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드림 60분

*주제: 첫인상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미야 카를로스 토시키 드림




첫인상의 함정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첫날, 교실로 향하며 제일 궁금했던 건 옆자리에 누가 앉게될까 하는 것이었다.


1학년 말에 옆자리에 앉았던 시라카와는 왠지 음침하고 까칠하고 혼자 중얼중얼 욕하는 버릇이 있어서 불편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이왕이면 조용하고 얌전하고 야구부도 아닌 애였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여자애인 게 좋은데. 남자애는 불편해서.


뭐, 거의 수업 시작하기 직전까지 옆자리가 비어있는 걸 보고 야구부나 뭐 운동부인가보다 생각했던 것까진 좋았다. 운동하는 남자애는 생리적으로 불편하지만 옆자리라고 해도 시끄럽지만 않으면 괜찮으니까. 시라카와는 옆 반이라는 걸 확인했고, 같은 야구부라도 후쿠이 같은 애는 착하고 성실하다.


그래, 다른 반이 된 후쿠이가 갑자기 뾰로롱 나타나길 바라지는 않았다. 정말로.


"안녕."

"아, 안녕."


하지만…


카미야 카를로스 토시키(이름 길다). 통칭 카를로스.


왠지 무섭게 생긴 사람이 많은 야구부에서도 꽤 눈에 띄게 무서운 편인 얼굴에 똑바로 서면 나로서는 제대로 얼굴을 보기도 힘든 큰 키, 낮은 목소리에 고2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액면가. 지금 당장이라도 야구공을 들고 나를 이길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말할 것 같은 미간.


―그야말로 야구하는 아오미네 같은 남자애가 옆자리에 앉게 되어버린 건, 조금도 반길 수가 없었다.


"…………."


안 그래도 남자라는 생물은 불편한데, 이렇게까지 사람을 긴장시키는 요소를 뭉쳐놓은 것 같은 사람이 바로 옆자리에. 수업 시간에 제대로 숨은 쉴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아니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그냥 존재 자체가 무서워!!!


"1교시 뭔지 물어봐도 되냐?"


잔뜩 긴장한 채로 교과서를 뒤적거리고 있자니 옆에서 불쑥 낮은 목소리가 물어왔다.


"어? 어. 저기…영어네."

"땡큐."


헉 깜짝이야. 빵 사오라고 하는 줄 알았네. 평화롭게 무슨 수업인지 물어보고 끝났지만 한참 심장이 벌렁거리는 바람에 1교시 앞 15분쯤은 날려먹었다.


내일부터는 등교 전에 청심환 같은 거라도 미리 챙겨먹고 올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고등학교 2학년의 첫 날이 지나갔다.





새학기가 시작하고 1주일, 나는 1학년 때 반에서 1등이었다는 이유로 2학년 새 반에서 임시 반장을 맡았다가 진짜 반장이 되었다. 내신에 약간 유리할지는 모르지만 이래저래 할 일은 많고 성가셔서 별로 달갑지는 않다. 특히 학기 초엔 학급회의에 위원회에 심부름에 아무튼 정신이 없고.


오늘도 수학 과제 노트를 걷어서 제출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번 쉬는 시간까지는 제출해야 하는데.


"저기, 노트 얼른 제출해야 하는데…."

"잠깐만! 진짜 잠깐이면 돼, 반장!"


뒤늦게 남의 숙제를 베끼느라 정신이 없는 남자애들이 있어서 쉬는 시간이 5분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도 제출하러 갈 수가 없었다.


"……."


어쩌지.


급하게 글씨를 날려쓰고 있는 남자애들 앞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다보니 남은 시간은 어느새 3분.


"여기!"


노트를 전부 받긴 했지만 시간은 빠듯하다. 교무실은 우리 반 교실에서 한 층 위인데 달리기가 느린 편이라 제대로 수업 종이 치기 전에 교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모르겠다.


급한 마음에 노트들을 껴안고 뒷문을 나서다가 교실로 들어오던 사람과 부딪쳤다.


"미안해!"

"미안…반장?"

"아, 카미야 군. 미안해! 지금 교무실에 갔다와야 해서 바빠서!"


급하게 뛰어나가려던 나를 붙잡은 건 크고 까만 손이었다.


"아―바쁘면 나 줘."

"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수학이지?"

"어어?"


내 품에 한가득이었던 노트들이 전부 카미야 군의 품으로 옮겨갔다.


"카미야 군?!"


채 부를 새도 없이 쌩 하고 뛰어가버리는 길쭉한 뒷모습에 입을 벌어졌다.


"헉…엄청 빨라…."


잔상 남는 줄 알았네. 음속의 카미야가 달려올라간 계단 근처로 다가가서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얼마나 빠른지 이미 뒷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카를로스 녀석 원래 야구부에서 제일 빠르거든."


넋이 나간 내 옆에 서있던 야구부원이 해설을 덧붙여줬다.


"아…그렇구나."


달리기의 기적의 세대 뭐 이런 건가. 달리기로 나를 이길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가벼워진 손과 교무실로 향하는 계단을 번갈아 보고 있으니 금방 다시 계단 위에서 늘씬한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이프."


씩 웃는 까만 얼굴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분 밖에 안 지났어. 카미야 군, 달리기 진짜 빠르구나…."

"뭐 그렇지. 카를로스로 괜찮아."

"아, 응. 카를로스 군."

"군은 안 붙여도 된다니까."

"카를로스?"

"오케이."


휘적휘적 걷는 카미야…가 아니라 카를로스의 뒤를 따라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종이 쳤다.


"오. 빨리 가야겠네."


카를로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까처럼 뛰어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도 나름대로 속력을 내고는 있지만 아까에 비하면 한참 느릴 텐데도.


힐끔 내려다본 긴 다리는 나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티가 역력하게 좁은 보폭으로 걷고 있었다.


"저기, 고마워 카미야 군. …이 아니라 카를로스."


머리 하나는 위에 있는 까만 얼굴이 씩 웃었다.


"천만에."


카를로스는…적어도 피부색 빼고는 아오미네랑 닮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이제는 얼굴도 첫인상만큼 무섭지는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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