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정말 많은 질문을 듣게 되고, 깊게 생각해야 하는 질문도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점점 몇몇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는 일정한 대본을 가지게 된다. 언제나 날 곤혹스럽게 하면서도 책을 소개하기 앞서 가장 좋은 질문을 고르라면 단연 이 질문이다.

‘어디 사람이냐?’

곤혹스럽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에겐 정해진—부끄러운— 대답이 있다. '저는 부산 사람이고,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닙니다.’ 나는 부산 사람인가? 나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서울, 경기도, 부산, 경상남도, 전라남도, 강원도, 독일 베를린에서 살아봤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내 조부모와 부모는 전라북도 사람이고, 심지어 현재 나의 거주지는 경기도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를 일컬어 ‘부산’ 사람이라고 말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말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는 있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알고있다고 해도 말로 명확히 하기 힘든 질문이 있고, 그걸 명확하게 언어화해주는 책은 언제나 소중하다.


이 글에서 소개할 책 <사람, 장소, 환대>는 바로 그런 책이다. 내용에 관한 가장 명확한 요약은 바로 제목이다. 누가 사람이고, 어디서 장소가 구성되며, 환대는 어떻게 사회를 이루는가? 책을 열면 총 7장에 걸쳐 아주 적절한 완급을 조절해가면서 사람과, 장소와, 환대에 대해서 정의하고, 설명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변해왔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시작은 사람의 개념인데, 흔히 사람에 대해 논의할 때 말하는 전인격적 존재나 교육된 존재 등 사람’다운’ 존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존재로서의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으로서 인정받기 위해는 어떤 개념이 필요한지, 어떤 규칙이 필요한지, 어떤 의식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것이다.

사람의 정의를 위해 꺼내온 인정과 의식 개념과 이어져 장소에 따른 성원권membership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개별 사회적— 어쩌면 장소적— 기준을 따라 명예와 모욕, 배제, 신분, 굴욕에 대한 의미를 알린다. 신분과 명예가 과거보다 희미해진 오늘날, 모욕과 배제, 굴욕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는 건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가름선을 넘고 넘어와 도달하는 것은 현대에서 존엄과, 인격의 성립이 된다. 바로 환대hospitality다. 개인과 개인간의 우정, 한 장소와 한 인격 사이의 환대, 그리고 사회와 사람 사이의 신성성으로 범위는 확장되고, '우리'가 그토록 장소에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나면, 책은 닫힌다.


책이 닫히고 난 다음에는 아주 많은 일이 떠올랐다. 이 글의 제일 윗 단락에 붙은 ‘어디 사람이냐’부터 작년(2019년)에 합헌불일치가 난 낙태죄, 실제 생일과 기록상 생일이 다른 아버지, 버스 안에 군인들을 보고 어떤 할머니가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던 농담, 베를린에서 3년 내내 ‘아이’로 지내던 기억, 고시원에서 벗어나게 된 친구의 소식, 음식점에서 나에게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던 직원과, 직원이 가고 함께 불편해했던 일행,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정부로 인해 코로나19의 방역이 뚫렸다던 뉴스… … . 어제부터 오늘까지, 어쩌면 내일까지 일어나는 다양하고 많은 사건을 관통할 수 있는 시선 하나를,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장소에 속하지 못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수많은 ‘인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인류학적 시선을 제공 받았기 때문이다. 

일관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쓰인 책의 시선은 완전히 새롭다기보단 오래간 내려온 여러가지 시선들을 아주 잘 취합하고, 주제에 알맞게 잘라내었기에 오히려 현시대에 일어나는 일을 분석할 수 있는 좋은 틀로 작용한다. 그 탓에 이러한 종류의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이론이 잘 와닿지 않고 어려울 수 있지만, 예시가 많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용하는 방법과 현대의 여러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사고틀도 언뜻 엿볼 수 있는 점에서 오늘날 교양으로 읽기 좋은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서점⏤그게 웹사이트라도⏤에서 이 책을 발견한다면 다른 것보다는 먼저 표지를 보고 질문을 떠올렸으면 한다. 책의 표지에는 켜켜히 쌓인 계단 위, 사람이 하나, 그리고 사람을 안은 원이 하나. 아마 우리는 표지의 사람이 있는 장소에 있길 원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고정된 대답도 어쩌면 표지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나는 '거기'에 있을까. 책을 소개하기에 마무리짓기에 가장 좋은 질문을 드린다면 단연 다음 문장이다.


'당신은 어디 사람이십니까?' 

좀 더 사람같은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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