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아너드 소설 The Corroded Man의 Interlude 챕터 번역
* 의역 및 오역, 번역체 주의



던월 탑

1845년, 비의 달 두 번째 날

“적을 알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매일 도전에 직면해야 하며 모든 순간을 기회로 여겨야 한다. 한계를 탐색하고 넘어서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다음에 올 것을 마주할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 더 낫게 죽는 방법

암살자의 서적 중 남은 일부

작자 미상




  에밀리 칼드윈 황제는 알현실로 들어오던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알현실은 거대하고 길었으며 만인의 수도원에 있는 중앙 홀처럼 아치형의 구조를 하고 있었고, 제국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전 지역에서 올라온 공예품들이 담긴 진열장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심지어 한 진열장에는 불에 타고 남은 것처럼 보이는, 작고 검은 유목(流木) 조각 하나까지 담겨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쉽게 부서질 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아마도 팬디시아 대륙의 유물 같았다. 에밀리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현실 끝 붉은 카펫이 깔린 연단 위, 은으로 만들어진 왕좌로 반쯤 걸어가다 멈춰섰다. 제국 의회는 현재 개회중이지 않았고, 황제가 된 지 여덟 해가 지났음에도 그녀는 이 방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방은 너무나-지나치게 장엄했다. 황제로서의 삶을 받아들였을지라도 왕좌의 부드러운 가죽에 파묻힌 채 그녀의 군도, 그녀의 도시, 그녀의 국민들을 생각없이 다스리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바깥에 나가 국민들을 실제로 만나볼 수만 있다면. 대섭정의 지배 이후 던월을 재건하려 애쓰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아마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보호자이자 조신(朝臣)의 주의깊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말이다. 그녀의 아버지, 호국경의 시선으로부터. 오늘은 그녀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변화를 원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열여덟 살은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선 채 발로 바닥을 툭툭 찼다. 지금 그녀는 요청을 받고 이곳에 와 있었다. 도시경비대장이 급한 일로 알현을 청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현실은 여태껏... 비어 있었다. 

  경비대장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분명 다른 무언가가 더 있었다.

  알현실은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경계 하에 있었고, 알현실 밖에는 두 명의 호위가 경비를 서고 있다가 황제에게 경례하며 문을 열어주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무 중이어야 할 그 둘은 자리에 없었다. 문은 닫혀 있었고, 에밀리는 혼자였다. 

  뒷목의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섰다. 그녀는 자신이 감지한 것을 마주할 준비를 하면서, 주먹을 쥐고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뒤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돌아섰다. 

  알현실의 한쪽 벽에 모아져 있던 두꺼운 커튼 뒤에서 두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부조화스러운 갈색 가죽옷을 입고 있었고, 상의 위에는 벨트를 가로질러 매고 있었다. 후드를 쓰고, 검은 천으로 된 마스크를 동여매 얼굴을 가린 채였다. 

  그들은 황제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어깨를 돌리며 천천히 접근했다. 비무장인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둘 중 한 명은 주먹에서 요란하게 우두둑 소리를 냈다.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고 에밀리는 왕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왕좌 뒤에서 같은 복장을 한 두 명의 남자가 더 걸어나왔다. 

  네 명의 남자, 네 명의 침입자. 단 하나의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온 자객들이었다.

  에밀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사방에서 접근해 오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갈 곳이 없었다. 

  도망칠 곳도 없었다.

  에밀리는 혼자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싸우는 것 뿐이었다.       



  코르보는 발치에 쓰러진 몸뚱이를 발로 차고는 알현실을 살폈다. 바닥에는 세 명이 더 뻗어 있었다. 피가 흥건했지만 모두 숨은 붙어 있었다. 정신이 들면 제법 몸이 쑤실 것이다. 

  에밀리는 왕좌의 끄트머리에 앉아, 코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멎게 하기 위해 천 조각을 댄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코르보는 황제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

  “놀랍구나.” 그가 말했다. “아주 잘 했어. 자랑스러워해야겠는걸.”

  “내게 필요한 건,” 에밀리가 말했다. “충분한 온욕과 연고, 그리고 대체 어떻게 암살자 무리가 던월 탑 뿐 아니라 알현실까지 칩입했는지에 대한 호국경의 설명입니다.”

  코르보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을 등 뒤로 맞잡고, 신음하는 자객 위를 조심스럽게 넘어 왕좌 쪽으로 걸어왔다.

  “용병입니다.” 그가 말했다. “암살자가 아닙니다. 전반적으로 고려하면, 꽤나 실력이 좋더군요.”

  에밀리는 혼란스러움으로 이마를 찌푸리면서, 얼굴에서 천 조각을 치웠다. 그녀가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이 자들의 실력이 좋았다고요?”

  “그렇습니다. 상당히.” 코르보는 아랫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10점 중에 7점은 될까요? 코는 어떠십니까?” 

  “아프고, 부러진 것 같아요.”

  코르보가 끄덕였다. “그럼 10점 중에 8점이군요.”

  “잠깐,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거에요?” 에밀리는 일어나 천천히 연단을 내려왔다. 

  코르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폐하?” 아무 것도 모르는 체 하며 그가 말했다.

  에밀리는 주먹을 말아쥐고는 코르보의 가슴에 꽂아넣었다. 그가 살짝 뒤로 비틀거리더니 기침을 했다. 

  그래. 그래도 싸지. 

  에밀리는 발치에 쓰러져 있는 용병 중 한 명을 걷어찼다.    

  “당신이 보낸 거지!”

  그녀가 코르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결백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밀리의 눈가가 분노로 경련했다. 

  “뭐야, 이게 무슨 시험이기라도 해요?” 그녀가 물었다. “시험이랍시고 날 죽이라고 용병 패거리를 보냈다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요, 폐하.” 코르보가 말했다. “하지만 호국경 휘하의 부서는 이 일과 전혀 무관하며, 무어라 설명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이...이...” 에밀리가 씩씩거리고는, 고함을 지르며 가장 가까이 있는 용병에게 다시 한 번 발길질을 했다. 그 불쌍한 자는 신음하며 나가떨어졌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고!”

  코르보가 미소지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에밀리는 뒤로 돌아서서,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불만에 찬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다시 코르보를 돌아보았다. 

  “당신은 미쳤어!”

  “그리고 폐하께서는 아주, 아주 잘 하셨습니다. 그걸 잊지 마십시오.”

  에밀리는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소리치려 입을 벌렸다가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아주 살짝. 

  “잘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자기 주위에 벌어진 참상을 훑어보았다. “그런 것 같네요. 그렇죠?”

  코르보가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문으로 다가가며 그가 어깨 너머로 크게 말했다.

  “도시경비대장에게 말해 정리를 도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그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 그리고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폐하.”

  그가 등 뒤로 알현실의 문을 닫았다. 에밀리는 문을 응시했다. 혼란스러웠고, 아팠고, 코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알현실 바닥에는 의식을 잃은 네 명의 남자가 드러누워 있었다. 

  그래, 그녀는 잘 해냈다. 그렇지 않았나?

  씩 웃으며, 에밀리는 길게 온욕을 하기 위해 사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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