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에이스 토죠 히데아키 드림

*캐붕 주의




어떤 날




토죠 히데아키에게는 친구가 많다. 기본적으로 상냥하고 언동이 깔끔해 남녀를 가리지 않고 교류할 수 있는 타입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 신학기가 되고 조금이면 클래스 메이트 전체와 가벼운 대화 정도는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토죠 군, 안녕."


인사해오는 옆자리의 여자아이도 그랬다. 처음엔 조용히 책만 읽고 수줍음을 타는 듯한 인상이었지만 몇 번인가 말을 걸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제는 교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안녕. 오늘은 무슨 책 읽어?"


늘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는 여자애에게 종종 말을 걸어 친해지는 것은 원래부터 붙임성이 좋은 토죠에게 있어서는 썩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에?"

"책 제목이야."

"아아."


예이츠의 시집을 좋아하는 청초한 문학소녀 그 자체 같은 이미지의 옆자리 여자아이가 좋아하는 책의 제목이 대개 다소 무서운 어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약간 예상을 어긋나긴 했지만. 뭐 그 정도는 포용 범위 안 쪽이다. 문제는 없었다.


"오늘 연습은 어땠어?"

"평소랑 똑같았지."


문제가 있다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럼, 저기…사, 사와무라 군은?"


조그맣고 뽀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소리를 죽여 물어오는 것이 같은 야구부의 씩씩한 투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과.


"………."

"토죠 군?"


그리고 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와무라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웃는 얼굴을 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었다.


"응, 아. 오늘도 씩씩했지, 사와무라는."

"그렇구나…."


별 내용도 없는 대답인데도 만족한 듯, 핑크색으로 물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씩씩해서 다행이다. 중얼거리는 말에 듬뿍 설탕이 뿌려진 것 같다.


"………."


잠깐이지만 속이 불편해졌다. 토죠는 한 손으로 명치께를 누르며 여자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토죠는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이 기분이 무엇인지 한 단어로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질투…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자기자신이 꼴사납게 느껴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토죠가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된 건, 혹은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사와무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안녕."


사와무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단을 오르다가 중간에 그녀와 마주쳤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먼저 인사를 건넨 건 토죠였다. 


"아, 아, 안녕!"


그 반면에 여자아이는 귀신이라도 본 양 화들짝 놀라며 몇 번인가 말을 더듬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혹시 열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펄쩍 뛰며 몇 번이나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얼른 올라가봐…나, 나는 심부름 가야 해서…."

"그래, 그럼. 아프면 무리하지 마."

"으응."


토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그녀와 교차해 반쯤 계단을 올랐을 때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어?"


여자아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과 촉촉해진 눈동자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순간,


"………."


여자아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와무라의 뒷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그것을 안 순간 발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서, 토죠의 시선을 눈치 채고 도망가버리는 여자아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사와무라가 말이야."

"어제도 사와무라가."


이야기하는 중에 굳이 사와무라의 이름을 끼워넣은 것은 어째서였을까. 토죠는 아직도 자신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사와무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눈을 부자연스럽게 깜빡이던 여자아이의 모습이 뇌리에 깊게 남았다. 그 반응을 확인하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혹시 사와무라가 신경 쓰여?"


결국 그렇게 물어버리고 만 것은 여자아이가 사와무라의 이름에 반응해 필통을 와르르 책상 밑으로 쏟아버리고 만 날이었다.


"어? 어어? 뭐라고?"


한가득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토죠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조금 공기가 차갑다고 느꼈던 것만 기억 난다.


"…으응."


한참만에 나온 긍정의 대답에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고백은 안 해?"

"안 할 거야…그런 생각 해본 적도 없는 걸."

"…그래."


그때 자신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지나치게 안심해 볼썽 사납게 웃고 있는 얼굴만 아니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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