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정일훈, 올해 25살. 한달 전 전역하고 갓 사회에 발을 디딘 사회초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정일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이거. 드라마에서 항상 보던 장면. 꼭 따라해 보고 싶었다.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우렁차게 입사소식을 알리니, 아니나 다를까, 잘생기고 당찬 신입이 들어왔다며 다들 가볍게 웃으신다. 한 분 한 분 차례로 인사하며 이름과 직급을 전해 듣고 곧 바로 자리를 안내 받았다. 이제 내 명함이 걸릴 나의 자리. 나도 당당한 사회인의 일원이다.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책상을 손끝으로 스윽 훑는다. 차가운 촉감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모든 것에 패기 넘치게 잘 덤벼드는 나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회식자리에도 의무적으로 참가했다. 사실 당연히 가야죠~ 라고 힘차게 말해놓고 조금 고민 한 부분이 있다. 아직 이 회사문화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술도 잘 못하는 내가 함부로 껴도 되려나. 하지만 부딪혀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 죽더라도 한 번 죽고 마는 게 낫다.

누가 알았을까. 그 한 순간의 결정이 내 인생의 '절규 the 쓰리콤보'를 가져다줄지.








한 달에 한 번,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씩 직원들끼리 모여 밥 먹는 자리, 회식.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 하기도 하고. 나에겐 공짜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곳이나 다름없다. 오늘 회식은, 얼마 전 들어온 신입사원 덕에 분위기가 좀 살아있는 정도.

김이 모락모락 나던 보쌈의 고기가 한 점 두 점 없어지면서 무말랭이도 바닥을 보일 때 즈음, 테이블이 쾅! 흔들리고 달팽이관에 내리꽂는 낯익은 우렁찬 목소리.

"나~가! 여기서 거~시기가 제일루 크다, 손!"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시끄럽게 건배사를 외치며 잔을 부딪치던 사람들의 이목을 순식간에 빼앗아간 장본인은 바로,

"빨랑 손 들으라니까아~"

얼마 전 들어온 정일훈 신입사원이다.


얼큰하게 취해 손을 들라는 듯 자신의 손을 팔랑거리며 테이블에 둘러 앉아있는 사원들을 쭈욱 훑어본다. 몇 분간의 정적. 사람들은 '쟤 지금 뭐라고 한 거냐?'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야, 너-!"

다시 한 번 테이블을 쾅, 다른 손으로는 크게 휘둘러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킨다. 그러곤 일어나라는 듯 손가락을 위로 까딱까딱.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그에게서 나에게로 돌려졌다. 크게 당황한 나는 나 또한 나를 가리키며 '나?'라고 되묻곤 고개를 느리지만 분명하게 끄덕이는 신입에 맞춰 몸을 어정쩡하게 일으킨다.

"따라 나와아~"
"어이, 신입. 많이 취하 것 같은데 이쯤에서 그만.."
"아아, 나오라고오! 거시기 큰 임대리님!!"

확인사살 제대로 해주시는 신입의 패기에 옆에서 말리고 있던 과장의 눈과 입이 최대로 확장된다. 내가 거기가 큰 건 맞는데.. 도대체 그거랑 날 불러내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또 그건 어떻게 안거야?

되려 화를 낸 신입의 큰소리에 놀라기도 잠시, 술이 들어가 빨개진 얼굴의 과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시계를 풀고 셔츠를 걷는다. 아, 이거 그냥 두었다간 좋지 못한 상황이 될 것 같은데. 재빠르게 과장을 자리에 앉히고 괜찮다며, 다녀오겠다고 잘 토닥인다.








두 사람의 발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 좁은 골목 사이로 보폭을 좁히며 따라 들어간다. 여기 너무 어두운데, 현식은 설마 그가 저와 싸우자는 건가 싶어 바로 방어를 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며 일훈의 뒤를 졸졸 따라 간다.

"저어, 임대리님-"

골목의 반 쯤 왔나, 현식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자신을 부르는 그에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어둠 속 그의 얼굴을 찾는다.

"임대리니임.. 제가요.. 와... 진짜루..."

다른 건 안 보여도 취했다는 건 알겠다. 일훈이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감탄이 섞인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흡? 아니, 일훈씨, 지, 지금 뭐 하시는.."
"이따마난거.. 들구.. 와 씨... 진챠... 어이업내...."

현식의 앞섬에 손바닥을 올리더니 점점 힘을 실어 움켜쥔다. 꽤나 당황한 현식은 그의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굳어, 눈으로 그의 다음 행동을 주시한다.

"아니, 거기 왜 앉.."

그 앞에 양 무릎을 꿇고 야무지게 벨트와 버클을 풀어낸다. 브리프 사이에 손을 넣고는 성기만 꺼내어 그 끝을 답삭 물어버린 일훈. 현식은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심호흡을 하자마자 뇌부터 발끝까지 피가 전부 파란색으로 바뀌는, 그런 싸함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래, 거기까진 기억이 난다. 임대리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걸 꺼내고 핥았다. 문제는 이 다음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분 부분, 그곳이 아파서 술이 깼을 때 그.. 임대리님의 그.. 아, 아무튼 그거 말고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단 말이다!

일훈은 소리 없이 절규하며 파스스 머리를 싸매고 긴 한숨을 내쉰다.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고 낯선 천장을 초점 없이 바라보며 또 다시 소리 없는 절규를 외친다.

나 정말, 조심한다고 조심한 거다. 군대 가기 전, 화려한 전적이랄까. 돈을 벌기 위해 게동을 찍는 일을 하며 생긴 이 망할 술버릇은 어떻게 해도 고쳐지지가 않는다. 아니, 나 그래도 2병은 마셨던 것 같은데. 군대생활을 하며 술을 거의 안 먹다시피 하니 주량이 확 줄었나. 평소보다 더 빨리 취한 탓에, 회식자리에서 그 난동을, 아.. 나 이제 회사 어떻게 다니지. 세상에 어느 남자의 술버릇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가장 큰놈이랑 원나잇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어.

"..일어났어?"

귓가에 직방으로 박힌 잠긴 저음의 목소리. 일훈은 빠르게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원상복귀 한다. 아직 잠에 취해있는 듯 눈을 감고 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와, 뭐야. 뭐야. 심장 왜 이렇게 빨리 뛰어.

대답도 하지 못 하고 침만 꼴깍 꼴깍 삼키고 있으니 부스럭, 현식의 손이 일훈을 찾는다. 머뭇거리다 그 쪽으로 몸을 돌리니 일훈을 팔 안에 가두어 끌어안는다. 숨이 막혀와 답답함에 꾸물거리자 다시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달콤한 저음.

"조금 더 자, 주말이니까 괜찮아."
"저.. 임, 대리님.."
"응, 일훈아."

일훈아????? 내가 언제 임대리님께 일훈아가 되었을까요????? 아, 정신 차리자. 제일 묻고 싶은 질문을 뒤로 하고, 대신 제일 중요한 질문을 한다.

“어제, 그.. 저희.. 어떻게 여기..에.. 들어 왔.. 을까요...?”

더듬더듬, 피부 밖으로 튀어오를 듯 한 벌렁이는 심장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묻자, 현식이 눈을 천천히 뜨고 일훈을 내려다본다. 시야에 보이는 삐죽삐죽 뻗쳐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낮은 웃음을 흘린다.

“생각 안 나나보네.”

아니, 생각 안 나는 건 아니고, 드문드문 나긴 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현식이 말없이 작게 기지개를 켜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뭐야, 이거. 꼭 사귀는 것 같잖아.

“일훈아.”
“네, 네?”
“정말 기억 안 나?”

이거 어떻게 대답해야 돼. 의도를 알 수 없는 물음에 일훈이 현식의 품에서 조금 떨어져 그를 올려다본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두 눈동자에 현식이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흘린다.

그러면,
“다시 기억나게 해줄까?”



미카엘츠바사, 줄여서 미쯔입니다. 쓰고싶은 걸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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