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꾼 꿈을 3월에 작성하다 잊고, 11월인 오늘 마무리 짓게 되었다.


친구가 나오는 꿈을 꿨던 적이 있다. 그 꿈에서 친구는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발길 가는 대로 인생을 배움으로 채우고 있었다. 비록 꿈일지라도 친구를 며칠 집에서 재워주며 수많은 것을 느꼈다. 짧은 잠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온몸이 흉터와 멍으로 가득했던 꿈속의 친구는 굴곡지더라도 인생의 의미에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꿈속에서 얘기를 나누며 나는 친구의 등에서 솟아오른 한 쌍의 거대한 날개를 바라보며 (꿈속에서조차) 묶여 있는 나를 동정했다. 물론 모든 것은 꿈이며 나의 무의식이었다. 나는 무엇을 원해 친구에게 날개를 달아 자유로운 인생을 선물한 것일까. 그때 친구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과 나눴던 대화는 꿈일지라도 잊지 못한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고 내 가슴에 응어리지어 어떤 이상을 향할 욕구로 남을 것이다. 동경심과 현생에 대한 불만은 나를 제자리에 주저앉게 한다. 눈에 보이는 이상을 더 멀게 만들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간접적으로 보인 내 희망은 나를 이곳에 꽁꽁 묶어둘 뿐이다.

언젠가 친구가 나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꿈속에서 친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을 하며 인생을 배움으로 채우고 있었다. 꿈 속의 어느 날 친구를 우리 집에서 며칠 재워주게 되었다.

3월에 꿨던 꿈을 11월에 마무리 하자니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별이 빛나던 한밤중 아파트 옥상에 걸터앉아 그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던 그 장면만은 선명하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친구가 너무나 부러웠다. 다시 꿈과 배움을 찾아 나아가겠다는 그 친구의 각오와 결심이 한없이 멋있어 보였다 부러웠다. 꿈 속의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친구를 보며 느끼는 일종의 선망과 동경 탓이었을까? 아니면 어떠한 질투 때문이었을까.

 꿈을 꾼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그 장면이 기억난다. 부러웠으니까. 질투 났으니까. 꿈속의 그 친구는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으니까.

 물론 현실과 꿈속의 그 친구는 매우 다를 것이다. 하지만 꿈속의 그 친구가 행복하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루며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Photo by Benjamin Davi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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