번 물어봤어.

“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끊어. ”

 

 

 

그러곤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예고 없이 끊긴 전화에 휴대폰을 가만히 가만히 쳐다보던 현조가 옆에 있던 비서에게 물었다.

 

 

 

“ 장 비서님. 애 지금 누나들이랑 있는 거 확실해요? ”

“ 예, 본부장님. 작은 사모님께서 누님들과 함께 외출 중이신 걸 방금 운전기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

 

 

이에 현조가 이를 까득 깨문다.

 

 

 

“ 이것들이 단체로 약 빨았나. ”

 

 

 

 

 

 

 

 



 

 

 

 

 

 

 

 

3.

언제부턴가 아이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처음엔 제 부모 문제로 인한 우울증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아 담임 선생에게 전화를 해보니, 역시나 아이가 엄마 일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단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들 또한 지우를 멀리하는 게 아주 아니라곤 할 수 없다며 언제 시간 괜찮으실 때 아이 보호자로 학교에 한 번 오셨으면 좋겠단 말에 일단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 다녀오셨어요.. ”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갔더니, 먼저 귀가한 아이가 홀로 밥을 챙겨 먹다 말고 문 열리는 소리에 다급히 달려 나와 인사한다. 그러곤 눈치를 보며 제가 먹고 있던 자리와 그를 번갈아보더니, 이내 빨리 먹고 치우겠다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 ...... ”

“ ...... ”

“ ..그럴 필요 없어. ”

 

 

 

앞장서서 부엌으로 가자, 그 넓은 식탁에 홀로 앉아 먹었던 건지 식탁엔 반찬 하나에 식은 밥 한 공기가 꺼내져 있었다. 그걸 말없이 보다 그대로 지나쳐버리니, 아이는 머뭇거리며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가시방석처럼 숨죽여 서 있을 뿐이었다.

 

 

 

“ 뭐해, 어서 먹어. ”

“ ..네. ”

 

 

 

설하는 냉수 한 잔을 내려 벌컥벌컥 마셨다.

 

 

 

“ ...... ”

 

 

 

이상하게 저 애만 보면 속이 뒤틀렸다. 그래도 애가 무슨 죄겠냐며 마음이 애틋해지다가도, 막상 얼굴을 마주할 때면 저 조그마한 몸에 제 전남편의 피가 흐른다는 걸 또다시 떠올리게 되어 모든 감정이 차갑게 식어버리길 수백 수천 번 반복했다. 매번 저 나이 아이에겐 무엇보다 애정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온몸이 그러면 안 된다고 죽을힘을 다해 저 어린 아이를 거부했다.

 

 

 

“ 지우야. ”

“ 네, 이모. ”

“ 학교는 어떠니. ”

“ 좋아요. 재밌어요. ”

 

 

 

기다렸단 듯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아이의 행동에 한동안 더 묻지 못하던 설하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물컵만 꽈악 쥐고 있을 뿐이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하얀 벽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두 눈엔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컵을 쥔 손은 지켜보기 힘들 만큼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 그래, 다행이네. ”

 

 

 

저 아이마저 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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