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꺽. 누구 것인지 모를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이죠 배구부실 내에는 어울리지 않게 비장한 정적이 돌았다. 쿠니미는 단언컨대, 경기 전이 아니고서야 이런 분위기가 몇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날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놀랄까?”

“글쎄….”

“솔직히 우리끼리 머리 맞대봤자 이렇다 할 좋은 건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와타리의 말을 듣고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 사실이 못내 서글펐다. 그나마 이런 일에 센스 있을 만한 사람이 생일 당사자라서 더 문제다.


“그나저나 눈치채지 않을까요?”

“음, 오늘 쉬는 날이라서 아마 큰 신경 안 쓸걸. 오늘은 체육관 문 닫는 거로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은근 이런 데에는 둔해서 괜찮아.”


맞아, 맞아. 눈치는 빨라도 자기 일에는 둔하단 말이야, 그 녀석. 3학년들이 입 모아서 흉 아닌 듯 흉을 보기 시작한다. 애정 어린 말이라는 걸 알기에, 쿠니미도 살짝 한두 마디 얹었다. 우유 크림이 잔뜩 올려진 케이크에 조심스럽게 초를 꽂던 킨다이치만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가장 좋은 건 모르는 척하고 나중에 축하해주는 건데.”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잖아요.”


쿠니미는 킨다이치가 꽂은 초의 옆에 배구공 모양의 쿠키를 얹으며 말했다.


학교의 유명인사―눈앞의 잡지 표지처럼 보란 듯 브이 자를 치켜들며 자랑할 모습 때문에라도 절대 입 밖에는 내지 않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인 걸 증명하듯, 그의 생일날에는 아침부터 떠들썩하곤 했다. 물론 평소라고 그의 주변이 조용한 건 아니었지만,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선물을 전할 수 있는 기념일인 만큼 더욱 심했다. 그것이 그만을 위해 특별한 날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그나마 지금은 3학년이라 다행이지, 선배들 있었을 때는 장난 아니었어.”


그의 주변에서 사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질색하는 쿠니미 옆에서 하나마키가 진저리치며 말했다. 고작 2살 차이라고 해도, 1학년 후배가 3학년 선배를 넘보고 선물 주는 건 썩 쉽지마는 않은 일이다. 하다못해 쿠니미 자신도 같은 배구부원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진 못했을 테니까. 물론 배구부원이 아니라면 이만큼 존경할 일도 없겠지마는.


그와는 반대로 선배가 후배의 생일을 챙기는 일이 더 수월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를 싫어하는 그의 성격상, 선배들이 부르는 걸 무시하지 못했을 테니, 아마도 그는 아침부터 끝날 때까지 불려 나가거나 매 쉬는 시간마다 반에서 축하받느라 정신없었을 게 분명했다.


“물론 그만큼 아니꼬와 하는 녀석들도 많았지만, 어쩌겠냐. 인기가 많은걸.”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뿌듯함이 깃든 듯한 목소리로 이와이즈미가 말했다.


“덕분에 저희만 곤란하지만요.”


누가 오는지 망을 보던 야하바가 고개를 살짝 돌려 궁시렁거렸다.


처음에는 오늘을 위해 당사자만 빼고 만든 단체 라인방에서도 그의 생일을 모르는 척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저 정도의 소란 속에서 모른 체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항상 선물과 함께 축하 인사를 건넸는데. 오늘은 마침 월요일인만큼 무언가를 크게 해보자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했다. 아마 당장 월요일만 아니었어도 생일 축하보다는 배구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거였다.


생일이라고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하다마는, 어찌됐든 누가 뭐라 해도 주장이었다. 월요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배구 바보라는 사람도 쉬는 날이니, 아주 제격이었다.


결국 효율을 높이기 위해 쉬는 날인 월요일, 한적해야 하는 배구부실에 다같이 모여 지금의 사태―쿠니미는 이 현상을 사태라는 단어 말고는 적당한 표현이 없다고 생각했다.―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 노래도 부를 거야?”


선물을 포장하던 하나마키가 자신의 생일인마냥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하고 싶은 사람만 부르죠.”


그래놓고 쿠니미는 노래를 부르게 될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아무튼, 대망의 오이카와 토오루의 생일이 다가왔다.




*




“다녀왔습니다~.”


오이카와는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인사하며 들어섰다. 독립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건만, 고요하고 서늘하기만 한 집에는 아직도 영 적응이 되질 않는다. 배구를 시작한 이후로는 거의 매일을 팀원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질 틈이 없기도 한 탓이다.


특히나, 오늘같이 떠들썩한 하루를 보낸 날에는 공허함이 더 크게 찾아왔다. 생일 축하한다며 이팀 저팀과 인사를 주고받고, 고맙게도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과 소통도 하고, 어딜 가나 축하한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오늘 같은 날. 집에 돌아 와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면, 정반대의 분위기가 여느 때보다 사무치게 다가왔다.


“그때는 진짜 재밌었는데.”


이제는 다같이 모여 술안주 삼으며 떠들어 댈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은 사건이지만, 오이카와는 이맘때만 되면 세이죠 시절의 생일을 잊지 못했다. 특히 고교 마지막 생일 때의 소란을. 매해 거한 축하를 받곤 했지만, 그 해는 월요일인데도 부원들과 함께 했던 날이라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한들, 세이죠의 모두가 자신의 생일을 알아야 한다는 건방진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적어도 당일 그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모르는 게 더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 항상 함께 하는 부원들이은 자신의 생일을 모를 리 없었다.


아침부터 장난치며 선물이랍시고 우유빵을 던져주거나 생일빵이라는 짖궂은 장난을 쳤던 3학년 친구들이나, 누군가의 입김이 있었는지 어색하게나마 고개를 꾸벅이고 가는 쿄타니와 옆에서 박장대소하며 인사하고 가는 2학년들, 또 급식실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 어정쩡하게 인사하는 1학년들까지.


교내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부원들의 축하는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생일에 큰 의의를 두는 편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날의 자신은 배구부가 쉬는 날인만큼 학교가 끝나고 곧장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자신의 생일이라는 명분으로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좋을 타케루를 데리고 집에 가서,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면 그날의 일과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부원들의 축하도 받을만큼 받았겠다, 이쯤에선 집에 가도 되지 싶었다.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아침부터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부원들을 모르는 척하기도 참 힘들었었지. 그에 더해, 무언가를 더 숨기고 있는 듯해 보이기는 했었지만, 도통 모르겠어서 언젠가는 말해줄 거라 생각해 집으로 가려던 찰나였다.



RRR-



“어, 여보세요?”

― 어디야?

“집이지~. 이와쨩은? 참, 일은 어때?”


그날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이와이즈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여튼 양반은 못 된다니까.


― 늘 그렇지, 뭐. 넌 뭐 하고 있어.

“아~ 오랜만에 또 옛날 생각 좀 하고 있었지. 이와쨩, 세이죠에서 오이카와 씨 생일 파티 했던 거 기억나?”

― 넌 아직도 그 이야기냐.


징그럽다는 듯 말하지만, 이와이즈미도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웃기긴 한지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들렸다.


“당연하지, 엄청 재밌었는걸! 이와쨩도 웃겼는데.”

― 그럼 잠깐 전화 좀 끊어 봐.


응? 이와쨩? 여보세요? 자기가 걸어놓고 전화를 끊으라는 궤변에 어이가 없어 여러 번 불러봤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해야 하나?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어 핸드폰만 들고 액정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이와이즈미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낯간지럽게 영상통화를 하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상통화를 수락하자,


“이와쨩? 무슨 일….”

― 오이카와! 생일 축하한다~

― 선배, 오늘은 뭐 받으셨어요? 이번에는 자랑 안 해줄 거예요?

― 너 생일이라고 우유빵만 받은 건 아니지?


방금 전까지 머릿속에만 그렸던 모습이 화면 가득히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여전했다. 


“뭐야…. 오이카와 씨 빼고 만난 거야!?”

― 무슨 소리야, 너도 이제 올 거니까 널 빼고 만난 건 아니지~.

― 맞아요, 주장! 빨리 나오세요! 일부러 선배랑 가까운 곳으로 약속 장소 잡았으니까 무조건 나오기!

― 안 나오면 이 술값, 네가 다 내야 한다.

“어차피 내가 가도 내가 사야하잖아!”

― 정답! 그래도 같이 먹고 마신 걸 내는 게 낫잖아~. 빨리 나와!


왁자지껄 정신 없는 전화를 겨우 끊고, 오이카와는 외출 준비에 나섰다. 막무가내의 통보 전화에도 싫지마는 않았다. 정말, 약속 있으면 어쩔 뻔했어. 고개를 절레 저었지만, 아마 그들은 자신이 일정을 끝내면 약속 없이 집에 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부활동이 없는 월요일에는 항상 타케루한테 가는 자신을 알면서도, 이와이즈미가 체육관으로 자신을 이끌었다. 타케루를 데리고 가는 것 외에 약속이 없는 걸 알고 한 행동이었다.


솔직히 이때까지도 무슨 일 때문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축하는 이미 오전에 다 받았으니까. 그저 어렴풋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눈치챘으니, 이제야 말하려나 싶을 뿐이었다.


“체육관에는 왜? 오늘 쉬는 날이잖아.”

“아… 음… 그… 아, 너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이와이즈미는 정말 서프라이즈에 미숙했다. 저한테 무언가를 잘못하지 않은 이상―물론 그런 날도 많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차라리 그런 역할은 맛층한테 맡기지.


이와이즈미의 어색한 연기와 함께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랫소리와 함께 케이크를 들고 있던 부원들이 보였다. 정확히 맞추진 않았는지 뒤섞인 노랫소리가 오히려 그들과 어울려서 오이카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거에 익숙지 않을 사람들이 모여 만든 아주 단순한 파티였지만, 이렇게까지 준비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이라도 그들이 해줘서 더 기뻤던 것도 있고. 그때만 해도 여유가 없었으니까.


체육관 곳곳 청소하기 힘들 정도―결국 생일인 자신도 함께 치웠다.―로 꾸민 장식이라던가, 제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죄 꽂아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도 없는 케이크와 왠일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까지. 어울리지 않게 나름 정성을 다해 저를 위해 준비했을 거라는 사실이 더 와닿아서, 세이죠에서의 잊지 못한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


아마 오늘도 마찬가지겠지. 정신없던 파티는 그때가 처음이자 끝이었지만, 언제나 누군가의 생일에는 항상 이것저것 꽂은 케이크가 빠지지 않았다. 액정 속 언뜻 보인 상자에는 분명 요상한 장식이 가득한 케이크가 들어있을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랜만에 떠들썩한 파티가 될 것을 예상하며, 오이카와는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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