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웃지 못하고 있는 남자, 스펜서 리드는 울상을 지었다. 그만 하세요, 그 한마디를 내뱉을 수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게 무서운 거야, 꼬마?]



모건이 한 발짝을 다가서자 리드의 몸이 펄쩍 뛰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줄 때문이었다. 천천히 시선을 내리자 큰 몸집과 부드러워 보이는 털이 보였다.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지만....



[치, 치워요. 모건!]



짐짓 아무렇지 않는 듯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에 주변에서 또 다시 웃음이 터졌다. 리드가 자신을 피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작다고 할 수 없는 몸이 덮치듯 달려들었다. 만일 모건이 줄을 느슨하게 잡고 있었다면 바로 피해를 입었을 거리였다. 왕, 그 소리를 듣자 리드의 어깨가 뛰었다.


꽤나 격한 반응에 주변인들도 놀란 것인지 리드의 곁으로 다가 왔다. 모건도 줄을 짧게 잡은 채로 거리를 유지했다. 워워, 놓지 않아. 평소에 자주 쓰는 짓궂은 애칭도 없이 몸을 뒤로 하는 것에 리드는 겨우 숨을 가다듬었다. 큰 개. 분명 자신에게 해를 입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덜컥 겁을 집어먹게 되는 존재였다.



*****



오늘은 야근이었다.

보통 보고서가 늦은 경우가 거의 없는 리드가 이처럼 허둥지둥거리는 것은, 아직도 사무실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는 금빛 털 때문이었다. 같은 사무실을 뜨는 사원 중 한명의 애완견으로, 그가 부상을 입으며 잠시 맡겨졌다. 모두가 귀여워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리드만이 그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왕, 하는 작은 울음에도 흠칫흠칫 놀라다 보니 진척이 없었던 거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팀원들이 같이 있어 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거절한 것은 리드였다. 다들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개에게는 목줄이 묶여있었으니까. 하지만 보고서를 적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개가 있는 쪽을 흘깃거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끼잉, 불쌍하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곤란해 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였다. 무시를 해야지, 하는 생각과는 반대로 시선은 개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가족이 없어 애완견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라 이야기를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야?]



리드가 조용히 묶여있는 개, 아니 애견에게로 다가갔다. 골드리트리버, 리드 또한 익히 알고 자주 보아왔던 개는 일어서면 그의 허리를 쉬이 넘을 정도로 컸다. 리드가 다가오는 것에 다시 왕, 하는 큰 소리가 났다. 묶여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시 흠칫 놀라고 만다.



[밥이 부족한 거야?]



결코 가까이 가지 못한 상태로, 리드가 목을 쭉 빼며 밥그릇을 살펴본다. 밥그릇은 비어있었지만, 사료가 자동으로 내려오는 형식이었다. 거기에 투명한 통 안으로 사료가 보이는 것을 보면 배가 고픈 것도 아니리라. 하지만 리드가 자리로 돌아가려고만 하면 끼잉거리며 불쌍한 소리를 낸다. 몇 번이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 움직이려했지만 그 소리에 돌아가지 못하고 서성거릴 뿐이었다.



[왜 그래.]



자꾸 가까이 오려고 하고, 리드는 두려움에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면서도 낑낑거리는 소리에 차마 뒤돌아가질 못하니 대치 상태가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보고서를 쓰고 가야 하는데 말이야,]


마치 말을 알아듣는 다는 듯 다시 끼잉, 하는 소리에 리드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개를, 심지어 작은 강아지마저도 가까이 하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좋은 해답을 낼 수가 없었다.


[쓰다듬어주라는 것 같은데?]

[하치!]


주춤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리드의 등 뒤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아직 안 가고 있었어요?]



당황한 듯, 리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미 밤이 늦은 시간, 리드의 제외한 팀원들도, 사원들도 퇴근을 했던 거다. 하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서류를 보느라 늦었다는 말을 하지만, 리드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 라는 사실을.



[미안해요, 빨리 보고서를-]



리드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몸을 일으키자 구석에서 다시금 끼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하치, 저기...]

[아무래도 외로움을 타는 것 같는데...]



하치의 얼굴 위로 작은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혀를 굴리는 소리를 낸다. 축 늘어져 있던 개가 귀를 바짝 세우고 앞으로 다가오는 것에 리드는 불안한 듯 몸을 뒤로 뺐지만 하치는 오히려 손을 뻗었다. 하치의 손에서 부드럽게 넘겨지는 털이 예뻐 보여, 시선을 빼앗긴다.


하치는 개를 다루는 것이 꽤나 익숙해보였다. 그래그래, 짧게 추임새를 넣으며 달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리드는, 저 손길이 얼마나 부드럽고 상냥한지 잘 알고 있었다. 보고서를 쓰러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하치의 손길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었다.



[하치.]

[오늘 이름을 많이 불리는데?]



그 음성은 부드러웠다. 그게 마치 털을 부비는 손길과 같은 느낌이라, 리드는 자신의 자리로 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어떤, 느낌이에요?]



주저하는, 하지만 궁금증을 담은 음성이었다. 동물과의 상성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특히 대형 동물과는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리드였다. 낮에 모건이나 가르시아가 귀엽다며 권할 때에도 느꼈지만, 부드러워 보인다. 하지만 다가가기만하면 목을 울리는 통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주저하는 기색을 알아차린 건지, 하치는 손을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저어졌다. 새로운 지식을 탐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두려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치는 그저 가만히 손을 뻗는 상태로 리드를 바라 볼 뿐이었다. 눈을 마주친 상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리드는 손을 꼼지락 거렸고, 결국은 손을 마주잡았다.



[천천히.]



훅 끼쳐오는 것은 시원한 향수였다. 그 향에 리드가 시선을 빼앗긴 상태로, 하치는 느긋하게 손을 겹쳤다.


[쉬, 괜찮으니까.]



따뜻한 느낌에 손을 움츠린 것을 착각한 것인지,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마치 뒤에서 껴안긴 것 같은 자세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리드는 딸려갔다. 자세를 깨닫지 못한 것은 하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저 리드의 불안을 최소한으로 하고, 느끼지 못하는 쪽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뻗어나간 손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치가 쓰다듬고 있던 머리였다. 숨을 삼키듯 긴장하고 있던 리드는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눈을 홉떴다.


부드러워, 리드가 속삭였다. 굳이 하치에게 하는 말이 아닌 듯 계속 입술이 우물거렸다. 어떤 강도로 만져야 좋은지 알 수 없어, 리드는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하치가 움직여주는 대로 몸을 맡길 뿐이다.


[귀엽네.]


[네, 네. 귀여워요.]



하치의 말에 리드가 홀린 듯 답한다. 이제까지 현장을 돌며 만났던 모든 애완견-특히 크기가 크다면 더더욱-을 두려워했던 과거가 아득하게 느껴진 듯했다. 리드가 앞에 있는 애견에 푹 빠져있는 사이 하치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잘게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가 귀엽다 무심코 이야기를 했던 상대는 앞에 있는 사원의 애견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드는 손끝의 부드러움에 완벽하게 매료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하치가 움직이지 않으면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응? 하치 왜-]



손을 움직이지 않아요, 라는 말을 하려 했다. 고개를 돌린 순간 입술에 따뜻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



[응, 귀여워.]


잠깐 입술이 떨어진 사이 말을 흘린 하치는 다시금 다가가 놀란 듯 벌어진 입술을 머금었다. 입술만을 사용해 조심스럽게, 이제까지 리드가 손으로 간질이던 털보다 부드럽게.


귀엽다, 이런 말들이 입에 붙은 것은 아무래도 잭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들은 빨리 크는데, 특히 남자아이라면 귀엽다는 말을 해줄 시기가 길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끔, 리드를 볼 때면 꼭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곤 했다.


처음에는 놀란 듯 입술을 다물지 못했던 리드 또한 천천히 오물거렸다. 리드 역시 입술만을 움직이며 보드라운 감각을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조금씩 입술이 벌어지고 그 사이를 사려물려 할 때 즈음,


왕,


하고 자신을 잊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둘이 고개를 돌리자 자신이 무얼 잘못했느냐는 듯, 애견은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갸웃 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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