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씨는 이런거 익숙하니까 괜찮아.

당신은 그렇게 말하며 나의 치부에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응, 괜찮으니까...겁먹지말고.


그 목소리는 마치 스스로에게 되뇌이는것 같아서. 당신의 눈이 나를 피하고 있어서. 당신을 끌어안은 순간 느껴진 몸의 긴장이, 눈부신 금발 사이로 보이는 귀의 열기가. 

모든 정보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어서. 


......아. 

소름이 돋았다. 

이 연극을 깨지 않으면, 아이씨를 가질 수 있다. 아이씨의 몸 뿐이라도. 당신은 내 것이 된다.




이따금, 텐노지 리나는 소망했다.

그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때론 수줍게. 때론 가볍게 사랑을 이야기하며 온기를 담은 시선이 제 몸에 녹아드는 시간을 꿈꿨다.

꿈밖의 그녀는 변함없이 상냥하고, 쾌활했다. 리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인사를 건냈으며, 시선은 머무르는 일 없이 리나를 떠나갔다.




리나리와 카페에서 만났다.

다가온 시험을 대비해 서로 노트 필기를 정리하며 시험 공부를 했다. 주문한 딸기케이크가 맛있어 리나리의 새 리나쨩 보드 페이지가 탄생했다.


공부 후엔 같이 쇼핑을 했다. 리나리는 내게 어울리는 귀걸이를 골라줬고 나는 리나리가 리나쨩 보드 제작에 쓸 펜을 샀다.

서로의 손에 선물을 쥐고 나오니 길어진 밤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리나리를 바래다 주는 길은 거리의 음식 냄새로 배가 고파졌다.


헤어지기 전 리나리의 뺨에 입을 맞췄다.

나를 빤히 쳐다보다 깜짝놀란 얼굴 그림을 그리려 서두르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리나리, 우리 오늘 데이트 한거야.




미야시타 아이는 알지 못했다.

후배에게 우정 이상의 눈길을 받게 될 자신을.

그 후배가 여자라는 사실을.

정작 연심을 품은 당사자는 제 마음을 자각 못하고있는 상황을.


고백이란게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미야시타 아이는 생각지 못했다.




텐노지 리나는 생각했다.


아이씨는 좋은사람이니까 욕심내면 안된다고.

그저, 이 태양같은 사람의 곁에서 온기를 받을 수 있다면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만족...할 줄 알았는데.


안온한 생각은 제 앞에서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친구와 땀이 배어나온 손바닥을 닦으며 이야기하는 한마디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래도 괜찮은걸까

이래도 괜찮은걸까

내가 이래도 되는걸까


"저어...리나리-?"


부끄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을 건냈다.


"역시 아이씨라도 이건 좀...아니었으려나?"


그녀의 말 끝이 사그라든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씨는 나쁘지 않다. 다만.


천천히 고갤 들었다.

그리고 좌우로 벌려진 상의와 그 안에 보이는 야릇한 속옷과 마주치자마자 허겁지겁 옷소매 속으로 고갤 파묻었다.


살려주세요.

아이씨를 바로 보기엔 내 심장이 너무 약해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라 다행이다.

내가 평범한 사람들처럼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면 지금 나는 그 누구보다 멍청한 표정을 지었으리라. 작은소녀는 생각했다.


눈앞의 상대는 제 감정을 읽는 유일한 사람임도 잊은채 작은 소녀는 웃음짓는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씨." 

"응? 왜불러 리나리?" 


꺼내려던 말은 혀 위에 녹아 사라진다. 

끌어올렸던 작은 용기는 결국 노트 뒷장에 부딫혀 흩어진다. 


"...이 표정은 어때?" 

"오우! 새로운 리나쨩 보드야? 오늘도 잘그렸는데!"


 있잖아, 아이씨는 왜 내게 말을 걸어준거야? 이 질문은 앞으로도 할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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