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커크 때문에 하루를 살아나간다


9. 스팍이 사라진 것은 다섯달 전이었다. 맥코이는 그 일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커크 역시 그만큼이나 분명히 사건을 인지하고 있을 터였다. 여느날 처럼 엔터프라이즈는 탐사를 지속하고 있었고, 커크는 함교에서 거대한 함선을 이끌어내고 있었으며, 맥코이는 그런 그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짐 커크는 언제나 시리게 빛났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있는 사실과도 같은 현상은 치프 메디컬 오피서를 메디베이가 아닌 함교에 나돌아다니게 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  

  단정하게 빗어넘긴 금발이 함교의 선원들에게 향하는 고갯짓을 따라 흘러내릴때 마다 맥코이는 몰래 손에 힘을 주어 늘 무언가를 참아넘겼다. 일정한 질량 이상의 항성과 행성은 중력을 가진다. 레너드 맥코이는 이제는 너무나 진부해진 표현을 사용해야만 제임스 커크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시인할 수 있다. 커크는 가끔 '우리 CMO는 너무 상냥하네. 메디베이도 다 비우고 이렇게 날 맨투맨으로 마크하고 있고. 이건 직무태만이야, 아님 내가 그렇게 좋은거야?' 하고 맥코이를 놀려먹기 바빴으나 그는 이 질문에 이어지는 답을 단 한번도 제대로 내놓은 적이 없었다. 그와 커크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이 너무 강해지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지나칠 정도의 신경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맥코이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곁에 서서 함장의 지시를 받는 스팍을 지켜본다. 한 때 서로를 견뎌하지 못했던 두 개체는 이제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것으로 변모했고 더 어쩔수 있는 것이 없었다. 때때로 맥코이는 과거의 행동들을 되짚어보며 뭐라도 달라졌을까,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한다.
 
  그 날도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M급 행성을 만나고, 또 크루들이 탐사를 위해 하선하고, 그의 함장과 일등항해사는 나란히 탐사팀에 합류했으며 우주를 혐오하는 맥코이가 함교의 한 축에 서서 이 모든 것들을 후회하면서 관조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던 사건은 모든 것이 매듭지어질 무렵에 크게 뒤틀렸다. 일이 있었고, 전력이 부족해 한번에 여러사람을 전송시키기 힘들었던 함선에서는 자연스레 함장을 먼저 조준해 전송실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커크가 전송되자마자 뒤이어 조준되던 스팍은 이온화 되자마자 아무 흔적도, 자취도, 어떤 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것이다.

  맥코이는 커크가 눈을 홉뜬 채 트랜스포트 패널 위에 서서 스팍이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만을 한참 보던 것을 기억한다. 예전의 스팍이 그러했듯이 분노를 사방으로 쏟아내고 날뛸 것이라 예상했던 대부분의 크루와 달리 커크는 아주 조용했다. 그의 호흡은 느리고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했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마냥 그의 흉곽은 아주 미진한 상승과 하강만을 반복했다.
 
  다른 크루들이 스팍을 도로 물질화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에도, 그 작업이 점차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치달아가던 때도 커크는 그 자리에서 나오지 않았다. 맥코이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마치 석상이라도 될 것 같았던 커크는 자연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함교로 돌아갔고, 자신의 쿼터로 돌아갔고, 다시 함교로 나왔다. 맥코이는 억지로 버텨내고 있는 것 같은 커크의 모습을 보며 위성처럼 줄곧 맴돌았다. 짐 커크는 함장이었으나 동시에 한없이 정에 무른 사람이었다. 이름정도만 겨우 인지하고 있던 선원에게 무슨일이 생겨도 생살이 베어져 나간 듯이 슬퍼하는 남자에게 다른 이도 아니고 스팍이 사라진 것은 어떤 돌발상황의 원인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결국 스팍을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말에 커크는 타인이 기대하는 그 정량만큼 슬퍼했다. 맥코이가 굳이 이런 표현을 사용해가며 그 때를 떠올리는 이유는 정말로 그의 슬픔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선에서 마무리 지어졌기 때문이다. 스팍의 추도식에서 보인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함장다운 처신이었다고 평했으나 그를 아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나 가장 오래 그를 봐왔던 맥코이는 그 장식같은 초연함에서 숨길 수 없는 어색함을 느꼈다. 궁여지책으로 몇번의 술자리를 함께하며 그에게 어떤 반응을 유도해보려고 했으나 커크는 힘없이 웃으며 위스키를 천천히 입안으로 머금었다. 좋은 술이야. 스팍은 싫어했겠지만. 술기운을 빌려 나오는 말이라는 것도 겨우 이 정도다. 늘 정량 이상의 슬픔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보며 그는 그 둑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으나 다시 함선에 올라 지휘할 때도 커크의 태도는 이전과 크게 바뀌지 않았고 점차 크루들은 그 의아한 광경에 익숙해졌다. 이윽고 그 마저 우려를 한시름 덜어두고 모든게 다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그 무렵에, 커크는 널려있는 각성제 통과 함께 자신의 쿼터에서 발견되었다. 잔뜩 충혈된 흰자에 싸인 곤한 푸른색의 홍채가 서서히 꺼져가는 항성의 빛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레너드 맥코이는 기실 단 한번도 그 커크가 긴 악몽에서 깨어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했다.   



쩜오 위주의 잡덕

회천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