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가 품에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아이는 아주 작았다. 어린애 특유의 젖살도 없이 눈가가 푹 패여 있고, 코는 오뚝한 탓에 누군가와 닮아 보였다.



 “브록 럼로우?”



 이름을 밖으로 꺼낸 것은 배너였다. 배너의 말에 토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닮긴 했는데 박사, 본인일 리가 없잖아.”



 그런 말에 배너가 고개를 끄덕이는데도 스티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토니와 배너도 그저 스티브가 내려놓은 아이를 멀거니 쳐다보고 있는 사이로 시간이 줄줄 새어나갔다.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어야 했다면 그건 스티브여야만 했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도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그건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기보다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머뭇거림이 분명했지만, 토니는 참지 않았다. “캡시클.”하고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을 하지 않는 스티브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토니는 살짝 짜증스럽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들어 보였고. 다시 적막이 흘렀다.

 먼저 움직인 것은 배너였다.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주의를 끌어 보려고, 아이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봤지만 허사였다. 아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양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던 토니가 한숨 섞인 말투로 자비스에게 몸을 스캔할 기계를 주문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간에, 토니가 우리는 의사가 아니라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아주 잠깐뿐이었다. 기계가 갖춰지고, 배너와 토니가 분주하게 달라붙어서 스캔하며 아이를 살펴보는 동안 타워에 있던 모든 인원이 모여드는 것도 금방이었다.

 나타샤는 아이를 보자마자 브록 럼로우냐 물었고, 여전히 스티브는 아무런 답도 해주지 못했다. 아이를 럼로우라고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배너의 주장이었고, 토니도 동의했다.



 “그의 아들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이가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도 제법 있어 보이던데.”



 그런 실없는 소리가 울리고 나서 아이의 두개골 스캔을 끝낸 자비스가, 치아 상태를 근거로 해서 나이를 7살로 추측할 수 있겠다는 다소 모호한 답을 내어 놓았다. 토니는 자비스의 대답에 곧바로 난처한 기색이 묻어나는 손짓으로 눈썹을 긁적거리다가, “아빠는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라는 말로 더 자세한 보충 설명을 주문했다. 자비스가 조금의 한숨도 없이, 곧바로 보통의 7살과는 체구 자체가 다르고, 발달도 현저히 더뎌서 내부 장기의 수준은 많이 잡아봐야 생후 24개월 정도라는 설명을 덧붙이자, 토니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이드라 연구소에서 데려온 거잖아, 그렇지?”



 토니의 물음은 분명히 스티브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는 말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시선은 여전히 아이를 향해 있었다. 아이는 제 팔을 잡고 관절이나 근육을 살피는 배너의 손길에도 얌전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몸을 늘어트리고 있는 모양이 기괴했다. 그 모습을 모두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참이었지만, 다들 뭐라 말은 않고 있었는데, 불쑥 토니가 손을 뻗어서 아이의 뺨을 꼬집었다. 아이는 잠깐 눈을 찡그리더니 살짝 벌렸던 입을 꾹 다물고 눈도 감아 버렸다. 무슨 짓이냐는 배너의 물음에 토니는 아이의 통각이나 촉각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그랬다는 말을 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스티브는 토니의 손길에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혼란스러웠고, 그만큼 속이 쓰렸다. 데려오는 동안에 시야에서 떨어트려 놓지 않았던 아이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분명히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아이는 뜨문뜨문, 의미 없는 신음 같은 소리만 낼 뿐, 그 어떤 단어도 말하지 못했다. 스티브가 난장판 속에서 들어 안아도 그저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있었고, 그렇다고 겁에 질려서 스티브를 붙들고 늘어지지도 않았다. 옆에다 내려놓았더니, 또 거기가 제 자리인양 흙과 먼지로 뒤덮인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는 모습은 정상적인 어린아이 같지 않았다. 품에 안은 아이는 따뜻하고, 분명히 작은 가슴 안쪽에서 어린 새의 날갯짓처럼 파닥거리는 박동이 느껴졌지만, 그 외의 움직임은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이질적이었다.

 스티브를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은 배너의 목소리였다. 동공반사를 살펴본 배너는 아이가 앞을 볼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스티브는 별말 없이 그 의견에 동의했다. 아이는 헬기를 타고 스티브의 품에 안겨서 오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스티브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서 인지하지 못했는데, 헬기의 소리가 울리는 동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아이가 반응을 보인 것을 제 옷자락이 헬기 바람에 날려서 살갗을 자꾸 때리면서부터였다.

 이 아이는 도대체 뭘까? 그 물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스티브뿐만이 아닌 듯했다.

 허리를 편 배너는 상세하게 묻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었던 곳, 주변의 환경. 애석하게도 절반 이상 스티브가 부숴버린 탓에 정확하게 알 길이 없었다. 아마, 이 아이도 눈에 띄는 곳에 있지 않았다면 데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스티브의 목적은 아이가 아니었으니,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냥 내버려두고 돌아왔겠지. 그렇다면 아이는 그곳에서 그냥 죽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머릿속으로 스며든 생각에 스티브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라니 마치 이 아이가 브록 럼로우 본인이라는 듯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낯설었다. 그럴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야 마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직 아이가 브록 럼로우라는 가정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아이를 ‘그’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추측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틀렸다면 나중에 실수를 인정하고 번복하면 되는 일이었다. 스티브가 이 아이를 럼로우 본인이라고 생각한다 한들, 누군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질 일도 없다.

 다만, 스티브는 인형처럼 아무 움직임이 없는 아이의 모습에 속이 끓었다. 속이 답답하고 머리에서 열이 올랐다. 화가 나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사라져서는, 이런 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면 속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더는 그 브록 럼로우가 아닌 외형과 행동에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이가 브록 럼로우라면, 뭔가 실험을 당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치아발달은 7살에 가까운데도 장기의 발달 상태는 생후 24개월이라니, 정상적인 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겉모습이 멀쩡하다고 해도 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사실은 스티브가 과학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브록 럼로우가 사라졌던 7주라는 시간 동안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버키에 대한 정보를 찾으러 급습했던 하이드라의 연구소에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비논리적이었다. 게다가 난장판이 된 연구소에 홀로 버려져 있던 아이는 브록과 아주 똑같았다. 비쩍 마른 얼굴로, 움푹 팬 두 눈. 아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브록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 설명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토니는 일단 흥미로운 사례니 도와주겠다는 투였고, 배너 별다른 말없이 계속 아이를 살폈다. 그리고 한동안 뒤에서 말이 없던 나타샤가 나섰다.



 “치료해서, 뭘 어쩌려고요?”



 그 말에 스티브는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나타샤.”



 뒤에서 바튼이 그녀를 불러도, 입을 닫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니, 생각해봐요. 얘는 지금 아무 말도 못 하고, 심지어는 무슨 실험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냥 이렇게 데리고 치료까지 해준다니.”



 나타샤의 말에 배너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스티브는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티브가 말이 없자, 뒤에서 나선 것은 토니였다.



 “그럼 애를 그냥 길에다 내버려?”



 토니의 말투가 매서웠다. 어찌 되었든 간에, 아이는 아이라는 투였다. 그 말에 더 뾰족하게 날을 세운 나타샤가 받아쳤다.



 “애가 아니고, 브록 럼로우예요. 하이드라, 스트라이크 팀 리더.”



 토니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결국 같이 말을 세웠다.



 “결국은 쉴드 소속이었던 거잖아. 물론 배신자이긴 했어도.”



 그 말에 이제는 바튼이 불편한 듯이 얼굴을 찡긋거렸다. 피곤하다는 듯이 콧잔등을 쓸어내리는 배너를 보면서, 스티브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혼란을 가져온 것은 스티브였다. 그러니 그가 나서는 게 당연했는데, 그래도 어쩐지 말이 선뜻 나오지는 않았다. 그 역시도 혼란스러운 탓이었다. 스티브가 아이의 곁으로 더 가까이 붙자, 나타샤도 토니도 뭔가를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기다리기만 했다. 스티브는 오랜만에 찾아 입은 슈트의 벨트를 가볍게 쥐고서 고개를 들었다.

 

 “일단 우리는 이 아이를 돌볼 거네. 사실, 이 아이가 브록 럼로우라고 단정하는 것도 이른 편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박사?”



 배너는 스티브의 부름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렇게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었지, 장담할 방법은 없었다. 그 말에 나타샤는 일단 유전자 검사부터 하자는 말을 꺼냈지만, 문제는 기존 럼로우의 DNA 샘플이 없다는 거였다. 토니가 그 부분을 지적하자 나타샤는 입을 다물었고, 스티브는 한 가지를 확실하게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이 아이는, 내 보호 아래에 둘 걸세.”

 “만약 정말로 그 아이가 럼로우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내 가만히 있던 바튼이 물었다. 아마 나타샤를 대신해서 묻는 것 같았지만, 타당한 물음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스티브를 향해 있었다.



 “그래, 말해봐. 그 아이가 정말로 브록 럼로우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토니까지 가세해서 물었다. 배너도 비슷한 눈을 하고 있었다. 스티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있는 아이를 향해서 떨어졌다.

 스티브는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가 침묵하는 사이로 커다란 한숨을 남겨 놓은 나타샤가 돌아섰고, 토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배너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바튼만은 남아서, 스티브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결과나 나오든지 간에 당신은 만족하실 수 없을 겁니다.”



 바튼의 말에 스티브는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아이를 향한 채였다. 아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서, 이제는 소파 위에 올라앉은 작은 인형처럼 보였다. 뭔가 말을 더 하고 싶은 것처럼 입을 벙긋거리던 바튼이 떠나가고, 배너가 자세한 검사를 위해 아이를 옮기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는 그 시간까지. 스티브는 침묵했다.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바튼의 말에는 이제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티브는 뒤늦게 고개를 아래위로 움직이다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마, 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스티브 로저스가 바라던 것들은 부서져 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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