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70707 / 미도리마 생일글 


미도리마 신타로가 진학할 고등학교를 결정한 건 피로감과 분노로 인한 충동에서였다. 조건이 나쁜 곳이 아니기도 했지만 표어가 유독 마음에 들어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바로 확답을 주어 버렸다. 홍보용 팸플릿 속 농구부 단체사진에 펄럭이는 불요불굴不撓不屈. 그 문구는 당시 그의 가슴을 푹 찌르는 구석이 있었다. 그때 미도리마는 온종일, 혼자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푯대처럼 꼿꼿이, 그런 마음으로 진학한 슈토쿠 농구부의 전력은 엉망이었지만 실망하지 않기로 한다. 고교리그 역전의 왕자라도 부원 개개인의 기량이 기적의 세대에 미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입학 원서에 이름을 적으며 그는 결심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인사를 다한다. 무슨 장애를 만나도 넘어지지 않겠다. 반드시 이겨 최선을 다하지 않는 녀석들에게 무엇이 옳은 농구인지 증명해 보이겠다. 그건 혼자 나아가야 할 여정이었고 그래서 인터하이 예선에서 미도리마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이번 쿼터의 공을 모두 저에게 주세요' 한다. 타인의 득점은 필요하지 않다는 선언에 대기실 공기가 얼어붙고 동년배 포인트가드가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진학한 학교가 아니다. 사실, 지난해부터 그는 줄곧 생각해왔던 것이다. 왜
농구는 혼자 할 수 없을까. 왜 한 팀에는 사람이 다섯이나 필요할까. 팀에 인사를 다하지 않는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괴로울까.
어째서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을까. 동료는 약한 녀석들 뿐, 모두들 나약하고 경박하고 저열하다. 혼자 코트를 달리고 상대를 제치고 돌아서고 패스를 받고 뛰어오르며 미도리마 신타로는 생각한다. 혼자 살아가고 싶다, 손끝을 떠난 공이 그리는 높은 포물선처럼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위치에서 혼자. 흔들리지 않고 굴하지 않고, 운명을 따르며 인사를 다하는 내 슛은 반드시 들어가는데
그 날에는 이기지 못했다. 꼴사납게 무릎이 꺾여 주저앉은 꼴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눈물이 흘렀다 소중하게 여겨온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파삭 깨진 것처럼. 인사를 다했는데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있는 게 자신만이 아니란 걸 그는 차츰 깨달아간다. 이를테면 후지무라 유키오, 이군으로 밀려난 삼학년 슈팅가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운동은 그냥 취미로 하고 있다'며 웃길래 패배주의자인가 하고 한심하게 여겼는데 부 활동을 그만두지도 연습에 빠지지도 않았다.
키무라 선배, 어느 늦은 하굣길 동네 뒷산으로 난 까마득한 계단을 숨이 턱까지 찬 채 올라가는 그 사람을 보았다. 그 선배가 그런 단련을 하고 있단 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
주장 오오츠보 선배, 일요일 오전 미도리마보다 먼저 체육관 문을 열어놓는 사람이 그였다. 어색하게 '일찍 오셨네요'하니 주장 일을 하다보면 연습할 시간이 없다며 묵묵히 드리블을 계속한다.
미야지 선배, 익히 봐온 열등감에 찬 '선배'인가 했는데 농땡이치는 이학년들에게 '열심히 하지 않을 거면 돌아가라'며 화를 내는 걸 보았다. 상위권 대학을 지망한다는 그는 시험기간에도 늦게까지 연습했다. 언제고 성실했다. 인사를 다했다.

그리고 타카오. 지천에 널린 경박한 녀석들처럼 실실 쪼개고 사람을 웃음거리로 삼으면서도 언제나 허리를 곧게 펴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한 번도 미도리마보다 먼저 귀가하지 않았다. 한 번 졌던 상대에게 다시는 굴하지 않겠다는 듯이.



*

흰 현수막에 펄럭이는 불요불굴不搖不屈. 미도리마는 일어나 동료들을 따라 달렸다. 어깨를 겨누고 숨이 차도록, 전국 준결승 코트에 번쩍이는 스포트라이트, 머리가 아플 정도의 함성,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적, 냉혹한 전광판, 그러나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넘어지고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서 코트를 달리고 상대를 제치고 돌아서 패스를 받고 뛰어오르며 미도리마 신타로는 생각했다. 혼자 살아가고 싶지 않다, 절대로 혼자 살아가고 싶지 않다. 이 사람들과 좀더 농구를 하고 싶다 어째서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이번에도 인사를 다했는데 이기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자 얼굴이 눈물로 젖었다 그때처럼. 지기 싫어하는 타카오도 함께 울었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머리를 수건으로 덮어 주었다. 이렇게 태연해지기까지 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 달려온 걸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데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응원단이 높이 든 현수막이 기억 속 팸플릿에 인쇄된 사진처럼 펄럭였다. 마지막 호루라기가 울리는 순간까지 이 팀의 누구도 우리가 진다는 운명에 흔들리지도 굴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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