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을 모티브로 한 드림글입니다.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이 조선 사람들은 모른다. 매번 신령님, 신령님. 상제폐하 상제폐하,

수도 없이 그들을 부르지만 정말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정말 그들이 살고 있는 천계(天界)가 존재한다는 것을.



*


오늘도 천계(天界)는 조용할 날이 없다. 유화가 머무는 곳은 더더욱.


“마마, 이리 자주 인간계로 내려가시면 아니되옵니다. 상제폐하께서 아시는 날엔,”

“뒷감당은 다 내가 하겠다 하지 않았느냐. 소월이 너도 참.”

“마마, 대신 봉황은 아니되...”


어느새 소월의 앞에는 봉황 한 마리만이 있을 뿐, 유화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뒤였다.


“마...마마! 봉황이라니요! 인간들 눈에 봉황이 얼마나 잘 띄는지 모르셔서 그러십니까?”

“나도 다 안다고.”


지난번, 유화가 봉황의 모습을 하고 인간계에 내려갔다가 전설의 새라며 마구 잡으려 드는 탓에 대장군까지 인간계에 내려가 유화를 데려오는 불상사가 있었다.

그래도 난 봉황이 좋은데. 예쁘잖아, 화려하고.


“그래도 난 봉황.”


눈 깜짝할 사이에 유화가 날개를 펴 뛰어내렸다.


“마마! 공주마마!”


소월과 다른 궁녀들은 그저 저 아래 날아가고 있는 봉황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때였다.


“공주는 어디에 계신가.”

“그... 그것이...”


천계의 대장군 진이었다. 대장군이자 유화의 작은 숙부로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그는 궁인들의 머뭇거림을 보고 단박에 알아차렸다.


“또 인간계로 내려가신 것이냐?”


궁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공주께서 내려가는 것을 막았어야지, 마마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작자들이 지금 이게 뭣하는 짓인가. 마마께서 어느 한 곳이라도  다쳐서 돌아오셔 네 놈들이 단단히 혼쭐이 나봐야,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분명 이번에도 내려가시면 경을 칠 것이라 일렀거늘.”


진의 낮은 고함에 궁인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잠시 한숨을 내쉬던 진이 구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시야에 너무나도 확 들어오는 화려한 봉황 한 마리. 진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자네들은 가서 상장군께 내가 마마를 데리러 잠시 인간계로 내려갔다 이르거라. 봉황은 눈에 잘 띄니 정 갈 것이면 참새로 변하여 가라고 누누이 일렀거늘... 나 원.”


말을 마친 진의 몸이 잠시 옅은 안개에 싸이더니 독수리로 변했다. 그러더니 이내 날개를 펼쳐 유화의 뒤를 따라 구름 위를 벗어났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궁인들은 구름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진의 명을 따르기 위해 발걸음을 떼었다.


*


하늘을 날던 유화의 눈에 웅장한 건물들이 들어왔다. 조선의 궁궐이었다.


“오, 이곳이 말로만 듣던 조선의 궐인가.”

이게 얼마만에 맡아보는 인간계 공기야. 신난다!


한껏 신난 유화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은 궐 구경을 해볼,”

“구경은 무슨. 무엇을 구경하겠다는 말이십니까, 공주마마.”


위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진이었다.


“악! 숙부님.. 여기까진 어인 일로... 하..하하..”

“어인 일은요. 마마께서 인간계에 또다시 걸음을 하셨다기에 신이 이렇게 모시러 온 것이지요.”


자신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써가며 마마라고 부르는 진에 유화는 정말 무서워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수..숙부님...”

“이번에 큰 형님한테 걸리면 그냥 아주 네 처소 밖으로도 못 나올게다. 들키기 전에 어서 올라가자. 작은 형님께만 알렸으니 별 탈은 없을 것이다.”

“백부님도 아십니까? 진짜 망했네.”

“작은 형님이 어디 유화 너를 그리 무섭게 혼내실 분이시더냐. 어서 올라가자.”

“...싫습니다.”

나는 아직 궐 구경을 못했단 말야!!!


말을 마친 유화가 속도를 높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주마마!! 야!! 천유화!!!”


진도 전속력으로 속도를 높여 유화의 뒤를 바짝 쫓았지만 일반 조류인 독수리가 봉황의 뒤를 쫓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당장 봉황으로 변할 수도 없는 법. 일평생 한 마리도 보기 힘든 봉황이 이리 두 마리 씩이나 나타나 버리면 백성들이 동요할 것이 뻔했다. 진이 이를 악물고 유화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대군께서 불법적으로 거느리고 계신 사병의 숫자와 명단을 빠짐없이 알려주십시오.”


“좌상은 어린 상감의 교육에나 신경 쓸 일이지, 어찌 이런 일로 인력을 부리시나.”


이른 오후, 뒷산에서 제 사병들과 사냥을 즐기던 수양에게 김종서의 수하들이 다가왔다. 떼거지로 몰려오는 말을 탄 사내들에 수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병들은, 모두 이들 뿐이오?”

“허면, 호랑이 새끼 한 마리 잡는데 이 셋이면 족하지.”


수양이 제 옆 병사들을 돌아보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호랑이 새끼를 은연 중 누구에 비교한 것인지 눈치를 챈 것인지, 사내가 호통을 친다. 


“감히, 대군 말이 심하시오!”

“감히, 라...”


수양이 활을 들어올렸다. 입은 웃고 있으나 매서운 눈. 이리의 상이었다. 숨을 참고, 활 시위를 당겼다 놓는다. 화살이 활줄을 떠났다. 화살은 순식간에 날아가 사내의 갓끈을 끊어 놓았다. 얼굴을 스쳐 지나, 정확히 갓끈 만을 끊어놓은 수양의 화살. 사내도 수양이 자신을 살려준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대, 대군.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이오."

"무례. 지금 무례라 하였는가. 이리 몰려와 횡포를 놓는 것이 더 무례하다는 사실을 자네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똑똑한 놈인 줄 알았더니, 아니로구나. 하하."


호탕하게 웃는 수양. 정확히 입만, 입꼬리만 끌어올려 웃고 있었기에 사내를 비롯한 김종서의 수하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때,


"봉황이다, 봉황이 나타났다!"


수양의 쪽인지, 김종서의 수하들 쪽인지 알수 없는 외침이 터져 나왔고, 모두들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 셋이 백년을 살아도 한 번을 보기 힘들다는 전설의 새, 봉황이 나타난 것이다. 수양도 잠시 활을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봉황과, 그 뒤를 쫓는 독수리.


"이런, 이런. 봉황이 곧 잡히겠구나. 안 되지."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저은 수양이 활을 다시 들었다. 아까의 사내의 시선이 수양의 놓치지 않았다. 또다시 저를 쏠까, 두려움에 떨며 수양을 바라보던 그때,




 활시위가 수양의 손을 떠났다.



*


유화의 날개에 점점 힘이 빠져왔다. 아무리 봉황이라 할지라도 진의 체력을 이기기엔 무리였다. 그때, 유화의 눈에 진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보였다.

저게 뭐...  화살?

순간 유화가 자동적으로 방향을 틀어 진에게로 몸을 날렸다.


“유화야, 공주야!”


역시 전설의 새라는 수식어답게 화살보다 먼저 날아가 진 대신 화살에 맞았다. 서서히 유화의 눈이 감겨왔다. 공중에서 두어번을 더 퍼덕이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며 유화는 원래의 제 모습을 되찾았다.



*



“어디보자-.”


활시위를 놓은 수양이 가만히 하늘을 응시했다.


“...허.”


예상과는 달리 화살에 맞은 것이 독수리가 아니라 봉황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잠시 당황하는 듯 싶더니 이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봉황이 떨어지는 곳으로 말에 박차를 가해 팔을 벌렸다. 잠시후, 툭-. 하고 웬 여인이 수양의 품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제 품안에 있는 것이 봉황이 아니라 계집이라는 것을 깨달은 수양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어찌 된 일 인가. 봉황을 쏘아 떨어지는 것 까지 보았는데, 정작 지금 제 품에 있는 것은 봉황이 아니라 계집이라니. 김종서의 부하들이 수양을 향해 다가왔다. 아직 품에 있는 것이 봉황이 아닌 계집이라는 것을 보지는 못한 터. 자신을 끈질기게 쫓는 김종서의 수하들의 눈빛을 무시하고 수양이 다시 제 무리로 돌아간다. 품에 안겨있는 유화를 보고 수양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 재빨리 천을 찢어내 화살에 맞은 상처를 봉합한 후 수양이 말을 돌렸다.


"너는 가서 의원을 부르거라. 오늘은 이만 하면 되었다."

"예. 대군."

"김종서에게 뭐라 일러바칠 지 모르니, 주시하고. 허튼 소리가 새어나갔다가는, 뭐. 잘 알고 있겠지."

"예. 대군."


가볍게 목례를 한 수양의 수하가 물러갔다. 한손으로는 유화를 안고, 다른손으로는 고삐를 잡은 수양이 말에 박차를 가해 제 집으로 돌아갔다. 품 안에서 헐떡이는 유화. 수양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독수리를 쏘았는데 맞은 것은 봉황, 떨어진 것은 계집이라.



"재미있겠구나."



이정재 2.5D위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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