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1. 이 소설에서는 하루카가 난데없이 흡혈귀가 되어있습니다. 이런 소재를 불쾌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2. 흡혈 묘사가 있습니다. 하루카와 치하야의 관계가 묘합니다. 키스 묘사가 살짝 있습니다. 역시 불쾌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빛과 그림자의 1)론도』


포옥-

하루카가 갑자기 제 품 안으로 폭, 안깁니다. 온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하루카의 차가운 몸. 붉은 눈동자가 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듯한 눈빛. 아, 그렇네요. 슬슬 그 시간이 돌아왔다는 거군요. 저는 아무 말 없이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풀어 맨살을 살짝 드러냅니다. 그러자 하루카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제 어깨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리고....

꽈아악-

꽉, 물었습니다. 오른쪽 어깻죽지에 날카로운 아픔이 찌르르 파고 들어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에 의해 살이 찢기며 피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쓰읍, 쓰읍하고 하루카가 열심히 피를 빨아들리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립니다. 피가 빠져나갈 수록 제 머리는 멍해지고, 온 몸의 힘이 쭉 빠집니다. 아픔이 야릇한 감각과 함께 몸 전체를 돌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경험해 왔던 것이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한숨을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으....하아....."

촛점이 잘 맞지 않습니다. 베이지 색의 벽지가 흐릿하게 보입니다. 제 피를 빨아들이는 소리도 이젠 저 멀리서 들리는 듯합니다. 명확한 건 오직, 이 이상한 감각과 하루카뿐. 그러나 저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묘하게 안심이 된다고 해야할까요. 힘이 하나도 없어 그만 하루카에게 몸을 기대고 맙니다. 아까는 하루카가 제게 안겼는데, 이제는 입장이 역전되었군요.

"......푸, 하...."

하루카가 식사를 다 끝마쳤나 봅니다. 겨우 고개를 들어 하루카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라면 조금이나마 잘 보이겠지요. 하루카의 입가는 온통 붉습니다. 으음, 선명하지는 않지만 활짝 웃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치하야쨩, 오늘도 고마워."

예전과 비하면 살짝 그늘이 져있긴 하지만, 그래도 밝은 하루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고맙기는, 당연히 해줘야하는 거지. 비릿한 피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합니다. 제 피는 여전히 멎지 않은 체, 한 두줄기씩 제 셔츠와, 가슴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바닥에는 벌써 몇 방울씩 떨어져있군요. 정말, 하루카는 흡혈귀가 되어도 변함 없이 덜렁이네요. 뭐, 그 때보다는 훨씬 능숙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맙니다.

".....후훗....."

하루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대충 얼버무리고는, 살짝 어지럽긴 하지만 천천히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차가운 팔뚝이 제 등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하루카?"

"조금만 더....."

그러고는 저를 꼭 안더니, 그대로 입을 맞춥니다. 피의 맛이 느껴집니다. 키스라기보다는 하루카가 일방적으로 제게 피를 먹인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하루카는 달고 맛있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그저 비릿함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 하고 한동안 혀가 얽고 얽히다가, 떨어집니다. 그래도 붉은 실이 길고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마치 운명의 붉은 실 같군요.

입 맞춤이 끝난 뒤, 저는 오른쪽 손을 들어 멍하니 하루카의 갈색 머리카락을 어루만졌습니다. 방금 물렸던 곳에서 살짝 둔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왼쪽은 그 때 이후로 제대로 들 수 없으니까요. 2년이 지나도 그 때 그대로인 단발. 태양 같은 따스함이 담겨 있는, 아니 담겨 있었던.....하루카의 몸은 차갑습니다. 그래도 안겨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부족한 피를 대신 채우려고 하는 듯 졸음이 오기 시작합니다. 눈이 반쯤 감기기 시작하고, 하품이 나옵니다.

"졸려?"

하루카가 제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려 줍니다. 졸린 건 사실이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좀 더 버티고 싶었지만, 피곤함에 온 몸이 짓눌리고 있습니다. 결국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 그러면 잘 자, 치하야쨩."

하루카의 이 말을 마지막으로 듣고, 저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


........


눈이 떠졌습니다. 등 뒤로 느껴지는 푹신한 감각. 눈에는 하얀 천장이 보입니다. 아아, 침대에 누워있군요. 피는 멎어있고, 옷도 정상적으로 입고 있습니다. 보통이라면 이불의 포근함이 느껴져야겠지만, 오히려 서늘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하루카가 저를 꼭 껴안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억지로 하루카의 팔을 풀어내고, 침대에 걸터 앉아 하루카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그 때의 붉음은 온데간데도 없는, 무방비하고 사랑스러운 미소. 마음 편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심술이 나서 볼을 쿡 찔러도 봅니다. 아무 반응 없습니다. 그러면 다음 단계, 살짝 볼을 꼬집어봅니다.

"무으으...."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금은 한 낮일테니까요. 창가는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어제 하루카에게 피를 준게 밤이었으니까,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낮의 하루카는 잠꾸러기입니다. 아무리 귀찮게 굴어도 좀 뒤척거리기나 할 뿐,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장난을 쳐도 일어날 걱정은 없습니다. 저는 살짝 하루카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일어섰습니다. 지금은 아이돌 활동을 쉬고 있지만, 그래도 밤 늦게까지 자버릴 정도로 잠꾸러기가 된 건 아닙니다. 흠, 일단 씻고나서, 밥을 먹고 가볍게 이 주위를 돌아볼까요. 방에서 나와, 긴 복도를 거쳐 욕실로 향합니다. 전에 살았던 맨션의 작은 욕조와는 차원이 다른, 수영이라도 할 수 있을 법한 넓은 목욕장입니다.

처음에는 쓸데없는 금 장식같은게 너무 많이 달려 있어서 깜짝 놀랐었지만, 지금은 좀 익숙해졌습니다. 기계적으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합니다. 왼쪽 팔은 어깨 위로 올릴 수 없으니까, 시간이 좀 걸립니다. 샤워를 끝낸 뒤, 멍하니 설치된 거울을 바라봅니다. 딱히 키가 더 자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약간은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따금 연락하거나 찾아오는 사무소 사람들도 다 그렇습니다. 특히 아미나 마미, 타카츠키씨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고작 2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렇게 자라있었을 줄은......큿. 이런,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냈군요. 하여튼, 하루카를 빼고는 전부 변해가고 있다는 겁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을 걸 생각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시선을 돌렸는데, 이번에는 왼쪽 어깻죽지의 커다란 흉터에 눈이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아,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기억해내려 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2년 전 갑자기 사라진 하루카, 절망에 빠진 우리들. 하루카가 돌아왔으면 하는 심정으로 아이돌을 계속했고,
그에 응하기라도 하듯, 한 밤중에 만나버린 하루카.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일면식도 없었던 중년 남성이 피투성이가 된 체로 쓰러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밤, 서늘한 공기에 섞인 비릿한 냄새. 하루카가 온통 피투성이.
붉다. 얼굴도 손도 옷도 전부 붉다.
어둠 속에 밝게 빛나는 눈동자도, 붉다.
나는 그저 우두커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루카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와서, 나를 덮치고는 입을 벌려 우악스럽게 왼쪽 어깻죽지를.......

"........윽!......"

화악, 하고 불이 붙기라도 한 듯 흉터가 뜨겁고, 아픕니다. 그래서 그만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숨은 거칠어지고,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진정, 진정해야합니다. 이젠 끝났어. 과거의 일입니다. 그 사람은 죽지 않았고, 저도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하루카는 더 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 때 그 일은 절대, 결코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겨우 하루카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 때 제가 하루카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 쭉 하루카를 만날 수 없었을테고, 하루카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탁 풀려버린 다리에 다시 힘을 넣어 일어섭니다. 오늘의 할 일을 해야합니다. 식욕이 없긴 하지만,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하고, 계속 집에만 있을 수 없으니까 때로는 바깥에 나가줘야 합니다. 애써 씻었는데 식은 땀을 흘려서 찝찝하군요. 다시 샤워기를 틀어서 물이라도 끼얹고,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입은 뒤, 머리를 말리고는 식당으로 향합니다. 이 곳도 쓸데없이 넓고, 웅장합니다. 아주 긴 테이블에는 무려 스무개의 의자가 놓여있습니다. 저는 아무 자리나 골라 앉습니다.

그러자 소리도 없이 등장하는 사용인.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지만, 오직 필요한 말과 일밖에 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치하야님, 메뉴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빵과 스프, 샐러드로 부탁드립니다. 식욕이 없으니 양은 좀 적게."

사용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당을 나갑니다. 가까운 조리실로 향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요리가 완성될 동안, 가만히 앉아서 테이블에 장식된 꽃병과 향초를 바라봅니다. 꽃병에는 언제나 생기 있는 꽃들이 있고, 향초도 마찬가지로 날마다 새로운 걸로 바뀝니다. 마치 썩어버리는 꽃들과 다 녹아버린 초를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이, 철저하게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아무리 길다란 향초라도 언젠가는 썩거나 녹아 없어진다는 것을.....이런, 또 쓸데없는 생각을 했군요. 점점 갈 수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벌써 지쳐버린 걸까요?

사용인이 조용히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고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떠났습니다. 저는 묵묵히 혼자만의 식사를 시작합니다. 빵을 씹고, 스프를 마시고, 샐러드를 우물거리는 소리, 식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만이 식당을 울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어젯밤 마셨던 제 자신의 피가 떠오릅니다. 몇 달 전부터 계속 하루카가 먹이는 그저 비릿하기만 한 맛과 향. 언젠가 이유를 물어봤었지만, 당사자 그 자신도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냥 무심결에 먹이고 싶다고......

그 때는 잘 몰랐었지만, 지금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는 일입니다. 깊게 생각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잊는 게 좋습니다. 30분쯤 지나서, 그저 영양 보급에 불과한 식사를 끝냈습니다. 남길까 생각했지만 몸을 생각해서 다 먹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갑니다. 뒷 정리는 그 쪽에서 알아서 해주니까요. 저는 잠깐 화장실에 들러 양치를 하고, 방에서 가벼운 겉옷을 하나 챙겨 입은 뒤 바깥으로 나섰습니다.

가장 앞에 깔끔하게 꾸며진 정원이 보이고, 그리고 그 너머로 멀리 바다가 보입니다. 전에 살았던 곳에서는 볼 수도 없었던 이국적인 풍경. 그럴만 합니다. 여기는 일본이 아닌 태평양 어딘가의 외딴 섬이니까요. 뒤를 돌아보면, 커다란 저택이 보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가 있었던 곳이고, 벌써 2년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낮설게 느껴집니다. 미나세씨 집안의 별장 중 하나라고 하는데, 별장이라기보다는 성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러고보니 영화같은데 보면 흡혈귀는 성에서 많이 살더군요. 후훗, 어쩌면 이 곳은 하루카에게 어울릴 수도 있다는 걸까요. 정작 그 당사자는 둘이서 살기에는 지나치게 크다고 불평했지만 말이에요. 뭐, 됬고 오래간만에 바다나 가볼까요.

한 10분 정도 걸어서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 물은 아주 맑다못해 투명하고, 살짝 녹색빛을 띄고 있기까지 합니다. 정확한 시간은 보지 않았지만 대략 오후 2~3시 정도 된 거 같습니다. 내리쬐는 햇살은 따듯하다 못해 살짝 따갑기까지 합니다. 혹시 피부가 타기라도 하면 어쩌나해서 적당한 나무 그늘로 이동했습니다. 그늘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슬며시 바라봅니다.

오래 보면 눈에 나쁘겠지만, 살짝이니까 괜찮겠지요. 태양과 바다를 보니, 하루카의 데뷔곡이 떠오르는 군요. '태양의 jealousy'. 뜨거운 여름, 불타오르는 연인의 이야기는 태양마저 질투한다는 뜻이 담긴 노래 제목. 그 곡을 계기로 해서 하루카는 태양, 햇님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지요. 원래부터도 따듯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좀 더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었다고 해야할까. 물론 그 이미지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서, 하루카는 정말 빛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우리들의 리더가 되어있었고,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절망하던 제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집에 틀어박혀 죽음을 생각하던 저에게 '놔두지 않아' 라고 말해줬던 건 죽어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태양은 그런 하루카를 질투해버린 모양입니다.


더 이상 하루카는 태양빛을 쬘 수 없습니다. 약간 정도라면 버틸 수는 있겠지만, 한 30분만 지나기라도 한다면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입니다. 아아, 고작 그런 노래를 불렀다고 이렇게 굴다니 정말, 정말 쪼잔한 태양입니다.

.....굳이 태양 탓을 하지 않아도, 이미 하루카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족과도 만날 수 없고, 아이돌 활동도 할 수 없습니다. 따듯한 온기마저 사라졌습니다. 혈색 좋은 피부는 조금 창백하게, 에메랄드 빛 눈동자마저 탁한 붉은 색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지금의 하루카에게 허락되는 것은 피와 어둠, 그리고 저를 포함한 사무소 사람들. 사실 사무소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만나는 일은 별로 없고, 대부분 저입니다. 다들 바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하루카가 만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무소 사람들을 싫어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그 때처럼 습격해버릴까봐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몇 번은 좀 위험하긴 했습니다. 갑자기 이성을 잃고 달려들려고 했기 때문이죠.

........그나마 저하고 있으면 하루카는 이성적입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거 하나만큼은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하루카를 도울 수 있다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루카를 도와줄 수 있는 걸까요? 미나세씨와 시죠씨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흡혈귀에 대한 정보, 치료법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지만, 여러 정보들을 얻어왔습니다.

그 외에도 미키, 타카츠키씨, 아미, 마미, 하기와라씨, 아즈사씨, 코토리씨, 리츠코, 가나하씨, 마코토도 각자 자신의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하루카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팬들도 우리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년이 지났는데도 사무소에는 아직도 저와 하루카의 근황을 묻고, 응원한다는 편지들이 가득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프로듀서도 하루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하루카를 위한 곡을 준비해놨다고.....

전 지금처럼 있기만 하는 걸로, 과연 도움이 된다는 걸까요? 잊기로 했던 무서운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옵니다. 시죠씨가 알려줬던 정보. 흡혈귀가 자신의 피를 사람에게 먹이면, 그 사람도 흡혈귀가 된다고 했었습니다. 하루카가 어떻게 흡혈귀가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런 원인이었을 수도 모른다고 시죠씨가 말했었습니다.

.....아마 하루카는 무의식적으로나마 그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제게 피를 먹이는 것입니다. 지금은 제 자신의 피지만, 언젠가는 하루카 자기 자신의 피를 먹이려고 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제 쪽에서 마셔버릴 수도 있겠지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루카가 자고 있는 틈에, 과도라도 챙겨서 적당한 곳을 긋고, 흘러나오는 피를 핥아버리면 그만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차라리, 하루카랑 똑같이 되어버리는 게 나을까요? 같이 어둠으로 떨어지면, 그러면 하루카도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는 걸까요?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그건 절대 하루카를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제가 편해지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저마저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하루카를 구해준다는 건가요. 이건 사무소 사람들도 배신하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하아........또, 또 잘못된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합니다.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갑자기 바람이 차갑게 느껴집니다. 어느세 하늘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하루카를 질투하던 해도, 저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금세 시간이 흘러가버렸군요. 이게 다 쓸데없는 생각을 해버린 탓입니다. 일단 집에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하루카를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하루카가 일어나면, 그 때 다시 한 번 같이 바깥을 산책하기로 합시다. 약속했으니까요.


..........

.......

하루카가 아이처럼 들뜬 모습으로 바깥에 뛰어나갔습니다. 더 이상 햇님따윈 존재하지 않으니까, 안심했나 봅니다. 그렇지만 전 조금 불안합니다. 혹시 저러다 넘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카는 웃는 얼굴로 외칩니다.

"치하야쨩! 빨리 와!"

하루카의 요청에 응해주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제대로 뛸 수 있는 건 한 3일 정도 지나야 되겠지요. 어쩔 수 없이 저는 천천히 걷습니다. 그러자 하루카는 불안해졌는지 다시 저에게로 돌아오려 합.....아, 결국 넘어졌습니다. 넘어지고는 꼼짝도 하지 않는 하루카. 아무래도 제가 일으켜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네요. 좋아, 그 요청에는 응해줄 수 있습니다. 저는 하루카의 근처로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고는 차가운 손을 꼭 잡아주고, 힘을 써서 끌어올려줍니다.

"하루카도 참, 넘어지는 건 변하지 않네."

"에헤헷, 그러게.....어쩔 수 없는건가?"

하루카가 멋쩍은듯이 웃습니다. 저도 따라 웃습니다. 다시 일어난 하루카는 옷과 무릎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는, 주변을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나무나, 바다만 보이다보니 질렸나봅니다. 이제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외칩니다.

"앗, 보름달이다!"

그 외침에 맞춰 저도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루카의 말대로, 하늘에는 커다란 달이 보입니다. 그런데 특이합니다.

".....살짝 푸른 빛을 띄고 있는 거 같아."

"응, 응! 신기해! 나 이런 달은 처음 보는 걸지도?"

확실히 저도 처음보는 거긴 하네요. 그렇게까지 신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루카가 기쁘다면 그걸로 좋은 걸로.

생각보다 그리 어둡지 않은 밤입니다. 달빛이 저와 하루카에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하루카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루카는 웃었습니다. 부드러운 달빛 속에서, 하루카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지금의 하루카는,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빛나게......아니요, 그 때보다 더욱, 더더욱 빛나 보입니다. 눈이 부십니다.

아, 깨달았습니다.

하루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은 결코 어둠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전 저는 하루카에게 빛이 되어줘야한다는 것을.

태양에게 질투 받아 빛을 잃어버린 하루카, 저는 태양이 될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달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달빛은 하루카를 상처입히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하루카."

"응, 치하야쨩."

"하루카는 달 좋아해?"

"무슨 일인데 그래?"

갑작스러운 질문에 하루카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본심을 그대로 말해주기로 했습니다.

"아까 하루카에게 달님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후훗, 치하야쨩 의외로 로맨티스트네."

"그렇지만 혹시 하루카가 달이 싫다면 어쩌나, 하고 고민했지."

"에엣, 그럴리가! 나 달님도 좋아해. 치하야쨩이 내 달님이 되준다면 더더욱!"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매우 기뻐하는 하루카. 그래, 지금의 제 결정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덩달아 기뻐집니다.

"그, 그래......고마워, 하루카."

"아냐! 나야말로 고마워!"

하루카가 제 손을 꼭 잡습니다. 차가운 손. 그러나 이번에는 어딘가 모르게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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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론도: rondo. 주제 부분에 또 다른 부분이 삽입되다가, 다시 주제로 다시 되풀이 되는 음악

하루치하 왓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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