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는 손을 깨끗이 씻었다. 오늘은 김밥을 싸는 날이니까 아주 신중하게 그 어느 날보다 깨끗이 씻었다. 좋아하는 향이 나는 비누로 꼼꼼히 씻은 다음엔 새 수건을 꺼내 또 꼼꼼하게 물기를 닦았다. 김이 눅눅해지면 안 되니까. 화장실에서 나와서는 거실의 조도를 낮췄다. 잔잔한 음악도 틀었다. 딱히 윤기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김밥이 좋아하니까 오늘은 양보한다. 


김밥을 싸기위해선 일단 김밥이 좋아하는걸 잔뜩 준비해야한다. 김밥이 좋아하는 조도에 김밥이 좋아하는 음악. 윤기는 고개를 한번 끄덕 했다. 완벽하군 완벽해. 자축의 의미로 박수를 한번 짝짝 쳤다. 그리고는 다시 김밥을 쌀 준비를 했다. 아직 준비할게 산더미처럼 남았으니까. 적당한 어둡기와 음악이 준비됐으면 이젠 향이다. 김밥은 답지않게 무거운 향을 좋아하는 편인데, 방방 떠다니는거에 비해 향도 음악도 무거운걸 좋아해서 가끔 놀리는 맛이 있었다. 엉덩이만큼 무겁네~ 하고 놀리면 금방 떡볶이 국물에 찍은 김밥이 되서는 또 방방 뛴다. 그 맛에 놀리지. 그게 김밥의 새콤한 매력이니까.


향이 준비가 되면 다음은 콜라다. 왠만하면 못먹게 하지만, 오늘같은 날엔 김밥엔 콜라가 꼭 필요하다. 것도 꼭 코카콜라여야해서 파란색인지 빨간색인지 냉장고를 열어 한번 확인했다. 음음 빨간색. 완벽해. 그리고는 얼음도 확인했다. 자기 전에 꽝꽝 얼려놓은걸 누가 먹었나 안먹었나 확인하고는. 음음 꽉 차있군. 이것도 완벽. 식탁에는 김밥이 제일 좋아하는 햄버거가 예쁘게 세팅되어있고, 한바퀴 슥 돌다가 에어컨 온도를 조금 높이고는 준비를 끝냈다. 이제 김밥만 말면 완성!


문을 살짝 노크하는데 안에서는 말이 없다. 음, 생각보다 심각한 김밥이군. 윤기는 천천히 문을 열어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이불에 돌돌 말아 싸져있는 축 늘어진 김밥을 비춰주었다. 색색 소리만 내는 김밥에게로 다가가자 눈물이 온통 범벅인 김밥이 눈앞에 있다. 


"왜 울었어."


손바닥으로 뺨을 문지르자 따끈따끈한 김밥이 만져진다. 칭얼거리는 김밥이 속상하지만 일단 김밥의 식사가 먼저니까. 이불로 김밥을 잘 말아서는 두 손으로 읏챠! 하고 김밥을 들어올렸다. 윤기보다 살짝 긴 김밥 때문에 멋없게 조금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당황하지 않은 척 걸어 나갔다. 김밥은 여전히 이불 안에서 살짝 훌쩍이는 채였다. 


의자에 김밥을 앉히고는 얼굴만 쏙 꺼내놨다. 얼굴이 눈물로 엉망진창이 된 김밥이 얼굴만 쏙 내놓고는 코를 훌쩍였다. 


"시러.. 밥 먹을 기분 아니야아..."


아니면 안 되는데! 짐짓 우스운 목소리로 대꾸하자 퉁퉁 부은 눈이 흘겨본다. 귀여운데, 속상하다. 안 먹겠다고 칭얼거리는 입에 예쁘게 짜놓은 케찹에 감자튀김을 하나 콕 찍어서 쏙 넣으니까 눈이 똥그래져서는 윤기를 보는데 그래도 씹는 게 좀 나아졌나보다. 감자튀김을 전투적으로 씹는 김밥을 두고는 햄버거 포장을 뜯었다. 싫다구 했는데... 하는 목소리는 그냥 넘겼다. 배가 똥똥해진 김밥을 만드는게 오늘의 목표였으므로.


"아, 해. 이거 새우 들은거야."


윤기의 목소리에 퉁퉁 부은 김밥이 퉁퉁 부은 목소리로 싫다니까, 하고 다시한번 말했지만 윤기는 내색하지 않고 입에 햄버거도 쏙 넣었다. 투털거리다가 입에 짭쪼름한 소스가 닿자 다시 입을 와앙 벌려서 물었다. 벌린 입 치고는 소박하게 물어갔지만 윤기는 괜히 뿌듯했다. 김밥 만들기가 아주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햄버거를 먹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빨대를 챙기지 않는 바람에 콜라를 먹여주다가 엎을 뻔 했고, 햄버거 양상추가 탈출하면서 이불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둘 다 아랑곳 하지 않았다. 지금은 김밥을 만드는 시간이니까 김밥에만 집중하는 게 김밥에 대한 예의였다. 햄버거 세트 하나를 해치우고는 콜라를 리필 외쳐서 두잔이나 더 먹고 나서야 퉁퉁 부은 김밥이 웃었다. 


세트 하나를 용맹하게 해치운 김밥을 윤기가  다시 들어올렸다. 아까보다 쪼금, 아주 쬐금 더 무거워진 김밥이었지만 이번엔 흔들리지 않게 멋지게 들어보였다. 그러자 김밥이 웃었고, 윤기도 웃었다. 웃는 김밥을 쇼파에 길게 눕히고는 윤기도 그 옆에 누웠다. 살짝 어두운 조명, 낮고 조용히 흐르는 음악, 따뜻한 향과 바깥보다 시원한 온도까지 김밥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윤기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행복한 곰돌이 김밥 만들기를 성공한 윤기에게 뽀뽀상이 내려졌고 윤기는 임무를 완수해 행복한 김밥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은 우리 곰돌이 김밥이 아주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ONLT SUGA X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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