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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소중한구독자님의 소재로 쓰여졌습니다.














00월00(금)

일어난시각: 08:10분/잠자는시각: 10시:20분

날씨 :  흐림.






 12살.

부산을 넘어 서울을 제패하다.


 서울이란 포용적인 곳이었다. 

겁을 먹었던 것과 다르게 전학 온 나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어디서나 사는 방식은 똑같은건가. 전학의 경험은 나의 생각을 성숙하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사투리를 놀리는 녀석들은 없었다. 신기하다며 말을 해보라는 탓에 원숭이가 된 기분을 잠깐 느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사그라들었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영악하다.

눈치가 없었던 나는 알지 못했다. 놀림의 대상은 학급에 한명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그 녀석이 없었거나, 다른반이었다면은 나의 존재는 모난 돌처럼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문학속에서나 있는 화목한 학급은 허상이었다. 소설은 소설인뿐, 이해력이 높은 순수한 아이들은 책 속에나 있다.

나는 그저 타이밍의 수혜자일 뿐. 


 전학 오던날. 

나의 짝궁은 그녀석. 쉽게 말하면 내가 울렸던 아빠친구아들. 

이 기회를 빌어 친해지려 부던히도 노력하던 내가 생각난다.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놀려서 상처받은 마음에게 사과를 하고싶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사과를 했을테지만 어렸던 나는 부끄러움을 앞세워서 두고두고 묵혀놨었다. 부끄러움이라 쓰고, 용기가 없었다고 읽어야 할 것이다.


"안녕."


 자리에 앉은 나는 어색하게 손을 들며, 작게 인사를 건냈다. 입꼬리를 주욱 늘이며 웃음을 보였으나 돌아오는건 새초롬한 눈빛 뿐이었다. 주말에도 본적이 있는 날카로운 눈빛에 안무서운 척 창밖을 봤다. 확실히 녀석의 눈빛은 무서웠다. 


"다니엘은 아직 교과서가 없으니깐, 성운이랑 같이 보도록."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아직 교과서를 받지않은 나에게 짝꿍과 같이 보라는 말을했다. 녀석이 책을 넘겨주기 전까지 눈치를 보고있었다. 사나이는 눈치를 보지 않는데 녀석의 옆에 있으면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든다. 죄지은게 있어서 그런가보다. 지루한 수업시간의 긴 수필은 더욱 잠이 오게 했다. 녀석과 나, 중간에 끼인 교과서는 어색하게 놓여져 있는 것이 마치 지금 나의 마음과 비슷했다. 전학을 왔던지라 수업중간에 어색하게 끼인 나는 도저히 집중이 되지않았다. 다리를 떨고, 창밖이나 교실을 구경하다가 무심코 눈을 흘겨 녀석을 보았다. 나만 잠이 오는게 아니었구나. 꾸벅 꾸벅 졸고있었다. 눈을 감고 자는 모습은 어찌나 순해보이던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나를 처다본다면 무섭지 않을텐데. 순한강아지같은 모습에 얼굴을 가져다 대서 눈뜨길 기다렸다. 웃긴표정을 지은 채로. 아마 일어나면 깔깔대며 웃을 것 같다.


"으아!!!"


 잠에서 깬 녀석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내얼굴에 꽤나 놀랜듯 소리를 질렀다. 놀래는 표정이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그 탓에 조용했던 교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개구진 웃음소리가 교실에 퍼져나가자 웃음은 바이러스 처럼 퍼져나갔다. 선생님은 안경너머로 우리를 처다보며 주의를 주었다. 전학 온 첫날이라 봐주었다는 경고도 잊지않은 채. 나의 개그로 학급은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덩달아 녀석의 기분도 풀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쉬는시간에 나의 자리로 몰려든 친구들은 어디에서 왔냐며 말을 걸어왔다. 자연스럽게 고향이야기도 꺼냈고, 바다에 관한 이야기들도 풀어냈다. 호감을 담은 이야기들은 금새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를 웃기는 것에 자신있던 나는 아이들을 웃기게 하는 건 쉬웠고, 다른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 시켜주고 싶다며 삼삼오오 다른반으로 몰려갔다. 전학온 첫날부터, 화젯거리가 된 나는 신이나 하루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늦은 저녁에나 집으로 돌아갔다. 





"손잡고 학교 가. 같이. 성운이랑."


 다음날부터 그 녀석과 나는 같이 등교를 했다.아버지는 필요한 말만 하시고 사라지셨다. 혼자가도 되지만 로봇일지 모르는 부모님은 어디선가 보고 계실지 몰라서 아침일찍 집앞에서 녀석을 기다렸다. 시간이 나면 아버지엉덩이에 콘센트가 있나 봐야겠다. 잡생각를 하며기다리길 몇분 녀석은 아직 마르지 않은 젖은머리를 하며 나왔다.


"같이 가자."


어색하게 눈을 못 마주친채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녀석은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나랑?"

"응. 앞으로 내랑 같이 가자."


 예상외로 날카롭지않은 목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걸어서 십오분 정도되는 거리를 앞만보고 걸었다. 사실 주고싶은게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젤리. 사과의 의미로 주고 싶어서 한손은 주머니에 넣은채로 눈치만 보고있었다. 뭐라고 하면서 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단순하게 '미안해'라고 할까. 그럼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겠지.

'내가울려서미안해'라고하면 또 울지 모를 일이다. 울었던 것을 한번더 언급한다면 다시한번 눈초리를 받을지도. 아무렇지 않은척 장난을 걸 수도 없는 것이고.. 어제 먼저 장난을 걸긴 했지만 몰려드는 친구들 탓에 다른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작은 머리통을 아무리 굴려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교문은 점점 가까워졌다. 어떡하지. 머리가 하얗게 비워졌다. 이러면 가장 멍청한 행동을 할 것이 분명한데 다가오는 교문앞에 결국 멍청한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이거 무라!!"


 젤리를 녀석에게 던지고는 내달렸다. 던져진 젤리는 녀석의 몸 어딘가에 부딪혀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래바람을 가르며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나는 창피해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원숭이마냥 엉덩이가 빨개지도록 달렸다. 나의 마음을 모르는 친구녀석들은, 아침부터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나의 뒤를 따라 같이 달렸다.


 미친듯이 달려 교실에 도착하고보니, 아.. 짝꿍이네.

나보다 10분정도 느리게 도착한 녀석은 손에 젤리를 꼭 쥔 채 옆자리에 앉았다. 

문만처다보고 있던 나는, 녀석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앞자리 친구에게 다급히 말을 걸었다.


"덥다... 맞제."

"와, 다니엘 너, 진짜 빠르다. 계주해도 되겠다."

"하하..서울오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덥네 여기도."


 눈치없는 녀석. 날씨얘기를 하는데 굳이 달리기를 하냔 말이다. 

목이 간질간질. 모래바람을 먹은 탓에 칼칼한 목이 반가웠다. 티가나게 기침을 하며 침을 튀었다. 그 바람에 앞자리 친구는 자연스레 말을 그만두고는 앞을 봤다. 어색한 공기에 처음으로 수업시간이 매우 기다려졌다.

스트레칭을 하며 슬쩍 녀석을 바라봤다. 젤리를 손에 쥐고 있다 저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쳐다보았다. 재빠르게 몸을 틀며 스트레칭하는 척을 했다. 들키지않았겠지..


 1교시는 과학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자연실습장으로 아이들을 끌고 나와 식물에 대해 열변을 토하셨고 식물도감을 완성해라는 것까지 도달했다. 결국 수행평가를 하라는 말을 길게하신거구만. 각자 원하는 식물을 정하고 그림을 그리고 특징까지 자세히 적어야하다니.. 한숨이 포옥나왔다. 집중력이 떨어진 나는 친구들의 그림을 보며 장난을 걸었다. 자연실습장을 운동장 삼아 내달리기도 했고, 멀리뛰기도 하며 신나게 놀아댔으나, 얼마지나지 않아 꿀밤을 한대 먹고는 얌전히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는 자신이있던지라, 슥슥 연필로 그려내고있었다. 


 그러다 생각난 녀석.

흙바닥에 그림그리는 솜씨가 영 젬병이었던 게 생각이 나서 고개를 빼내어 찾았다. 다람쥐같이 몸을 말고서는 한 구석에서 열심히 그리는 녀석을 찾았다. 

녀석이 그리는 것은 민들레 홀씨. 저마다 큰잎을 가지고 있거나, 강한 가시를 가지고 있다거나 색이 진한것들을 그리는데 단조로운 민들레씨를 그리고있었다. 물론, 그림만 본다면 무슨 거미줄같은걸 그려내고 있었지만.


"도와주까.."


 녀석은 말을 거는 나를 처다보았다. 그러곤 내 얼굴을 한번, 자기그림을 한번 처다보았다.

혼자말을 하듯이 말을 하댄탓에 못알아들은건 아니겠지.


"왜? 내 그림 이상해?"

"아..아니..이쁘다..그냥 시간이 좀 남아가..도와주까."


 순수하게 맑은 눈에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사나이 강다니엘. 거짓이 늘어간다. 

도와준다는 말에 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는 신호에 비집고 들어갔다. 손에들린 연필을 민들레홀씨에 갖다대보며 비율을 맞추는 행위를 했다. 미술같은건 배운적 없지만 괜히 멋있는척을 하고싶어 한쪽눈도 찌푸린 채 열심히 구도를 맞췄다. 허리를 구부리기도하고, 엄지로 괜히 연필을 쓸기도 하면서.


"그림 잘그린다."


 쪼그려앉는 녀석은 작은 무릎에 얼굴을 대고선 말을 내뱉았다. 

한참을 신중하게 선을 그어가고 있던 나의 어깨는 에베레스트보다 높게 올라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했던가. 괜히 손목을 돌려가며 이리저리 의미없는 멋을 담은 선을 그어댔다.

녀석은 나를한번, 민들레를 한번, 종이를 한번씩 번갈아 처다보고있었다. 


"자. 대충 했다."

"우와..너 그림 진짜 잘 그린다."


 보기드문 집중력으로 등에 땀이 날정도로 열심히 했다. 손에 쥐가 날 정도로 힘을 주어 그린탓에 감각이 사라질 것같다. 대충했다는 말을 끝으로 식물도감을 던지듯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던진 도감은 바닥에 한번 던져지는 소리가 났다. 손에 쥐어주고 싶었는데 또, 쓸떼없이 부끄러움이 몰려와 던져버리고 말았다.  

던진것에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 도감을 주워서 펼쳐본 녀석은 나의 뒤로 감탄사를 뱉았다. 

원래 자리로 돌아와 한숨돌린 나를 보던 친구들은 왜 도와주냐며 퉁명스러운 소리를 냈다. 사나이끼리는 돕고사는 거라며 넓은 가슴을 가져라는 멋진말을 남기고는 나는 혼나러갔다. 녀석 그림을 그려주느라 나의 도감은 처음과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길었던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줄줄이 오와열을 맞춰서 밥을 먹으러 가는 모습이 꽤나 삼엄하다. 오늘 점심은 어떤것이 나온다던가. 시덥지않은 농담을 흘려가며 기다렸다. 급식을 받고서 홀수와 짝수번호대로 마주보며 앉았다. 강씨인게 자랑스럽다. 보통 가나다순으로 번호가 정해졌기에 나는 항상 앞번호를 받았다. 마음에 드는 반찬을 가득 받고서는 발을 구르며 입맛을 다셨다. 

밥을 받고나니 녀석은 몇번일까 궁금해졌다. 이름은 알고있다. 성운이. 성은 모르지만. 


 김성운? 이성운? 박성운?

내 옆으로 죽 늘어선 아이들을 보아도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목을 빼내어 줄의 끝에서 있는 녀석을 보았다.


 황씨인가. 황성운. 

국을 수저로 떠내면서 슬쩍 줄의 끝을 보았다. 황성운 덕분에 몸은 정면으로보고 눈알을 옆으로 굴리는 스킬이 늘었다. 맨 마지막에서 3번째에 앉는 녀석은 반대편에 앉은친구 없이 먹고있었다. 우리반 학생은 홀수라서 맨마지막 번호만 혼자 먹어야하는데, 중간에 구멍이라도 난듯 혼자 먹고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가?"

"목말라가 물뜨러간다."

"식판은 왜 들고가?"

"밥에 물말아 먹을라고."


 녀석도 참. 질문이 많다. 자연스럽게 일어서면 눈치 못 챌 줄알았는데. 아침에 눈치없이 달리기 이야기를 해댈 때부터 알아봤어야한다. 확실히 눈치가 없다. 밥에 물말아먹는 다는 핑계를 대고 식판을 들고 일어서 정수기 앞으로 갔다. 밥에 물을 넣고는 내자리가 아닌 황성운 자리앞으로 가서 앉았다.


"아이고, 다리야."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혼자 말을 하고선 황성운 앞에 앉았다. 식판에 고개를 처받고 밥을 먹던 녀석은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나를 바라보고있는것 같지만 조금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옆을 처다보느라 정확히 얼굴을 마주 보지않았다. 급식실의 소리가 커지고 밥먹는 것에 집중했다. 

녀석. 돈까스를 좋아하나보다. 

다른반찬은 크게 손댄 흔적이 적은 반면에, 돈까스만 쏙쏙 빠지는 모습이다.

마지막 돈까스 한장이 남았다. 

토끼같이 여러번에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스윽- 

내 돈까스를 넘겨주었다. 물론 나의 시선은 옆을 본채로. 이러다 눈이 관자놀이에 붙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게 더 나을것 같기도하다. 이대로 보다간 눈알이 빠질것같다.


"괜찮아. 너 먹어."


다시 돌아오는 돈까스. 


"돈까스 싫어한다. 니 무라"


 무심하게 돈까스를 다시 던져주었다. 

던지는것에 취미없는데 자꾸 던지게 된다.


"잘먹을께."


 잘 먹는다는 말에 어깨를 한번 더 으쓱였다. 이런 것 쯤은 쉽게 줄 수 있지. 

내가 준 돈까스를 반찬으로 밥을 다 비워내는 모습에 뿌듯함이 차올라 하마터면 헤벌쭉 웃을 뻔했다. 

돈까스를 던져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이날 이후로 일기장에서 성운이에서 눈에 불을 그리지 않았다. 또 2층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고개를 빼어내서는 성운이를 기다렸다. 언제쯤 커텐을 칠까. 언제쯤 창문을 열까하는 기다림. 

언제 밖을 처다볼 지 모르는 성운이를 기다리는 나는 심심함에 온몸에 쥐가 날 것 같으면서도, 슬쩍 삐져나온 머리통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이상하게 학교에가면 부끄러워지는데 집에와서는 용기가 났다. 무의식중에 아이들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뭐.. 친구끼리 부끄러워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사춘기가 다가와서 부끄러움이 많아졌나보다. 나를 보고서 같이 손 흔들어주는 성운이를 보다가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부산에서 탑블레이드장인이라고 불리는 나는 자신있었다. 나와 대결한 녀석들은 하나같이 탑플레이드가 부서져서 돌아갔기때문에. 이사를 하느라 탑블레이드를 찾을 수 없었던 나는 서랍을 열어서 겨우 팽이를 찾앗다. 창문으로 가서 아랫골목으로 내려오라는 말을 한 후 에 만발의 준비를 했다. 비록 탑블레이드 보단 덜 멋있지만 보여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동안 탑블레이드로 수련해온 나는 이정도 팽이 하나쯤은 하루종일 돌릴 수 있다.


 방안에서 한번 돌려보고는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가서 대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앞에있던 녀석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했다. 녀석은 두손을 등뒤로 한채 자기를 왜 불렀는지 궁금한듯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비장하게 등뒤에서 팽이를 꺼내었다. 

그리곤 멋있게 줄을 감았다. 최대한 화려한 동작으로 줄을 풀어냈다. 공중으로 띄워진 팽이는 회전력을 가지고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는 아름다운 동그라미를 가지고선 빙글빙글 돌았다. 이건 완벽하다. 


"우와아~~"


 큰 기대를 안했던걸까. 화려하게 무빙하는 팽이를 보던 성운이가 감탄사를 내뱉았다. 박수까지치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에 더욱 어깨에 힘을 주었다. 훗날 내 어깨가 넓어진의 7할은 성운이의 감탄사 였던 것 같다. 내가 무얼하던 박수를 처주고 잘한다고 하는 탓에 자꾸 으쓱하게된다.

탑블레이드는 많이 봤어도 오래된 팽이는 처음보는 모양인지 신기해하는 모습에 직접 가르쳐 주었다.

줄을 감는방법과 팽이를 던지는방법을 가르쳐 주니 곧잘 따라하는 모습에 신이났다. 그렇게 학교가 마치면 나는 성운이를 불러내서 골목에서 이것저것을 보여주었다. 골목길의 각설이라고 불릴만큼, 내가 할수 있는 모든 장기를 보여줬다.

 바퀴달린신발이 처음 나오던날, 엄마를 졸라 학교에서 가장 먼저 샀었다. 처음 신어보는 신발에 넘어지길 반복하며, 무릎이며 팔꿈치며, 턱이며 상처가 마를날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한것은 성운이이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성운이와 주욱 붙어다니던 나는, 멍청하게도 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성운이와 같이다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딱히 성운이의 성격이 나쁘거나, 못된짓을하는 것도 아닌데 왜 미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이유를 찾기힘들 듯이, 친구들은 그냥 성운이를 미워했다. 친구들이 성운이를 따돌리고 있는걸 뒤늦게 알아버린 나는 미련하게도 성운이 곁에서 멀어졌다. 변명에 불과하지만 어린마음에 따돌림당하는 친구와 같이 지냈다는것은 곧 자기도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흔히말하는 급을 나누는 행위. 그런 마음이 생기자 행동으로 자리잡았다.

 학교에서 성운이와 말이라도 섞고있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우르르 몰려와 대화하는 나를 잡고서는 다른곳으로 데려가거나 티나게 성운이를 밀치고는 말을 가로챘다. 그 때마다 나는 충분히 되돌아가거나 그러지말라고 말할 수 있었음에도 난감한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그런일이 몇번 있고 나서는 학교에서 나와성운이는 말을 섞지 않게되었다.

처음 당황했던 것도 잠시, 익숙해져버린 나는 성운이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았다. 과격한 행동과 욕을 내뱉는것이 멋있다고 느꼈으니깐. 성운이는 고작 착한말밖에 할 줄 모르는 순수한 아이였기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침일찍, 성운이를 기다리던 것도 이틀에한번, 일주일에 한번, 이삼주에 한번으로 텀이 길어졌다. 학교를 마칠때 쯔음에는 축구를 하러가는 나는, 성운이와 자연스레 따로 하교를 했다. 

저녁까지 운동장에서 뛰돌다 늦게 집으로 와서는 그제서야 성운이가 생각나 창문을 열어 성운이를 불렀다.

예전에 나는 성운이를 기다렸다면, 이제는 내가 필요할때에 불렀다. 나의 부름에 언제나 머리를 내밀던 성운이의 표정변화가 사라지는 것도 모른채 내 얘기만 했었다.

 축구를 누구와 했냐는 둥, 누가 골을 넣고 반칙을 했다는 둥. 나만 아는 이야기를 하면 성운이는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러다 내 얘기가 끝이나면 잠이온다며 창문을 닫아버렸다. 매일 같이 나의 소식만 전하고, 가끔 성운이가 하는말에는 대놓고 관심없다는 듯 말을 잘라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성운이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내가 학급의 계주가 되었을 때는 자기일 처럼 기뻐해주기도 했었다. 어느새 장기를 보여주던 골목에서 우리둘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오랜만에 같이 등교를 하던 날이었다. 

주머니에서 젤리를 꺼내 성운이와 나누어 먹었다. 입술이 통통한 성운이는 설탕을 입주위에 잔뜩 묻혀서 먹던 모습을 보다 웃으며 손으로 털어 주었다. 설탕을 잔뜩 머금은 젤리는 털어내도 자꾸 그 자리에 묻혀져있어 한참을 웃었다. 성운이와 있을때면 순수하게 웃게 된다. 순수해지고 내 감정에 솔직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교실에가서 앉았다. 

그런 나와성운이에게 나의 친구들이 다가왔다. 



"니엘이 뭐야. 쟤랑 사겨?"

"에이...설마"

"아까, 같이 등교하면서 입술도 만지고 웃던데."

"니엘아 ,뭐 저런애랑 노냐."


  비아냥대며 짜 맞춘 대본을 읽듯 주고 받는 둘의 말에 가시가 있다. 우리랑 어울리려면 급이 안맞으니 성운이를 버리라는 뜻이다. 나이가 많던 적던 그런것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들이다.


" 사귀기는 뭘사겨. 그냥.. "


나는 비겁하게도 말을 둘러댔다. 다음에 이어서 올말이 입안에서 웅얼거림으로 사라졌다.

친구라고도 말을 못뱉는 나는 말끝을 흐렸다.


"설마 쟤 좋아해?"


유치한 질문에 나와 성운이의 시선이 얽혔다. 

성운이는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런 성운이를 처다보다가 나는 멍청한 대답을 했다.


"아니."


푸하하하. 교실에 웃음소리가 가득메워진다.

성운이는 저를 놀리는 소리를 듣고있다가 나를 처다보았다.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있다. 처음 봤던 그날처럼. 

그러곤 내게 말했다.









"너, 나 좋아하잖아."










"내..내가언제"


 성운이에게 뒷걸음질을 치며, 설레발치지 말라는 의미를 보였다.

나의 대답에 교실의 웃음소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성운이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이윽고 눈에서 눈물을 떨어뜨린 너는 가방을 들고서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린날의 나는 너무나 미련하고 못됬다. 

성운이를 따돌리는 아이들이나, 묵시한 나, 필요할때만 찾는 강다니엘은 똑같은 부류였다.

부끄럽다며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돌아서서 달려가는 너를 따라가지않고 다시 교실에 묻혔다.  

그저 부끄럽다는 단어를 내세워 나는 그 뒤로 숨어든 것이다. 뭐가 그렇게 무섭길래.



 어제일이 있고나서 달라질 건 없었다. 

똑같이 따로 등학교를 하고 학교에서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다. 수업시간이면 각자 책에 집중했다. 쉬는시간에 성운이를 놀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내가 하는것은 자연스럽게 다른이야기로 돌려서 성운이에게서 나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다고 성운이가 따돌림받는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어설픈 동정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나의 행동에도 성운이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아버지들끼리 의형제를 맺은 성운이와 나는 저녁을 종종 같이 먹곤했지만, 필요한 말 이외에는 대화를 섞지 않았다. 사춘기라며 이해해주어야한다는 성운이아버지의 말에 자연스럽게 넘어가곤했다. 


 서로의 창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고, 우연히 창문을 열다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성운이는 티가나게 무시했다. 성운이가 신경쓰일수록 다른일에 정신을 집중해야했다. 

운동회에 다가오자 나는 운동에 집중했다. 축구나 달리기 같은 것들을 했다. 성운이와 멀어질수록 친구들은 많아졌고, 그럴수록 속에선 텅비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운동회 당일에 나는, 새로 산 운동화 끈을 조여가며 만발이 준비를 했다. 

1등메달을 따기위해 여태껏 운동장 트랙을 집보다 더 열심히 내달렸다. 



 토너먼트계주.

달리기를 못하는 아이들도 참여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경기.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들만 계주를 하던것을 누구나 계주가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잘하는아이와 못하는 친구를 섞어 팀을 만들었다. 취지는 좋지만, 운동에 목숨건 초등학생은 승부를 지게 만드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미워했다. 하나둘 경기가 펼쳐지고. 공교롭게도 성운이와 나는 다른팀의 마지막주자로 서게되었다. 성운이는 운동을 잘하지못해 체육시간때 항상 깍두기처럼 빠져있었다. 나와 성운이가 바통을 받기위해 서있는 모습을 보고는 아이들은 나의승리를 확신했다.

바통을 주기위해 뛰어오는 주자는 성운이네 팀이 앞섰고, 먼저 바통을 받고는 성운이는 뛰쳐나갔다. 조금 늦은 타이밍에 바통을 이어 받았지만 성운이를 따라잡는 것은 너무나 쉬운일이었다. 바통을 받고는 곧장 뛰쳐나갔다. 몸이 가볍다. 그 짧은시간인데 성운이를 향한 야유가 나의 귀에 들렸고, 이 속도라면 성운이를 앞지리는건 무리없었다. 

그러다 든생각.




성운이를 향한 야유를 이제 그만 듣고싶다.

나에게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할때가 왔다.

야유가 커질 수록 가슴속에서 용기가 올라왔다.

사나이는 부끄러움을 버릴 때가 되었다.








 발에 힘을 실어 성운이의 옆까지 달렸다.

나는 손을 뻗어 앞서가던 성운이의 손을 잡았다. 

열심히 앞만보고 달리던 성운이는 놀라며 나를 처다봤다. 서로의 손이 맞잡아지는 순간 속도는 느려졌다.

발걸음이 느려졌던탓에 3,4등을 하던 팀들이 순식간에 우리 앞을 앞질렀다.

손을 꼬옥 잡고서는 성운이를 잡고 달렸다. 딸려오듯 느릿했던 발걸음이 나와 속도를 맞추어 뛰기 시작했고 같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성운이를 향한 야유가,우리를 향한 야유로 바뀌었지만 그런건 상관하지않는다.

결승선을 통과하자 성운이는 나의 손을 놓고는 아이들 틈으로 사라졌다. 

성운이 뒤를 부지런히 쫓아갔다. 





"황성운!!!!!"


 땀에 젖은 옷들이 자꾸 달라붙는 탓에 발걸음이 느려졌지만 부지런히 따라갔다. 순간 계주 때의 속도는 가짜였던 것인가. 그 사이에 어딜 갔는지 부지런히 뒤를 밟았다. 그러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작은 민들레 홀씨가 하나둘 하늘을날아다녔다. 자연스레 민들레 홀씨쪽으로 걸어갔다. 민들레홀씨가 나올 곳은 한 곳 밖에 없지 않은가. 


 자연실습실. 

서투른 솜씨로 멋있는 척을 했던 곳에서 성운이가 서있었다. 그 곳에 간 이유는 모르지만 가장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곳인 이유도 있고, 나는 그때 너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었다. 아버지의 강요나, 타인의 의지가아닌 나의 의지로 다가갔던 장소.

조심스레 가까이 걸어섰다.

손에 땀이 자꾸 삐져나왔다. 말을 할때, 삑사리가 나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면 어떡하나. 목소리가 떨리면 어떡하나.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침을 꿀꺽삼키고, 인생의 첫고백을 내뱉었다.  



첫고백이자

첫짝사랑이며

첫사랑이었다.











"나, 너 좋아해. 황성운"






나의 대답에 너는 나에게 달려왔다. 

때마침 바람이 몰아치며 눈이 휘날리듯 공간을 휘감는 풍경.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아름답게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와.

나를 향해 눈물을 가득담은채 달려오는 너.

첫고백..


나는 코끝이 짠해지며 눈동자가 붉어졌다. 

사나이는 눈물따위는 흘리면 안되는데..











"바보야. 하성운이야!!"















아. 

실수.











안녕하세요 Z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항상감사합니다 ㅠ


오타수정에 힘쓰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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