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





 비단 보료 위에 귀왕의 팔을 베고 모로 누웠던 이랑은 자꾸만 귀왕의 목덜미를 매만지며 놀라워했다. 여전히 서툰 입질로 피부가 너덜거릴 정도로 짓씹었던 귀왕의 목덜미는 언제 피를 흘렸냐는 듯이 말끔해져있었다. 들짐승에게 할큄을 당한 자국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일각 전만해도 제가 이를 박고 물어뜯었던 피부에는 어느 흔적조차 없었다. 흡혈귀의 회복속도에 놀라워하는 이랑을 향해 귀왕은 별 일 아니라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혈서옥이 제 원래 주인을 지키려는 탓이지. 지금은 네가 이리 가까이 있기도 하고."



 이랑의 허리에 감고있는 손에 은근히 힘을 주어 제 품에 더 당겨안은 귀왕이 말하자 랑은 두 눈만 끔뻑였다. 단약인 줄 알고 삼켰던 혈서옥이 제 몸 안에 들어차있지만 제 주인을 위해 움직인다니 이런 걸 제가 가지고 있어도 되려나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그런 랑의 불안한 마음을 알아챈 건 귀왕이 먼저였다. 



"금이 간 네 구슬이 제 모습을 찾고나면 그땐 혈서옥이 알아서 내게 돌아 올 테니 그런 얼굴 말거라." 

"영영 돌아가지 않으..ㅁ.., 혹시라도 내가 아주 멀리멀리 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널 내 곁에서 떼어 놓을 리가 없지 않느냐. 허, 벌써부터 떨어질 생각부터 하다니. 혈곡산장에 가둬두고 반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해야겠구나." 

"형님이 아시면 경을 치실, ㄱ..."

"혈곡산장이 두 번이나 불바다가 되게 내가 두 손 놓고 있을 성 싶으냐, 랑아?"



 슬금슬금 보료 위에 놓인 사방침 쪽으로 몸을 빼던 랑은 채 멀리 가지도 못하고 다시금 귀왕에게 발목을 붙들려 죽 끌어당겨졌다. "수야아-." 제 아무리 랑이 애교를 피워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기어코 랑을 제 아래 깔아눕힌 귀왕은 요리조리 피하는 랑의 입술을 찾아 제 입술을 맞붙였다. 보료 위를 스치는 비단 소리가 낯간지러워 랑은 제 귀를 틀어막고싶은 심정이었다. 그저 처음엔 옷깃 위를 스치던 귀왕의 손이 거침없이 옷고름을 풀고 안쪽으로 파고들자 랑은 파드득 놀라며 귀왕의 어깨를 밀치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여름 풀잎처럼 얇은 도포자락이 귀왕의 손아귀에 쉬이 벗겨져나갔다.



"랑아."



 정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온몸에 열기가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랑이 할 수 있는거라곤 정인의 진명을 애타게 부르며 무작정 귀왕의 장포만 움켜쥐는 일 뿐이었다. 귀왕의 혀인지 입술인지 살갗을 애태울 때마다 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귀왕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순흔이 남겨질까 랑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제 속도 모르고 달려드는 정일을 향해 따끔하게 한 마디 하려던 랑은 제 불만이며, 숨이며, 입술까지 먹히고나자 애석하게 귀왕을 품만 세게 때렸다. 제 목덜미를 멤돌던 귀왕이 날카로운 송곳니로 살갗을 물자 랑은 너무 놀라 소리를 냅다 질렀다. "수야!" 랑의 반응에 귀왕은 웃음을 터트렸다. 가슴이며 배가 훤히 드러난 랑의 옷깃을 여며주다 말고 귀왕은 판판한 랑의 아랫배에 한 손을 얹었다. 



"혹여 내 씨를 품어 배라도 부르면 네 형님의 윤허를 기다리지 않고도 널 데려갈 명분이 될 지도 모르지."



 은근하게 배꼽 주위를 어르는 손길에 이랑은 뒷방 할멈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 얼굴에 새빨갛게 열이올랐다. 어쩔 줄 모르는 랑과 달리 귀왕은 꽤나 만족스럽게 재미를 본 얼굴이라 괜히 분해서 랑은 몸부림을 쳤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 보료를 벗어나려는 랑의 허리를 귀왕이 답싹 끌어안을 때였다. 얕은 헛기침 소리와 함께 문지방 너머에서 누군가 입을 열었다 



"이랑님. 저 청지기 현중이옵니다. 신주라는 분이 객잔을 찾아오셨습니다."

"어, 어, 곧 나가네."


 절 놓아주지않는 귀왕의 품에서 한껏 힘싸움을 벌이다 헐떡이며 랑이 답했다. 이연의 사람인 신주를 이랑이 불렀다는 말에 귀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손에 힘을 풀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랑은 정인의 손을 뿌리치며 황급히 보료 위를 벗어났다. 도망이라도 칠 기세로 널찍히 귀왕에게서 떨어진 랑은 바닥에 나뒹굴던 제 세조대를 찾아 허리춤을 급히 동여맸다. "신주는 어찌하여 부른게냐?" 귀왕의 물음에도 랑은 샐쭉한 얼굴로 풀어헤쳐진 제 옷을 여미기 바빴다. "랑아." 귀왕이 어르며 불러도 랑의 눈꼬리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세였다. 제 정인이 단호한 얼굴을 하고 있는대도 귀왕은 그마저도 기쁜지 그저 웃는 낯이었다.


"이랑님? 어찌 할까요. 어디로 뫼시면 될까요?"


 한참이 지나도 답이 없고, 랑이 나오질 않자 문지방 너머에서 다시 한 번 현중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나가네." 랑은 겨우 묶어놓은 옷고름을 그새 귀왕이 풀어낸 걸 보더니 분에 차서 씩씩거렸다. "다녀와서 어찌 이무기를 꾀어낼지 알려주거라." 옷고름을 재차 묶는 랑을 보며 운을 띄운 귀왕은 한 팔을 괴며 보료 위로 몸을 다시 뉘였다. 랑이 일부러 발을 쿵쿵 구르며 걸어나가는 동안에도 귀왕의 얼굴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7,116 공백 제외
1,0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