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어느 추운 겨울 날, 토키토 무이치로는 죽었다. 원래 몸이 약했고 병치레가 잦은 몸이었다. 그것이 죽음의 이유였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죽음이었다. 달빛이 비추는 어느 날 밤, 그가 제 손으로 거대한 흙덩어리가 얹어진 관뚜껑을 열고 스스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눈을 떴을 때 칠흑 같은 어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나는 죽었는데, 

그 생각이 들기도 전에 무이치로는 그를 덮친 공포감에 제 앞을 막고 있는 무언가를 힘껏 밀었다. 언뜻 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것은 무이치로가 발작적으로 두드리자 금방 흔들리며 부서졌다. 흙을 헤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를 맞이하는 것은 달빛에 비친 공동묘지의 비석들뿐이었다.

살을 스치는 바람이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공기 중의 작은 먼지와 알 수 없는 입자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고서야 무이치로는 스스로가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는 괴물이 된 걸까. 책에서 봤던 밤에만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생각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을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무이치로는 영리한 아이였다. 이대로 자신이 내려가도 사람들과 다시 평범하게 지낼 수 없을 것을 알았다. 그래도 무이치로는 살고 싶었다. 살아남고 싶었다.





“무이치로 , 나 왔어. ”

(-)는 카페 한 구석 책을 읽고 있는 무이치로에게 다가갔다. 그는 밤하늘 같은 새카만 긴 머리를 묶고  작년에 (-)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던 하얀 니트를 입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한 이는 무심한 듯, 하지만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를 바라봤다. 

선한 물빛의 눈동자와 마주하고 그녀는 활짝 웃었다. 익숙하게 다가가 얼굴을 향해 고개를 내밀자 무이치로 또한 익숙하게 고개를 숙여 그녀를 맞이했다. 가볍게 입을 맞추고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는 무이치로가 읽고 있던 책 사이에 책갈피를 꽂아 넣고 덮었다.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건 무이치로였는데, 서점을 찾아오는 (-)에게서는 항상 따뜻한 책 냄새가 났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사실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무이치로는 (-)와 함께 있을 때면 깊이 숨을 들이 마시고는 했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무이치로? 뭐 먹으러 갈까? 저번에 미츠리가 사왔던 피자 맛있었는데 거기로 갈까?”

슬프게도 인간의 음식은 구역질이 나고 역겨웠지만 무이치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먹으면 몇 시간도 안 돼 게워내기 일쑤였지만 (-)와의 식사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 크게 입안 한 가득 넣어 우물거리는 입술은 그대로 키스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음식이 들어 빵빵하게 찬 볼과 입술을 뭐가 묻었다는 핑계로 만지작거리는 연인으로서의 특권도 포기하기 힘들었다.

“오늘은 뭐하고 지냈어?”

그 말을 한 것은 무이치로가 아니었다. (-)와 사귀게 되고, 가족이야기가 나와서 늘 써먹던 ‘불행한 과거사를 가진 부잣집 도련님’의 이야기를 푼 탓이었다. 언제나 무이치로를 어린아이 취급을 하던 (-)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그를 조금 더 사연있는 어른으로 보는 듯 했다. 훨씬 더 어른으로 봐줘도 괜찮을 텐데 그러지 않은 점이 (-)다워서 좋았다. 물론 순 거짓말이기에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무이치로는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짓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텔레비전 좀 보다가 책 읽었어.”

“밥은 먹었어?”

“응. 먹었어.”

거짓말.

“뭐 먹었어?”

“얼마 전에 (-)가 알려준 콘소메스프 레시피 그대로 해봤지. 소금을 엎어서 그런가 좀 짜기는 했지만 진짜 맛있던데.”

거짓말. 

무이치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야 당연했다. 백 년을 넘게 거짓말로 살아왔으니까. 무이치로가 긴 시간동안 배운 것은 누구보다 허술하게 보이되 치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늙지 않는 얼굴 탓에 한 동네에 오래 있을 수 없었고, 다쳐도 금방 회복되는 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몸부터 숨겨야 했다. 행여나 햇빛이라도 받으면 타들어가는 피부는 잠들 수 없는 그의 시간을 더욱 더 길게 느껴지게 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좋은 핑계가 생긴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행히도 (-)는 다른 이들보다 예민하지 않았다. 무이치로가 밥을 먹다가 치밀어 오르는 토기에 잠시 자리를 비워도 신경 쓰지 않았고 자다가 무이치로가 옆을 비워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한 때는 이것이 예민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을 때도 있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먹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 뒤로 그의 생일에는 무이치로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클래식 앨범과 멋진 밤이 준비되어 있었다. 관심이 없다면 그럴 수 없었다. 애초에 해가 진 뒤에만 만나는 연인이라니. 그걸 납득한 것만으로도 사랑이라고, 무이치로는 생각했다.

  

그래도 무이치로에게는 모든 것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었다. 정체를 들킨 것은 무이치로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이구로는 무이치로가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 중 아주 예민하고 또 감이 좋은 인간이었다. 평소라면 증거가 남지 않도록 흔적을 지우고 몸을 숨겼겠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무이치로는 지쳐가고 있었다. 살기 위해 누군가를 해치는 일도, 몸을 숨기는 일도 그만하고 싶었다. 

“그럼 그만해.”

이구로는 늘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본인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이구로라면 쉽게 그렇게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테는 언제 말할 건데?”

“아직, 아직은 아니지 않아?”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데도 모르는 (-)가 대단하다. 물론 네가 사귀는 모든 사람한테 말할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되는 거는 맞는데...이제는 말하고 싶다며. 확신이 든다며.”

“신중해서 나쁠 건 없잖아.”

“내가 보기에 너 지금 신중한 거 아니야. 겁먹은 거지.”

그렇게 말하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이구로의 손에서 실수로 휴대폰이 미끄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무이치로가 반사적으로 잡아 챈 휴대폰을 이구로에게 건네며 그대로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알아…안다고.”

“말하려면 마음 더 깊어지기 전에 빨리 하는 편이 좋을걸.”

이구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이미 늦었다. (-) 대한 마음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 하나 말하는 것도 겁이 났다. 자신의 정체를 아는 이는 지금 이 시대에 몇 명이나 되는데, 정작 그 안에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 무이치로를 슬프게 했다.

“나도 (-)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내가 뭘 하고 하루를 보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러고 싶어.”

“해. 여기서 이러지 말고, 하면 되잖아.”

“그게 됐으면 여기서 이러고 안 있지.”

사실을 알게 된 (-)가 어떻게 반응 할지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 겁이 나는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는 도망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맞이할 미래가, 함께 하지 못할 미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도 되지 않을까. 무이치로는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있었다. 

     

“…로.”

“…….”

“무이치로!”

“어?어???”

무이치로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이미 반쯤 올라가 있었다. 아차, 너무 생각에 빠졌나. 어버버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팝콘을 쏟았다. 잡을 수 있었지만 잡지 않았다. 바닥에 흘린 팝콘을 (-)와 함께 주워 담으며 무이치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는 그런 무이치로에게 시선을 한 번 주었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았지만, 영화관을 나오고 카페에 앉아서까지 (-)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에 오히려 눈치를 보는 것은 무이치로였다. 무이치로는 뭐마려운 사람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 시선을 졸졸 쫓았다.

“(-), 화났어?”

“아니.”

“그럼 할 말 있어?”

“그건 너 아니야?”

(-)에게서 나온 의외의 말에 무이치로는 의식적으로 숨 쉬던 것을 멈추었다. (-)는 똑바로 무이치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내 눈치만 보고 있잖아.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왜? 뭘 잘 못했는데?”

“아니, 내가 뭐 언제 너한테 잘못한적 있어?”

“너 그럴 때만 이러잖아.”

“있잖아….”

무이치로는 한참을 뜸을 들였다. 더 이상 뜸을 들이는 것이 (-)를 화나게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입이 더 떨어지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가 울면 어떡하지, 화를 내려나. 아니면 미쳤다고 할까? 그런데 이런 카페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무이치로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 판타지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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