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70508 / 하토풀 보이프렌드
이와미네 슈 x 플레이어 (싯 싯싯) 의 유리병에 담긴 머리통



인간인 내가 자고새인 선생님을 좋아해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될 줄 알고 좋아한 거였지만요. 선생님은 이 일을 인류 어리석음의 증거라며 두고두고 비웃으십니다. 목에서 분리되어 유리병에 보존된 영장류의 머리, 그러니까 나 들으라고 선생님은 우리 둘뿐인 양호실에서 커다랗고 두꺼운 <영장류 심리학> 책을 펼쳐들고 듣기좋게 낭독하십니다. 생전에도 전 학생들을 앉혀두고 병명과 이름모를 약품의 이름을 읊으시는 선생님 목소리를 좋아했었지요. 오늘의 주제는 먼 옛날 영장류 심리학자들이 했다는 무슨 실험 이야기였는데요,

“흔들다리 효과라고 합니다. 당신들 인류가 자기 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대상자들은 평상시보다 흔들다리 위에서 만난 상대에게 훨씬 강한 호감을 느꼈다고 하는군요. 여기서 호감이란 번역하자면 애착, 성애, 사랑. 다리의 흔들림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껴 높아진 심박수의 원인을 뇌가 사랑으로 착각한 겁니다. 결국 당신들의 사랑이란 뇌의 판독 오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만한 인류가 우리 조류를 내려다보며 그리도 자랑해왔던 큰 뇌라는 것도 결국은 신체신호의 멍청한 판독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탁 소리나게 책을 덮고 선생님께선 붉은 테가 둘러진 탁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십니다. 자고새의 눈에는 깜박임도 없고
“그 꼴로는 당신도 감정을 느낄 수 없겠지요.” 라고 머리만 남은 제게 부리를 부딪혀 말씀해오시는 당신.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꼴이었다면 좀더 오래 살았을지 모릅니다, 사랑이란 착각으로 스스로를 죽음의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말입니다. 사랑이라니, 그런 감정을 내버려두다니 당신들은 어리석게도 진화했습니다. 자기파괴는 시스템의 치명적 결함입니다. 그래서 난 요즘 당신을, 그러니까 이 머리를 깡통기계 몸에 연결해볼까도 생각중입니다. 신체와 분리됨으로써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 대뇌피질에 간단한 명령을 수행시키는... 효율적인 노예입니다. 어떻습니까? 삶에 대한 영장류의 집착은 어마어마할 텐데요. 당신들의 시, 소설, 영화, 고문서가 입을 모아 말하듯이요. 자, 그런 모습으로라도 부활하고 싶습니까?”

한참을 혼자 떠들어 놓곤 자문자답이 우스운지 돌연 침묵에 빠지십니다. 굳이 대답하자면 제 답은 '아니요'지만요 선생님, 부활이라니, 그런 걸 물어보시려던 게 아니잖아요? 머리밖에 남지 않아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제게 생을 '원하냐'고 물으시다니 답지 않으세요. 진짜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잖아요 사실은요. 당신의 진짜 바람을 감추고 이상한 논리로 도피하시니까, 말이 꼬이시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르고 돌려 돌려 자신까지 속이시니까.

선생님은 저를 도로 양호실 찬장에 집어넣고 철컥, 철컥 이중 자물쇠를 잠그십니다. 다시 세상이 캄캄해지고, 서랍 틈새로 들리는 선생님의 성마른 부릿짓. 혼자 있을 때의 습관이시죠 그거, 이와미네 선생님, 선생님께선 솔직하지 못하세요. 언행이 이렇게까지 일치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어요.
들려주신대로 제가 인류 친선대사라면, 당신께선 매파의 공작원이시고 이 학교는 거대한 실험시설이었다면 당신은 그날 제 시체를 공표하고 가늘게 이어져오던 인류와 조류의 위태로운 평화를 날려버리셨어야만 해요. 죽은 인간을 널리 보이셨어야지요, 저라는 총알이 세계로 날아가 모든 걸 불태워버리게 두셨어야지요, 하지만 당신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양 실종된 이 인류 대사를 뒷짐진 깃 속에 감춰두고만 계시는군요. 몸통과 사지는 토막내 무슨 고기인지 모르게 갈아다 구내식당에 넘겨버리시고, 머리는 보존액이 든 유리병에 담가 혼자만 몰래 간직하시곤 때로 꺼내 들여다보며 사랑에 관한 옛 실험을 읽어주십니다.

사랑스러우신 분. 인간인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자고새 선생님, 당신은 결국 그 마음을 안고 죽음으로 달려가십니다. 제게 속삭여주신 그 모든 음험한 흉계, 거대한 계획, 잊으실 수 없는 과거의 상처와 간직해오신 약속과 바라마지않으시던 미래를 버리십니다. 은폐할 수 없는 살인을 은폐하시고 실종자를 수색하는 그 모든 세력들 틈에서 모래에 머리를 처박고 안심하는 타조처럼 작은 유리병 하나와 찰나의 밀월을 즐기셨습니다. 그작 그 유리병, 죽은 영장류의 머리가 뭐라고 그렇게, 내주기가 싫으셔가지고.


하지만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자기파괴가 조류 어리석음의 증거가 아님을 압니다.

인류 뇌 진화에 문제가 있어 제가 죽은 게 아니듯이요. 이 감정은 종이나 진화, 대뇌피질, 몸에서 보내오는 신호들과는 상관없습니다. 그저 불가항력이에요. 깡통 몸에 이식돼도 전 당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생사 계산을 초월하겠지요, 상위종인 당신께서 지금 그러하시듯이. 나날이 좁혀오는 수사망에도 이 유리병 하나를 버리지 못하신 당신은 도망칠 곳이 완전히 없어지고 나서야 저를 꼭 품에 넣고 마지막 도주를 감행하십니다. 오래 걸리셨습니다, 인정하기 힘드셨겠지요,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자 당신은 사방을 눈아프게 비추는 조명등, 도로를 통제하는 고함소리와 어제의 동료를 뒤쫒는 분주한 날갯소리 한가운데서 드디어 이 인간의 머리를 바로 보시고 부릿속에서 그리도 오래 굴려오신 질문 하나를 고백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싯 싯싯. ......당신은 저를 사랑했습니까? 진심으로?"

그럼요, 그러믄요 선생님, 대뇌피질의 모든 계산을 초월해, 살고 싶다는 종의 의지를 초월해, 당신의 양호실로 걸어들어간 제 두 발과 여기에 남은 이 머리가 외칩니다.

'네'
'네'
'네'

선택지가 없는 질문이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정답이란 말이에요. 오직 네, 그것뿐이에요. 비록 성대로 공기를 올려줄 폐가 없어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이와미네 선생님, 선생님께선 대답을 들은 표정이시군요. 듣지 않아도 아실 거예요 직접 느끼고 계실 테니까. 사랑 때문에 죽음을 맞는 어리석은 입장이 직접 되어보고서야 이 감정의 힘을 깨달으시는 느리디 느린 당신. 저는 선생님을 사랑해서 당신은 이 저를 사랑해서 죽을 자리에 섰으니
“저기 있다 이와미네 슈!"
"쏴라!"

꼭 같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우리들 이 얼마나 행복한 커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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