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제이드/하나단] 너의 것




 하나야 타이가는 불이 꺼진 방 안에서 홀로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는 날이 늘었다. 비단 오르락내리락 하는 주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니코가 돌아간 조용한 방은 숨소리만이 가득하다. 밝은 화면 속에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처럼 검은 노이즈가 낀다. 무심히 마우스를 내리자 곧 화면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 원치 않던 새로운 프로그램이 한 쪽에 자리 잡는 것을 하나야는 알고 있다.


 [안녕하세요.]


 고분고분하고도 상냥한 말투로 화면은 하나야에게 말을 건다. 이제 다시는 듣지 못할 망령의 인사, 단 쿠로토는 화면에 앉아 하나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단정한 정장과 흐트러짐 하나 없는 머리. 죽음에 발버둥 치던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답하지 않자 단은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하나야를 바라보기만 한다. 이것은 하나야의 환각이자 망상이다. 쓸데없이 휩쓸려 대화를 시작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오늘도 날씨가 좋네요.]


 평범한 대화를 시도하는 단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그 어떠한 감정도 담지 않은 담백한, 착한 가면을 썼을 때의 모습이었다. 컴퓨터 속의 날씨가 좋다는 것인지 바깥 날씨가 좋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컴퓨터 속에 존재하는 그가 날씨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나야 선생님. 어째서 절 보지 않으시나요?]

 “닥치고 있어.”

 [알겠습니다.]


 이상할 만큼 복종적이었다. 단은 이런 남자가 아닌데. 하나야의 눈길이 결국 단에게로 향했다. 이곳에 존재하는 단 쿠로토는 ‘진짜’가 아니었다. 진짜가 아니기에 하나야의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버려진 패에게 돌아올 만큼 단은 무른 남자가 아니었다. 한 번 버린 건 계속해서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건 5년 전부터 그랬다.

 하나야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단은 흐릿해지며 화면에서 사라진다. 가려졌던 주식의 일부분이 보인다. 상승세를 타고 가는 주식을 확인하며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환각이 불안했다.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증오하고 증오하는 단 쿠로토를 매일 봐야 한다는 것이라면.


 “또 불도 안 켜고 뭐해!”

 “시끄러워.”

 “저기압이네?”

 [손님이 오셨네요.]

 “닥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니코는 어두운 하나야의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언제나처럼 밝은 목소리로 대화를 걸었을 뿐인데, 돌아오는 반응은 달랐다. 하나야의 고함에 니코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닥치라니? 그게 할 말이야? 잔뜩 화가 난 니코의 투덜거림에 하나야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뭐야! 뭐라도 말 해보던가!”

 “…… 안 들렸냐?”

 “뭐가? 닥치라는 건 잘 들었어 바보야!”


 하하. 하나야는 김빠진 웃음소릴 내고 말았다. 확인사살을 당한 순간이었다. 하나야의 망상에서 비롯된 단 쿠로토의 목소리. 보이는 것도 자신 한정이다. 하나야의 웃음소리에 니코는 망설임 없이 그의 머리를 때리고 방을 뛰쳐나갔다. 지금은 오히려 그녀가 없는 게 나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지만, 아직까지 단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이러스? 죽어서도 무서울 집착이라고 댁.”

 “저는 당신에게 이끌려 이곳에 있는 겁니다.”

 “!”


 컴퓨터 화면에서만 들리던 단의 목소리는 어느새 하나야의 뒤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황급히 몸을 틀어 뒤쪽으로 시선을 보내자 차가운 손이 하나야의 얼굴을 감싸온다. 작은 데이터가 아닌 현실의 단 쿠로토가 하나야의 곁에 서 있다. 놀란 눈으로 단의 얼굴을 마주 보아도 화면 안에 있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조금, 미소가 달랐다. 아무것도 의심할 것 없는 웃음을 짓던 화면 속의 단 쿠로토가 아니다. 내려다보는 눈에서 언젠가 보았던 신뢰와 감사의 눈빛이 보이고 있었다. 저 눈빛을 본 게 언제였지, 아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이 나를 영웅이라 칭했을 때.


 “왜 살아왔지? 내 손에 죽고 싶어서?”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던 모습을 보셨잖아요.”

 “……그럼 왜.”

 “당신이 저를 보고 싶어 했으니까요. 집착했으니까, 일말의 바이러스에서 힘을 얻어서 이렇게 당신에게만 실체처럼 보이는 환각이 됐습니다.”


 하나야의 얼굴을 매만지던 단의 손은 이윽고 아래로 내려가 하나야의 몸을 끌어안는다.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그런데도 안겨있다는 느낌이 난다. 단의 말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야 자신에게 남은 단에 대한 감정은 분노와 복수, 증오뿐이었다. 저버린 신뢰는 동정심마저 앗아갔다. 잃을 것이 없게 만든 건 단 쿠로토라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더욱 직접 죽이고 싶었다. 남의 손을 더럽히건, 그런 문제를 떠나서였다.


 “처음에는 화면에서.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착한 단을 보고.”


 하나야 선생님은 저를 무시할 수 없었잖아요. 화를 담고 본 것도 아니고, 당황과 불안감. 그리고 그 착한 미소를 당신은 잊지 못했지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의 하나야 타이가 선생님.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왜 안 쫓아오는 거야! …… 뭐해?”


 다시금 들어온 니코의 눈에 비친 하나야는 의자에 푹 기대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답지 않게 무언가 잡을 것같이 팔을 올리고 있으면서. 니코를 눈치챈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역시 그녀에게는 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NOVEL ∥내키는걸 씁니다. 문의는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리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