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로 대학을 가겠다 마음먹은 날로부터 며칠 뒤 쿠로오씨는 신난 목소리로 전화를 걸더니 주전 선발 소식을 알렸다. 덤덤히 축하를 건네는 내게 그는 좀 더 신날 수 없냐고 했지만 100% 일어나리라 예상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에 놀란 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 네 덕분이야.’


  간지럽게 웃은 그는 내 덕분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문득 그의 경기가 보고 싶어졌다. 빨간색이 잘 어울리던 그가 이번엔 무슨 색의 유니폼을 입고 어떤 등 번호를 달고 코트에 올라설지 궁금해졌다. 이제는 제법 그와 친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친한 사이니까. 친한 사람의 의미 있는 경기정도 보러 갈 수 있는 거잖아. 대학리그를 직접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래서 그가 출전하는 경기가 어디서 열리는지 물었다. 도쿄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정말 도쿄란 얘기를 들으니 아쉬웠다. 


  ‘나, 나 보러 오게?’


  더듬으며 말하는 쿠로오씨의 목소리가 또다시 간지러웠다. 살짝 들뜬 목소리에 괜히 부끄러워 그의 목소리 저변에 깔린 기대를 모른 척했다.

 

  ‘무슨 소리예요.’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내가 당신을 가까운 사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그게 당신이 알아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 겨울, 그건 아마도

쿠로오 테츠로 X 츠키시마 케이

w. 썸머(@TJaaj_)






  더위가 가득한 고교 배구부의 방학은 수많은 연습을 불러온다. 무리다 싶을 정도의 연습 스케줄에 저절로 인상이 써졌다. 공부는 또 언제 하지. 받아든 스케줄 표를 보는 야마구치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합숙! 완전 신나!”


  좋아서 방방뛰는 건 히나타였다. 진짜 대단하다. 넌 공부 안 해? 중얼거리자 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 이번엔 낙제 없어! 하며 웃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말해 무엇하나 싶으면서도 입 밖으로 나오는 투정 같은 목소리를 잡아끌 힘이 없었다.


  “넌 대학 안 갈 거야?”

  “대학…?”


  됐다. 말을 말자. 나는 체육관 벽에 기대며 물병을 찾았다. 그러다 마주친 카게야마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스포츠 추천받아서 가면 되잖아.”


 재수 없어. 안다 이 자식이 얼마나 재수 없는 자식인지. 아는데 너무 당연한 사실을 왜 너만 모르냐는 듯한 말투가 정말 열 받게 했다. 스포츠 추천은 너 같은 천재한테나 해당하는 말이고. 나는 안경을 벗어 얼굴의 땀을 닦으며 그를 흘겨봤다. 네네. 그러시겠죠. 어련하시겠습니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하품이 계속 나왔다. 몇 차례 연습경기로 땀까지 잔뜩 흘린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날씨는 덥고 졸렸다. 


  “너 밤에 안 자고 뭐 하냐?”

  “그러고 보니 츠키시마 갈수록 다크써클 느는 거 같아.”


  연이은 하품에 괴짜 콤비가 물어왔다. 짜증 낼 힘도 없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신경 꺼. 하품으로 가득 찬 눈물을 닦아내는 데 카게야마가 나를 빤히 보았다. 뭔데. 기분 나쁘거든? 물으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번 대학 여름 컵 센다이에서 열린다던데.”


  눈가를 비비던 손이 멈췄다. 센다이? 쿠로오씨는 분명 도쿄에서 열린다고 말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도쿄가 아니라?”

  “어, 홈페이지에 경기 일정 나와 있어. 쿠로오씨가 말 안 해줬냐? 둘이 친하다며?”  



   고등학교 배구뿐만 아니라 프로 경기는 물론 대학리그까지 챙겨보는 카게야마가 쿠로오씨가 다니는 대학교 얘기를 꺼냈다. 히나타는 눈을 빛내며 스포츠 추천으로 제법 유명한 학교에 입학한 그를 칭찬했고 부러워했다. 


  ‘아직 주전은 아닌가 봐.’


  그에 카게야마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직도 그때 내가 뭐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말이 몹시 불쾌했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너같은 천재가 


  ‘주전 선발이 쉬운 줄 알아?’

  노력이 얼마나 힘든지 


  ‘곧 스타팅 멤버 될 거니까’

  아무리 해도 닿지 않는 목표가 얼마나 괴로운지 


  ‘입 좀 닥쳐.’

  너 따위가 뭘 안다고.


  그 자식이 타고난 천재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무언가 씐 것처럼 화가 머릿속에 가득 차서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에 체육관을 나섰다. 수돗가에서 찬물로 머리에 오른 열을 식히고 다시 들어간 체육관, 히나타가 달려왔다.


  ‘너 쿠로오씨랑 친해? 나! 나도 번호 알려주라! 나중에 같이 연습해봤으면 좋겠다!’


  히나타의 말에 야마구치를 노려봤다. 그가 조금 주눅 든 얼굴로 미안 츳키 중얼거렸다. 한숨을 내쉬며 계속 귀찮게 쿠로오씨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는 히나타의 머리를 붙잡아 눌렀다. 


  ‘싫어.’

  ‘왜?!’


  왜냐면…


  카게야마가 나를 돌아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태도의 조금 전과 같이 무심한 눈빛이었다. 어떻게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날 수 있지? 


  ‘싫으니까.’


  나는 그를 노려보다 시끄럽게 구는 히나타에게 짜증스레 대답했다. 이유 같은 게 중요해? 그냥 싫어. 그냥 싫은 것도 있는 거야. 



  “경기가 언젠데?”

  “일요일 오후 1시 30분”


  카게야마는 내가 화라도 낼 줄 알았는지 순순히 경기 일정을 물어오는 나를 조금 놀란 눈으로 보더니 간결하게 대답했다. 

  핸드폰을 켜 쿠로오씨와의 채팅창을 열었다. 왜 거짓말을 했냐는 물음을 썼다가 다시 지웠다. 그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핸드폰 화면을 꺼 구석에 밀어 넣으며 눈을 감았다. 짜증나. 내게 거짓말을 한 쿠로오씨도 그 사실을 알게 한 카게야마도 모두 다 짜증 났다. 

  그래서 안 가려고 했는데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건지. 한숨을 내쉬며 센다이 종합 체육관을 바라봤다. 모처럼의 주말, 분명 늦게까지 늦잠을 자려고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진짜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혹시라도 그와 마주칠까 두리번두리번하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몰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 것도 웃기잖아. 나는 관람석으로 향하며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했다. 

  거짓말을 한 그가 괘씸해 연락 따위 하지 않을 거라 다짐해놓고 오는 전화를 차마 무시하지 못했다. 받아든 목소리는 똑같았다. 그의 말버릇도 웃음도 그대로였다. 오늘 뭐 했냐는 평소 같은 질문에 생각 없이 대답하다 보니 화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경기가 다가올수록 긴장된다며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긴장할 필요 없다는 낯간지러운 말 대신 이번만 넘어가기로 했다. 긴장된다는 그에게 거짓말을 따져 묻는 건 좀 아닌 거 같았다. 

  코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관람석, 나는 일부러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공식웜업이 시작되고 경기장을 들어서는 쿠로오씨는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저기 빨간 유니폼 17번 잘 생겼다.”

  “어디? 어, 진짜. 어디 대학이야?”


  빨간 유니폼 17번... 쿠로오씨? 나는 내 앞에 앉아 조잘거리는 여자들의 대화에 멍하니 그가 웜업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잘생겼다고? 나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를 눈으로 좇았다. 


  뭐…

  ...저정도면 못생긴 건 아니지

  빨간색이 나름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경기가 시작됐다. 선수들과 감독들 차례대로 하이파이브하며 그가 코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멀리서 보아도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에 그를 지켜보는 나까지 긴장이 될 정도였다. 







  작년 도쿄에서의 첫 여름 합숙 이후 나는 ‘고작’이란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배구란 그때까지만 해도 고작 부 활동이었다. 좋아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숨긴 마음으로 모든 적당히 했다. 나중에 덜 괴로울 수 있도록. 경기에서 지더라도 덜 분하도록. 꼭꼭 숨겼던 마음이 종내에 터져 나와 질문이 되었을 때 보쿠토씨는 악의가 하나도 없는 얼굴로 내게 다시 물었다.


  ‘그건 네가 못해서 그런 거 아냐?’

  ‘그 순간이 있느냐, 없느냐야.’


  적어도 나보다 2년은 더 노력했을 그가, 과거의 ‘순간’을 생각하기라도 하듯 보쿠토씨의 눈이 추억으로 물들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전국대회진출을 위해 시라토리자와 고교와 결승에서 맞붙었을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1점, 우시지마의 수많은 스파이크 중 고작 하나. 고작 부 활동에 불과한 배구를 하며 코트 위에서 득점을 올렸다고 좋아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고작 1점에 소리쳤다. 누구에게는 겨우 1점에 불과해도 누군가에겐 평생의 1점이 될 수도 있는 점수. 나는 함성과 함께 주먹을 쥐었다.

  그러니 고작 대학리그 예선전이란 건방진 말은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남들에겐 별거 아닌 예선전. 혹자에겐 떨어져도 다시 도전하면 되는 경기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일 테니까. 

  상대 팀의 속공은 까다로웠으나 쿠로오씨의 블로킹이 만만치 않았다. 지칠 줄 모르는 그가 손을 뻗어 자리에서 뛰어오르면 재빠르게 내리쳐진 공은 그대로 쿠로오씨의 손을 맞고 상대편 코트로 떨어졌다. 

  세트 스코어는 2-0이었다. 한 세트만 더 따내면 3-0 셧아웃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는 상황. 상대편이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팀이 잘했다. 대학리그의 경기는 흐름이 훨씬 빨랐고 공격이 거셌다. 이번 주 내내 강도 높은 훈련에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차곡차곡 쌓인 몸의 피로가 사라져갔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저기에 있었으면 좋겠다. 찬스볼이 날아온 쿠로오씨 팀의 윙 스파이커가 뛰어올랐다. 상대 팀의 미들 블로커 두 명이 레프트를 막기 위해 달려나갔다. 세터의 토스는 우습게도 반대쪽으로 향했다. 후위에 있던 그가 네트 근처로 뛰었다. 오른쪽 어깨가 높이 들리면서 그대로 내려친 공은 여유롭게 뒤늦은 미들 블로커의 손 위로 넘어갔다. 리베로가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미끄러졌다. 뻗은 그의 손 앞에 공이 떨어졌다. 


   “와아아아!!!”


  다시금 환호성이 들렸다. 나는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았다. 그의 팀원들이 쿠로오씨 주변을 얼싸안고 그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의 득점에 신나야 하는데 마냥 신나지 않았다. 작년 여름, 지겹게 맞붙었던 연습경기 속 나와 그의 자리는 언제나 동등한 코트 안이었다. 합숙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시선은 네트를 두고 선 네모난 공간 속에서만큼은 배구공을 향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안에 녹아든 그와 달리, 나는 여기 이 층에서 그를 관람한다. 쿠로오씨를 축하해주는 사람들 속에 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상대편에 내가 속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여기 와. 여기서 나랑 같이 배구 하자.’


  숱하게 들어왔던 그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제기랄

  정말 인정 하고 싶지 않지만

  나 또한 그와 배구가 하고 싶다.


  선수가 되겠다는 게 아니다. 운동을 업으로 삼지 않을 거란 마음에 변함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배구가 하고 싶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헤집으며 3학년이 되면 배구부를 관둘까 고민했던 생각을 말끔히 지워냈다. 반드시 죽어라 해 보이겠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그와 연습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도와달라는 말은 절대 안 하겠지만 쿠로오씨라면 분명 엄청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마른세수를 하며 짜증을 삼켜냈다. 작년부터 올해에 이어 마지막 고교 생활까지 내 안에 깊숙이 침투해 결국 내가 배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는 그가 짜증 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로부터 영향받을 게 분명한 내 부 활동을 이토록 흔들어 놓고 혼자 승승장구하는 꼴이라니. 나는 짜증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쓸며 경기장을 노려봤다. 



***



  경기는 큰 이변 없이 3-0으로 끝났다. 나는 경기가 끝난 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상대 팀과 인사하고 정리를 마치고 나갈 때까지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자리에 앉아있었다. 

  쿠로오씨가 공격을 막아내던 동작을 되짚으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그가 막았던 공격이 나에게 향한다면 내가 막아낼 수 있을지 생각이 끝없이 밀려왔다. 쓸모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려다보는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공을 셧다운 시키는 그 느낌이 얼마나 짜릿한지 떠올랐다. 심장이 난데없이 뛰었다. 경기 속 그의 모습이 계속해서 가득 차올랐다. 빨간색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그는 저 속을 누비며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냥 멍청한 표정만 짓는 바보인 줄 알았는데 솔직히 멋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짜증 나서 나는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계속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경기를 위한 다른 학교 선수들의 웜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그곳을 벗어났다. 작년도, 올해도 나는 이곳에서 경기를 치렀지만 순전히 누군가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처음이었다. 새삼 기분이 새로워 괜히 주위를 하나하나 둘러보며 문을 나섰다. 

  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봐도 쿠로오씨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틀 전 고심 끝에 보낸 라인을 그는 읽기만 했을 뿐 답하지 않았다. 딱히 답을 바라고 한 라인은 아니었어도 막상 그가 진짜로 이렇다 할 말이 없자 조금 성가셨다. 쿠로오씨 주제에 내 연락을 씹어?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더웠다. 집에 가는 길에 케이크나 사 가야지. 그리고 공부 좀 하다가, 오늘 경기 영상 좀 찾아보고. 나는 또다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그를 억지로 몰아내며 걸음을 재촉했다. 


  “츠…키…!”


  갑자기 어깨가 붙잡혔다. 놀라 고개를 돌렸는데


  “하아, 하아 안녕”


  밭은 숨을 내쉬며 내게 말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쿠로오씨였다. 


  “보고 싶었어”


  정말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더니 그가 나를 껴안았다.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내게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 없는데, 숱하게 들은 듣기 좋은 중저음이 낯간지러운 말을 토해냈다. 

  이겨서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가 내게 승리의 사실을 전했다. 나는 여기에 그를 보러 왔다는 부끄러운 사실도 잊고 거짓말을 한 그가 괘씸해 조금 볼멘소리로 안다고 답했다. 


  “쿠로오씨 거짓말 되게 못하시던데요.”


  짓궂게 놀릴 요량으로 웃으며 한 말에 쿠로오씨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당황하며 사과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의 눈매가 휘어지더니 


  “진짜 보고 싶었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말을 다시금 해왔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조금 전까지 멋있게 코트 위를 뛰어다니던 사람이 나를 껴안으며 하는 말이 말도 안 되게 더웠다. 맞닿은 몸에 속마음이 새어나가기라도 할까 봐 나는 그를 밀어냈다. 


  “뭐래, 땀 냄새나거든요.”


  그제야 퍼뜩 놀라며 미안하다고 말한 그가 여기 있으란 소리를 반복하더니 저 멀리 그의 대학교 로고가 크게 박혀있는 버스로 뛰어갔다. 나는 조금 멍해져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이제야 내가 알던 쿠로오씨 같았다. 바보 같아. 

  감독님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한 그가 내게 알은체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내게 쏠리는 시선에 몸을 돌려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뭐야 진짜. 금세 나를 뒤따라온 쿠로오씨가 어깨동무를 해왔다. 


  “왜 따라와요?”

  “자유시간 받아냈어! 츳키랑 놀려고.”

  “내일도 시합 있는데 지금 논다는 말이 나옵니까?”

  “...내일 나 시합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아 말실수했다. 나는 한심하게 그를 보던 표정을 거두고 발걸음을 더 빨리했다.


  “츳키 같이 가! 나 여기 지리 하나도 모르는데”

  “진짜 안가도 됩니까?”


  나란히 걷는 그의 손가락이 하얀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었다. 


  “아 더워. 우리 시원한 거 마시러 가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붙지 마요. 어깨에 올린 손을 쳐내려다 두텁게 테이핑 된 손가락이 신경 쓰여 그러지 못했다. 흔한 일이었다. 별거 아닌데. 괜히 신경 쓰여서 


  “…다쳤어요?”


  그의 손가락을 계속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답 없는 그를 돌아보는데 그가 웃으며 나를 보았다. 


  “하나도 안 아파.”


  그의 동문서답은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웃음에 작게 인상 썼다. 결국 다쳤다는 얘기잖아. 진짜 오늘 아침부터 사람 짜증 나게 하네. 나는 그가 갑자기 또 짜증 나서 앞으로 휙휙 걸어갔다.

 

  “어어, 같이 가.”


  그가 급하게 내 뒤를 따라왔다.


  화났어? 

  누가요?

  화난 거 아냐? 이거 진짜 별거 아닌데. 

  화 안 났는데요.

  나 진짜 안 아파.

  누가 뭐래요?

  미안, 다음부터 안 다칠게.

  신경 안 씁니다.

  진짜야. 미안해. 응?

  ......더우니까 붙지 말라고요.


썸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