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근처에 위치한 어느 한적한 마을에는 유명한 괴담이 하나 있었다. 어두운 밤 중에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허공에 떠다니는 푸른 불빛을 마주치게 되는데, 이 불빛을 따라가면 넓게 펼쳐진 화원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화원의 주인은 포악하고 잔인해서, 자신의 화원에 인간이 들어오면 한 치의 용서도 없이 목숨을 빼앗고 화원의 비료로 쓴다고 했다.

이 괴담은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마을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야심한 밤에 함부로 숲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괴담으로 겁을 주곤 했다. 물론 괴담이 아니더라도 숲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숲의 위험함에 대해서 수도 없이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에 굳이 경고를 어기려는 아이들은 없었다.

이제 갓 10살이 된 소리도 숲의 괴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 잠에 들지않고 투정을 부릴 때면 소리의 부모님은 소리를 침대에 잘 눕혀놓고 이 이야기를 해주고는 했다. 그러면 소리는 화원의 주인을 무서워하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고, 부모님의 따뜻한 토닥거림속에서 잠에 빠져들고는 했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도 이제는 빛 바랜 과거의 것들이었다. 1년 전, 약초꾼인 소리의 부모님은 절벽에서 약초를 캐다 갑작스럽게 절벽이 무너지는 바람에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말았다. 9살의 소리는 그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다. 절벽이 크게 무너져 내려 부모님의 시신조차 구해내지 못했기에 소리는 절벽 앞에 묘를 만들고 1년 동안 매일같이 묘를 찾아가 하루를 보내다 해가 질무렵 마을로 돌아오곤 했다.

마을의 어른들은 소리를 걱정하면서 다독이기도, 꾸짖기도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소리가 묘를 찾아간지 반 년 정도 지나자 어른들은 그저 소리가 밥을 굶지 않게 챙겨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머지는 소리 스스로 이겨낼 수 밖에 없었다.

여느 날처럼 소리가 절벽에서 하루를 보내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을의 또 다른 아이인자난이 소리를 보고는 근처까지 다가왔다. 자난은 소리 부모님의 사고 이후에도 꾸준히 소리를챙겨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자난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알아왔어!"

자난은 항상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기에 소리는 그저 자난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자난은 말을 이어갔다.

"어른들이 얘기해주는 화원 괴담 말이야! 사실은 뒷 내용이 다르다는거야!"

자난은 소리의 반응을 끌어내려는 듯이 잠시 여유를 두었다. 소리는 여전히 말없이 자난을 잠시쳐다보고는 마을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화원의 주인은 사실 친절하고 착해서 화원을 찾은 사람에게 소원을 이루어준대. 정말 정말 만나기 힘들지만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준대!"

소리는 자난의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정말로?"

자난은 소리가 관심을 보이자 기뻐하며 대답했다.

"응! 정말로! 내가 촌장님 서재에서 있던 책에서 찾았어!"

소리는 자난에게 다시 물었다.

"… … 어떻게하면 화원으로 갈 수 있대?"

자난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접힌 쪽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음… 책에는... 보름달이 하늘 한 가운데 뜨는 날, 어두운 숲 속에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으면 화원 주인의 불빛이 찾아온다고 써 있었어…"

자난은 쪽지에 적힌 자신의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리는 자난이 말해준 내용을 곱씹었다. 그리고는 다시 마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난은 소리를 따라 걸었다. 그러면서 소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소리는 그런 자난의 시선을 눈치챘다.

"며칠 뒤에 보름달이 뜰거야."

자난은 소리의 말 뜻을 깨달았다. 소리는 보름달이 뜨는 날 숲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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