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지식이 많이 모자랍니다

*징그러운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종교나 직업군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정년을 오 년 앞둔 이 형사는 어떻게 하면 적당히 지내다가 그만두느냐가 제일 큰 고민이다. 그다음 고민은, 대학 졸업을 앞둔 무남독녀 외동딸의 진로 문제다. 이 형사 젊을 때만 하더라도 거짓말 좀 보태서 대학 졸업하면 취직은 그냥 따라오는거였는데 요즘은 그게 아닌지, 반백수인 딸이 매일 서로 출근하는 이 형사보다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다. 그래도 꼬박꼬박 볼 때마다 말은 한다.


“해지기 전에 재깍재깍 집에 들어와, 요즘 얼마나 흉흉한데!”


딸은 질겁을 하면서 아, 알아서 할게! 라고 하지만 이 형사는 늘 진심이었다. 이 형사의 생김새만큼 흉흉한 일들은 당연히 형사라면 따라오는 거겠지만, 요즘은 진짜로 흉흉 그 자체였다.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다섯 건의 강력범죄로 그의 퇴근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서울역에서 까마귀 떼가 집단 자살을 해 서울의 모든 공무원들이 골을 싸매고 있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한 신부와 동행인 주변으로 까마귀가 집단 자살을 했다면서 크게 이슈가 되고 있었다. 인력으로 차출당한 옆자리 김 형사의 말을 들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데다가 무엇보다 강력 용의자로 보이는 둘의 짐가방을 낱낱이 뒤지고 그 둘의 인적 사항을 둘러봐도 너무 평범했다는 거였다. 이 형사도 꽤나 이슈가 된 사건이라 김 형사의 자료를 들춰봤는데 그 둘의 생김새가 반반한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평범한 정도였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주변으로 머리를 박고 죽어간 까마귀라니.

항간에는 전자파가 조종을 한 거다, 누군가의 저주다, 수도를 옮겨야 한다까지 말이 도는데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이런 문제에 어떻게 답을 내리나. 한낱 인간들이. 정년을 앞둔 형사는 꽤 염세적인 생각에 빠졌다.

팀 앞으로 배정된 사건들이 이 형사의 탈모에 한몫 했다. 20대 초반의 남성이 상반신 전체가 난도질당한 채로 방치 후 과다출혈로 죽은 사건이 한 달 만에 다섯 건이었다. 네 번째 까지는 관할 구역이 아슬아슬하게 아니었는데, 이 좁은 서울 바닥에 다섯 번째 피해자는 이 형사의 관할구역이었다. 24살의 대학생이 무슨 원한을 졌길래 그렇게 난도질을 당해 쓰레기통 옆에 버려졌는지 모르겠는데다가 피해자가 하필 이 형사의 딸 또래였다. 퇴근하는 길에 딸한테 카톡을 보낸다.


‘해지기 전에 들어와라.’


이 형사의 그런 카톡을 받은 이 형사의 고명딸 그녀는 짜증이 났다. 아 알아서 간다니까 이 아저씨가... 상태바로만 확인을 한 채로 다시 잠금 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죽였다. 펼쳐놓은 인적성 문제집에 줄줄이 빨간 비가 내리는데 지금 해 지기 전에 들어가겠냐고. 속으로 작게 투덜거리고는 다시 문제풀이를 했다. 올해는 꼭 뭐라도 돼서 이번 설에 엄마 아빠, 기 펴게 해주고 싶었다.



문제집에 파묻었던 고개를 드니 이미 주위가 한산했다. 도서관에서 사는 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공석이었다. 핸드폰을 켜자 이 형사의 염려 가득한 카톡 몇 개가 뜨고 그 위로는 22시 59분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조심해서 들어와. 버스 정류장에서 전화하고.’ 이 형사의 카톡을 읽으며 도서관을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서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해야지. 하며 이응 이응 두 개를 답장으로 보냈다. 도서관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골목엔 늘 가로등이 말썽이었다. 에이씨, 도서관으로 오라고 할걸. 투덜거리면서 내려가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하나 붙었다.

슬리퍼를 질질 끄는 그녀의 발 소리 뒤로 다른 발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면서 빨라지는 보폭에 맞춰 따라오는 발소리도 빨라졌다.


탁, 탁, 탁...

터벅, 터벅, 터벅...


조금만 더 가면 버스 정류장이니까, 이 코너만 돌면...!


그 순간 그녀의 머리채가 잡혔다. 두텁고 더운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버둥대는 두 다리가 꺼진 가로등의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녀의 목 근처에 차가운 날붙이가 대어졌다. 저,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귓가에 조용히 남자가 말했다. 나쁜 행동을 하면서 나쁘지 않다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형사에게 배운 대로 침착하게 대처하려고 했지만 물밀듯 밀려오는 두려움에 손이 잘게 떨렸다.


“저, 진짜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냥... 그냥 도서관에서부터 지켜봤어요. 근데 이런식이 아니면 저 같은 사람 만나주지도 않을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녀의 뒤에서 혼자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여름부터 내가 얼마나 말 걸고 싶었는지 아세요? 근데, 시팔... 자꾸 카톡 하면서 실실 웃는데, 어? 남자친구 아니죠? 남자친구 아니라고 해!”


그녀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져 입을 틀어막고 있는 손에 닿았다. 분명히 이렇게 제압당했을 때 어찌어찌해라, 하고 지겹게 말하던 이 형사가 생각이 났는데, 우스운 건 이 급박한 상황에서 이 형사의 얼굴만 기억이 난다는 거였다. 진작 잘 들어놓을 걸 하고 후회하지 말고 잘 외워놓으라고! 하는 이 형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 개새끼야 우리 아빠가 형사다...! 하고 말하려는 순간 그가 그녀를 팍 밀쳤다. 몸이 휘청거리며 크게 넘어졌다. 동시에 입에서 손도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려 바둥거리는 그녀의 몸에 남자가 발길질을 해댔다. 그의 근본도 없는 열등감에 그녀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눈앞이 흐려졌다.  개새끼... 우리 아빠가 형사라니까....



의식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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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 침대에서 수갑으로 결박을 당한 후였다. 온몸에 격통으로 끙, 소리가 절로 났다. 나 살았어? 하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바로 코앞에서 이 형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서 물었다.


“아빠.... 이거... 뭐야?”


손목을 살짝 들자 수갑이 병원 침대에 묶여 차캉, 하고 소리를 냈다. 이 형사가 그녀의 얼룩덜룩한 얼굴을 다정하게 쓸었다.


“별거 아니야. 수연아, 아빠 친구들 알지? 이따가 그 사람들 오면 솔직하게 말하면 돼. 이거 그냥 절차니까... 무서워할 것 없어...”
“응? 이거 뭔데? 아빠, 아빠 나, 밤에...”
“알아, 응? 아빠가 다 알아...”


이 형사를 마주하자마자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내가 밤에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녀의 말에 이 형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알아. 알아. 괜찮아. 수연아 이제 괜찮아.... 그녀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이 형사의 품에서 다시 잠들었다. 이 형사는 착잡한 얼굴로 병실에서 나왔다. 바깥에서 몇몇 동료들이 괜찮냐며 물었다. 울다가 잠들었어. 이 형사의 잠긴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쳐서 정신이 없는 사람한테 수갑을 채워놓는 건 너무 아니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피해자 신발의 피가 수연이 피라 해도 이건...”
“일단 조용히 하고 내려가자. 이따가 남부에서 심문하러 온다니까 그때까지 다시 재워두고.”


이 형사는 사람들을 물리고는 병실 앞 의자에 주저앉듯 앉았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어젯밤 연락이 되지 않는 수연의 전화에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지. 불안한 마음에 간 수연이 다니는 도서관 입구 즈음에서 피투성이로 쓰러져있는 자신의 딸을 봤을 땐 심장이 어드매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신고를 하고 구급차에 올라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기억은 구급차에 올라타고 나서 수연의 손에 꼭 쥐어진 핸드폰 화면뿐이었다.


[ 부재중 전화 23건 - 우리 이형사 ]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경찰로서의 무력감을 느꼈다.


상처투성이인 딸의 손에 수갑이 채워져있고,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이 형사를 잠식했다.


 
-남부 쪽 건인데 새벽에 남자 하나가 또 죽었대요. 근데, 그 사람이 우리가 찾던 그 새낀 거 같거든요? 씨씨티비랑 대조하러 제가 갈 건데, 그쪽에선 그게 맞으면 수연이가 용의자가 될 수 있다고... 일단 마지막으로 만난게 수연이니까요... 아이, 과장님 화 내지 마세요. 수연이 일리가 없잖아요. 우리가 걔 애기 때부터 봤는데! 일단 대조해보고 이따 남부에서 수연이 디엔에이 채취하러 올거에요. 도서관쪽에 다른 방향 씨씨티비도 좀 찾아보려구요. 그리고 말도 안되잖아요. 수연이가 그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그 새낄 거기까지 쫓아가서 죽였겠냐구요... 말도 안 돼죠.


이 형사는 그의 말처럼 정말 모든것이 말도 안 된다고, 마치....

그래. 마치 그 까마귀들처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숩비는 한번도 나오지 않.. 은..

ONLT SUGA X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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