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세계관’―조금 다른 소스들을 첨가해 저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 다소 자극적인 소재인 만큼 '성인용'으로 설정되는 횟수 또한 잦을 예정입니다.

*글 분위기 특성상 직접적인 단어 쓰임이 많으니 주의 바랍니다.

*시간 제한없이 자유롭게 연재되는 작품입니다.

*게시된 링크의 노래와 함께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좋아요’와 응원의 ‘댓글’은 작가의 힘을 북돋아 줍니다. 하트 수 극심하게 저조할 시 멤버십 운영으로 넘어갑니다.


















[슙국] 형제라는 이름 아래


W. 회고록










 윤희와 이환은 주말에만 잠깐 집을 왔다 다시 일을 하러 나가거나―여기서 본사까지는 자가용 차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이환은 그마저도 멀다며 바로 옆의 펜트하우스에 짐을 가져가 생활하곤 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보통의 저택이었음 벌써 팔아버리고 더 가까운 데로 이사를 갔을 테지만, 앞서 설명했다시피 이 집은 윤기와 정국의 외할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주시고 간 선물이었기에 함부로 매각할 수 없어 내린 그의 합리적인 결정이었다―출장 혹은 공연 때문에 외국으로 떠나는 날이 빈번했다.

 이번 주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국의 말을 빌려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 이환은 윤희에게 부족함 없는 외조를 해야 한다며 함께 유럽으로 떠나 버렸다. 무려 오스트리아 빈에서 진행되는 독주회였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윤희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제 아비인 회장에게 변명 아닌 변명과 설득을 통해 따낸 기회이니, 지금쯤 보란듯이 VIP석에 앉아 그 누구보다 제 아내를 응원하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나 금슬 좋은 부부가, 왜 아이를 입양할 수밖에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 시기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희는 오메가였지만 아이를 임신하기가 힘든, 거의 불임인 몸과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을 수 없단 가슴 아픈 현실에 나날이 시들어 가던 여인이 아이를 위해 덕을 쌓으라는 주지 스님의 말씀을 따라 보호 시설을 찾아 열심히 봉사를 다니던 때였다.

 그곳에서, 별안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신의 장난인지 하필 아이들이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있던 시각에 말이다. 봉사자들은 행여나 제 몸이 잘못될까 주저하면서도 아이들을 걱정하며 몸을 날렸다. 윤희라고 다르지 않았지만,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바로 정신을 잃어 그녀의 기억은 중간 지점만 토막 난 채가 됐다.

 이어진 소방대원의 부축으로 간신히 눈을 뜰 수는 있었다. 정신이 점멸하며 차차 꺼지던 순간, 꽤 어려 보이는 학생이 제 셔츠 자락에 물을 묻혀 코를 막은 다음 뒷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안 된다고, 네가 들어갈 곳이 아니라고 손을 뻗어 말리려 했다. 정신은 그때 또 한 번 까무룩 끊어졌다.

 꿈이라고 믿고 싶은 그날의 사건은 몇 차례에 걸쳐 뉴스에 보도되었다. 소방대원들과 사람들이 불을 끄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건물 안에 남겨진 아이들을 모두 구하지는 못했다.

 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건물 벽이 죄다 시커멓게 칠갑되어 황폐하고도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그 테두리 하나하나 멀리서 보면 여러 악마의 형상을 띠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사망자가 여섯, 부상자가 열씩이나 되는 큰 사건이자 화재였다. 밤낮으로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건물 앞에서 땅을 치고 울며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불렀다. 그 모습은 TV 앞에 앉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시청자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제 막 두 살배기가 된, 정말로 작은 아이가 마지막으로 구출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사고를 TV로만 목격한 사람들은 하늘이 도왔다며 입버릇처럼 한마디씩 했는데 그럴 때마다 윤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으름장 놓기 바빴다. 아이를 살린 것은 그녀의 정신이 흐릿해질 때쯤 보았던 학생이 분명했으니까.

 운명도, 우연도 아니었다. 운명이 이토록 잔인한 거라면 그딴 건 세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뒷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그렇게 작은 생명이 소리 높여 살려달라고 우는데 제가 어떻게 못 본 척할 수 있겠어요.’


 아직 어린 데도 불구하고 똑 부러지게 인터뷰에 응하던 학생에게 기자가 또 한 번 물었다. 본인 또한 이렇게 화상을 입었는데 불길 속으로 뛰어든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학생이 흔들림 없는 곧은 목소리로 다시 답했다.


 ‘다칠 걸 알면서도 저는 또 불길 속으로 뛰어들 거예요. 왜냐하면 제 꿈은… 간호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학생의 인터뷰와 함께 후원이 절실하다는 모금 방송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다친 아이들은 국립병원으로 이송되어 다 나을 때까지 치료를 받게 했고, 사망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아이들은 가까운 납골당에 무사 안치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도왔다. 그리고 이환과 윤희 역시 건물의 잔해를 치우는 데에 필요한 재정적인 지원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그 두 살배기 어린아이를 마주한 건 윤희가 병원에서 깨어난 다음이었다. 아이의 어깨 뒤로 쓰린 화상 자국이 남았지만, 어쨌든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진 셈이었다. 윤희는 이환의 어깨에 기대어 아이의 야들한 손가락을 살짝 쥐어 보았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를,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름 모를 아이에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쓰였다. 이런 걸, 모성애라고 하는구나.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내가 뒷문을 몰래 들어가던 아이를 어떻게든 막았다면, 너는 이렇게 분내 나는 몸이 되어 고소한 이유식도, 따뜻한 사람의 품도 맛보지 못했겠지.

 한참을 앞에 서서 아이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던 윤희는 아주 오래전에 결정한 사람처럼 이환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 우리가 키워요.”





 수업은 거의 5시 전에 끝나곤 했는데 이게 참 애매한 시간이기는 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대라 그런지 옆으로 지나쳐 간 부유한 집 자식이 배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오늘 저녁 메뉴는 꼭 랍스터와 캐비아여야 한다고 눈앞의 운전기사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것이다.

 새끼가, 지 아버지뻘 되는 기사님한테.

 이 학교에는 저렇게 영 밥맛인 족속들만 몰려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을 아끼게 되었고, 시선을 틀어 제가 할 수 있는 최우선의 일부터 찾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게, 썩은 웅덩이에서 서식하는 더러운 물고기들과 같이 헤엄칠 수는 없으니까. 저딴 예의라고는 밥 말아먹은 녀석들도 그리고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저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윤기가 하루빨리 학교를 졸업해 버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이 좁은 땅덩어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곱씹고 있을 때였다. 학교 정문 앞에 서 있는데 저의 등굣길과 하굣길을 모두 책임지고 있는 기사님께 생각지도 못한 문자가 날아왔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타이어에 바람이 나가는 바람에…. 오늘 하루만 정국 도련님과 함께 들어가시길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멀쩡하던 타이어가 갑자기? 다른 차를 타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걸 같이 타고 들어가야 할 상대가 녀석인 것은 심히 불편하고 거북했다. 아직 생각을 완벽하게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아무것도 몰랐을 때와 뭐라도 끄집어 기억해 낸 지금과는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부터가 다르지 않나.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서 전정국과 마주친다면 다짜고짜 얼굴에 주먹부터 내리꽂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러트 때문에 반 이상 정신 나간 사람도 아닌 것의 방에 들어올 생각을 했느냐고 멱살을 잡겠지. 그럼 어디로 튈 줄 모를 그 입에서는 어떤 말이 떨어질까. 평소처럼 호기심 운운하며 사람을 있는 대로 비아냥거릴까. 그것도 아니라면…….

 피해자는 나라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근친상간이라 말할 수 있겠냐, 오히려 사람을 당혹케 만들까.

 제멋대로인 녀석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야 많다. 저의 불행과 결점을 가지고 전정국이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된 모든 꼬투리는 결국 스스로가 쥐여 준 것과 다름없었다.

 기어코, 제 목에 길고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밀도록 먼저 부추긴 셈이다.


 “그렇게 가만 서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으면 본인이 꽤 멋있어 보이는 줄 아나 봐.”


 차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겠다. 활짝 열린 창문 틈, 녀석이 얼굴을 드러내며 손을 펼쳐 보였다. 이번 컨셉도 우애 넘치는 형제, 뭐 이런 건가?

 윤기는 무시로 일관하며 반대편 좌석에 몸을 밀어 넣었다. 막상 마주 대하고 보니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불쾌감도 뭣도 안 떠오른다. 러트 기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아예 사라진 양했다. 그저 시간이 무아지경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연신 들었다. 그래서 잠이라도 잘까 싶어 눈을 잠시 감았을 뿐이었다. 등받이에 편히 기댄 사람을 가만 놔둘 생각이 없는지 정국이 앞뒤 잘라먹고 결론만 지어 말했다.


 “내 방으로 와.”


 언제 봐도 참 답답한 새끼.


 “말 좀 길게 늘이는 법부터 배우지 그래.”

 “공부, 하자고 오늘부터. 내가 니 방으로 갈 순 없잖아. 그 독한 냄새를 얼마나 더 맡으라고.”


 윤기는 처음부터 저 말을 믿지 않았다. 어째 믿을 수가 있나. 그것도 사람 약점 쥐고 흔드는 걸 일삼는 녀석을.


 “너, 내가 어디까지 봐 줘야 할까.”

 “이번엔 내가 묻고 싶은데, 무슨 소리야.”

 “허구한 날 좆질이나 하고 다니기 바빴던 새끼가 왜 갑자기 공부에 눈을 돌리냐, 이 소리였는데 방금. 설명이 더 필요한가.”


 필터 없이 드러난 직설적인 언사에 정국이 비웃음을 삼켰다. 내 생각이 짧았네. 가끔 사람답게 욱하는 형 성질머리를 아주 잠깐 잊어버렸어. 눈 돌아가면 세상 제일 고약한 성격이 되는 것 또한.

 첫 발현, 그리고 두세 달을 간격으로 이어진 러트 기간마다 윤기는 그 흉포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정국에게 버젓이 드러냈었다. 아무렴,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마당에 사람의 눈을 피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 그러니 우리가 툭하면 부딪쳤을 수밖에.


 “오메가나 따먹고 다니기에는 일상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말이야. 이제 눈에 들어오는 애도 없고, 학생 본분에 임하는 척하면서 너랑 사이좋게 지내면… 아버지가 콩고물이라도 떨궈 줄지 또 모르잖아?”


 윤기가 정국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나 답 없는 새끼가 맞았다.


 “우리 아버지도 참 그래. 이 빡센 곳에서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하는 아들은 본체만체하기 일쑤잖아. 니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다리 밑에서 주워왔네 어쩌네 하면서 입방정이나 떨 텐데. 이쯤 됐음 나는 뭐 강원도 산자락에 있는 별장이라도 하나 손에 쥐여 줄지 알았지. 사장이란 직함에다 가지고 있는 주식이 얼만데 설마 그 정도도 못 해줄까.”


 윤기가 아까와 같이 눈을 깊게 감았다. ‘그만하지.’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사람을 한껏 약 올리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굴었다. 아니, 꼭 제 멱살을 먼저 잡아 주길 바라듯.

 형제의 난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는 그 숨 막히는 신경전에 앞에서 열심히 운전하고 있던 기사만 죽어날 지경이다. 도련님… 저기 진정을. 하고 말릴 주제도 못 되는 건 당연지사. 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다 흘렀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던 윤기가 고개를 틀어 창문을 반쯤 내렸다. 그 틈새를 통해 바깥의 바람이 소음과 함께 타고 들어왔다. 귓전을 자극하는 게, 녀석의 목소리처럼 어째 영 거슬린다.


 “한 번만 말할 테니 제대로 들어.”


 윤기의 시선은 여전히 창문 밖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 그 말 같지도 않은 얘기, 귀담아듣는 데에 신물이 날 지경이거든.”

 “그래서.”

 “시답잖은 소린 그쯤 해두고 눈치껏 알아서 형 소리 붙여.”

 “왜 이래, 내가 누구 눈치 보고 뭐 그런 성격은 아니지.”


 ‘하―’ 하고 터지는 작은 실소에 윤기의 고개가 정국을 향해 돌아갔다.


 “그래야 할 거야 내 앞에선.”


 목을 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낮은 음성에 정국이 자세를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애써 시선을 다른 곳에 두려 했지만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저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키게 했다. 아침에 분명 억제제를 먹었을 텐데, 몸을 섞었을 때 느꼈던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무겁디 무거운 향이 차 안을 날카롭게 두른 기분이 들었다.

 …씨발,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짓은 여기서 그만둬야 하나.


 “잘 생각해 둬.”


 정국은 쥐어뜯기다 못해 잔뜩 헤집어진 제 자존심이 설자리가 아예 사라질 것만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이가 제 발아래에 있다는 듯, 고고해 빠진 얼음 같은 저 얼굴이 단 몇 초 만에 사람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고 있었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망상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본인 또한 알파라고 하나 제가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의 앞에서 조금씩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 망상인지도 현실인지도 모를 것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날 방에 먼저 들어간 것도, 입술을 먼저 비빈 것도 모두 제가 맞았다. 그런데 하나하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을 잔뜩 어지럽히는 극우성 알파의 기분 나쁜 퀴퀴한 향만 코 가에 맴돌 뿐.

 혹시라도 생각을 들킬까 싶어 정국은 윤기를 피해 반대편으로 고갤 돌렸다. 보기 싫어 피한 얼굴이었는데 창문 위로 옅은 옆모습이 새겨진다. 그걸 모른 척하는 게, 이상하리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정국은 더 망설이지 않고 창문을 아래로 내려 버렸다.









 눈앞의 녀석을 마주한 상태로 최대한 마음을 비우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기출문제집 한 권과 교과서, 그리고 해설집까지 모두 챙겨온 윤기의 앞에 앉은 정국이 기함하며 물었다. ‘미친, 그걸 오늘 하루 안에 다 끝내겠다고?’

 쥐고 있던 교과서로 둥그런 머리통을 후려치려다가 한 번 더 참았다. 윤기는 자신이 지금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슬슬 머리가 아파지는 중이었다. 제 어머니 윤희의 부탁이라곤 하나, 이 인내심이 어디까지 갈 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녀석에게 친숙한 교과서를 펼쳐 보여 주며 공식이든 뭐든 차근차근 설명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일 자신 없는 과목은.’, ‘국어, 수학.’, ‘…왜 그게 끝인데.’, ‘나머지는 암기과목이니까. 내가 이해력이 좀 딸릴 뿐이지 암기력 하나는 자신 있거든. 국어는 씨발 거의 뭐 음절마다 쪼개놓고 내포하는 의미가 뭐냐고 자꾸….’ 거기까지 줄줄 말하던 정국이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성깔 더러운 극우성 알파가 미간 사이를 한껏 좁히며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눈빛 한 번 더 상대했다가 먹은 것도 없이 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윤기가 한숨과 함께 국어책부터 펴들었다. 끽해야 작년의 일이니 중간고사 범위 정도는 대충 기억하고 있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감으로 쪽수를 찾는데 모퉁이 사이에 형광펜으로 범위가 큼직하게 표시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곧장 시선이 앞으로 돌아갔다. 교과서의 주인은 한 손으론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현란하게 펜을 돌리며 보란듯이 딴짓 중이었다.

 ‘니가 했어?’, ‘…뭘.’, ‘중간고사 범위,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표시한 거.’, ‘…그게 어쨌다고. 시험 범위를 알아야 뭘 물어볼 거 아냐.’, ‘그래, 의외여서.’

 정신 사납도록 손등 옆구리에서 돌려지던 펜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책상 위로 떨어졌다. 두 사람의 눈이 또다시 마주쳤다. 시선을 먼저 피한 것은 윤기보다 한 살 더 어린 정국이었다.


 “이런 시는 내용과 시어의 뜻만 이해하면 쉬워.”


 그래, 니 잘났다.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꾸욱 눌러 참으며 정국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 보고 앉은 탓에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윤기의 몸이 자꾸만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의 펜은 ‘서경별곡’이라는 시 제목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윤기가 쉽게 풀어 설명하기 위해 다시 입을 떼려 할 때였다. 가만 듣던 정국이 고까운 말을 뱉었다.


 “서경(西京)이 아즐가 서경이 셔울히마르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어쩌라는 거야 이게 시라고? 하, 뭐가 마르고 렁셩, 렁셩? 이건 또 뭔데. 사람 이름? 하여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옛날 글들은.”


 방석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건만 정국은 인내심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주 대환장 파티가 따로 없네. 이래서 내가 국어를 싫어한다니까.’

 윤기가 앞으로 기울어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본인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더 사람 환장하게 하는 걸 정말 모르는 건지.

 ‘하나하나 다 따지다가 해 진다. 그냥 상황만 대충 파악하라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데. 뭐라는지 바로 알아먹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있는 중이잖아. 니가 방금 지껄인 건 악기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부분이고. 서경별곡이 고려 가요라서 그래. 하아… 그냥 표로 정리해 줄 테니까 무조건 외워. 이해력 딸리는 너 같은 놈한텐 아무래도 그 편이 빠르겠다.’

 윤기가 요점만 정리해서 표를 그리는 동안 정국은 그 시를 유심히 읽고 또 읽었다. 암만 이해해보려고 해도 제 눈에 들어오는 건 ‘대동강’이라는 익숙한 단어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대동강 건너로 떠나는 건가.’, ‘그래.’ 윤기가 감흥 없이 기계처럼 대답했다. ‘일이 생겨서? 아니면 상대한테 질려서?’, ‘거기까진 잘 모르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떠나는 거겠지.’ 꼬치꼬치 묻던 목소리가 여기서 잠깐 뚝 끊겼다.





 “한 번도 누가 날 두고 떠난 적이 없어서. 그런 헤어짐 따윌 잘 모르겠으면, 어떻게 이해해야 돼.”


 표를 그리던 하얀 손이 그대로 정지했다. 바로 돌아온 질문이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라, 윤기는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녀석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니 낯선 느낌부터 섰다. 아예 실현 불가능한 일도 아닌데.

 미동도 없는 눈꺼풀, 곧게 떨어지는 높은 콧대에 머물렀던 눈길을 급하게 거두었다. 녀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니 그날의 충격적인 기억이 다시금 떠올려질 것만 같았다.


 “너, 날 싫어하지.”

 “…….”


 바라본 얼굴에서 당황스러움의 기운이 역력히 드러났다. 정곡이라도 찔린 건지, 이런 말을 하리라곤 예상을 못 했다는 건지. 역시나 종잡기 어려운 녀석이다.


 “곧 그렇게 될 테니 지금은 무조건 외워. 이해하는 건 나중 가서 하고.”


 윤기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곧 그렇게 될 거란 저 말을 어디서부터 해석해야 할지 정국은 조금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슨 소린데.’ 그래서 저도 모르게 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많아졌다. 윤기가 말한 문장 속의 숨은 뜻을 이 자리서 꼭 들어야 두 발 뻗고 편히 잠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졸업하자마자 바로 이 집을 나갈 생각이거든.”

 “…….”

 “왜, 니가 제일 바라던 바 아니었나.”


 정국이 거슬린다는 듯이 고개를 한 쪽으로 꺾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데. 눈앞의 ‘형’이라는 인간은 꼭, 제가 오래전부터 그러길 바란 사람처럼 꾸며 말을 하고 있었다.

 윤기는 곧바로 시선을 내려 표 그리던 것을 마저 이었다. ‘뭐… 이 시에 나를 빗댄다는 것 자체가 웃기겠지만.’

 확실히, 웃기는 얘기였다. 시 속에서 화자가 붙잡으려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정국에게 있어 윤기는 그저 한집에서 같이 사는 무늬만 ‘형’인 이일뿐이며 들쑤실 감정이라고 해 봐야 종류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애정 따위의 달큼한 단어가 어울릴 일은 더욱이 없었고.

 갑자기 창문을 두드리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의식에 돌아간 고개 때문에 정국은 그만 말할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젠장, 오늘 일기 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었나.

 나는 방금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 어떻게 알았냐는 식으로 빈정거렸을까. 너 때문에 껄끄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하루빨리 내 눈앞에서 꺼져줬으면 좋겠다고?

 좋은 사이라 할 것도 없는데 갑자기 서먹한 분위기가 되었다. 윤기의 입은 거기서 더 열리지 않았다. 간간이 시에 대한 설명을 얼마간 덧붙여 주고, 해설집을 들이밀며 이거저거 외우라는 말만 몇 번 내뱉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 다음으로 문이 닫히고 나서야 정국은 마음 편히 숨을 들이켤 수 있었다.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져 한바탕 쏟아진 것은 조금 후에 일어난 일이다.

 ‘하하….’ 입술 사이서 어색한 웃음이 샜다. 말도 안 된다는 표현이 앞에 붙는, 의미 모를 울적한 마음이 사무쳤다.





 병원을 방문하는 것은 거의 한 달 반 만이었다. 김 박사가 일러준 대로 억제제는 이제 3일 치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에 윤기로서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여름도 제대로 된 가을도 아닌 날씨였다. 미적지근한 바람을 뚫고 건물 안에 들어서니 운이 좋게도 김 박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는 늘 사람이 많았다. 아직 삼십 중후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박사 소리를 듣는 것이 그 첫째, 그의 재능을 동경하여 따르는 이가 많은 것이 둘째 번의 이유였다.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뛰어난 유전자와 후천적으로 따라 주는 명석한 두뇌와 재력까지. 게다가 재능만큼 성품 좋기로 유명한 의사라 유독 더 그런 듯했다.

 박사 또한 알파였기에 풍기는 기운 같은 것은 영 별로였으나, 사람으로선 괜찮다며 어느새 인정하는 수순까지 이르게 됐다. 극우성 알파로 발현한 뒤로부터 질리도록 본 얼굴이니 솔직히 이제는 가까운 삼촌처럼 느껴졌으니까.

 익숙해진다는 건, 이래서 거추장스럽다.


 “환자가 잡아 놓은 예약 시간에, 본분까지 다 잊으시고. 이렇게 밖에 나와 있어도 되는 겁니까?”


 박사의 앞으로 윤기의 발이 멈춰 섰다. 레지던트들과 하하 호호 잡담을 나누며 웃고 있는 꼴을 보니 영 못마땅한 마음이 일어 부러 쏘아대는 말을 했다. 남들은 모를 둘만 아는 반가움의 인사 표시였다.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에 앉아 있어 그런지 안 그래도 매끈한 얼굴이 더 피어 보이는 듯했다. 윤기가 레지던트들을 향해 고갯짓으로 인사했다. 그들이 눈으로 훑는다. 맡아지는 페로몬이 거의 없어 베타인지, 알파인지 고민하는 흔적이 눈동자에 서려 있는 모습이었다. 남들이야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인 탐색이 될 테지만, 윤기는 거기서 불쾌함을 느꼈다.

 부채꼴 모양으로 빙 둘러진 사람들 중, 어떤 이가 알파며 베타이고 오메가인지 파악하는 것은 페로몬을 맡지 않는 이상 정확히 가려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통산해서 나온 수치는 값에 불과할 뿐, 백 퍼센트 믿을 것이 못 되니까. 키가 큰 오메가나 베타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이렇듯 보이는 겉모습만으로는 성을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주입시키고 또 반복한다. 페로몬을 맡지 못하는 나는 이곳에서 그저 나약한 환자일 뿐이라고.

 병원은, 자신이 취약점이라 생각하는 구렁텅이에 빠지기 좋은 곳이 틀림없다.


 “진료 시간을 아예 통째로 빼먹으셨던 환자분보다야… 제 죄가 더 가벼울 것 같은데, 하하.”


 ‘김남준’이라고 조그맣게 수놓인 의사 가운이 가볍게 펄럭였다. 창가에 기대 있던 박사가 몸을 일으킨다. 이만 가 보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흰옷차림의 사람들이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저쪽으로 사라졌다.


 “햇빛도 좋은데 같이 좀 걸을래?”


 남준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바깥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뇨, 약만 받고 갈 겁니다. 처방전이나 얼른 적어 주시죠.”

 “안 지가 몇 년인데, 넌 어떻게 만날 때마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구냐. 우리가 남이야?”

 “네, 남인데요 선생님.”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아무리 저라도 피는 납니다. 이만 올라가시죠.”


 고갯짓을 하며 먼저 다리를 뻗은 윤기의 뒤에서 남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설핏 웃었다. 한마디도 안 지는 걸 보니 딱히 큰일이 있어 뵈는 것 같진 않다. ‘거기 환자 분? 같이 좀 갑시다, 예?’ 황급히 가운을 걸치며 이미 저쪽까지 걸어간 윤기에게 남준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단추까지 깔끔하게 잠그니 제법 의사의 모습으로 보이긴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서울한일병원 생리의학과 ‘김 남준’이라고 적힌 명패 뒤, 일회용 커피 여러 잔과 의학 서적들이 어질러져 있는 게 정말 의사란 작자의 책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윤기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으니까. 진찰용 의자에 앉아 충격받은 얼굴로 그 아랫것들을 응시하자 남준이 급하게 책상 정리를 하며 멋쩍게 웃는다.


 “하하하, 아니 이게 왜 여기에….”


 박사라고 불리는 이 인간은 제 앞에서만 이렇게 맹한 모습을 곧잘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이 왜 저런 불필요한 것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싶었다. ‘나중에 치우시고 제발 가만히 좀 계세요.’ 윤기의 말에 남준이 해맑게 답했다. ‘그래, 그럼 그럴까?’


 “약은 잘 듣고?”


 그럼요, 하루에 복용하는 알약 개수만 몇 갠데. 윤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준은 컴퓨터 화면을 응시한 채 윤기의 기록 파일을 열어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 조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어땠어. 다른 증상은 없었나? 편두통이 심하다거나 뭘 먹지도 않았는데 구역질이 치민다거나….”

 “…러트가 끝난 지 한 달쯤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런데?”

 “며칠 전 다시… 그 기간이 도졌었습니다. 혹시 약의 개수를 늘렸기 때문일까요.”


 남준의 눈매가 묘하게 가늘어졌다 펴졌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할 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그럴 리가. 치사량 넘게 약을 복용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네 장기가 망가지는 거지, 러트 기간이 앞당겨지는 부작용 같은 건 안 생겨. 여태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잖아.”

 “…지금 앞담을.”

 “이 정도로 상처 안 받으면서 뭘 새삼스레. 또 다른 건?”


 다른 거라…….

 자신의 병에 대해 잘 안다는 명분으로 어렸을 때부터 이말 저말 다 턴 사이라지만, 숨기고 싶은 것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면 저 역시 사람인지라 속 불편한 기분이 된다. 만일 여기서 대답하지 않을 시 이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고, 또 다음으로 연장될 것이다.

 아랫입술을 깨문 채 바닥만 내려 보고 있던 윤기가 이내 모든 걸 포기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러트 기간엔 보통… 기억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거든요. 남들은 드문드문 생각난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저는 약을 워낙에 많이 복용하니까. 그 부작용 때문인지 그날 있었던 일들이 또렷하게 떠올리기가 늘 힘들었는데.”


 윤기는 최대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남들에게는 결코, 말하지 못할 것들이었다. 거짓 한 점 없는 내용을 입에 담는 행동 자체가 은연중 긴장이 되었나. 방금 막 마른침을 삼킨 줄도 몰랐다. 몸의 열을 다 빼앗기는 기분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이번엔 기억이….”

 “났다고?”


 짐짓 진지한 얼굴이 된 담당의가 자판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거두었다. 걱정될 정도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윤기에게서 조금도 본 적 없는 두려움의 감정이 엿보인 순간도 그때였다.

 그 이유를 어떻게든 알아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부러 시선을 돌린 채 윤기에게 물었다.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럴 때 환자의 눈을 올곧게 쳐다보는 행동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억이 난 것도 모자라 제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환자는 눈앞에서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보충 설명이 충분하지도 않고 완벽한 문장을 구사한 것도 아니었지만 윤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남준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저 자신은 절대로 할 수 없다 말하던 짐승 같은 짓을, 기어코 저질러 버린 걸까.

 그만 말하라며 손을 들어 제지하려고 했다. 그랬는데.


 “유일하게 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의 사타구니 사이에 성기를 처박고…."

 "……."

 "제가 스스로 자위를 한 꼴이, 도저히 믿어지지.”


 윤기는 이번에도 제대로 된 문장을 토해내지 못했다.

 남준의 입이 놀라움으로 천천히 벌어졌다. 그래, 저런 반응일 줄 알았지. 잠깐 고개를 든 윤기의 얼굴이 다시 아래로 떨구어졌다. 수치스러운 걸 모두 떠나서 무언가 짙은 패배감이 들었다. 내 스스로를 저버린 느낌. 다시 태어나도 씻겨 내려가지 않을 것만 같은 무거운 죄목이 피부 사이사이 빈틈없이 새겨진 듯했다.

 그래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거다. 이제껏 좋은 집 좋은 음식을 제공해 준 것도 모자라 저를 키워 준 윤희와 이환에게 죽을 만큼 죄송스러워서.


 “너한테 처음 있는 일이라, 자세한 건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혹시 행위를 이어가면서 페로몬이 조금이라도 맡아졌거나….”

 “아뇨, 아니요. 없었어요.”


 윤기가 제 얼굴의 반쪽을 쓸어내리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근데, 같은 알파를 보고 몸이 반응했다고. 그것도 갑자기?”


 남준이 무언가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럴수록 윤기는 더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제가 저지른 잘못의 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에 드는 두려움이리라.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민윤기, 이건 내 짐작일 뿐인데. 너 아무래도.”


 정국이한테 각인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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