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츠는 침대 위에서 줄곧 말이 없었다. 이치마츠는 초조한 눈으로 카라마츠의 등만 주욱 응시할 뿐이였다. 그밖에 이치마츠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긴 침묵이 이어진 후 카라마츠가 입을 연다. 그 순간이 이치마츠는 제일로 두려웠다.


"헤어지자."


정말로 어이없을 정도로 그 말은 쉽게 나왔고, 이치마츠는 저도 모르게 먼저 손이 나가 카라마츠를 돌려세우고 있었다. 그 때의 이치마츠는 평소 카라마츠에게 시비를 걸 때의 살벌한 얼굴과는 조금 다르게 식은 땀을 걸고 있었다.


"다시 말해봐. 쿠소마츠. 뭐라고 했어."
"이만 이 관계를 끊자고 했다, 이치마츠."
"하...... 웃기지마. 이제와서 돌이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거야...? 그렇게 가벼운 거였어? 너랑 나는...."
"이치마츠. 현실을 봐라."
"카라마츠!"


우리는 형제고, 직업도 뭣도 없다. 이 관계는 지속될 수 없어.


카라마츠의 입에서 나오지 않기만을 바랐던 현실을 파고드는 단어가 이치마츠의 심장을 헤집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제발 평소다운 현실감각 없는 태도로 망상같은 말을 속삭여주길 바랐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름 일도 찾아보고 있었다. 타인의 축복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언젠가 방을 얻어 둘이서 오순도순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철없는 20대이기에 생각할 수 있는 안일한 계획이였다. 이치마츠가 잡은 어깨에 손톱이 파고들고 있었지만 카라마츠는 굳이 그것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저 이치마츠를 아무 감정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 낯설어 금방이라도 카라마츠가 떠날 것 같아 이치마츠는 필사적으로 카라마츠를 붙잡았다.


"......내가 잘못했어, 카라마츠."


이치마츠의 입에서 오열이 새어나온다. 싸구려 침대 시트로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이치마츠가 이런 여린 얼굴을 내보인 것은 상당히 오래간만이다. 그리운 시절이였다. 형, 형 하고 따라다니며 카라마츠를 의지할 시절의 이치마츠. 순진한 얼굴로 그저 저를 버리지 말라고 매달려오는 이치마츠에게 순간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힐 뻔했다.


".....안돼."


안된다, 이정도로 흔들려서는 이치마츠를 끊어낼 수가 없다. 카라마츠는 이미 결심을 굳힌 지 오래였다. 이치마츠의 마음을 받아주는 이상, 이치마츠는 저에게 계속 얽매여 있을 것이 뻔했다. 근친상간, 동성애, 배덕. 전혀 좋게 들리지 않을 단어로만 통용되는 우리들의 관계가 더이상 지속되어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밀어낸다.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동생의 마음을 박살내고서라도, 이치마츠가 잘못되는 꼴은. 이치마츠에게 그런 류의 시선이 쏟아지는 것은 막고 싶었다.


그것이 순전히 제 욕심에서 우러나온 만용이라 할지라도.


"이치마츠, 난 더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 이제 네 관계에서 억지로 그곳을 비집어 여는 고통을 견디는 데도 질렸어. 네 키스는 역겨워. 너는 내게 사랑을 속삭이지만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그 말을 한 직후로 잠시 반짝 하고 눈 앞에 별이 뜨더니 귀에서 이명이 울려 이치마츠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뭐라고 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가 마지막엔 눈물을 헤집고 옷을 대충 챙겨 밖으로 나간다. 한참을 맞은 뺨을 부여잡고 이치마츠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다 이걸로 된거라고 카라마츠는 침대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


"후회하지 않아."


"절대로 나는, 이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세뇌하듯이 여러번 소리내어 중얼거리고는,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놓고 간 반지를 몇 번이고 매만지다가 끝에는 결국 신음을 흘렸다.


"전혀 그런 생각을 한 적 없다...."


이치마츠와의 밤은 매번 자신을 놓을 만큼 황홀하고 좋아서, 몇 번이고 안기고 좋을대로 저지르고, 마지막에는 둘다 나가떨어져 끈적이는 몸을 부둥켜 안고 있어도 마냥 행복했었다.


이치마츠가 키스를 할 때마다 카라마츠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이치마츠의 키스는 소중한 것을 다루듯 부드럽게, 안심시키듯 안을 쓸어와서 카라마츠는 심장이 녹을 것만 같아 혹시나 제 심장이 멈추어 있지는 않은지 몇 번이고 확인하기 일쑤였다.


이치마츠가 속삭이는 사랑의 말을 들을 때면,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잡고서, 어디로든 발 닿는 곳으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치마츠와 자신만이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둘만 있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그게 제 욕심인 줄 알면서, 발끝까지 소유하고 싶어서. 이치마츠가 혹여나 닳을까 두려워서.


사랑하는 제 동생이면서, 카라마츠의 사랑의 동반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사람.


오늘 카라마츠는 그런 사람을 상처입히고 만 것이다.


매정한 말을 뱉으며, 위로도 없이 그저 모멸적으로 내뱉는 폭언들.


이에 이치마츠는 울면서 저를 원망하며 떠나갔고 카라마츠는 혼자 남았다.


이게 옳은 일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책임은 전부 카라마츠가 떠맡으면 될 일이다.


죄의 남자, 길트가이. 이치마츠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것이 카라마츠의 형으로서의 책임감이자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고 싶은 기사의 마음이였다.


물론, 그걸 온전히 버텨낼 수 있을만큼 카라마츠는 강하지 못했지만.


남자 본연의 나약함은 이치마츠가 떠나고 나서야 발휘된다.


"아아....이치마츠....이치마츠...!"


최후를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또한 그렇게 상처입은 와중에도 반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한 이치마츠의 마음을 떠올리며, 카라마츠는 비통에 잠겨 단말마를 지른다.


조금은, 마지막 정도는 뒤돌아봐줬으면 했다는 얄팍한 욕심을 안고, 카라마츠는 옷을 제대로 주워입지도 못한 모습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절대로, 이치마츠에게는 보여질리 없는 카라마츠의 일면.


이대로 평생 사랑하는 상대에게 미움받을 카라마츠의 마지막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뚤어지고 상처받은 또 하나의 사랑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발휘되어, 카라마츠는 며칠 후 피투성이로 길가에서 발견되었다.


범인은 금방 나타났다. 아니, 자진해서 자수했다는 말이 옳았을까.


이치마츠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묻지 않은 것까지 상세히 경찰 앞에서 진술했다.


평온했어야 했던 마츠노 가 앞에는 본 적 없는 차량들이 즐비하게 들어섰고, 형제들은 난데없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질문공세를 받아내야만 했다.


이치마츠에게도 원망의 화살은 쏟아졌으나, 이치마츠는 형제들의 불평을 무언으로 묵묵히 받아냈다. 초기의 증언을 끝으로 다시는 입을 열지도 않았다.


비틀린 배덕의 사랑의 결말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카라마츠가 지키고자 했던 것도, 이치마츠가 지키고자 했던 것도 어느것 하나 이뤄지지 않는 비극의 시초는 어디부터였을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살해할 당시, 카라마츠가 쥐고 있던 한 쌍의 반지를 보고서야 모든 일의 전말을 알아챘고, 뒤늦게도 일을 저지른 자신을 저주하며 땅을 치며 후회했다.


카라마츠가 별 저항 없이 살해당한 것도 분명 어딘가 자신의 최후가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음이리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카라마츠는 그런 관용구를 즐겨 쓰길 좋아했다. 그는 이 결말에 만족하고 있을까. 판결이 내려지고 사형날짜만을 기다리는 이치마츠의 현재 심경은 어떨까.


그것은 그 둘만이 알겠지, 하고 오소마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끝맺는다. 소송 및 기자들의 공세로 지친 마츠노 가의 장남으로서 수많은 악담과 추문들, 그런걸 꿋꿋이 받아내고서도 어딘가 초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이치마츠 면회를 갔어. 이것 참 같은 얼굴을 한 쌍둥이 중에서 범죄자가 나오는 건 큰일이네. 항상 밑바닥 인생이라고들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난감해질 줄은. 그것도 참 죄질이 나쁘잖아. 신파극 끝에 살인이라니, 이건 뭐. 참작의 여지도 없지."


그런 상황에서도 어딘가에는 동생을 염려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역시 가족이기 때문일까. 오소마츠 씨에게 원망하는 기색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방으로 가서 생전 카라마츠가 좋아하던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보이던 오소마츠는 거기서 뭉텅이로 쏟아지는 수많은 러브레터들을 발견한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은 수많은 사랑의 꿀발린 속삭임들. 정말 못봐주겠다고 웃으며, 오소마츠는 눈물로 얼룩진 자국을 어루만지며 말을 잇는다.


"이것들, 이치마츠에게 가져가면 심심풀이 용도로는 충분하겠지. 그 녀석 자살한다고 난리치지 않는다면 좋겠는데. 그래도 이건 그 녀석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그게 수순적으로 맞는 거니까."


이건 비밀이지만, 사실 일이 이렇게 된 데엔 우리 책임도 있을지 몰라.


어쩌면 내 욕심 때문에, 그녀석들을 몰아세운 결과일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말이냐고 캐물어도, 오소마츠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수척해진 얼굴 위에 쓴 웃음만 그릴 뿐이다.


"사랑이란 건 뭐라고 생각해? 어떤 것이 당연하고 올바른 사랑이고, 가지면 안될 사랑이란 건 또 어떤 걸까. 물론 평범하게 그런걸 따지지 않아도 될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이리저리 말이 많지. 재력 차이, 성격 차이, 집안의 문제, 성별부터 검냐, 희냐, 둥그냐, 네모나냐. 조건들은 다양각색이야."


"어떻던간에 정답은 없다고,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 녀석들의 선택도, 그에 따른 최후도 다른 사람이 뭐라 떠들 자격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어.


이 이상은 말하지 않을 거라고? 오소마츠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로 코를 검지로 문지르며 눈 앞의 상대의 이름을 읊는다.


"그러니까 이만 성불하라고, 카라마츠. 우리들은 너희들의 사랑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어. 뒷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 말에 어딘가에서 고맙다 오소마츠, 라고 카라마츠의 웃음 섞인 대답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인기척이 사라지고 잠시 후 주변에는 오소마츠 이외에 아무도 없다. 불단에 향을 피우고, 카라마츠의 생전 얼굴이 담긴 액자를 보며 모든 것이 그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땅거미가 지고, 곧 면회에서 돌아올 동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오소마츠는 창문을 활짝 연다. 두 개의 그림자가 빠진 인영들은 평소처럼 저마다의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겠지.


쓸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오소마츠의 입에 물린 담배연기가 하늘 어딘가로 뭉실뭉실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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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글을 잡아서 내용이 두서 없네요

습작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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