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속풀이를 위함이다. SNS를 몇 가지 하는데, 버디버디, MSN, 싸이월드(네이트온),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순으로 활동 영역을 옮겨왔다. 중간에 트위터나 미투데이도 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열심히 글을 써온 장소는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이었다. 그리고 좀 더 개인적인 공간으로 미투데이,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했고, 좀 더 공개적인 장소로 카카오스토리를 활용했다. 요즘은 간단한 사진과 글을 간편하게 올리기가 좋은 카카오스토리를 자주 쓰는 편이다.

  가입한 지 오래된 SNS를 폐쇄시키지 않고 오래 사용하면 이런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오래된 글 속에서 이미 잊어버린 낯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얼마나 낯선지 타인이 쓴 글이라고 해도 의심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타인의 글로 읽히면서도 내가 쓴 글인 주제에 상당히 기발하기도 해서 '제법인데?'하고 내심 의기양양할 때도 있다.

  SNS에 글을 올릴 때는 나만의 문체로 모두가 알아듣지 못할 말로 비밀을 털어놓는 게 내 취미이다. 평소에는 아무에게나 하지 않는 무섭고, 위험하고, 꺼림칙한 비밀이지만 아리송한 표현으로 슬쩍 둘러대면 당사자가 보고도 전혀 못 알아챘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헛소리가 되었다. 그러나 미친 인간처럼 노골적으로 '너란 인간 참 싫다', '너와 나는 불편한 사이다' 라고 말할 마음은 없다. 나는 사건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사건을 잠재우고 싶은 거고, 아무 사건이 없기를 바랐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사라지길 바라고, 사람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하찮은 일에 휘말려 연연하지 않고 싶었다. 대부분 그걸 말하고자 하는 글이었다. 나를 긴장시키지 말고, 긴장감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너무나 모호해서 당사자라 해도 못 알아들을 글을 써올려놓고 속이 시원해질 리가 없었다. 분출이 필요해진다. 가둬놓은 마음을 방사해야 할 시기가 온다. 사방은 꽉 막혀 있고, 들어줄 누군가도, 듣고 싶어하는 누군가도 없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외로움이 독보다 진하고 빠르게 삶의 균형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몸에 가장 해로운 액기스만 혈액을 타고 온몸의 가지 끝까지 퍼져나가 마음마저 늪으로 깊이 끌어내릴 것이다.

  눈가에 눈물방울이 옹기종기 앉은 채로, 방안은 우울한 습기가 가득 차오른 상태, 빨간색 두꺼운 표지의 일기장을 꺼내어 책상에 앉았다. 날짜를 적고, 시간을 적고, 날씨를 곰곰 떠올렸다. 요즈음의 상태, 요즈음의 기분, 오늘 있었던 일, 대체로 자주 생각나던 관심사, 마음을 심란케 하거나 어지럽게 하거나, 아니면 이유는 몰라도 자꾸만 떠올라서 자꾸만 되뇌게 되는 누군가의 한 마디 말, 지나간 과거와 연결 지어지는 오늘날의 마음가짐, 열쇠가 되는 지난 사건, 그리고 대부분은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내 모든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재빠르게 휘갈겨 적었다. 일기는 당일 적어둘 때보다 훗날 다시 읽어볼 때 신선한 희열을 준다. 마음이 애닳아서 무슨 말을 어떻게 적어야 효과적일지 몰라 뭐라고 써도 그저 답답하기만 했던 것 같았는데 지나고서 읽게 되면 그 당시 내 마음이 어땠는지 이보다 더 깨끗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모든 걸 다 말하지 않고도 모든 마음이 들렸다. 그날의 그 마음이 지금처럼 생생했다. 그렇게라도 분출한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지금은 (아마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표출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일기에도 썼지만 그 이상일 필요도 없다. 그 이상이려면 그 이상의 솔직함을 요구하는 청자가 있어야 하는데 상황이 그렇지가 않다. 그러니까 사실은 내 구구절절 뻘소리를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서 감정은 계속해서 이대로 억압하고 묶어두어야 했다. 모두가 비밀을 원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감춘 그 상태를 더 좋아한다. 비밀이 듣고 싶은 사람은 어쩌면 뻔히 그 비밀을 보는 듯이 알고 있을 만한 대상이다. 비밀을 듣고 싶지 않은 사람도 사실은 마찬가지이다. 내게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사람들이 모두 후자에 속해서 카타르시스가 용납되지 않는다. 이럴 때 할 일은 딱 한 가지가 있다. 억압된 본능과 본색, 아무도 원치 않는 속내와 비밀, 그 모든 것을 수용해줄 곳이라곤 오로지 내 일기장뿐이다. 묶인 속마음에 조금이나마 숨 쉴 틈을 허락하는 건 일기이다. 오늘같이 답답하고 해묵은 감정들이 요란스럽게 들썩이면 한 번씩 들러줘야 하는 해소 창구였다. 그러기를 십수 년이 되었구나. 의지하기엔 너무 얇고 연약한 카타르시스에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내가 때로는 가엽기도 하다. 가엽다는 게 착한 동정심으로가 아니다. 오히려 조금 징그럽다는 뜻이다. 그러지 말라고도 못하겠고, 징그럽고도 애처로워서 그냥 가만히 지켜본다. 어느 때든 알아서 자포자기하거나 무슨 짓이든 해보려고 시도도 해보고 또 안달내는 모습 안 보이려고 대강 묻어가며 살 것 같다. 그걸 다 안다니, 마음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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