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첫만남






그러니까 ‘토도 진파치’는, 이름만 대면 일본의 누구나 알 법한, 꽤나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얼굴마담이었다. 인생살이 모든 것이 폼생폼사, 자화자찬, 나르시즘으로 점철되어 있는 이 아이돌님은 지금 매우 기분이 나빴다. 아니, 기분이 나쁘다는 것만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인생 최고의 난관에 부딪혀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마키시마군, 우선 오늘 촬영할 화보의 컨셉부터 설명해줄게.”


“알겠습니다.”


바로 저 옆에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얼굴로 서 있는 이번 화보 촬영의 파트너가 바로 그 문제의 난관이었다. 마키시마 유스케, 23세. 신장 176cm, 체중 62kg의 이 남자는 지금 나름대로 일본 모델계에서 알아주는 신예라는 듯하다. 그런데 바로 이 남자가, 무려 데뷔 5년차 아이돌인 토도 진파치를 보고 ‘모른다’고 발언했다. 혹시 해외에 나가서 지내다 들어온 귀국자녀인 건 아닐까 물어도 봤지만 그것도 아닌 이 남자는 단순하게 말해 세상살이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인 듯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감히’ 토도 진파치 님을 모를 수 있는 걸까. 토도는 절대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도련님과 도련님의 티타임 같은 건가요?”


“…비슷하지. 사교계의 양대산맥 같은?”


“흐음…”


순간 전신을 훑는 시선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토도는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눈을 감았다.


“마키시마군, 피부 정말 좋다. 개인적인 관리법이라도 있는 거야?”


그도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자리를 잡은 것인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소란스럽다.


“특별히 관리까진… 그냥 온천에 자주 가는 정도네요.”


“그러고 보니 토도군네 본가가 온천 여관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번 기회에 둘이 친해지면 좋겠네~”


소란스러운 스태프들의 수다를 들으며 토도는 씰룩거리려는 눈썹을 얌전히 고정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감히 누구보고 저런 병든 염소 같은 자식이랑 친해지라는 거야…?!’


따위의 생각을 하며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토도는 일부러 한 번도 그가 있는 곳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저를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보다 돋보이는 존재는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키시마군은 머리색이 굉장히 독특한데, 늘 새로 염색하는 거야?”


“…그렇죠.”


“관리가 힘들 것 같은데 머릿결이 좋네. 염색 자주 하면 보통 많이 상해서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정도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피부보다 머릿결을 관리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쏟고 있는 편이에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언제 다른 색으로 새롭게 염색을 더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고… 갑자기 자르게 되더라도 남은 머리칼이 찰랑여야 사진도 잘 나오잖아요.”


눈을 감으면 안 보이지만, 귀는 닫는다고 안 들리는 게 아닌지라, 토도는 원치 않게 그의 모델로서의 마인드를 알게 되어 기분이 묘해졌다. 보통은 피부 관리에 더 신경 쓰지 않나?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아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모델이라는 사람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가 아플 만큼 화려한 색의 머리칼을 하고 있는 것이 처음엔 무척 어이없기도 하고 짜증도 났는데, 저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괜히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착각을 하게 된다. 그 이상한 머리색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언제부터 그런 머리색을 하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토도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데뷔로부터 5년, 그동안 질릴 만큼 했던 화보촬영인데, 매니저가 이번 촬영은 특별하다며 서두른 탓에 토도는 촬영 컨셉을 질릴 만큼 숙지하다 못해 달달 외울 지경이었다. 자신의 촬영 파트너에게 직접 설명해주라고 하면 정말 잘할 자신도 있었다.


화보의 컨셉은 꽤 심플한 편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유신’으로, 전통을 고수하는 도련님과 유신을 통해 빠르게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신식 도련님의 사교계 모습. 은밀하게 여성을 유혹하기도 하고, 이미 파트너가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맨 처음 봤을 땐 이게 무슨 인터넷 소설에나 나올법한 설정인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제 직업이란 게 원래 그런 거였다. 손발 오그라들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쉬이 납득해 줄 수 없는 꿈을 파는 일.

나름대로 5년이나 굴렀지만 여전히 팬들은 어린 소녀들이 많았다. 함께 나이를 먹어간 팬들도 있지만, 아이돌이란 게 언제나 새로 앨범을 내면 새로 유입되는 팬이 있기 마련인지라 -최근엔 팀의 막내 마나미가 치고 올라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Midnight Blue의 왕자님 포지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것도 아닌데 이 화보촬영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는 건지, 토도는 촬영장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촬영장에 도착해서 매니저가 꽁꽁 숨기고 있던 사진작가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아야 했다.


사진작가 ‘와야마 요시히토’는, 사진작가로서도 충분히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JIRO라는 가명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JIRO는 와야마 요시히토의 ‘베이시스트’로서의 이름이었다. GLAY라는 이름의 밴드 멤버로 데뷔하여 오랜세월 일본의 정상에 서 있었고,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멤버가 다재다능했던 밴드, GLAY는 개인적인 프로젝트 밴드활동(음악활동)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활동도 꽤나 도드라지게 하고 있는 이색 밴드이기도 했다. 드러머 출신의 보컬은 그림에 재능이 있어 굿즈 디자인은 물론이고 -이런 부분은 요즘 아이돌도 많이 하고 있다- 본인의 작품으로 전시회까지 열고 있고, 기타에 살고 죽는 기타리스트는 20년 넘게 모델을 맡고 있는 기타브랜드에서 이제는 디자인 일까지 하고 있다. 밴드의 곡 95%이상을 작사, 작곡하고 있는 리더는 국가적 대형프로젝트까지 담당해서 음악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

토도는, 이 밴드를 미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본받아야 할 롤 모델이라는 것 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아이돌과 밴드는 꽤나 성질이 다르지만, 이 바닥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음악 외길을 걷는다는 게 힘들다는 것은 똑같다.

아무리 음악을 사랑해도, 그 음악에 잠식되어 죽는 일은 허다하다. 음악에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숨 쉴 구멍- 또 다른 돌파구가 없으면 그 생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어긋나는 건 한 순간이고, 한 번 잘못 들어온 길을 바로 잡아 가는 것은 무척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때 제가…”


“헤에- 유스케군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늘 예상외의 곳에서 박력 터지는 거 같더라.”


“그다지 그렇진…”


잠시 생각에 빠져 들었던 토도를 현실로 끌어올린 건, 그와 사진작가의 대화가 일으키는 파장 때문이었다. 저는 음악계의 대 선배님과 촬영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지금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지경인데, 저 풋내기 신인 모델은 뭐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사실, GLAY의 JIRO라고 하면, 아무래도 데뷔한지 20년이 넘는 대 선배다 보니 막 데뷔한 신인의 경우엔 쉬이 친해지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조차 5년의 아이돌 생활을 통틀어 함께 음악 방송에는 몇 번 나왔어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음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모델인데 왜 저렇게 친한 척을 하나 싶어 짜증이 났다.

어이없음과 짜증이 점철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세트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이어진 대화에, 토도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지난번에 찍은 화보 있잖아, 그거 반응이 되게 좋아. 괜찮으면 다음에 우리 앨범 표지 모델도 부탁하고 싶은데 어때?”


“다음 화보 촬영 예약도 아니고 무려 GLAY 앨범의 표지 모델이요? 저 같은 게 나와도 될까요? 팬들이 싫어하실 것 같은데…”


“우리 팬들 사이에서 유스케군을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뭐 어때, 나랑 우리 멤버들이 좋아하는데. 우리 팬들 이제 나이도 있고 그래서 그렇게 속 좁은 사람 별로 없다~ 우리 팬들 과소평가하면 곤란해~”


“그런 의미가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그건 알지만 이상하게 유스케군을 보고 있으면 장난이 치고 싶어져~”


작업을 한두 번 함께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저도 지금 ‘모델’로서 이 공간에 와 있는 것이지, 결코 ‘아이돌’로서 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모델’이다. 당연히 사진작가인 와야마 요시히토와의 사이가 저보다 더 가까워도 이상할 게 하나 없었다.

토도는 멍하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말고 천천히 자신의 손에 들린 아이팟을 바라보았다.

그 작은 아이팟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은 여전히 자신들의 음악일 뿐. 그 편협한 작은 세계가 거대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팬들 중에 유스케군이랑 같이 노래도 하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어.”


“농담이시죠?”


“농담 아닌데~ 당장 테루히코도 마음이 있는 것 같고, 타쿠로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으니까~ 마음의 준비는 한 번 해둬~”


“그냥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에에-?!! 그건 내가 곤란해~!!”


두 사람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고 있던 토도는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에 억지로 숨을 먹었다.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숨과 함께 꾸역꾸역 집어 삼키며 혹시라도 새어나갈까 손으로 입까지 틀어막아야 했다.

도대체 저 모델이 뭐라고, GLAY의 JIRO가 직접 캐스팅을 한단 말인가. 노래라고는 털끝만큼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무슨 노래 콜라보란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된다. GLAY와 함께 노래를 하는 것은 많은 후배들의 꿈인데, 저런 근본도 없어 보이는 모델에게 그 순서를 빼앗기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하지만 JIRO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처음인 자신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란 것도 토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을 틀어막았고, 그래서 지금 있는 힘껏 감정을 컨트롤 하고 있었다. 그런 토도를 알 리 없는 두 사람은 저희들만의 세계를 계속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저보다는 오늘 함께 찍는 분이 아이돌이라고 들었는데, 그쪽이랑 먼저 조인트 하시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에이~ 자타공인 인정받은 ‘록커’랑 아이돌은 다르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는 일단 밴드고, 팬들의 요청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고. 아직 팬들 중에 Midnight Blue와의 조인트를 요청한 사람은 없어서…”


“흐음…”


“노래는 나쁘지 않은데 우리랑 보이스 컬러가 맞을지도 아직 파악이 덜됐고. 뭐, 어차피 곡은 내가 쓰지 않고 타쿠로가 쓰겠지만.”


“그렇긴 하죠.”


“타쿠로도 나름 신경은 쓰고 있는 아이들인 것 같아서, 이번에 겸사겸사 살펴보려고~”


“헤에…”


은근슬쩍 자신을 향해 넘어오는 ‘그’의 시선에, 토도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JIRO는 자신이 곁에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세상살이 모든 것이 무심해 보이는 그가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오늘 촬영, 기대되네요.”


“그렇지? 나도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선배의 목소리가 공허한 마음속에 울려 퍼진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오늘의 화보촬영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리란 것을, 토도는 확신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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