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장소에서 히로마사와 다이텐구가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먼저 다이텐구를 발견한 히로마사는 그의 정면으로 걸어갔다. 다이텐구도 금방 그를 알아챘다. 곧장 제게로 향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다이텐구와 마주 선 히로마사가 대뜸 물었다.

“이 마을에 나타난다는 악귀를 알고 있어?”

“악귀라고?”

“그래. 순식간에 나타나서 아이들을 할퀴고 사라진다는데.”

“그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찾는 요괴와 같을지도 모르겠군.”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히로마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요괴를 찾고 있는데?”

“아랫마을에 놀러 나오는 쇼텐구들을 습격하는 요괴가 있다더군. 마음 놓고 놀아본 게 벌써 두 달 전이래서 해결하려고 내려왔다.”

“그 녀석들도 꼬맹이들이지?”

“음.”

고개를 끄덕이는 다이텐구를 유심히 지켜보던 히로마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무엇이?”

“네가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네가 범인인가 했잖아.”

히로마사가 넉살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미 분위기는 망쳤다. 다이텐구는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히로마사를 흘겨보다가 몸을 돌렸다.

“잠깐, 같이 가.”

급히 뒤따라오는 히로마사를 알면서도 다이텐구는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범인이면 어쩌려고?”

다른 곳을 보며 던지는 질문에 히로마사가 다이텐구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그럼 잡는 거지.”

맞는 말이었다. 하긴 같이 다닌다고 같은 편은 아니니까. 알지만 서운한 마음은 더 성이 났다. 다이텐구의 빨라지는 발걸음에 히로마사는 기어이 발을 맞췄다.

“그 녀석을 같이 잡자. 난 그제부터 악귀를 찾아 다녔어. 이제 곧 나타날 테니 네가 잠깐만 도와주면 충분해. 나랑 악귀를 잡으면 마을 사람들도 네가 나쁜 요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고 쇼텐구들에게도 신경 써줄 거야.”

히로마사는 청산유수로 다이텐구가 빠져나갈 곳을 막았다. 생각나는 대로 줄줄 뱉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아니라 다이텐구는 납득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을 앞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함께 앉아 주위를 경계하게 되었다.

“좀 더 주위를 둘러봐야 하는 것 아닌가?”

“순찰이라면 첫날부터 했어. 그런데 내가 있으니까 안 나오는 것 같더라고.”

하긴. 다이텐구는 쑥 커진 히로마사를 올려다봤다. 어린 시절에도 남달랐지만 지금은 눈에 띄는 장한(壯漢)이었다. 옷을 제대로 걸치지 않아 그대로 보이는 떡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가슴은 다이텐구가 알던 히로마사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방심하는 척하면서 기다리는 게 낫겠지. 요 며칠 습격이 없었으니 놈도 근질근질 할 거다. 곧 나타날 걸.”

히로마사는 중얼중얼 추리를 늘어놓으며 바삐 짐을 뒤졌다.

“뭘 찾는 거냐?”

“찾았다!”

히로마사가 번쩍 손을 들었다. 작은 호리병이었다. 작은 잔 두 개도 같이 꺼낸 히로마사는 수건으로 잔을 닦아 다이텐구에게 건넸다. 엉겁결에 잔을 받아들자 히로마사가 그 위로 호리병을 기울였다. 술이었다.

“사과주야. 네가 만든 포도주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여유가 넘치는 군.”

“네가 옆에 있는데 못 잡을 리 없잖아.”

다이텐구는 어깨를 으쓱하고 잔을 들었다. 제 잔도 채운 히로마사가 짠 건배했다. 사과주는 나쁘지 않았다. 은은한 향이 입맛을 돋우고 쌉싸래한 끝맛이 다음 잔을 불렀다. 그렇게 두어 잔을 비우니 호리병이 텅 비었다. 마지막 잔을 손에 들고 한참 내려다보던 히로마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사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너를….”

“으아악!”

아이의 비명소리가 히로마사의 말을 끊었다. 서로에게 집중하던 둘은 벌떡 일어나 소리를 따라갔다. 먼저 날아간 다이텐구가 부채로 목표를 가리켰다.

“저 놈이다!”

얼굴을 긁혀 엉엉 우는 아이를 아비에게 맡긴 히로마사가 잽싸게 벽을 탔다. 동시에 매고 있던 활을 풀어 시위를 매기고 지붕에 올라서자마자 화살을 꺼냈다. 목표를 포착한 화살이 곧바로 튕겨져 나갔다.

“이야아옹!”

어깨를 맞은 요괴가 요란하게 울었다. 히로마사가 다시 화살을 매기는 사이 다이텐구가 부채를 휘둘렀다. 붕 떠오른 히로마사가 요괴 옆으로 날려 왔다. 그가 착지 자세를 잡기 전에 다이텐구가 요력을 거뒀다.

“윽!”

엉덩방아를 찧은 히로마사를 뒤로하고 다이텐구가 요괴에게 접근했다.

“네 놈이 쇼텐구들을 괴롭혔느냐?”

“그렇다면 어쩔 건데?!”

벌떡 일어난 히로마사가 다이텐구 뒤로 섰다.

“마을 아이들을 할퀴고 다닌 것도 너겠지.”

“그래, 바로 내가 그랬다!”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히로마사에게 겁먹은 듯 요괴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왜?”

“재밌으니까. 그게 바로 내가 태어난 이유니까.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건 사냥꾼의 본능이자 권리니까!”

다이텐구가 부채를 꽉 쥐었다. 이 막돼먹은 놈이 뭐라 지껄이는 거지? 부들부들 떠는 손을 히로마사가 감싸쥐었다. 차가운 목소리가 끝을 알렸다.

“그럼 너를 가지고 노는 것도 우리의 권리겠군.”

“뭐? 뭐하는, 뭐야아아아옹!!”


*


오만한 고양이요괴를 퇴치한 후 히로마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약을 건네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황궁에서 가져온 약을 준 대가로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사례로 챙겼으나 아깝지 않았다. 그 약으로 아이들의 얼굴에 흉이 사라진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 사이 다이텐구가 사라진 것만이 아쉬웠다. 마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소개해주고 떠나려 했는데.

히로마사는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짐을 다 꾸리자 늦은 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 자고 가라고 했지만 그는 마을을 나섰다. 별로 힘든 일도 없었고 밤새 걸으면 해 뜨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구라가 사라진 후로 히로마사에게 휴식이란 없었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었다. 아직 쓰러질 수 없었으므로.

마을을 나서자 청보리밭이 나타났다. 밤하늘 아래 검은 보리가 바람이 부는 대로 휘청거렸다. 쏴아아아 흔들리는 보리밭 소리를 들으니 그다지 힘들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이 밤중에 어딜 가는 것이냐?”

그래서 갑작스레 나타난 다이텐구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오에야마로.”

“얼마 멀지도 않은데 자고 가지 그러나?”

“금방 가니 가서 쉬지.”

“히로마사.”

가볍게 날아 따라오던 다이텐구가 땅에 내려앉았다. 히로마사는 말없이 멈춰 서서 그를 기다렸다. 다이텐구는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와 두 손을 뻗었다. 양손으로 히로마사의 뺨을 쥔 다이텐구가 그의 표정을 살폈다. 어둑한 달빛 아래 붉은 눈동자만 빛났다.

“넌 잘못한 게 없다.”

“그런 말이라면,”

진저리를 내려던 히로마사가 조용해졌다.

다른 소리도 사라졌다. 청보리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펄럭이는 옷자락 소리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도 점점 멀어졌다. 그저 속눈썹을 셀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다이텐구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히로마사는 숨을 멈췄다.

영겁의 시간이 흐른 후 소리가 돌아왔을 때, 다이텐구는 이미 두어 발짝 물러서 있었다.

“다음에는 급하게 떠나지 마라.”

“…다이텐구,”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으니.”

머뭇거리는 히로마사에게 슬며시 미소 지은 다이텐구는 타박타박 오오에야마로 걷기 시작했다. 그 옆에 나란히 발맞추며 히로마사는 낮에 못했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았다.

여름밤은 짧고 오오에야마까지 오래 걸리는 길도 아니었으나 그 밤은 끝나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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