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이후, 사이좋은 어벤저스와 피터

인워가 없는 세계관

**날조주의**





[토니피터] Minor Upgrade 





11





"저..냇?"

"왜 그래, 피터."

"바쁘시면 가보셔도 괜찮은데.."



피터는 1인용 소파에 앉은 나타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래는 침대와 옷장, 책상만 달랑 있던 넓은 방에 왜인지 토니는 갑작스럽게 1인용 소파와 작은 탁자를 하나 넣어주었다. 피터는 인테리어 쪽으론 소질은 없었으나 휑하니 비어있는 빈 공간이 때때론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그 부분을 어떻게 채워보겠다는 생각은 일절 없었다. 수트로 장식해도 멋지겠다곤 1번 정도 생각해보긴 했지만 제 스판수트는 아이언맨 아머처럼 서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여백의 미도 좋다고 타협했던 게 본부의 방을 처음 가지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토니가 고작 제가 허전하다 느낀 공간을 채워주고자 그런 가구들을 넣었을까. 피터는 맹세컨대 토니에게 시설에 관한 불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너무 멋지다는 말은 100번 넘게 반복했을지 언정. 



그러니 그의 변덕이 궁금하면서도 따지고 보면 이곳에서 방을 얻어 쓰는 주제에 왜냐고 물어보면 또 너무 주제넘는가 싶어-피터는 이런 쪽으로 소심하다-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더니, 손님을 세워놓을 순 없잖아? 실례지, 그건, 하며 알기 어려운 이유를 늘어놓았다. 토니가 하는 행동 중 의미 없는 것은 없었다. 어딘가 필요하겠구나, 구체적인 상황은 몰라도 단지 토니가 하는 말이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소파와 탁자가 생기기 무섭게, 돌아가며 피터의 방을 방문하는 '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심해서, 또는 시끄러운 토니의 잔소리로부터 피신 등 각자 피터의 방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이었는데, 처음엔 소파 하나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바보가 아닌지라 이 상황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것을 피터는 알아차렸다. 제 방의 1인용 소파보단 라운지의 구겨 앉지 않아도 6명은 족히 수용할 가죽소파 쪽이 더 좋은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손님은 나타샤였다. 아침부터 노크를 하더니 완다가 구운 쿠키를 가지고 온 그녀는 간식타임을 함께 즐겨주겠니? 상냥하게 물어왔다. 피터는 달콤한 초콜릿 쿠키를 먹어치우며 이른 시간부터 베이킹을 하다니 완다는 참 성실하네요, 하고 감상을 전했다. 사실 그것은 순전한 감탄만은 아니었는데, 피터는 완다가 생각보다 아침잠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피터의 방으로 찾아올 구실을 위해 그녀가 아침잠을 버리고 쿠키를 구웠을 것이 분명했고 그렇게까지 해서 나타샤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이 제 방을 찾아와야 하는 '어떤 이유'가 존재할 것이란 추측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피터는 가설을 세운다. 내가 능력이 일시적으로 사라져 일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 그들은 일반인 피터 파커 보호하기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오류가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업스테이트 내에서 힘이 좀 없어졌다고 노출될 위험이란 짐작 가는 게 없다. 당장 본부를 둘러보면 업무를 돕고 있는 일반인은 꽤 된다. 심지어 아이언맨의 옆에서 그의 안전을 지키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경호실장 해피 또한 평범한 사람이 아니던가. 애초에 무엇보다 자의식 과잉이지, 고작 나 하나 때문에 그럴 리가. 어벤저스잖아, 아동보호 센터가 아니고.-사실 이 부분에 대해선 피터 파커가 토니 스타크의 집념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로 좋게 풀어 말하자면 '피터 파커 보호 프로젝트'가 맞았다.-



하지만 피터는 이내 자신이 멋대로 학교로 가겠다고 본부를 뛰쳐나갔던 일을 떠올려냈다. 음, 그걸 막기 위해서겠지? 그럼에도 피터는 끝까지 이것을 감시라고 부르지 않았다.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여러모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치타우리 코어로 인해 정신없을 와중에 큰 인력을 제게 투자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벤저스의 일원임에도 그들에게 별 도움은 커녕 되려 일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왜, 내가 불편해?"

"네? 그런 게 아니라, 제 말은...치타우리코어 건으로 바쁘시잖아요. 물론 스타크씨는 그 물질이 치타우리코어랑은 다른 거라 말씀하셨지만 이름을 몰라서-"



나타샤는 횡설수설 늘어놓고 있는 피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얘가 얼핏 보면 아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중간중간 제 시선을 확인하고 또 눈동자를 허공에 올리는 행동으로 보아-무언가 떠올려내거나 고민을 할때 인간이 짓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사실은 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캐치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달라졌네. 침대에 걸터앉아 무릎 위엔 복잡한 과학 책을 올려놓은 채, 곤란해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생각해둔 사람이 있어.'

'어디 있는데?'

'아래층에. 당신은?'



소코비아 협정, 그리고 버키의 일로 시끄러웠던 당시 자신이 와칸다의 새로운 국왕을 한 편으로 데려올 계획이었을 때, 토니는 제 물음에 대답 대신 자신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이미 점찍어 둔 대상에 대한 강한 신뢰였고 나타샤는 비장의 카드라도 손에 넣은 듯한 토니의 표정이 싫지 않았다. 그래봬도 이 남자는 하려면 제대로 하는 자였으니. 베를린으로 그가 데려온 초인이 기습으로 캡틴의 방패를 뺐는 모습을 보며 토니의 사람을 고르는 눈을 인정하기로 했다. 어디서 발견한 건지는 모르지만 보통내기가 아니다. 재잘재잘 인사하는 모습도 토니가 고른 사람답게 퍽 유쾌했다. 스티브 또한 좀 더 훈련을 받는다면 크게 될 인재라고 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이라 아무도 웃지 못했을 뿐.



그러나 일이 정리된 후 어벤저스에게 소개해주겠다며 본부에 불려온 그 쫄쫄이 히어로가 마스크를 벗었을 땐, 나타샤는 '인정'을 외쳤던 자신의 입을 때려주고 싶었다. 진심으로 토니 스타크가 데려온 지원군이 이런 어린애였단 말인가. 아직도 나타샤는 모두의 당황한 얼굴을 잊지 못한다. 바로 뒤에 서있던 제임스가 그나마 놀라지 않은 얼굴로, 난 대충 알고 있었어, 그럴게 쟤 제국의 역습을 아주 오래된 영화라고 했다니까? 하고 고개를 젓던 것, 그리고 다들 표정을 보니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알겠는데 전 평범한 학생이 아니에요! 하고 외치던 아이의 목소리까지도. 



"조금 의외네."

"뭐가요?"

"우리는 좀 더 네가...화를 낼 줄 알았거든."

"왜 저한테는 말씀해주시지 않은 거죠?! ..처럼요?"



나타샤의 말대로, 모두는 피터가 요상한 돌멩이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섭섭함을 표출하며 항의를 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아이는 별말이 없다. 학교로 뛰쳐가 무작정 폭탄을 파냈지만 그 후론 따라나서겠다거나, 끼워달라거나, 그런 당연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토니는 참 잘 된 일이라 했다. 걔도 알았나 보지, 어른들에게 맡길 일이란 걸 말이야. 



"으으..어쩔 수 없는걸요. 전 지금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유일하게 스타크씨한테 떳떳하게 하던 말이 '전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라고요!'였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거라곤 앉아서 과학 책이나 읽는 것뿐인 정말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어버린걸요. 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나타샤가 보기엔 아이는 불과 반년 전보다 훌쩍 커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는 건 기쁜 일이라 농담처럼 던지던 토니의 말이 참 맞다. 나타샤는 소파에서 일어나 피터에게로 다가가 그의 머리를 헝클어져라 쓰다듬었다. 



"많이 성장했는데?"

"냇도 지금 저를 어린애 취급하신 거죠?!"

"맞아, 하지만 평범한 꼬마는 아니지, 내가 아는 한 이렇게 똑똑한 고등학생은 없었으니까. 장담컨대 여기 있는 사람 중 일부를 제외하곤, 그 과학 책을 한 장 이상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 이야기야."

"냇은 어느 쪽이에요?"



피터가 장난스럽게 두꺼운 책을 들어 보인다. 물론 후자지. <양자역학의 이해>란 고딕체를 보며 나타샤가 고개를 까닥였다. 고마워요, 냇. 피터가 조금 가벼워진 얼굴로 꼬물꼬물 왼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여전히 그의 오른손은 반깁스 상태였다. 그래도 피터는 왼손 생활에 제법 익숙해졌는지 불편한 티를 내지 않았다. 나타샤의 시선이 오른손에 머물자 그는 원래라면 3일도 안 돼서 싹 낫는데, 하고 민망하게 웃었다. 피터의 말은 틀린 부분이 있었다. 그럴게 원래라면 금이 가지도 멍이 들지도 않았을 테니.



피터는 옆으로 물러 앉으며 나타샤가 걸터앉을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거절하지 않고 피터와 침대에 나란히 앉은 그녀는 금세 집중에 빠진 피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알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해가 어려운 듯 눈썹을 찡그리기도 했고 흥미롭다는 듯 감탄사를 뱉기도 했다. 그가 남동생 같다던 완다의 말도 이해가 된다. 그럼 난 조카 같으려나, 실없는 생각, 그러나 짧은 순간이지만 나타샤는 행복을 느꼈다. 그런데 그들이 노리는 것이 다름 아닌 스파이더맨이라니. 토니의 말대로 그는 그저 이웃을 돕고 싶을 뿐인데. 제임스는 그의 거미줄에 범죄가 붙어오는 것이 확실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아이에게 사실대로 다 말을 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그 또한 그를 위해서다. 그냥 노려지고 있다고 말해주는 편이 조심하지 않겠어? 그 질문에 대하여 토니는 샘에게 거두절미하고 딱 한마디를 했다. 안돼. 



[냇, 들려?]



치직, 작은 잡음과 함께 무전에서 토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타샤가 정신을 차리며 귓가를 만지작거렸다. 무슨 일이야? 허공에 던져진 그녀의 목소리에 피터가 고개를 돌려 나타샤를 바라보았다.



[꼬맹이랑 같이 있지? 일단 설명은 나중에 할게. 해피를 보냈으니 같이 좀 와줘야겠어.]

"무슨 일 있어요?"



토니와 피터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영문을 모르긴 나타샤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녀가 피터에게 설명을 하기도 전에, 토니의 말대로 해피가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뛰어온 건지 숨을 몰아쉬며 그는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밖을 가리켰다. 



"꼬맹아, 긴급상황이야. 수트 입어!!"

"수트요?!"

"이런, 말이 헛나갔네, 수트가 아니라 옷 말이야, 옷!"



수트 입으란 말이 입버릇처럼 되었군. 해피가 미간을 푹 구기며 중얼거렸다. 알아서 알아 들어주면 안돼? 네?! 그걸 무슨 수로... 해피가 눈하나 깜짝않고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피터가 할 말을 잃고 영문도 모른 채 주섬주섬 옷을 꺼내들었다.



"얘, 그럴 시간 없어. 차에서 갈아입어, 얼른."



해피의 재촉 때문에 피터는 팔 위로 옷들을 대강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었다. 양자역학의 이해?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바닥으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추락한 책을 보던 해피가 눈썹을 씰룩였다. 그것도 챙겨. 네..? 좋은 아이템이야. 저..해피 대체 무슨 일..가면서 설명할게. 그는 피터의 왼팔을 잡아당겼고 그 뒤로 나타샤가 뒤따랐다. 



피터는 뒷좌석에서 급하게 셔츠 안으로 팔을 밀어 넣었다. 피터, 벨트. 나타샤가 좌석의 오른쪽을 가리켰고 그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는지를 확인한 후 해피는 빠르게 액셀을 밟았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우린 지금부터 스타크 인더스트리 A타워로 갈 거야. 그리고 네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미션이지."

"맙소사, 한 번도 가본적 없는데! 거기다 미션이라니, 무슨 미션이죠?"



해피는 백미러로 들뜬 피터의 얼굴을 노려보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메이가 올거야."





.





A 타워. 이전까진 스타크 타워로 잘 알려져 있던 뉴욕 중심부의 타워는 쉽게 말하면 회사의 물류창고였으나 어벤저스가 결성된 후로 그들의 본부처럼 사용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본부를 업스테이트로 옮기게 되면서 토니는 그 건물을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건물로 다시 리모델링을 했고 현재는 오로지 연구를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각종 연구실엔 각 분야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모여 스타크 인더스트리에서 취급하는 업종, 더 나아가 새로운 기획을 만들기 위해 24시간 불이 꺼지는 시간이 없었다.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은 페퍼가 맡고 있지만 토니는 틈틈이 가까운 A 타워에는 얼굴을 비췄다. 큰 학술대회를 개최하거나 컨퍼런스 등이 있을 때가 그러했다. 그러나 토니는 현재 빠른 속도로 타워를 향하고 있다. 개회식 인사 등의 공식 업무 때문이 아니라 또다시 걸려온 메이의 연락 때문이었다.



현재 피터의 학교뿐 아니라 메이까지도 피터가 한참 유럽의 과학 박람회를 즐기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 정도 일을 꾸며내는 건 토니에게 일도 아니었고 추가로 인턴십 장학금, 미래의 스펙이 되어줄 박람회의 경험, 개별적인 케어까지 모든 것은 메이를 만족시키기 충분하다 믿고 있었다. 만약 얼마 전 피터를 학교로 불러낸 자칭 의자에 앉은 남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토니, 당신은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대뜸 메이의 첫마디가 그거였다. 무슨 이야기죠, 파커씨? 완전히 유럽에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지금 아이는 뉴욕에 있는 거죠? 확신이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토니는 코어의 수색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네드가 아니었음 쭉 모를뻔했어요. 학교에서 피터를 만났다더군요?"



네드란 친구는 분명 피터의 사정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조력자였다. 메이는 출근길에 우연히 그를 만났고 짧은 대화 중 숨기는 게 있는 눈치라 캐물었더니 결국 말해주더라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쏘아붙였다. 메이가 그렇게 열을 내는 이유는 토니가 그동안 피터와 쉽게 연락을 시켜주지 않아서였다. 근래 피터의 상태가 도무지 메이에게 보여줄 것이 못되어서였다.-그의 폰을 토니가 가지고 있었던 것도 혹시 말이 맞지 않아 의심을 살까 봐였다- 그러나 메이는 설마 피터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꽤나 정곡을 찔렀고 토니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지금 댁의 조카는 뉴욕으로 돌아와 훌륭한 스타크사의 연구진과 모의실험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라고. 피터 또한 시차 적응으로 피곤해서 연락을 깜빡한 모양이고 자신이 미리 연락을 못 준 부분은 불찰이라 인정하자 그녀의 화도 일시적이지만 가라앉는 것으로 보였다.



"당신이 우리 피터를 잘 챙겨주고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한텐 그 아이 하나뿐이랍니다."

"잘 알고 있죠."

"그 프로그램은 어디에서 진행되는 거죠? 새로 생긴 그..이름이.."

"A 타워. 삼시 세끼 일류 셰프가 만든 식사가 제공되고 모든 안전시설이 갖추어진 것은 물론 화장실까지 마치 방안에 있는 듯이 편안해 나오기 싫어질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겠네요."

"멋지네요. 그럼 거기서 뵙죠."

"...뭐라고 했죠?"



"들렀다 갈게요, 타워에."



잘 있나 안부 인사도 할 겸요. 메이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토니는 해피와 타워로 연락을 넣었다. 이것은 토니 나름의 긴급사태였다. 여기서 일이 틀어진다면 메이는 피터에게 스타크 인턴십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불법 무기 거래를 하고 있는 범죄자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알고 있을지 모르는 지금 상황엔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브루스!"

"토니, 왜 그래, 갑자기?"

"자넨 나랑 같이 좀 가야겠어."



고로 토니는 서두르는 중이다. 아머의 양손에 브루스를 든 채로. 저..토니, 진심으로 토할 것 같은데..참아, 휴게소 들릴 시간은 없어. 급행 아이언맨 호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고 브루스의 얼굴은 조금씩 질려갔다. 헐크로 변하면 안돼, 속도 느려져. 그 정돈 나도 알고 있어...우욱. 





.





"좋아, 안 늦었군."

"스타크씨! 배너 박사님!"



토니는 수트로 갈아입고 나와 피터가 도착했다는 로비로 향했다. 브루스는 상황 파악도 마치지 못한 채 토니가 건넨 안경을 쓰고 하얀 가운을 입었다. 잘 들어, 브루스. 지금부터 자넨 여기 특별 초청된 박사야, 강의 주제는 뭐든 좋아. 감마선 아니면 양전자의 충돌 그런 것들도 괜찮아? 뭐든! 토니는 손목의 시계를 차면서 고갤 들었고 멀리서 손을 흔드는 아이를 발견했다. 매일 본부에서 보는 사이면서 참 반갑게도 인사한다.



"스타크씨, 메이가 온다는 게 정말이에요?"

"그래, 딱 죽을 맛이니 제발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해주렴. 넌 모의실험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고 오늘은 특별 초청된 배너 박사의 강의를 듣게 된 거야. 잠시, 뭐야 그 책은?"

"해피가 아이템으로 챙기래요."

"필요 없어."

"양자역학은 내 분야가 아니거든.."



토니가 손짓했고 나타샤는 그 두꺼운 책을 받아들었다. 곧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머리를 높게 묶은 페퍼가 여러 가지를 한가득 든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토니, 정말 당신은.."

"페퍼, 진심으로 당신이 여기에 있어 살았어, 신이 도우셨지."



페퍼는 임시로 만들어 가져온 회원증-스타크 인턴십이란 정자체와 함께 스타크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론 피터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제대로 된 명찰이었다-을 피터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의 체크 셔츠 위로 하얀 실험용 가운을 입혀주곤 유인물을 잔뜩 쥐여준다. 이미 컨퍼런스룸 안의 강단에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고 강의를 듣는 척할 스타크사의 인파로 채워져있다. 토니는 얼마 전 LA 본부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페퍼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녀는 그의 과장된 칭찬에 이내 못 이기겠다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나타샤의 앞으로도 명찰을 하나 내밀었다. 나탈리 러쉬맨. 어째 낯익은 이름이네? 나타샤가 토니를 올려다보았다. 피터네 팀장 뭐 그런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 토니가 준 설정을 듣고 나타샤는 여유롭게 웃었다. 그것은 그녀의 전문분야였다.



"피터!"



피터는 익숙한 목소리를 인식하고 곧바로 자세를 돌렸다. 막 타워의 입구로 들어온 메이가 두 팔을 벌렸고 피터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품에 안겼다. 오, 아가, 잘 지냈어? 그럼요! 살이 쪽 빠진 거 봐! 메이는 피터의 얼굴을 쓸어내더니 다시 한번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끌어안았다.



"손은 왜 그랬어? 누가 해코지한 거 아니야? 설마 토니 스타크가-"

"그런 거 아니에요! 혼자 걷다가 넘어졌어요!"

"저런, 조심해야지."



메이는 피터에게 핀잔을 줬다. 걸을 때는 늘 조심하라고 몇 번 말했어! 오랜만에 듣는 잔소리가 피터는 반가웠다. 학교를 조퇴하고 인턴십을 핑계로 본부에서 지낸지도 2주 가까이었으니 그럴만했다.



"감동의 재회에 끼어들어 죄송하지만, 곧 스타크 인턴십의 특별강의가 시작될 예정이라 말이죠."



토니는 부러 '인턴십'을 힘주어 말하며 메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멋대로 찾아와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었답니다. 메이는 그의 손을 맞잡아 악수하며 그녀 나름의 사과를 건넸다. 이해해요. 그 후론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경영자 페퍼와의 인사-둘이서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몰라서 웃음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다. 브루스는 최소 토니가 대화의 주제였으리라 짐작했다-를 마친 후, 나타샤의 인솔에 따라 위장된 팀에 섞여 컨퍼런스 룸으로 들어섰다. 메이는 제대로 갖추어진 강연장을 보며 안심한 표정을 지었고 피터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꾸며진 무대를 보며 그녀 몰래 토니를 향해 엄지를 척 세웠다. 역시 스타크씨는 뭐든 가능하시구나. 새삼스럽게 감탄하면서.



"그런데 이 중엔 네 또래는 없어 보이는구나."



메이는 의자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연구실에서 근무 중이던 인원이 절반 이상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피터는 땀을 흘리며, 원래 고등학생은 뽑아주지 않는데요, 제가 아마 최연소...-최연소 어벤저스였으니 거짓말은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했다-그런 식으로 대충 얼버무렸고 대답이 성공적이었는지 메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급조된 강연이었음에도 브루스는 멋지게 강연을 해냈고 피터 또한 진심으로 유익했다고 흥분을 전했다. 강제로 컨퍼런스룸에 모였던 직원들도 강연이 끝날 땐 존경의 박수를 보냈고 브루스는 뿌듯한 미소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피터의 옆자리에서 인턴십의 일부를 지켜본 메이는 심화된 강연의 내용 때문에 굉장히 머리가 아파 보였지만 역시 스타크사는 수준이 높다며 할 수 있는 한 가장 멋진 찬사를 보내주었다. 아마 방금 단상에 섰던 자가 사실은 헐크이며, 저와는 꽤 친한 사이란 걸 메이가 알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피터, 다음 일정은 행크 교수의 양자역학의 이해야."

"인사만 하고 올게요!"



나타샤가 피터가 읽던 책 제목을 그대로 가져오며 그럴싸하게 다음 일정을-물론 본부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안내했다. 메이는 나타샤에게 달린 명찰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러쉬맨씨, 피터를 잘 부탁드려요, 상냥히 인사를 건넸다. 나타샤는 피터가 어린 나이임에도 책임감이 강하고 이해력이 좋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칭찬을 덧붙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피터가 귀가 빨개져선 손을 붕붕 내저었다. 빨리 가요, 메이. 도망치듯 그는 메이를 끌어당겼다. 그는 보기보다 직설적인 칭찬에 약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메이."

"안심이 좀 되네. 아참, 연락 좀 해, 피터. 왜 그렇게 연락이 안 되었던 거야?"

"엄...그게 사실 액정이 깨져서..말을 안 들어요."

"액정?"

"네. ..아, 그래, 넘어지면서요."

"손을 다쳤을 때, 같이 깨먹은 거야?"

"네? 네. 맞아요. 같이 깨졌어요."



피터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황당한 눈을 지었지만 이내 메이는 피터의 볼에 키스를 해준 후 차에 올랐다. 잘 속여넘겼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스타크 인턴십에 대한 의심을 덜어내는 것은 성공한 듯했다. 피터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토니가 급히 준비해준 덕에 어떻게든 넘겼지만 만약 들켰을 상황을 상상하니 온몸이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스파이더맨 활동은 물론이거니와 어벤저스와 관련된 모든 인물들과의 만남 또한 금지되었을 테니 말이다. 역시 스타크씨도 내가 어벤저스로 남아있어주길 바라시는 거겠지? 토니는 정녕 그렇게 말한 적 없지만 그가 이처럼 상황을 수습해주려 도와준 이유는 그 뿐일거라 멋대로 생각하곤 기뻐했다. 그러니 더 얌전히 있어야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피터는 원래부터 감이 좋은 아이였다. 그의 결심과 동시에 피터의 눈엔 차도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서는 수상한 남자들이 들어왔다.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하며 익힌 범죄의 냄새-클린트에게서 배운 기술이었고 토니는 애한테 쓸데없는 걸 가르쳐준다고 한 소리 했다-가 풍겼다. 빨간 불이 되어 일제히 움직이던 차들이 멈춘다. 횡단보도로 사람들이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신 차려, 피터 파커."



힘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 그는 아프지 않게 자신의 볼을 살짝 내려치며 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다리가 끈적하게 바닥에 눌어붙기라도 한 건지 걸음이 더디다. 피터는 허벅지를 내려쳤다. 감각이 없다. 초록색 횡단 신호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던 자동차 주인들이 하나 둘 다시 핸들을 잡기 시작한다. 피터는 느리게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 틈으로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어두운 골목으로 해맑게 뛰쳐들어가는 여자아이를 보는 순간, 모든 망설임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힘껏 바닥을 박차고 달렸다. 



빠아앙-! 클락션이 울렸고 억지로 내달린 탓에 폐가 찌릿할 정도로 숨이 차올랐다. 웹슈터의 활강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눈물이 찔끔 돌 정도로. 그냥 잠깐 살펴보는 거뿐이니까, 아이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피터는 소매로 따가워지는 눈가를 벅벅 닦아내며 골목으로 다가섰다. 꽉 막힌 속이 무겁다. 이제 열은 나지 않는데 머리가 핑 도는 것만 같았다.



'넌 대체 왜 가만히 있지를 못해?'



하지만 스타크씨, 저는...정말 가만히 있으려 했어요. 



'그것참 믿음이 가는구나.'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토니에게 미움을 받아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피터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어두운 골목으로 차츰 들어갔다. 낮은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게 무슨 굉장한 무기란 거야? 그냥 화려한 돌멩이잖아. 클럽에 가져다 놓으면 딱이겠네. 사기당한 거 아니야? 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금고만 딸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피터는 소리 없이 경악했다. 설마 다른 곳도 아니고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넘보는 강도들이 있다니, 그들의 미래는 안 봐도 뻔했다. 로비에서부터 경호원들에게 잡히지 않으면 대단한 거다. 하지만 피터는 찰나에 어둠 사이로 퍼져 나오는 영롱한 보랏빛을 놓치지 않았다. 맙소사, 그 돌멩이잖아. 어서 스타크씨나 나타샤에게 알려야...



무슨 수로...?



지금 제겐 휴대전화조차 없었다. 정말 무계획으로 뛰쳐왔네, 멍청한 파커. 하지만 다시 타워로 돌아간다면 그 사이 그들을 놓칠 수도 있다. 그들의 대화로 미루어볼 때 그 돌멩이 외에도 무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빠?"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남자가 소리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들었다. 연갈색 머리의 아이는 골목의 벽 위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벽 뒤편의 풀숲에서 숨바꼭질이라도 하려던 모양인지 머리카락 사이사이 풀이 붙어 있었다. 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조금씩 일그러졌다. 잡아. 한 명이 턱짓했고 다른 한 명이 손을 뻗어 아이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아이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만둬요!"

"여긴 무슨 꼬맹이들 놀이터야?"



남자 한 명이 안쪽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피터는 미끄러지듯 남자의 아래로 몸을 낮춰 그의 무릎을 강하게 찼다. 남자의 입에서 욕지기가 터졌다. 당장 총을 쏘려는 그를 다른 한 명이 말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고 쏘려는 거야? 곧바로 아머가 날아올 거라고! 버럭 소리치는 사이 피터는 그의 턱을 향해 머리를 날렸다. 뿌드득. 이마가 화끈거렸지만 그가 놓치는 권총을 피터는 빠르게 잡아챘다. 잽싼 꼬맹이 놈! 턱을 감싸며 바닥으로 엎어진 남자가 피터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윽, 피터는 중심을 잃어 넘어졌고 그는 피터의 팔을 꺾어 눌렀다.



"둘 다 암전히 있어. 혹시 엿들은 거 아냐?" 

"아빠가 도둑질은 나쁜 거라 했어요!"



머리카락이 붙들린 여자아이가 빽 소리쳤다. 오, 이런, 순수하기도 하지. 피터는 남자의 무게에 저항해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피터는 파르르 떨리는 오른손을 움직였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머리통이 날아갈 거야? 어차피 아이언맨이 무서워 쏘지도 못하잖아요. 그 나름의 도발이었다. 꼬맹이가 입만 살았군? 그는 총의 입구를 피터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틈은 충분했다. 피터는 팔꿈치로 그의 팔을 쳐내며 손에 잡힌 것을 꾹 눌렀다. 피슉. 하얀 물체가 시원하게 뻗어 남자의 눈에 명중했다.



"젠장, 뭐야, 이게! 안 떨어져!"



세상에, 스타크씨, 감사합니다. 혹시 해서 타워로 나서기 전 주머니에 예비 웹슈터를 넣어온 보람이 있었다. 피터는 비틀거리는 남자의 아래에서 빠져나와 다시 웹슈터를 겨냥했지만 발사하진 못했다.



"가만히 있는 게 좋을걸?"



그는 여자아이의 목 아래로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며 말했다. 피터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주머니에서 점점 강한 보랏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손에 들고있는 거 버리고 두 손 머리 위로 들어, 아님 목이 날아가는 걸 보게 될 거야. 피터는 바닥으로 웹슈터를 떨어트리고 손을 머리 뒤로 들었다.



"..아저씨, 주머니에서 빛나는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런 수법이 먹힐 거 같아?"



..이게 왜 이러지? 점점 단발적인 빛을 내는 돌멩이를 보고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피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 발을 크게 내디뎌 그에게 몸을 날렸다. 바닥으로 엎어지며 그의 손에서 나이프가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서 달려! 악력에서 벗어난 아이가 떨리는 다리를 버티고 일어섰다. 그치만...빨리 가!



"제길, 짜증 나는 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눈에서 거미줄을 떼어난 남자가 화가 난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아이에게 총구를 겨눈다. 안돼, 피터는 바삭 마른 숨을 삼키며 정신을 차릴 틈 없이 삐걱대는 다리를 끌어 아이를 감쌌다. 



탕-!



골목 너머 총소리에 놀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피터는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귀가 멍멍할 뿐 아픈 곳이 없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람의 인영이 비쳤다. 어라, 어디서 나타난 거지? 품 안의 아이가 꿈틀거리더니 활짝 웃는다.



"아빠!"

"용감했어, 소년."



그는 엄지를 세워 보인다. 피터는 그를 알고 있었다.  



"..앤트맨?"





-많은 날조가 있었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액션은 쥐약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부분이라 조금 루즈해질 수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다음화는 일요일 업로드가 목표입니다. 다음화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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