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켜진 창문 옆에 향이 타고 있었다. 생존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야남 사람들의 냉대에 다시는 그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오르골 소리에 마음이 끌려 창문을 두드리고 말았다.

"누구세요? 그 냄새는.. 사냥꾼이신가요?"

소녀의 목소리다. 이제 겨우 10살쯤 되었을까?

"네 말이 맞아. 난 사냥꾼이야."

소녀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대답하려 했다.

"그렇다면 저희 엄마를 찾아주시지 않겠어요? 부탁이에요. 아빠가 사냥에 나가서 돌아오질 않아서 엄마가 아빠를 찾으러 나갔는데 두 분 다 돌아오질 않으세요.. 난 지금 혼자 있어요. 너무 무서워요."

이런 버려진 도시에 부모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홀로 집에 남겨진 아이라니, 운명이란 얼마나 가혹한가.

"그래, 알았어. 찾아보도록 할게."

"정말인가요? 고마워요!"

"네 어머니는 어떻게 생겼니? 복장이라든지, 특징 같은 걸 알려주면 찾을 때 도움이 될 텐데."

"어.. 우리 엄마는.."

소녀는 엄마의 생김새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는지 한참의 시간이 걸려 겨우 말을 이었다.

"엄마는 붉은 보석 브로치를 가지고 있어요. 아주 크고 예쁜 브로치니까.. 언니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걸 잊을 뻔했네요. 엄마를 찾으면 이 오르골을 건네주세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준답니다. 아빠가 우리를 잊었다면 이걸 틀어서 기억나게 해주세요. 엄마도 참, 이걸 잊고 가다니."

소녀가 건네준 작은 오르골을 열어보았다. 창밖으로 들려오던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뚜껑의 안쪽에는 바랜 종이가 발라져 있었다. 희미해져 읽기 어려웠지만, 사랑하는 개스코인, 항상 안전하기를. 당신의 비올라. 라고 적혀있는 것 같았다. 비올라와 개스코인은 아마 저 소녀의 부모의 이름일 것이다. 개스코인,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들어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부탁해요, 사냥꾼 언니. 언니라면 저희 엄마를 찾아주실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소녀에게 다시 한 번 엄마를 찾겠다고 약속하며, 수로로 돌아갔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다시 한 번 더 사다리를 타고 수로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시체 썩은 내가 훨씬 더 강하게 풍겨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횃불을 켜자 눈앞에 이상한 생물체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거리를 두고 찬찬히 살펴보니 생물체는 한때 인간이었던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었던 부분은 퀭한 눈구멍을 통해 썩어 문드러진 살점이 진흙처럼 흘러내리고 있었고, 뼈만 남은 팔은 무엇인가를 찾는 듯 허우적대고 있다. 허리 아래로는 전부 다 썩거나 녹아 없어진 것 같아 팔과 배였던 부분을 이용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인간도 야수도 아닌 그 무엇. 살아있는 자라고도 망자라고도 할 수 없는 그 경계에 걸려 있는 저주받은 생물체들은 어떻게 여기에 버려졌을까. 하역장 구석구석에 보이는 쇠사슬로 묶인 관을 떠올려보면, 야남 사람들은 이 수로를 통해 시체를 떠내려 보내는 수장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자비조차 받지 못한 불행한 존재들. 그 존재들이 나를 발견하고 내가 방금 내려온 사다리를 향해 스멀스멀 기어오기 시작했다. 왼손에 든 횃불로 발밑을 비추며 그것들을 피해 보려 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저 느리게 뻗는 손이 내 발목을 잡고 당기기라도 한다면, 이 시궁창에 넘어져 질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하지만 톱단창은 이 시체 아닌 시체 같은 것들에게는 별로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들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계속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나기만 하다 보니 등 뒤에 내가 내려왔던 사다리가 닿았다. 한 녀석이 내 왼발목을 움켜쥐려고 시커먼 뼈 같은 팔을 휘두를 때, 재빨리 몸을 피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저 길을 지나지 않으면 성당 구역으로 갈 수가 없는데, 저 녀석들을 처리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놈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려 사다리 아래로 몸을 기울이다가 그만 손이 미끄러지며 횃불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횃불이 사다리 아래까지 기어온 한 녀석 위로 떨어지면서 불이 옮겨붙는 게 보였다. 톱단창에 맞을 때와는 다르게 꾸웨에엑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그 녀석이 발버둥 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 녀석들은 불에 약하다.

기름병과 화염병을 꺼내 들고 사다리 아래를 자세히 살폈다. 횃불이 다 꺼지기 전에 조심스레 그 녀석들이 모여있는 중심을 겨냥하여 힘차게 기름병을 던졌다. 파삭하며 기름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화염병을 집어 던졌다. 기름 덕분에 불길이 크게 치솟아 오르며 시커먼 연기가 수로를 메우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듯한 연기와 냄새가 퍼져갔지만 사냥복의 마스크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내려온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니 오른쪽에는 또 다른 올라가는 사다리가 보이고, 정면으로는 수로가 계속 이어져 있었다. 올라가기 전 다른 길은 없는지 확인하려 걸어가보니 조금 넓은 공간이 나왔다. 거기엔 얼굴이 심하게 훼손돼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두 구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사냥복을 입고 목에 톱 사냥꾼의 증표를 걸고 있었다. 사냥꾼의 시체. 근처에 야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살피니 바로 옆에 짐마차 만한 돼지처럼 생긴 생물이 저 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돼지는 성인의 얼굴만 한 콧구멍에서 콧김을 뿜어내며 나를 향해 돌진하려는 듯 뒷다리에 체중을 싣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는 곳까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돼지 같은 생물이 쫓아오는 육중한 발소리가 내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쿵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발밑이 흔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돼지가 몸을 날려 나를 덮치려 했던 모양이다. 나와 몇 센티미터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네 발을 뻗고 바닥에 주저앉은 돼지는 더욱 화가 난 듯 나를 노려보며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께에에엑하는 흉악한 소리를 뒤로하며 재빨리 사다리까지 뛰어가 몇 미터는 되는 긴 사다리를 타고 단숨에 지상으로 올라왔다.


#소설 #블러드본 #팬픽 #2차창작 #블본 #bloodborne



전업 글쟁이를 꿈꿨던, 전업 글쟁이는 포기했지만, 글은 포기하지 않은.

펭곰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