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생머리가 목덜미의 끝에 닿았다. 제 자신의 머리칼이 닿은 것은 아니었다. 리무스는 자신의 목 끝에 닿아 간지럼을 태우고 있는 이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부드러운 가슴이 자신의 등판에 밀착되어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그렇게까지 붙어 있을 필요가 없잖아, 라고 말한 들 가만히 있으라는 제멋대로의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시리우스는 아까부터 한참동안 리무스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었다. 본인의 머리카락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푸석거리고 윤기 없는 옅은 갈색 빛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올려 묶어보기도 하고, 땋아보기도 하고, 머리위로 빙글빙글 돌려 모양도 만들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자신은 어디 내놓아도 서럽지 않을 외모를 두고 털털하게 돌아다니는 주제에, 그녀는 유독 리무스의 외모며 옷매무새에 말없이 자신의 손길을 쏟아 붓곤 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꼭 단 둘이 있을 때에만 더 심해진다는 일이다. 평소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게 ― 그러니까 외모와는 반비례하게 느껴지는 언행을 비롯한 다수의 품행들 ― 제법 솜씨도 좋아서 그녀가 만족하고 등 뒤에서 떨어질 즈음에 자랑스레 미소 지으며 들이 밀어주는 거울로 힐끗 볼 때마다 리무스 스스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헤어스타일이 머리 위에 얹혀 지곤 했다. 제 자신의 외양에 가져다 붙여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그저 손길에 머리핀 몇 개만으로 꾸민 머리칼이어도 어디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훌륭한 모양새가 하얗기만 한 자신의 얼굴에 조화롭게 꾸며져 있곤 했다. 수분기가 없어 부스스하기만 한 머리칼에 어떻게 해보려고 한들 본인의 손으로는 관리도 쉽지 않아 진작 포기했던 것을 신기하게도 시리우스의 손 안에선 매번 시시각각으로 변하곤 했다. 지금도 그런 셈이었다. 가슴이 닿을 정도로 등 뒤에 달라붙어 열심히 이것저것 꼼지락 거리더니, 한발자국 물러나 등 뒤에서 만족스러운 듯 흠, 하며 눈앞으로 거울을 들이밀고 있었다. 뒷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핏 보이는 머리에 무언가가 꽂혀있었다.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것.

 

“꽃은 어디에서 난거야?”

“그냥, 오다가 보여서.”

“함부로 꺾지 마…….”

“호그와트 지천에 널린 게 꽃이야. 교칙위반도 아닌데 뭘 그래?”

 

그럼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구나. 그렇게 까지만 말하고 리무스는 다시 눈앞의 책에 시선을 두었지만 눈에 잡히지는 않았다. 대신에 훤하게 드러난 뒷덜미 사이로 등 뒤의 시선이 자꾸만 느껴져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시리우스가 가만히 있는 리무스를 붙잡아 이 것 저 것 매만질 때 마다 처음엔 얼떨떨한 마음에 고맙다는 말을 몇 번 건네어 보았지만 시리우스는 그저 별일 아니란 식인 듯 표정도 없이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집중해서 꾸며 놓고는 이런 식으로 몇 십 분이고 리무스의 뒷모습을 감상하곤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자신이 공들여 꼼지락 거린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 치곤 꽤 오랫동안 그러는 통에 그때마다 리무스는 어찌해야 할지 모를 시선을 피해 얼굴을 돌릴 뿐이었다. 목이 간질거렸다. 머리칼을 말끔히 틀어 올린 꼴이었으니 혹여나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 때문에 간지러운 것은 아니었다. 문득 볼이 뜨거워지는 기분에 리무스는 더더욱 얼굴을 숙였다.

 

“뭘 또 새삼 부끄러워하시나, 무니양.”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이러는 이유를 잘 모르겠단 말이야.

속으로만 삼키며 리무스는 한숨을 쉬었다. 시리우스는 곧 콧소리로 무언가를 흥얼거리며 리무스의 머리칼에 얹힌 하얀 꽃잎을 만지작거렸다. 귀 뒤로 머리칼을 넘기기도 하고 때때로 이미 모양이 잡힌 꼬아놓은 머리칼의 어느 부분을 매만지기도 했다. 또 한참을 그러고 나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던 시리우스는 잠시간 아무 미동도 없었다. 이제 다 된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려고 할 때, 별안간 다시 등 뒤에서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이 왈칵 와 닿아 흠칫하고야 말았다. 시리우스가 리무스의 어깨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며 가까이 기댄 것이었다.

 

“뭐하는 거야!”

“향이 좋은 걸.”

 

시리우스는 리무스의 뒤통수에 숫제 코를 묻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묶는 일이 거의 없이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 검은 머리칼이 자신의 목덜미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어깨에 닿았다. 사방팔방을 뛰어다녀도 결코 엉킨 적이 없던 매끄러운 머리칼이 목 언저리에서 흔들리는 것보다도 등 뒤에 닿은 온기와 귓가에 들려오는 숨소리가 더 간지러웠다. 윤기가 흐르는 쭉 뻗은 생머리가 스칠 때 마다 민트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괜스레 부끄럽게 느껴지는 그 감각을 떨쳐 내고자 리무스는 조심조심 바르작거리며 말했다.

 

“그거야 꽃이니까…….”

“꽃 말고.”

 

되돌아온 답변에 리무스는 결국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사준 샴푸 결국은 썼구나? 어쩐지 좀 부들부들하게 느껴진다더니. 좋지? 그거.”

 

그녀는 진심으로 즐거운 듯 웃기까지 했다. 웃을 때마다 가슴이 맞닿은 등 뒤가 느껴졌다. 같은 여자에, 몇 년을 봐 온 사이임에도 그 모든 것이 항상 낯설어 결국은 아무 말도 못해온 지난날들이었다.

 

“바디샴푸도 그렇고 말이야.”

 

어깨와 목 사이에 가깝게 코를 묻은 시리우스가 웃었다. 이제는 거의 끌어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찰싹 달라붙은 그녀는 계속해서 리무스의 머리에 꽂힌 꽃을 매만졌다.

사실 알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매번 이렇게 자신을 꾸미고자 작정하고 올 때마다 늘 이렇게, 무언가를 자신에게 얹어주곤 했다. 처음 머리카락을 매만져 줄 때 상태가 엉망이라며 내어준 샴푸는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엔 자신에겐 이제 필요 없다며 손에 쥐고 온 갈색 벨벳의 리본도, 그저 눈에 보였는데 집어 왔다며 막무가내로 머리에 꽂아주며 만족스러워 했던 화려한 장식의 핀도. 사실은 매번 누군가가 단 한 번도 써 본 흔적이 없는 새것이었음을. 부담스러워 당장에 되돌려 주려고 해도 삼십여 분 이상 공들여 매만진 머리 위에 마지막으로 꼭 얹기에 헝클어뜨려 상심할까봐 감히 곧바로 빼지도 못하고 받아온 것들 이었다.

 

“시리우스.”

“응?”

“매번 말하는 것 같지만 이런 건 네가 더 잘 어울려.”

 

무슨 소리래. 시리우스는 곧바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공들인 조각처럼 매끈한 듯 시원한 인상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던질 때 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곤 했다.

 

“너한테 더 어울리는 거라니까. 난 필요 없어. 버리는 바에 주는 게 좋지.”

 

그것 참 올바른 소비생활이기도 하겠다 싶은데……. 리무스는 한숨을 쉬고는 책을 덮었다.

 

“이런 건 더 예쁜 애들이 해야 어울리지. 나보다 네가―”

“충분히 어울려.”

 

시리우스는 단호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을 잘랐다. 가끔은 냉정하고 실제로는 무례하게 들릴법한 목소리는 억양이 없으면 싸늘하게도 느껴질 법 했건만.

씨익 웃어 보이는 아름다운 미소 뒤편으로 창가의 햇살이 부서져 내려왔다. 짓궂은 미소였다. 호그와트 전교의 남학생들을 손가락만 빨게 하며 다가갈 엄두도 못 내게 만드는 화려하고 당당한 얼굴 사이에 내비치는 웃음이 시선 안에 콱 박힌 듯 했다.

 

“그런데 리무스. 너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네 눈에 내가 예뻐 보이나 보네?”

 

그거야, 그건……! 당황함에 말문이 막혀 리무스는 무어라 반박할 말들을 허무하게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고야 마는 유서 깊은 블랙가의 첫 딸이었던 것에 모두의 관심을 끌었던 것도 모자라서, 호그와트에 입학했던 시절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보였던 수려한 외모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더욱 빛을 발하기에 이제는 호그와트의 마스코트처럼 눈에 띄는 그녀였다. 마치 그 이름처럼. 숱하게 아름다움과 당당함의 찬사를 받아온 그녀가 지내 오면서 당연하다는 듯 들어왔을 법한 ‘예쁘다’는 한마디를, 리무스의 입술로 듣고는 웃어 보이고 있었다.

 

“왠지 기쁜데.”

 

그녀는 더더욱 리무스를 끌어안으며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리무스는 무슨 말을 골라야 할지 몰라 그저 맞닿아온 온기에 간질거리는 기분을 참으며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거짓말 하는 게 아니라…….”

“나도야.”

 

나도 거짓말이 아냐.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가 몸을 일으켜 리무스의 손을 잡아끌었다. 밖으로 나가자 리무스. 꽃 많이 폈더라. 너한테 어울리는 거. 나풀거리는 머리칼이 뺨을 스치며 흔들렸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는 모든 것들은 아름답고 예뻤다. 아주 오래전부터 받아왔던 그 많은 것들을 결코 다시 한 번 더 꺼내어 시리우스의 앞에서 내보인 적은 없었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었는가에 관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시리우스 또한 자신이 건넸던 물건들의 부재에 관해 그 이상을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머리칼의 향기를 맡았을 때 두근거렸던 느낌은 어쩌면 놀라움보다도 그간의 외면했던 일면들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거침없이 내던져주듯 맡겨둔 것들이 빛에 바래 색을 잃을까 겁이 났다. 비단 그 걱정들이 그녀가 내어주는 물건들에 대한 값어치 때문이 아니란 것도, 리무스는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렇게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지도 못하며 이끌려 나간다. 그녀가 이끌어주는 모든 것들이 빛이 나고 향기롭고 아름다워 그 한가운데 박제되어 나갈 수 없는 울타리와도 같았다. 오직 그 한가운데에서만, 그 가운데에서 둘만 남았을 때에야 이렇게 환하게 웃어 보인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태생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익숙하고, 또 어울렸던 것들. 그런 것들이 가득한 그녀만의 공간에서 시리우스는 오직 리무스에게만 예쁘다는 한마디를 흘리고 다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알고파 했던 궁금증은 소화되지 않는 달콤한 애피타이저와도 같았다. 결국은 그녀가 손을 내밀어 자신을 매만질 때 마다, 그 달콤함에 힘겨워 하면서도 뿌리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너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알까.

무엇이 급한지 복도를 내달리는 그녀의 뒤에 붙잡혀 함께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서로 맞잡은 손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길게 쭉 뻗은 손이 상처로 가득한 자신의 마른 손을 꾹 잡고 놓지 않는 것은, 그것은 아마도,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을까.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제 자신에게 혼잣말로도 흘리지 않았던 일상의 생각이 손안의 온기로 옮겨왔다. 문득 뒤돌아선 그녀의 뒤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밭이 보였다. 시리우스가 손을 잡고 이끌며 꽃밭의 한가운데로 리무스를 내던졌다. 거봐, 예쁘네. 하얀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말하는 시리우스를 바라보던 리무스는 아직 놓지 않은 손을 가까이 당겼다. 시리우스가 꽃밭의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리무스와 마주했다. 손바닥 아래에 닿은 꽃잎을 만지작거렸다. 하얀 꽃송이 하나를 조심스레 꺾어 그녀의 귓가에 마주 대어본다. 뭐야, 함부로 꺾지 말라고 나한텐 그래놓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리우스는 그 꽃을 받아 리무스의 머리끝에 또다시 얹었다.

 

“응. 정말 예쁘다.”

“그렇지? 너는 꼭 직접 안보면 안 믿더라.”

 

응. 예뻐. 리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이대로가 좋을지도 몰라. 리무스는 맞붙잡은 시리우스의 손을 보며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바래지 않게, 지금은 이대로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마도 어쩌면 그녀는 그저 이 꽃밭 한가운데에 자신을 두기 위해 아까부터 그렇게나 한참을, 좋아하지도 않는 도서실의 한 구석까지 쫓아와 머리를 매만지고 향기를 맡으며 기다렸을 것이다. 단호하게 끊어서 확정지을 수 있는 답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고개를 숙여 향기를 맡아본다. 사실 향기 같은 것은 나지도 않는 하얀 꽃이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리무스는 꽃밭의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 사이로 시리우스를 올려다보았다. 꽃 사이로 내비치는 웃음이 눈부셨다. 눈을 감았다. 아름답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생각만큼은 하릴없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감정 중에서도 거짓 없는 진실임을. 자꾸만 어딘가를 두드리며 내비치는 모든 것들 또한 이 하나의 진실에 가려지기를. 리무스는 그렇게 바라면서 다시 한 번 이름 모를 꽃에 코를 묻었다.


잡식성 독거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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