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츠 옥상에서 투신하여 즉사하는 데 성공한 나를 믿지 못하고 맥을 확인하는 존 왓슨의 손가락이 얼마나 고집스러웠으면 트레이에 물건처럼 적재되어 운반되는 순간까지 내 손목에 그 서늘한 떨림이 남는 바람에 초점 없어야 할 나의 눈동자가 존의 얼굴을 머릿속에 담고 싶어 시신경을 조작하려 들었다. 색채란 색채는 모조리 탈락하였을 종잇장 같은 얼굴을 한 존과 눈이 마주쳐 보았자, 하나, 이 값비싸고 폭력적인 연극을 다시 해 보일 수 없는 데다, 둘, 갓 내 시신을 발견한 얼굴을 한 존이 기억의 궁전 내부를 망령처럼 돌아다니는 꼴을 참을 수 없을 것이므로 내 신체를 조절하는 데 여념이 없었는데, 의도대로 신체를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깨닫는 더디고 놀라운 시간이었다. 안 돼요, 신이시여, 안 돼요. 절박하게 중얼대며 처음으로 나의 맥박을 확인하는 존 왓슨의 손가락과 화가도 아니고 요리사도 아니고 절대로 내가 살아있길 바라고 이미 죽은 나를 살릴 수 있다면 당장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기세의 유능한 의사 존 왓슨의 눈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속여야 한다는 사태의 심각성으로 미루어 보면 내가 드물게 느끼는 중압감엔 근거가 충분하리라. 언젠가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니라고 나에게 암시한 적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란 족속은 늘 신의 의지를 꺾으려 하기에 내 시신을 따라 병원 내부로 따라 들어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못해 안전한 장소로 운반될 때까지 뜬 눈으로 시야에 담기는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으려니 존이 불쑥 따지고 들었다.


“내가 기어코 따라 들어온다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가진 의사가 나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손을 떨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가?”


나는 그 물음에 답할 필요가 없었다. 특정한 감정이 무엇이노라 정의하는데 타인과 자신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히 도플갱어를 만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일뿐더러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내 입장을 차치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토록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지니는 존 왓슨과는 약간의 공통분모조차 피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그가 나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내 알 바가 아니며, 기억의 일부일 뿐인 노곤하고 둥근 뺨으로 내게 무슨 말을 지껄이든 간에 실제 존 왓슨은 내가 추락한 자리에서 무너져 있을 것이니 그런 물음엔 신경 쓸 필요 없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 것이 아닌 피 위로 섞여 들어가는 그곳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져 있거나, 숨을 몰아쉬고 있거나, 충격에 휩싸여 손을 떠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서 있는 게 아니라면, 실낱같을 가능성을 노리고 뛰어들어와 내 손목에 남은 차가운 떨림이 가시기 전에 라자루스 연극 단원들에게 히스테릭한 발작을 부릴 게 당연했다. 내가 덜 ‘사랑’하는 사람이든, 그가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는 기적을 행하는 과도한 자신감에 찬 의사이든 간에. 그러나 내 시야에 걸리는 아는 얼굴 중에 존의 것은 없었고, 작전대로 몰리의 구역인 공시소로 운반되며 무대 뒤로 퇴장하는 동안 뒤통수와 등과 다리에 전해지는 잔 진동과 함께 뒤늦고 생소한 깨달음이 몸을 절이고 나서야 눈동자를 초점 없이 유지하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어진다. 이것이 마지막. 쇼는 끝났다. 기약 없는 이별. 울고 있을지도. 지금은 말고. 아무도 없을 때. 내 시신이 아닌 나의 도플갱어가 묻힌 무덤의 묘비를 혼자 찾아갔을 때나 아주 잠깐 울고 누가 볼까 시침을 뗄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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