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의 설정과 다릅니다.

* 캐릭터 붕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BGM: 바흐-G선상의 아리아

              요한 스트라우스-봄의 왈츠






"잘 좀 해드려. 요새 피곤해보이시더라."


원철의 말에 시목은 이렇게 물었다.


"잘..해준다는 건 어떤 겁니까? "


그 마음이면 되는거라고 원철은 허허 웃으며 넘겼다.


그리고 시목은 검색창에 "연인에게 잘해주는 법"을 써넣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창준은 사무실 책상에 뜬금없이 놓여진 시집을 보고 실무관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실무관은 자신이 두고 간 게 아니라고 했다. 창준은 그 시집을 결국 아침나절 동안 읽고 말았다. 좋은 시들이었고 취향에도 맞았지만 도대체 누가 여기에 이런 걸 올려놨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 다음 날에는 클래식 음악 시디였다. 창준은 자신도 모르는 새 무슨 서부지검에서 선물나눔 행사라도 열리는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렇지만 창준은 시디를 꺼내 음악을 들었다. 바흐였다. 사무실에 잔잔하게 음악이 울려퍼졌다. 동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을 때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이야~아침부터 좋은데요? 차장님."


"무슨 일이야?"


"아, 저기 지난 번에 말씀하신 건 말입니다..."


동재는 가져온 서류를 펼쳐서 창준에게 이것저것 설명했고 업무적인 이야기가 끝날 때 쯤 말했다.


"차장님이 이런 취향이신지는 몰랐네요. 황검사 방에서도 같은 음악이 나오던데 혹시 선물받으신겁니까?"


황검사? 황시목. 창준은 제 연인인 시목이 이런 선물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왜 가장 먼저 생각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머리를 탓했다. 그래서 다 안다는 능글맞은 눈빛을 보내는 동재에게 얼른 나가기나 하라고 손짓했다.





창준은 일하는 연인을 귀찮게 하고 싶진 않았지만 결국 고민하다가 시목을 불렀다. 서부지검에서 둘 사이는 공공연하게 알려져있어서 불러놓고나니 민망스러웠다. 실무관이 시목을 데려오고 저는 나가있겠습니다. 라고 할 때 더 그랬다.


"부르셨습니까 차장님."


"아...그래."


불러놓고나니 뭐라고 해야할지 더 몰랐다. 왜 말도 없이 선물했니. 특별한 날도 아닌데 왠 선물이니.

창준이야말로 가끔 시목에게 아무 이유없이 선물을 하곤 했다. 그냥 어울릴 것 같아서, 예뻐서 샀다고 하면서 건넸다. 그걸 받은 시목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약간의 미소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되는 시목을 창준은 더욱 사랑했다. 창준이 한참동안이나 고민하면서 말을 고르고 있을때 시목이 먼저 말했다.



"제가 선물했습니다."


"뭐?"


"시집이랑 CD요. 제가 차장님 책상에 놓고 갔습니다."


"어..그..고마워. 잘 읽고 잘 들었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갑자기 왠 선물이야?"



"저도 차장님과 취미를 공유해야 할 것 같아서요. 연인이라면 그렇다고 하네요."



연인. 시목의 입으로 듣는 그 단어는 더 설레었다. 시목이 저와의 관계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으니깐. 창준은 항상 제 사랑이 일방적이지는 않나 고민했다. 늘 표정없는 자신의 연인은 거절도 없었지만 표현도 없었다.


창준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시목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창준을 불렀다.


"차장님..?"


"아, 그래. 취미가 이런 쪽인지는 몰랐네. 예술이랑 거리가 먼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저한테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어서.. 차장님이랑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걸로 골랐습니다."


"잘 골랐어. 그래 나랑 같은 거 읽어보니 어땠어?"


"그냥...그랬습니다."


"음악도?"


"네..."


세상 흥미없다는 표정의 시목을 보자 자신에게 맞춰주려 애쓰는 어린 연인이 사랑스러워서 창준은 시목을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다. 시목은 순순히 무릎에 앉았다.


"황검사."


"네."


"황시목."


"네."


"시목아."


"네."


창준은 네 네 대답하는 그 조그만한 입술을 살짝 건드렸다. 대답은 잘해요. 그러곤 살짝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시목이 입을 벌려 제 혀를 따라오려는 것을 막고 창준이 말했다.


"황검사, 업무시간엔 업무해야지."


시목이 약간 부은 얼굴이 되었다. 먼저 입맞춰놓고 뭐냐는 거지? 창준이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이따 저녁 때 저희 집으로 오십시오."


"저녁? 바쁠 것 같은데?"


"바빠도 오십시오."


창준이 웃음끼있는 얼굴로 답하다가 더 놀리다간 제 연인이 토라질것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시목이 만족했다는 듯 인사하곤 방을 나섰다. 시목과 연애를 시작하곤 이런 소소한 기쁨이 있어서 행복한 창준은 다시 돌아온 실무관을 보며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퇴근시간이 지나 약간 길어지는 업무 탓에 창준은 초초했다. 시목이 기다릴텐데. 아까한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면 어쩌나 창준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서류들을 처리했다. 한다고 했지만 꽤 늦어버렸다. 시목의 집무실에도 이미 다 퇴근한건지 문이 잠겨있었다. 창준은 차를 빠르게 달려 시목에게로 갔다.


집에 인기척이 없는 것 같았다. 창준이 다시 몸을 돌려 시목에게 전화를 걸려 할 때 거실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창준은 혹시 도둑이라도 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걸어나갔다. 그리고 창준은 제 눈을 의심했다.


거실에는 촛불이 가득 놓여져있었다. 향초같은 것이었는지 향기도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촛불로 그린 커다란 하트모양이 만들어져있었다. 그리고 시목이 무심한 얼굴 그대로 그 안에서 꽃받침을 하고 웅크린채 앉아있었다.


"조금 늦으셨네요."


"아..업무가 밀려서...근데 이...게 뭐야 황시목?"


"...선물입니다."


황당해하는 창준을 보며 시목은 사진 찍으셔도 됩니다 라고 말했다. 그 말에 어쩐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찰칵찰칵 찍고 있는 자신이 바보같아진 창준이었다. 뭔가..황시목에게 오늘 내내 말리는 것 같은데. 


촬영 다 끝나셨습니까? 시목이 묻더니 창준의 손이 휴대폰을 들고 아래로 내려 간 것을 보고 일어나서 태연히 주변을 정리했다. 그리곤 후후 불어서 촛불을 다 꺼버렸다. 낯뜨거운 와중에도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어 창준은 입에 바람을 가득 넣은 채로 무릎걸음으로 종종 거리는 시목을 바라보았다. 많이도 켜놨는지 끄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촛불을 다 끄자 거실은 어둑해졌다. 창준이 불을 켜려하자 시목이 고개를 젓더니 뚜벅뚜벅 거실 한 켠으로 걸어가 음악을 틀었다.





"...왈츠?"


시목은 창준에게로 다가와 한 손을 맞잡았다. 그리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절이 두려워서였을까.


"같이 추시겠습니까?"



어두운 거실에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달빛만 있었다. 여기에 너랑 나 둘 뿐이구나. 창준은 민망한 느낌이 사라지면서 뭐 어떠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걸 한다고 퇴근하고 하나하나 준비했을 시목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그래 시목아. 니가 하자는 거 다 하자.



"..좋아. 추지 뭐."



느긋하게 손을 맞잡은 채로 창준은 시목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시목도 창준의 등에 손을 올렸다. 둘은 음악에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사실 춤이라기 보다는 포옹에 가까운 어설픈 움직임이었지만 누구도 불만은 없었다. 시목의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창준은 더 품에 시목을 꼭 안고 거실을 빙글빙글 돌았다.


"생각보다 춤을 잘 추십니다."



"이게? 니가 왈츠 추는걸 못봤구나? "



"뭐..못 보긴 했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연인이 준비한 이벤트를 만끽하면서 창준은 행복했다. 달빛이 두 연인을 잔잔히 비추고 있었다.

한참을 노래에 맞춰 돌던 둘은 이내 눈을 맞추고 또 입을 맞췄다.


"시목아..."


"네.."


"고마워. 다."


"아닙니다."


창준은 달빛에 비친 시목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번쩍 안아올렸다.


"그럼 이제 진짜 선물받으러 가볼까?"


시목이 말없이 고개만 푹 숙였다. 부끄럽다는 거겠지. 창준은 오늘따라 가볍게만 느껴지는 시목을 데리고 침대로 향했다.







사랑은 여느때와 같았지만 좀더 부드러운데가 있었다. 창준도 평소보다 시목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움직였다. 시목도 그런 창준을 느낀건지 평소에 하던 체위와 다르게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배를 맞댔다. 부드러워진 만큼 시간은 늘어져서 둘은 꽤나 지칠 때까지 해버렸다.




침대에 추욱 늘어진 시목의 볼을 콕콕 찌르며 창준이 물었다.



"근데 이런 건 어디서 알고 다 준비한거야?"



"3부장님이 차장님한테 더 잘해주라고 하셔서요..."



"뭐? 3부장때문에 한거라고? "



사랑 후에 연인의 입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바로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불유쾌한 것이었다. 창준의 표정이 바로 굳어지자 시목이 창준의 표정을 살폈다.


"화...나셨습니까? "


시목이 초초한 눈빛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화 내려고 해도 그렇게 보는데 어떻게 화내겠니. 황시목.


"다음부턴 애쓰지 않아도 돼. 넌 그냥 황시목인채로가 좋아."



"네."


대답하는 시목의 귀가 어쩐지 붉어졌다. 그 모습도 참 예뻤지만 묘한 질투심이 생긴 창준이 시목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



"3부장이 촛불 켜고 춤추라고 하던?"



"아니요...그건...검색해보고...준비한겁니다."



창준은 그제야 이 얼토당토않은 이벤트들의 근원지를 알 수 있었다. 어디까지 일반적인지 모르는 이 아이는 그냥 써 있는 대로 한 것이겠지. 널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창준은 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더 사랑하는 자신을 느끼며 시목을 더 끌어당겨 안았다.


새벽 어스름이 걷히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햇빛이 창문 틈 사이로 파고들어 다정한 연인을 비추었다.







* 현실이 퍽퍽하니 글이라도 달달하게 쓰고 싶었어요. 전 글과 같은 주제의 창준시목입니다.

* 왈츠부분 아이디어는 산신령님 트윗에서 참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해海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