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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 선수촌 2

W.대니









“팔 더 뻗어! 그렇게 해서 점수나 따겠어?!”

“네!”

“김용선! 너는 아까부터 자세 계속 틀어지잖아! 정신 안 차릴래?! 어?!”



대부분의 선수들이 상의와 마스크를 갖추고 실전 훈련을 하는 오후 훈련시간이었다. 용선은 코치의 말을 듣자마자 마스크 안에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제보다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 얘가 진짜 주말만 되면 제어를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이런 사태의 원흉인 별이 탓에 용선은 매주 월요일마다 틈만 나면 허리를 두드리기바빴다.

오늘도 마찬가지지만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에는 다른 동료들보다 눈치가 조금 더 보였다. 용선은 그저 이를 악물고 훈련에 집중했다. 하, 오늘따라 미치겠네.

100일이 남았을 때부터 상상을 초월한 강도 높은 훈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른 날에 비해 거친 숨과 땀을 가진 용선이 휴식시간을 가지라는 사인과 동시에 마스크를 급히 벗어냈다. 누가 머리 위에서 물을 짠 것처럼 땀이 미친듯이 쏟아져 내린다. 벽에 기대 앉아 무릎을 세운 자세로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있었다. 용선은 기다렸다는 듯 곁으로 다가온 코치를 간신히 올려다보았다.



“김용선. 가서 물리치료 받고 와.”

“저 아픈데 없어요.”

“다 아니까 갔다 와, 그냥. 내가 지적해 놓고 내가 깜짝 놀라서 아까 삑사리 난 거 못 들었지? 참으면서 하다가 진짜 다치면 큰 일 나니까. 간 김에 무릎도 좀 받고. 너 왼쪽 무릎 계속 흔들린다.”

“…네.”

“하아-. 1층 지나가면서 문별이 멱살대기 하라고 해. 오늘만큼은 문코치 대신 내가 잡아야겠다.”

“…죄송합니다.”



원인이야 어쨌든 컨디션 조절을 못한 제 잘못도 분명하게 있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입을 연 용선이 장비를 옆에 가지런히 벗어놓고 허리를 짚으며 일어섰다. 어깨를 툭 쳐낸 코치가 곧바로 다른 선수들에게 간다. 마지막까지 그의 눈치를 살핀 용선이 2층을 조용히 빠져 나왔다.








* * *

 







“그만. 10분간 휴식.”

 


근 일주일 만에 진지하게 겨루기를 한 별이와 희연이 그만 떨어지라는 코치의 말에 구석진 자리로 향하며 가쁜 호흡을 내뱉었다. 볼펜을 들고 무언가를 바삐 적어 내려가는 코치 뒤로 머리 보호대를 벗으며 흐르는 땀을 닦아내던 별이가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방금 전의 연습 경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 짜증나네.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구석으로 툭 던져진 보호대가 기분을 대신했다.

그런 행동을 눈에 제대로 담은 코치가 답답해하는 별이를 충분히 알아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거리를 두고 옆에 나란히 앉은 희연도 답답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둘은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각자 가진 스타일이 정반대였다. 기회를 노린다는 데에 있어서는 비슷하지만 별이는 주로 앞발로 페이크 모션을 취하면서 거침없는 공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쪽에 가까웠다. 뛰어 차거나 턴을 하면서 차는 공격이 많은데다가 기회다 싶으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회축으로 K.O.를 따내는 플레이 스타일이랄까. 그런 반면에 희연은 주로 공격보다는 들어오는 상대방을 받아치며 포인트를 얻기 위한 공격을 하는 쪽에 가까웠다.

비유가 딱 들어맞진 않지만 쉽게 말해보자면 창과 방패랄까. 날아오르는 족족 빈틈을 노려 점수를 얻어가려는 공격을 하니 발차기가 먹히지 않아서 별이 자식은 답답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함을 선사하는 쉴 틈 없는 거센 공격에 점수를 쉽게 낼 수 없으니 희연이 자식도 답답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둘이 보호대를 차고 제대로 붙는 날이면 매번 발휘하는 실력도 엉망이고, 표정도 좋지 않았다. 지금처럼.



“문별이. 이리 와봐.”

“네.” 



머물러 있던 자리를 벗어나 연습 경기장 한가운데에 의자를 놓았다. 그런 코치의 앞으로 다가간 별이가 허리 뒤에 겹친 두 손을 대고 바로 섰다. 연습경기를 이쪽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는지 옆에선 남자 선수들이 기합소리와 함께 팡, 팡 소리를 내며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별이는 그곳에 시선을 잠시 두었다가 보호대 위로 제 배를 가격하는 주먹에 인상을 찌푸리며 흐트러진 자세를 다잡았다.



“어디 보냐? 어? 너 지금 3개월 남은 거 알지?”

“네.”

“너는 희연이만 만나면 맥을 못 추더라. 올림픽 가면 전국체전같이 그렇게 발차기하는 애들만 나올 거 같지? 올림픽 나오는 애들 다 희연이 같은 애들이야.”

“…네.”

“너 4년 전에 이것 때문에 떨어진 거야, 문별이. 경기 룰이 이런데 계속 네 생각만 고집할래?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경기 안 풀린다고 답답해해서는 자세 흐트러져, 정신 나가, 처음처럼 밀어붙이지도 못해. 넌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리고 자만하지 마. 사람들이 환호해 봤자 심판들이 점수 더 안 줘. 백날 뛰고 날아봤자 희연이 같은 애들이 금메달 따는 거라고. 알아들어?!”

“네.”

“가. 가서 연습해.”



분명 틀린 것 하나 없는 말인데, 정말 현실적인 문제들로 가득한 날이 서려 있는 말을 들으니 어쩔 수 없이 속이 상한다. 별이는 입안으로 제 볼을 꽉 깨물며 샌드백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4년 전, 제 스타일을 버리고 어설프게 점수 위주인 발차기를 하다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점수를 내건, 못 내건 한 번이라도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 생각되면 괜찮은데, 그것마저 안 되면 정말 코치 말대로 호흡부터 멘탈이고, 자세고 다 흐트러져서 몇 년을 희연이 같이 연습한 애들에게는 꼭 마지막에 2, 3점 차로 져버린 다.

아씨. 진짜 몇 년간 뭐한 거냐, 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린 별이가 샌드백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체력이야 단련하면 되는 건데, 진짜 끝까지 발차기 하나 안 먹혔을 때 터지는 유리멘탈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아!!!”



별이는 답답함에 소리를 내지르면서 샌드백을 있는 힘껏 가격했다.

발에 맞은 샌드백이 사방으로 출렁였다. 분노의 발차기에 내심 깜짝 놀란 코치가 희연과 말하다 잠시 멈추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저 성질머리하고는.








* * *

 







“아니, 저, 그 뭐냐. 저기 떡볶이밖에 없었어? 큽-. 떡볶이 나온 거 보고 딱 예상은 했지만.”

“…우리 자랑스러운 금메달리스트, 세계 랭킹 1위 님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비실거려서요.”

“아, 진짜-. 코치님.”

“코치님이라뇨? 선수의 컨디션 난조에 나가서 떡볶이를 사오는 코치님도 있습니까?”

“크킄킄-. 아, 미치겠다. 진짜-.”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다가 우연히 마주친 펜싱팀에 막 섞인 참이었다. 별이의 코치가 떡볶이로 가득한 용선의 식판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곤란한 표정이 떠올랐지만 펜싱팀 코치라는 사람의 놀림도, 큰 소리의 웃음도 멈출 줄을 몰랐다.

빨간 얼굴로 연신 손 부채질을 해보이는 용선에 별이의 코치도 덩달아 소리 내어 웃었다가, 어느 한 사람을 보고 입꼬리를 떨어뜨렸다. 터덜터덜 걸어 온 별이가 그늘이 진 얼굴로 용선의 대각선 자리에 식판을 내려놓는다. 별이의 코치는 한 손으로 심드렁하게 턱을 괴고는 천천히 앉는 별이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왜인지 모르게 흘겨보는 용선의 코치에도 별이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바로 숙이고는 젓가락으로 밥을 휘적거렸다.



“너 잘 만났, 왜, 요?”



장난스레 용선의 일을 따지고자 말을 붙인 용선의 코치가 도중에 말을 끊고 젓가락으로 식판을 툭 치는 별이의 코치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연스레 관심을 돌린 용선도 삐딱한 얼굴에 시선을 갖다 붙였다.

얘 오늘 겁나 혼냈거든. 멘탈 나갔지 뭐.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내용을 전달한 별이의 코치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머리 옆으로 손을 올렸다. 한데 모은 다섯 손가락을 쫙 벌려 터졌다는 모양새를 취하자마자 주위에서 아, 하는 작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금 식판에 눈길을 주는 용선의 코치 옆으로 별이의 코치가 용선을 보며 턱짓으로 별이를 가리켰다.



“미안한데 오늘도 부탁 좀 할게.”



붙어 앉은 사람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였다. 부탁을 해오는 별이의 코치에 용선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레 있는 일이라, 이런 상황은 낯설지가 않았다.

여전히 힘없이 밥알만 휘적거리는 별이였다. 그 옆에서 시선을 주는 희연에 용선이 작게 웃으며 ‘괜찮아.’하고 말을 건넸다.

사실, 힘든 건 희연도 마찬가지일 텐데 매번 이렇게 될 때마다 별이의 눈치를 보는 것이 조금 안쓰러웠다. 일단 별이는 제쳐두고 매번 별이처럼 해야지. 별이에 비해서-, 별이는-, 별이었으면-. 을 듣고 사는 희연인데, 동갑내기랑 비교당하는 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위축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용선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희연도 같이 토닥여주고는 했다.

어쨌든 전부터 이런 상황이 반복됨을 알고 있던 용선은 사실, 별이에게는 좀 미안하게도 별이의 코치에게 별이 다루는 법을 직접 알려준 장본인이었다. 좋은 말로도 충분히 알아듣는 희연과 달리 좋은 말로 타이르면 장난스레 넘겨버리고는 하는 애니까. 혼낼 때는 확실히 털어버려야 한다며, 마치 초등학생 같아서 좋게 말하면 듣질 않는다고. 특히 누군가와 비교할 때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생각을 좀 한다는 용선에 그날 별이의 코치는 여태 어떠한 말을 해도 듣질 않던 별이를 떠올리며 용선의 손을 꽉 붙잡고 고마워서 눈물까지 흘릴 뻔했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문제점만 얘기해도 될 것을 굳이 희연이 이야기를 꺼내는 코치를 알아서, 용선은 오늘은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고민하며 얼마 남지 않은 떡들 중 하나를 콕 찍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먹고 나와요.”



결국 별이는 떠온 밥을 반도 채 먹지 못하고 용선의 앞을 톡톡 치며 먼저 일어섰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자마자 희연과 용선의 코치는 한숨을, 별이의 코치는 무음 처리한 욕을 내뱉었다. 체중 조절을 위해 오늘부터 식단 조절에 들어간 희연도 눈치를 살폈다가 금방 뒤따라 일어섰다. 순식간에 사라진 두 사람에 별이의 코치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휙휙 돌아보았다가 용선에게 말을 건넸다.



“어휴-. 네가 고생이다, 용선아.”

“아니에요. 이럴 때만 조금 의기소침해져서 그렇지 별이 원래 잘 하는 애잖아요. 이럴 때라도 없으면 안 돼요. 별이가 맨날 저 챙겨주는데-.”

“아, 괜히 말했어. 너네 이런 애들이었지, 참. 잊을 뻔했네. 아무튼 재훈아, 30분만 용선이,”

“알았어, 알았어. 딱 30분. 더는 안 돼. 아, 나 진짜 문별이 멱살 두 번 잡을 거야. 우리 금메달리스트를….”



숟가락을 꼭 쥐고 나중을 벼르며 바들바들 떠는 제 코치와 나머지 하나는 뭐냐며 인상을 찌푸리는 별이의 코치를 두고 어색하게 웃어 보인 용선이 빈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가, 가볼게요.

 







* * *

 







상대적으로 훈훈한 열기가 가득했던 식당을 나서자마자 불어오는 찬 바람에 용선이 몸을 한껏 움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앞은 저녁 식사를 마친 선수들로 가득했다. 지퍼를 끝까지 올린 용선이 왁자지껄한 사람들을 피해 옆길로 빠져나와 별이가 있을 만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훈련장이 있는 개선관이나, 숙소가 있는 영광의 집 앞 벤치 둘 중 하나인데. 자율훈련이 있다고 했으니까 개선관으로 갔으려나.

방향을 틀어 멀지 않은 건물로 향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불어오는 칼바람이었다. 용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를 악물었다. 아, 얼굴 시려. 벌써 4월인데 날은 언제 풀리는 거야. 그렇게 덜덜 떨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까, 갑작스레 뒤에서 저를 안아오는 무언가에 깜짝 놀라 몸을 들썩인 용선이 선수촌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소리만 새어나간 것이 아니었다. 선수답게 순발력을 자랑한 용선이 팔꿈치로 뒤에 있는 사람의 배를 가격했다. 이어 재빠르게 뒤돌아 주먹으로 다시 한번 배를 노렸다. 그러나 예상했다는 듯 쉽게 막으면서 손을 잡아 오는 사람이었다. 용선이 벙찐 얼굴로 뒤에 선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알려준 대로 잘 하고 있네-.”

“아-. 나 진짜 놀랬어.”

“그래도 손에 날카로운 거나 나뭇가지는 들고 찌르지 마요. 그럼 최소 살인. 철컹, 철컹.”

“…그 정도는 아니야.”

“밥은 잘 먹었어요? 춥죠?”



밝게 웃으며 제 저지를 벗어 둘러주는 별이에 용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얼굴을 살폈다. 밝게 웃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밝아보이지가 않는다. 모든 곳에 힘이란 것이 없었다. 용선은 제 볼을 감싸 쥐고 살짝 흔드는 별이를 끌어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별아, 얘기 좀 하자.”

“…나 혼난 얘기는 하기 싫은데.”

“나도 하지 마?”

“그건 안 되지. 알았어요. 그럼 저기 앉아서 해요.”



어깨를 끌어안고 천천히 당기는 별이를 살짝 흘겨보았던 것도 잠시, 용선은 먼저 앉는 별이를 따라 나무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앉아서도 여전히 환한 얼굴로 눈을 마주해오며 제 볼을 콕콕 찔러오는 별이였다. 용선은 평소보다 좀 더 심각함을 짐작하며 볼에 닿은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렸다. 기분이 처질수록 안 그런 척 더 밝게 웃는 것을 아니까. 아무 말 없이 눈을 지그시 마주하고 있으니 오히려 찔리는지 이리저리 눈을 피하던 별이가 한숨을 내쉬면서 다른 손으로 나무 벤치를 툭툭 내리친다.



“아-. 모르겠어요. 그냥, 진짜 점수 따는 발차기 같은 거 하기 싫은데 남들은 다 그러니까 이래서 내가 지는 건가 싶고-.”

“응.”

“공격 한 번 안 들어가면 초조해 져서는 정신없이 경기하는 것도 맘에 안 들고.”

“또.”

“코치님이 이렇게 백날 뛰고 날아 봤자 뭐, 날지는 못하지만. 후-. 아아, 몰라. 희연이 같은 애들이 이길 거래요. 나 진짜 근데 그런 겨루기는,”

“문별이.”



도중에 말을 끊고 제 이름을 불러오는 용선에 별이는 ‘응?’하며 다시금 용선을 마주했다. 꽤나 단호하게 불린 이름과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용선의 표정에 별이는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며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평소에는 유들유들하지만 이렇게 조언을 해줄 때의 용선은 너무 단호해서 조금 무섭기까지 하니까.



“그 둘 중에 네가 잘하는 게 뭐야.”

“…백날 뛰는 거요.”

“깎아내리지 말고.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

“알았어요. 점수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요.”

“근데 문제가 뭔데?”

“희연이 같은 애들만 만나면 점수가 안 나잖아요.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했던 것과 반대로 그런 방식을 배워야 하나 생,”



분명 조금 전에 말했는데도 자꾸만 물어오는 용선에 점점 표정을 굳힌 별이가 저도 모르게 말을 빨리하며 목소리를 크게 냈다. 속이 얼마나 타는지도 모르고 오늘따라 제가 좋아하는 거, 잘하는 거를 하면 된다는 이상적인 조언을 하려는 것 같아서 더 속상해지려던 찰나였다. 떨군 고개 밑으로 작은 두 손이 들어왔다. 얼굴을 감싸 쥐고 눈을 마주해오는 용선에 별이가 다시 한번 말을 멈추고 그런 용선을 뚫어지게 보았다.



“내가 방금 말한 문제는 네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물었던 게 아니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말한 거지. 네가 말했듯이 초조해지는 거, 점수가 안 나서 막판에 조급해하는 것만 나아지면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것에서 문제될 게 있어?”

“…아니요.”

“그리고 이건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네가 스타일을 바꾼다 치자. 몇 년 동안 연습한 선수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그 전에 난 미안할 것 같아. 다들 올림픽에 출전하려고 열심히 연습했을 텐데 그런 선수들에 걸맞게 경기에 임하는 것도 아니고 어설픈 실력가지고 경기에 나간다는 게, 그건 예의가 아니잖아. 코치님도 분명 이런 의미로 조언해주셨을 테고.”

“…….”

“별아. 나는 네가 내 애인이라서 자랑스러운 것도 있지만 모두 다 똑같은 경기를 할 때 색다른 경기를 보여주는 네가, 그게 정말 힘든 거라는 거 아는데 심지어 잘 해내고 있는 네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운동을 같이하는 한 명의 선수로서 존경스러워. 그러니까 울려고 하지 말고, 응? 많이 속상했어?”



항상 현실적으로 조언을 해줬던 용선이라서 위로나 달래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전혀. 별이는 마지막 말에 울컥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오후 훈련시간에 있었던 코치의 말에 답답함을 풀지 못하고 한없이 속상했었는데 이렇게 용선의 말을 듣고 있으니 이제야 코치님이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선택의 문제가 아닌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하는 문제였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



“아, 안 울어요. 누구를 울보로 아나-.”

“너 울보 맞잖아-. 그때도, 읍.”



4년 전, 카메라가 있든 말든 눈물을 뚝뚝 떨구던 별이를 떠올리며 놀리려던 참이었다. 별안간 제 얼굴을 감싸 쥐고 진하게 입을 맞췄다가 멀어지는 별이에 용선이 눈을 크게 뜨며 별이를 내리쳤다.



“그러다 본다니까!”

“이래야 더 이상 말을 안 하지.”

“어이구, 그런다고 울보가 읍, 야!”



또 한 번 입을 맞춰오며 ‘와, 계속해봐요. 계속 뽀뽀하게.’하며 씩 웃는 별이에 용선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별이를 있는 힘껏 때려냈다. 그래도 아까보다 한결 나아졌다. 환한 얼굴로 장난을 쳐오는 별이에 다행이다 싶긴 하지만. 초딩도 아니고 진짜! 그렇게 팔뚝을 서너 번 내리치고 있는데 다짜고짜 제 손목을 잡으며 막아선다. 용선이 더욱더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막는다?”

“고마워요.”

“어?”

“사랑한다고.”



다시 한번 입을 맞대온 별이가 아랫입술부터 천천히 머금으며 진득하게 밀고 들어온다. 예상을 벗어난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용선이 이번에야말로 눈을 감고 별이를 차분히 받아들였다.


 






* * *

 

 






코치들이 허락해 준 시간을 듣고 나서 남은 시간에 좀 더 데이트를 즐기고 돌아왔다. 별이는 거의 제한시간에 다다라 용선의 손을 잡고 건물로 들어서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용선의 허리를 매만졌다.

보통 저녁을 먹을 때쯤 해서는 옷도, 얼굴도 땀에 젖은 상태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오늘의 용선은 그러지 않았다. 기분이 안 좋았어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내심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별이는 그 원인이 제게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나서부터 허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이제 괜찮아.”

“그래도. 이러다 진짜 다친다니까?”

“그럼 이따 와서 두드려주든지요.”



용선은 허리에 둘러진 손을 잡고 떼내면서 별이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태권도 훈련장은 1층이면서도 굳이 2층까지 올라와서 데려다 주는 별이에 걱정이 안 될리 없었다. 훈련에 방해가 될까 봐.

그러나 가장 큰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오후부터 제 코치가 별이를 벼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얼른 돌려보내려던 참인데 누군가가 큰소리로 별이의 이름을 불렀다. 화들짝 놀란 용선이 별이와 동시에 그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문별이! 잘 걸렸다!”

“에? 네? 아니, 악, 잠깐만요.”



문을 벌컥 열고 나와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끌어 올리는 용선의 코치에 별이가 영문도 모른 채 그 손목을 붙잡았다가 용선과 코치를 빠르게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려줘야 할 용선도 코치의 분위기를 살피며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별이는 혼자 머리를 열심히 굴려가며 다급하게 용선의 코치를 불렀다.



“옷! 옷 늘어나요!”

“옷? 옷이 문제라 이거지? 너, 이거 안 되겠어.”

“아, 아니. 뭘 말씀해주셔야 저도 멱살을 잡히든가 말든가, 코치님!!”



자율훈련 시간에 있는 교양 교육에 앞서 회의를 한 모양인지 조금 전에 용선의 코치가 나왔던 문으로 마침 제 코치가 나오고 있었다. 도와달라는 신호를 다급하게 보내던 별이가 이어지는 제 코치의 행동에 방금 무엇을 본 건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저를 쓱 보고 무시하는 것 같은, 고개를 저으면서 남의 애인을 위로하듯 어깨를 툭툭 치는 저 행동은 뭐지.



“뭐 좀 기분은 나아졌나 보네. 문별이.”

“네?”

“그냥 잠자코 혼나고 와.”

“네?!”

“어휴-. 내가 다 고개를 못 들겠다 미안해서. 진짜 너 때문에. 기합받고 내려오면 운동장 뛸 줄 알아라.”

“아, 뭔데요?!”

“이따 가서 들어. 내가 다 미안해서, 원.”

“문 코치님. 가려면 빨리 가시죠. 나 오늘 얘 진짜 잡아버리려니까.”

“네-. 맘대로 하세요. 목숨만 붙어있으면 되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 내일 훈련은 하고 싶은데. 코치님? 저 코치님 선수인데?! 코치님! 저 올림픽 국대(……) 애절한 외침에도 제 코치는 귀를 파며 내려간다. 어쩔 수 없이 펜싱 훈련장 안까지 투덜거리며 끌려간 별이가 결국 모든 사실을 전해 들은 후에는 모두가 보는 앞인데도 자진해서 P.T체조까지 해보였다. 후-. 운동장 까짓. 안 쫓겨나서 다행이다.






[02, Epilogue]

 

 




용선의 코치 옆에 딱 붙어 앉아 쪼그려 뛰기를 하는 와중에도 눈으로는 몸을 풀고 있는 용선을 쫓던 별이가 용선의 코치를 향해 입을 열었다.



“후-. 코치, 님. 오늘 되게 장인어른, 같으시네요.”

“알면 우리 용선이 좀 내버려둬라. 한창 훈련할 시기에 애가 너 때문에 끌려 다니잖아.”

“넵. 죄송합니다. 코치님. 근데 장인어른, 같으신 게 아니고, 후아-. 그냥 장인어른이시네요. 하긴 저희 코치님도 뭐, 같은 성이라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첫사랑에 성공했으면 성도 그렇고 딱 너 같은 자식이 있을 거라고 했,”

“…태성이가 그랬구나. 어이고야, 첫사랑이 나라고 그렇게 우기더니. 뻔뻔한 새끼였네?”

“…아, 제가 말한 건 비밀로 좀.”

“일단 머리 박아.”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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