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마차 안은 푹푹 쪘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더위에 다이나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창문을 열까요?”


옆에 앉아있던 매드해터가 다이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였다. 다이나는 어떻게 그리 태연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열어도 더울 것 같은데요.”

“하긴 그렇군요. 햇빛이 워낙 쨍쨍해서.”


미치고 팔짝 뛰겠군, 다이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두 사람이 탄 마차는 슬슬 산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얼마 전 하츠가 초대한 여름맞이 파티, 녹스 아이스타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파티가 열리는 별장은 도시에서 꽤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 마차로는 세 시간 정도. 하츠가 사는 저택이 오 분밖에 안 걸려서 그렇지, 마차로 세 시간이면 굉장히 양호한 거리였다.

물론 무더운 날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다이나는 한여름 뙤약볕에 마차를 타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나는지 겪어본 바가 없었다. 실제로 마차 안은 십 분만 앉아있어도 후덥지근했다. 마차 안이 이런데 바깥에서 마차를 모는 마부와 말들은 얼마나 더울지. 차라리 기차이면 좀 더 나았을 텐데! 다이나는 왜 별장 근처까지 기차가 다니지 않는지 이 나라의 철도 시스템에 항의하고 싶어졌다.


“나중에 부채를 하나 살까 봐요.”


사본 적도 없는 부채가 간절했다.


“부채라면 메종 매드니스에서도 취급한답니다. 돌아가면 하나 선물해드릴게요.”


매드해터가 말했다.


보나 마나 엄청나게 비싼 부채일 텐데. 다이나는 침을 삼켰다. 그렇게 비싼 선물은 얼마 전 맞춘 모자로도 충분했다.


“아뇨. 그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그러나 해터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아가씨의 후원자는 접니다. 이 정도는 간단한 일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예…… 감사합니다.”


너무 더워서 더한 논쟁은 하고 싶지 않았던 다이나는 일찍 한 수 접기로 했다. 대신 손부채질로 얄팍하게나마 바람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더위를 해결해주진 못할 말이었군요.”


매드해터는 그렇게 말하더니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모자챙을 부채 삼아 다이나에게 바람을 부쳐주었다.


“아…… 저기, 선생님.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트럼피아의 별장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한결 낫죠? 그가 눈을 곱게 휘며 말했다. 그의 부채질 덕분에 주변 공기가 상당히 시원해졌다. 하아, 속으로 한숨을 내쉰 다이나는 얌전히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었다.

과연 매드해터의 말대로, 파티가 열리는 별장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곡에 있는 별장은 부지가 굉장히 넓었다. 정원을 다 가로지르는 데만 20분은 걸렸다. 별장으로 들어갈수록 나무가 꽤 우거져서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간질인 순간, 다이나는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온 건물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무엇에 말을 잃었는지 눈치챈 매드해터가 말했다.


“별장이 조금 크죠?”

“……조금이 아닌데요.”


다이나가 본 것은 드넓은 미로정원과 고풍스럽고 커다란 건물, 그리고 높은 탑이었다. 일반적인 별장이라기보다 성이라고 불러야 맞지 않을까? 왕족 소유인 것에서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다이나의 심정이야 어쨌든, 곧 마차는 정원을 한 바퀴 돌아 중앙 건물의 정문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매드해터 선생님! 다이나도 오랜만이야!”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자 간단한 셔츠차림의 하츠가 두 사람을 맞아주었다. 하츠가 마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밀자, 다이나는 마차에서 오는 내내 손수건으로 손을 닦아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워후, 얼굴에 땀 봐. 손수건 쓸래?”

“고맙지만 사양할게. 안에서 씻는 게 나을 것 같아.”


네 손수건마저 희생시킬 수는 없지, 다이나가 헛웃음을 지었다.


“매드해터 선생님도 어서 들어오세요! 방은 여기 짐을 가지고 들어가는 하인들이 안내해줄 거예요.”

“이런, 짐 정도는 직접 들 수 있는데…….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역시 신사적이시네요, 선생님!”


늘 그렇듯 하츠는 매드해터에게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전하군요, 그런 표정으로 해터가 다이나를 보고 웃었다.

별장은 직접 들어와서 보니 바깥에서 본 것보다 구성이 복잡했다. 창고나 관리 시설, 오두막같이 사소한 건물을 제외한 주요 건물만 쳐도 동이 다섯 개였다. 그중에서도 주 출입구가 있는 건물은 각 층의 천장이 굉장히 높았고, 그마저도 현관 부분은 가장 위층 복도까지 보이도록 바닥을 만들지 않고 뚫어놓았기 때문에 흡사 성당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대부분 상류층 저택들이 그렇듯 일 층에는 식당과 연회장, 응접실처럼 넓은 공간이, 이 층부터는 침실이 있었다. 다이나와 해터의 방은 삼 층으로, 서로가 바로 옆방이었다. 하인이 일러주기를 그들을 파티에 초대한 하츠도 삼 층의 가까운 방에 머물고 있었다.

방은 남향이었다. 이 저택에서 가장 좋은 방 중 하나라고, 짐을 옮겨준 하인이 말했다. 척 보기에도 한 사람만 쓰기에는 굉장히 넓었고 드레스룸과 욕실까지 딸려있는 방이었다. 기숙사는 말할 것도 없고, 해터의 저택에서 다이나 자신이 쓰는 방보다 넓다.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하얀 커튼을 흔들었다. 눈앞에 우거진 숲과 멀리 보이는 호수 전경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책에서 표현하기를, 여름의 녹음과 푸름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만큼 아름답다 한다. 자신에게는 온통 흑백인 이 광경이 다른 사람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바로 옆방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볼 매드해터는 더더욱.

미지의 영역. 어쩐지 부러웠다.


“아가씨.”


문밖에서 마침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정중하게 노크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잠시만요.”


재빨리 창가에서 멀어진 다이나는 방문을 열었다. 식물의 잎사귀가 양각된 손잡이는 무척 부드럽게 돌아가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문을 열자 매드해터가 단정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방은 어떤가요? 마음에 드나요?”

“물론이죠. 마음에 안 들 수가 없는걸요.”


다이나는 문에서 조금 비켜섰다. 그러나 매드해터는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방을, 그중에서도 열려있는 창가를 잠시 바라보는 것에 그쳤다.


“전경이 좋군요.”

“……네.”


자신의 방과 별로 다르지 않은 풍경일 텐데. 그는 마치 좀 전까지 다이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이나는 조금 착잡한 심경이 되었다.

매드해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늦었지만 점심을 들러 가죠.”


그의 말에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시각을 알고 나자 어쩐지 시장기가 느껴졌다.


“식당은 상시로 열려 있나요?”

“그럼요. 이곳에 초대된 손님들은 제멋대로니까요.”


저희는 덜 제멋대로인 편이죠, 해터가 쿡쿡 웃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쪽 팔을 내밀었다. 다이나가 그의 팔을 잡자, 그는 장갑 낀 반대쪽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었다.




원더메어와 보탈리아에 상시거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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