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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grey


오래된 연인 보쿠아카 보고 싶다. 권태 말고 편안함과 익숙함이 자리 잡은 아주 오래된 연인. 운동 시작한 아카아시를 위해 프로틴 파우더를 선물하는 보쿠토나, 샤워할 때마다 사소한 걸 잊는 보쿠토를 위해 문 열고 손 뻗는 곳에 미리 놔두는 아카아시 같은 거.

일하다가 시계 보면 보고 싶다, 떠올리는 것도 좋지만 밥은 먹었을까, 바빠서 거르진 않았을까, 그런 걱정을 먼저 하는 것도 좋고. 퇴근길에 상대방이 좋아하는 물건이나 음식을 사 오는 것도 좋아. 시간이 갈수록 똑같은 음식을 사 오는 그런 거.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은 거. 그냥 들른 편의점에서 저 음료 광고 보고 보쿠토 상이 먹고 싶어 하셨지, 하면서 사는 아카아시나 회사 동료가 줬는데 맛있어서 너랑도 같이 먹고 싶어서 물어봐서 사 왔어, 라면서 회사 근처 카페의 케이크를 사 오는 보쿠토.

함께한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취향도 같아지는 거지. 속옷 디자인이나 브랜드부터 화장품까지. 왠지 아카아시가 더 피부 관리를 열심히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보쿠토가 그런 면에 더 섬세하고 아카아시는 귀찮다고 로션 하나 안 바르는 타입인 것도 좋아. 그러면 보쿠토가 샤워하고 나온 아카아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러면 피부 빨리 늙어! 수분 공급!! 하면서 아카아시 붙잡고 로션 챱챱 해줄 것 같지. 귀찮습니다. 어차피 늙는 건 똑같습니다. 하면서 도망가지만, 보쿠토의 관리 아래 산지 어언 몇 년… 이제는 건조한 피부가 땅기는 그 느낌이 싫어. 하지만 자기가 순순히 관리하기 시작하면 보쿠토가 따라다니면서 챱챱해주는 일도 없을 테니까 꾸준히 도망 다니는 아카아시와 다 알면서도 모른 척 챱챱해주는 보쿠토. 팩 같이하면서 셀카도 찍고.

침대에서 내피셜 보쿠아카는 보쿠토는 다정다감하고 아카아시를 너무 배려하는 타입. 물론 흥분하면 얄짤없다. 지나친 도발은 금물, 뭐 이렇고 아카아시는 평소보다 더 뻔뻔해지는 거. 처음에야 부끄럽고 수줍고 그래서 더 내숭 떨고 그랬겠지만 오래되면 아닐 거야. 그래서 가끔은 키스 마크로 다투고 그랬으면 좋겠다. 보쿠토는 어른이 되어서도 프로이든 그냥 사회인이든 어쨌든 배구를 계속할 것 같은데(아카아시도 취미로는 계속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유니폼이 짧으니까 보쿠토는 새기지 말라고 하는 편이고. 아카아시는 그 말에 더 열 받아서 내 거한테 내 거 자국 새긴다는데 뭐가 문젭니까? 하면서 더 달려들었으면. 덕분에 보쿠토는 몸 여기저기에 테이핑이 가득하고…. 그래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곳에 검붉은 자국 있으면 너무 좋지. 그게 절대 구역이면 거 좋고! 아카아시는 키스 마크 굳이 안 가리는 편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오히려 드러내는 편?

‘대리님 목에….’ 

‘네? 아…. (당황하는 척 어설프게 가리는 척하지만 그게 더 눈에 띈다)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고 했는데….’

아카아시 대리님의 소문은 걷잡을 수 없게 되는데….


1년하고도 3개월이 차이나니까 가끔은 그런 거로도 투덕댔으면 좋겠다.

보쿠토의 30번째 생일 아카아시가 준비한 선물은 종합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등 내밀면서 30대부터 훅 간다더라. 관리해라, 놀리는 거. 그다음 해 아카아시 30살 생일에도 똑같이 리벤지 했는데 아카아시는 오히려 건강보조제를 하나 더 내밀지. 요즘 영 시원찮은 거 아닙니까? 뭐가 시원찮은지를 말 않았지만 발끈한 보쿠토는 거칠게 아카아시를 침대로 끌고 가는데…. 오랜만의 파워섹스에 대만족 한 아카아시.

하지만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잠자리는 줄어들 것 같다. 예전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거 이제는 뭐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두 번….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은 섹스 말고도 많으니까 만난 지 십 년이 넘으면 그냥 숨소리만 들어도 알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혼자 생각하고 넘겨짚지는 않았으면. 서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래도 항상 조심하고 대화를 하고. 그런 게 있어야 굳건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걸 테니까. 익숙해지면 소홀하기 쉽다는 걸 그때쯤이면 이미 경험으로 알지 않을까. 예전에 어렸을 때 상대에 대해 잘 안다는, 나를 잘 알 거로 생각했던 것에서 기인한 싸움이 이별까지 불러왔었고 아니면 이별 위기라지 갔다가 뭐 다시 화해하고 붙은 경우일 것 같음. 그걸 토대로 조심해야지 아껴줘야지가 습관이 된 경우였으면. 아 예쁘다.

한가하고 날씨 좋은 주말 오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선풍기 회전시켜놓고 떨어져서 각자 할 일 했으면 좋겠군. 그래도 몸 방향은 여전히 살짝 서로를 향해 틀어져 있고 다리는 얽혀있을 거야. 그게 너무 익숙해서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갑자기 그거 보고 싶어졌어. 고교 때부터 사귀었으니 10년을 넘게 만났는데(여기서 둘은 30대 초반) 그동안 이벤트, 선물 다 써먹고 그냥 기념일엔 같이 맛있는 거 먹기로 해요, 했는데 그게 몇 년 반복되니까 보쿠토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우리 요즘 너무 심심하지 않나?'

섹스는 곧잘 하고 여전히 만족스럽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는 100일 단위 기념일도 챙기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저냥 지나가니까 조금 아쉬워진 거. 마침 커플링도 오래됐겠다 새 반지나 선물하자! 이벤트를 계획하기 시작함.

취향의 반지를 고르고(이쯤 사귀었으면 취향까지 똑같아지지. 보쿠토 마음에 들면 아카아시 마음에도 들고) 아카아시 손가락 치수에 맞춰 주문도 했어. 그리고 그거 케이크 안에 반지 넣기. 먹는 거로 장난치는 거 아닙니다, 하는 먹을 거에 예민한 아카아시 때문에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거. 그 소리를 하도 들어서 준비하는 본인도 조금 찝찝했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받은 와인도 샀어. 눈에 띄는 건 둘 다 싫어하니까 집에 향초 켜놓고 오붓하게 분위기 잡으면 되겠지. 아 오랜만에 이런 거 하니까 두근거리네. 퇴근해서 돌아온 아카아시는 어두운 집안에 은은하게 켜진 조명, 케이크와 와인 멀끔하게 차려입은 보쿠토를 보고 의아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림. 아 오늘 기념일. 사실 어제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까먹었음. 하지만 결코 티 나지 않음. 살짝 감동한 척하기. 아카아시 우리가 벌써 만난 지~~~ 아무튼 사랑해!(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 귀찮다) 진부한 레퍼토리였지만 준비한 노력을 봐서라도 예뻐해 줘야지. 하지만 아카아시는 단것과 와인을 싫어함. 반 조각 먹고 와인으로는 입술 축이는 정도로만 마시는 아카아시.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제 진하게 키스하고 베드인하면 되는데 아카아시 갑자기 나감. 그리고 맥주와 사케 마른안주 치즈 등을 사 옴. 평소 둘이 술 마실 때 먹는 거.

"엑. 이게 뭐야! 오늘 기념일인데 분위기!!"

"하지만 이쪽이 더 좋지 않습니까. 익숙하고. 그리고 보쿠토 상도 와인 한 잔도 안 드셨지 않습니까."

여차여차해서 케이크와 와인 이벤트는 물 건너가고~~~ 평소대로 이것저것 섞어 먹다가 취해버려라 ((잊혀진 반지

술에 취해 잔뜩 풀어진 두 눈 사이로 진득한 시선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키스하는 두 사람. 어쩐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얼굴을 감싸던 손이 툭툭 떨어지고 옷을 벗기는 손놀림도 서투르기 그지없겠지.

"뭐 하시는 겁니까. 좀 똑바로 하세요."

"케이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

몽롱한 의식 탓에 힘 조절은 제대로 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목덜미를 세게 깨물기도 하겠지. 아프다며 상대의 등을 내려치면서도 아릿한 감각이 꽤 자극적이라 입술만 깨물고 옷은 제대로 벗겨지지 않아서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키스에만 집중하기. 그런데 술을 꽤 많이 마셨나 봐. 졸려.

"보쿠토 씨."

"왜. 말 시키지 마."

"졸립니다."

그러면서 보쿠토 목을 끌어안던 팔이 툭 하고 떨어지고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

"케이지? 케이지? 아카아시?"

"시끄러워…."

"이래도 잘 거야?"

아카아시의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집요하게 괴롭히는데도 아카아시는 흐응, 짧게 신음만 낼 뿐 더는 반응하지 않아. 결국, 그날은 그대로 잠에 빠져든 아카아시 때문에 보쿠토는 욕실에서 찬물로 샤워를 하며 열을 식혀야 했다는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 원래 알코올이 성 기능을 방해하기도 하고 뭐 그런 거잖아… 나이도 무시 못 할 거고….

어쨌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아카아시는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눈을 뜨겠지.

"보쿠토 씨?"

"…."

"좋은 아침입니다?"

"너는 이게 좋은 아침인 것 같냐."

모로 누워서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카아시를 심통 난 표정으로 보는 보쿠토. 잠깐 눈을 굴려 지난 밤을 회상하는 아카아시. 어제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기념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한 게 생각났지. 많이 삐쳤겠구나, 어떻게 달래야 하지…. 이런 고민을 0.5초 정도 한 후에 보쿠토를 잡아당겨서 이마에 입 맞춰.

"미안."

"…."

"기념일 챙겨줘서 고마워요."

"이번엔 네가 나빴어."

"잘못했어.“

푸스스 웃으면서 보쿠토 얼굴을 쓰다듬는데, 손에서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야. 보니까 반지가 두 개야. 하나는 원래 항상 끼고 다니던 거였고, 하나는 흠집 하나 없는 한눈에 봐도 새 반지. 반지가 끼워져 있는 손가락과 보쿠토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니까 보쿠토가 손을 잡아끌어서 반지 위에 입 맞추면서 아카아시를 가만 바라봐.

"어제 이거 주고 싶었다고."

"네?"

"그런데 케이크 몇 입 먹다 말고."

"…아."

갑자기 왜 뜬금없이 케이크가 등장하나 했지. 얼추 어떤 상황이었는지 깨달은 아카아시는 그저 웃음만 나와.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는데도 눈앞의 이 사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못 견디겠거든. 나이 서른 넘은 아저씨가 왜 이렇게 예뻐 보일까.

"아, 정말. 보쿠토 씨."

"왜."

"사랑해요."

"…나도 알아.“

"대답은 그게 전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불을 들춰 스멀스멀 아카아시 위로 올라오려는 보쿠토를 슬쩍 밀어내.

"더 잘 겁니다. 머리 아파."

"케이지, 진짜!"

"안 돼. 잘 거야."

이런 아침이 보고 싶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 오래 살다 보면 둘 중 하나는 아플 수도 있잖아? 단순히 사고가 났을 수도 있고 병에 걸렸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보쿠토는 많이 입원시켰던 것 같으니까 이번에는 아카아시가 아픈 거로 해서 입원을 합니다!

과로에 스트레스가 겹쳐서 몸에 문제가 생겼고 입원 치료를 하게 된 거지. 입원하면서 잘 먹고 잘 쉬면 낫는다고 하니까 이 기회에 병가 내고 푹 쉬자고 잘 됐다고 그렇게 된 거지. 아카아시도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거든. 처음에야 보쿠토도 "입원해야 할 정도야? 그렇게 안 좋아?" 하면서 걱정했지. 하지만 병원 생활 멀쩡히 하는 모습 보면서 안심하고 본인 생활로 돌아가겠지. 퇴근하고 병원으로 가서 얼굴 보고 보호자 침대에서 자려고 하면 아카아시가 병원 다인실 불편하니까 집에 가서 자라고 돌려보낼 거고. 그게 며칠 반복되니까 보쿠토도 약간 무신경해지는 거.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고 본인 입으로도 괜찮다고 아픈 곳 없다고 오히려 푹 쉬어서 좋다고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그래도 퇴근하면 병원 들러서 얼굴 보고 얘기하기 정도는 하는데 전처럼 많이 걱정하고 그런 건 없어. 이제는 같은 병실 사람들하고도 친해져서 대화도 하고. 옆 침대에는 할아버지를 간호하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입원한 지 꽤 오래됐대. 할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할아버지를 간호하려니 많이 지치기도 했겠지.

"이렇게 고생시키려고 결혼하자 했냐, 망할 영감탱이."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츤데레 스타일? 어쨌든 할머니랑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아버지가 서운해한다고 그런 얘기하는데, 보쿠토가 그러는 거야.

"케이지가 아픈 바람에 나도 연에 없는 병원에 이렇게 자주 오네."

"그래서 뭐요.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된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그래도 케이지 보려고 피곤해도 나 매일매일 왔다고? 너무하잖아."

그런 가벼운 투덕거림도 있었고.

그러다 여느 날 평소처럼 아카아시 병원에 가는데 중환자실 앞에서 할머니랑 딱 마주친 거야. 할머니가 보쿠토를 보자마자 손을 꾹 잡고 펑펑 우시는데, 할아버지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는 거야.

"내가 자꾸 고생시킨다고,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죽어버리라고 해서 진짜 그렇게 됐나 봐. 우리 영감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

그렇게 보쿠토 붙잡고 한참을 펑펑 우시는데 보쿠토는 엄청 마음이 복잡해지는 거지. 며칠 전까지 괜찮아 보였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저렇게 됐으니까 아카아시도 그러지 말란 법 없는 거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병원에 오기 귀찮다는 듯이 말했잖아. 병실로 들어온 보쿠토가 옆의 텅 빈 침상을 복잡한 얼굴로 보고 있으니까 아카아시가 덤덤하게 말하겠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중환자실로 가셨습니다."

"응…."

"괜찮을 겁니다. 왜 보쿠토 씨가 그런 얼굴…."

"케이지는 괜찮아?“

아카아시 다리에 엎드리면서 웅얼거리는 보쿠토.

"괜히 그런 소리 해서 미안해. 전부 거짓말이야. 하나도 안 귀찮아."

"예?"

"이제 집에 안 갈래. 케이지랑 같이 병원에서 지낼래. 나 없는 동안 아프지 마. 아니, 그냥 아프지 마."

"보쿠토 씨?"

함께 한 시간이 길었지만, 소홀해지지 않겠다고 항상 다짐했었는데, 하마터면 아무 생각 없이 아카아시에 상처를 줄 뻔했잖아. 그런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아서 괜히 아카아시 다리에 매달려서 시큰거리는 눈가를 가려.

"저는 온종일 이 시간만 기다립니다.“

"…."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그때 많이 서운했습니다."

"케이지…."

"그러니까 이거로 두고두고 괴롭힐 테니까, 알고 계세요."

"…응.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눈꼬리를 내려서 최대한 미안한 얼굴을 만들어 보이는 보쿠토를 보고 아카아시가 씩 웃으면서 침대 옆의 커튼을 쳐.

"우선은 오랫동안 못했으니까."

침대에 엎드려있던 보쿠토의 몸이 일으켜졌어.

그리고 다음 날 오전에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갔다가 비좁은 침대에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끌어안은 모습으로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그런 거. 보고 싶다!


이번에는 반대로 보쿠토(프로 배구선수)가 아픈 걸 보고 싶어. 원인은 오버워크.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리했더니 탈수와 근육 손상이라네. 결국, 병원에 입원. 아카아시는 같이 가려던 여행을 모조리 취소하고 그때 쓰려 했던 휴가를 보쿠토 병간호하는 데 사용해. 자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는 보쿠토한테

'당신 쉬는 김에 나도 함께 쉬는 것뿐입니다. 장소가 병원으로 바뀌었을 뿐. 여행을 못 가게 된 건 아쉽지만 저한텐 보쿠토 씨 건강이 더 중요하니까요.'

라고 말해서 왕창 감동하는 보쿠토 씨. 아카아시가 평소엔 무덤덤하고 애정표현이 적은 편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받고 있다는 게 행복해서 자기가 환자라는 것도 잊고 아카아시한테 막 들이대겠지. 그나마 아카아시 여기 병원입니다, 정신 차려요! 하면서 밀어내지만 돈 많은 보쿠토 씨는 1인실을 사용할 거고 문은 잠그면 그만이니까 ㅋ 뭐 어쨌든 당분간 무리하지 말고 절대안정 하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본다든지 게임을 한다든지 나름의 꽁냥질을 하겠지. 가끔은 손잡고 병원 여기저기 산책도 할 거고. 병원 밥맛 없다는 보쿠토의 투정에 아카아시 밖에 나가서 보쿠토가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사다 먹여주고. 요새 최고 몸 편하고 행복한 보쿠토 씨. 왠지 살이 찌고 있는 것 같지만 환자는 잘 먹고 푹 쉬어야 하는 겁니다, 단호한 아카아시에 네넹♡ 하고 먹여주는 거 다 받아먹겠지.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건 이거. 그날따라 보쿠토는 왠지 기운이 없는 것 같아.

"어디 안 좋아요? 불편한 데 없어요?"

"아냐 그냥 조금 피곤한 것 같아. 괜찮아. 전날 늦게까지 놀다 잠들어서 그런 걸 거야" 

아카아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그러다가 "나 화장실 좀."

"같이 갈까요? 혼자 다녀올 수 있어요?"

"됐어~ 혼자 충분히 갈 수 있네요. 멀쩡하네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카아시를 손사래 치며 말리는데 억지로 따라붙을 필요까지 있나, 다시 읽던 책에 집중하는데 얼마 안 지나서 쾅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나. 보니까 보쿠토는 화장실 손잡이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아있고 끌고 다니던 수액 걸이가 바닥에 쓰러져있어. 깜짝 놀라서 호출 벨을 누르고 보쿠토한테 달려가서 보쿠토 씨? 보쿠토 씨? 계속 이름을 불러봤지만 들리지 않는 모양이야. 그의 눈은 초점 없이 흐리고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어. 콜벨에 달려온 간호사와 함께 보쿠토를 침대에 눕혔어. 간호사가 보쿠토의 이름을 부르지만, 숨만 몰아쉬고 여전히 반응이 없어. 간호사는 콜벨을 다시 누르고 간호사실에 있는 다른 간호사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고는

"보호자 분, 환자분 처치실로 뺄 거예요. 도와주세요."

아카아시가 정신 못 차리고 보쿠토랑 간호사를 번갈아 멍하게 쳐다보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으니까 그사이에 온 다른 간호사가 보쿠토를 옮기겠지. 어떻게 처치실까지 따라 들어갔는데 보쿠토가 들어가자마자 거기 있던 간호사들 전부 달라붙어서 몸에 기계를 달고 코에 산소 줄을 달고 뭔가 부산하게 움직여.

"보호자 분, 언제부터이랬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담당쌤 오늘 보쿠토 씨 바이탈 괜찮았어?"

아카아시에게 급하게 질문하는데 "모, 모르겠어요. 그냥 화장실 간다고…. 갑자기…."

아카아시는 이 상황이 굉장히 혼란스럽고 겁이 나.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그냥… 전부….

"환자분 여기 어디예요?"

"몰라요… 집인가… 체육관인가…?“

보쿠토 눈에 불도 비추고 이것저것 검사하는데

"환자분 이름 말씀해보세요!"

"몰라…."

보쿠토는 축 늘어져서 자기 이름도 제대로 대답 못 하는 모습에 아카아시는 진짜로 겁이 나는 거야.

"왜 이래요?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보쿠토 씨, 보쿠토 씨?“

보쿠토를 둘러싸고 있는 간호사들 때문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뒤에서 혼자 발 동동 구르고 있는데, 보쿠토가 왜 이렇게 됐냐는 자기 물음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보쿠토는 계속 정신도 못 차리고 있고. 어쩌지, 눈물 날 것 같아.

다른 사람이 보쿠토한테 질문해.

"여기 이분 누구예요? 알아보시겠어요?"

하면서 아카아시를 가리켜. 설마, 설마, 나까지 못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 설마…. 어찌어찌 찌푸리고 있는 표정 다듬어서 웃으려고 하는데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야.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바라봤어. 한참을 물끄러미 보더니 인상을 쓰면서 손을 뻗지만 얼마 못 뻗고 툭 떨어져.

"케이지, 왜 울어."

아카아시는 그 말에 꾹 참고 있던 눈물 터져버릴 거야.

"저 알아보시겠어요?"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바이탈 괜찮습니다. 혈당도 정상수치에요. 퓨필 다 정상이에요."

"환자분,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괜찮으세요?"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여.

"그냥 갑자기 몸에 힘이 빠졌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더 여기 계셔요."

"괜찮은데…."

"괜찮긴 뭐가 괜찮습니까!"

"응?"

"정말,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진짜…."

아까까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훔치던 아카아시가 소리를 지르면서 엉엉 울기 시작해. 보쿠토는 보쿠토대로 놀랐는데 아카아시가 엉엉 우니까 너무 당황해버려서 허둥거리고. 분위기 보고 처치실 커튼을 쳐주는 간호사들.

"아니, 나 정말 괜찮다니까? 응? 울지마, 뚝 해, 응?"

우는 아카아시를 달래고 싶은데 아직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아카아시는 그거 보니까 왠지 더 서러워서 눈물 나고.

"나 진짜 괜찮다니까? 응? 케이지?"

보쿠토는 아카아시 달래고 싶어서 샐쭉 웃으면서 괜찮은 척하는데 그게 또 짜증 나서 자기도 모르게 보쿠토를 때려버렸어.

"아파! 때렸어…?"

"어, 어… 아니 그러니까 왜 갑자기 쓰러지고 그럽니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미, 미안합니다?"

뭔가 아픈 사람한테 화내버려서 미안하고 눈물은 안 멈추고 엉엉 울어버려서 민망하고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되고, 암튼 복합적인 심정으로 보쿠토 보고 있으니까 보쿠토는 그게 또 엄청 사랑스러워서 안아주고 싶어서 손가락 꿈틀거리고…(힘이 없어서 안지는 못함) 피검사 결과까지 정상으로 나와서 일단은 다시 병실로 돌아가서는 이제 보는 사람도 없겠다, 둘이 꼭 붙어서 안 떨어지려 할 거야. 환자 침대는 불편하니까 소파에 보쿠토 앉히고 자기한테 몸 기대게 해서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거 보고 싶다…. 아카아시 보쿠토 꼭 껴안고 아기 다루듯이 소중하게 쓰다듬고 뽀뽀해주고…. 이후로는 보쿠토 어디 혼자 못 돌아다니게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아카아시 보고 싶고요…! 다시 건강 회복되고 퇴원한 이후에도 이 이벤트 자주 꺼냈으면 좋겠다.

"그때 아카아시가…! 나 쓰러졌다고 막 엉엉 울고…! 혼자 두기 불안하다고 계속 쫓아다니고…!"

하면 아카아시 이 악물고 보쿠토 옆구리 찌르면서 "닥치세요." 하는 것도 너무 좋고요. 시간 지나면 아카아시 반쯤 포기하고 뻔뻔해져서 "한 시도 걱정을 안 하게 해주지를 않습니다."라는 발언으로 보쿠토 짐짝 취급? 이런 것도 좋고.… 하여튼 뜻밖의 애정전선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테니, 둘은 진한 사랑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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