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수님.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낮에 해리는 상념에 잠겨있었다. 사무실 테이블에는 그가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홍차와 여기저기에서 온 쪽지와 서류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터무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는 안됐는데...해리는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

길다란 손이 그의 목에 걸려있던 푸른색 머플러를 풀어냈다. 이성을 붙들어 줄 최후의 방어선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것를 알면서도 해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머플러를 풀어내는 모양 좋은 손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온 신경은 그 손에 사로잡혔다.

리들은 머플러를 등 뒤로 던졌다. 해리는 리들의 등 뒤로 사라지는 머플러를 보지도 못한채, 리들을 올려다 보았다. 리들이 눈웃음을 지었다. 교수님, 어서요.

재촉하는 소리에 해리는 눈 앞에 계속해서 아른거리던 손을 잡았다. 손바닥 안 상처에서 피가 조금씩 나왔다. 조금전 몸싸움으로 방울을 이뤘던 피가 손바닥 가운데에서 손등 바깥쪽까지 흐른 자국이 있었다.

아까워.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생명선 사이로 흐르는 피를 살짝 맛본다. 상처에 혀가 닿을때 리들의 손이 움찔 떨렸지만 해리는 개의치 않았다. 눈을 내려 감고 손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살결을 따라 짧게 여러번 키스한다. 입술에 닿은 감미로운 향기가 마음의 불을 당겼다. 제대로된 식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해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매달리는듯한 눈으로 리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색이 짙어진 검정색 눈동자가 서서히 가까워졌다. 해리가 잡고 있지 않은 리들의 손이 해리의 어깨를 짚었다. 리들이 고개를 트는 순간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눈동자가 커졌다. 해리는 리들의 손을 뿌리치고 수색꾼 답게 빠른 몸놀림으로 지팡이를 들었다.

"아씨오, 머플러."

휙 날아온 푸른색 머플러를 잡아챈 해리는 서둘러 머플러를 목에 둘둘 감았다. 숨을 한번 들이 쉬자 청량한 숲내음이 났다. 해리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리들은 미련없이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업이 있어서요."
"오, 그렇구나."

해리는 리들을 따라 일어나 문까지 그를 배웅했다.

"어서 가보렴, 톰."

"다음에 뵙죠."


*

불사조가 창문을 통통 두드렸다. 상념에 잠겨있던 해리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불사조 퍽스가 편지를 물어왔다. 해리는 퍽스의 부리에서 편지를 받아들고 서둘러 펼쳐 읽어내렸다. 해리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젊은 친구의 방문은 나를 언제나 즐겁게 한다네. 날씨가 좋으니 꿀술을 마시는 대신, 조그만 다과회를 열어도 좋겠지.

지팡이를 한번 휘두르자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찻잔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팡이를 한번 더 휘두르자 어지럽게 놓여있던 쪽지와 서류들도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순서는 좀 섞였어도 나중에 정리하면 되겠지. 시계를 한번 보고 덤블도어 교수님을 찾아가기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것을 확인한 해리는 책장 옆의 찬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포터가에서 보내준 초코쿠키가....분명 여기 근처에 두었던것 같은데..."

마법으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쿠키가 부스러지는것을 원치 않아 찬장의 가득채운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옮기던 해리는 쿠키 상자를 찾아냈다. 틴케이스로 포장된 쿠키라 다행히 겉보기엔 멀쩡했다.

*

"실례합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어서오게. 따뜻한 코코아도 괜찮겠나?"
"그럼요. 저도 쿠키를 가져왔어요."  해리가 웃으며 말했다.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코코아인가, 싶기도 했지만 덤블도어 교수임 앞에서 체면을 생각할 필요는 없지 싶었다. 자신이 들고온 쿠키도 초코 쿠키였다.

"리들 군이 자네를 찾아왔다고."
"아..."

해리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덤블도어 교수는 레질리먼스였으므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을 볼 수 있었다. 해리도 그 편을 원했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차를 들며 해리가 먼저 입을 열길 기다렸다.

"...봐 주시면 안되나요?"
"그러고 싶지 않네."

결국 해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자애로운 표정과은 달리 해리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했다.

"이해해 주길 바라네. 자네의 기억을 보는것은 미래의 일을 보게되는 위험을 동반하니까. 자신의 일을 미리 아는 것 만큼 재미없는 일은 없겠지."

덤블도어 교수는 장난기 있는 표정이었지만, 해리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쳤어. 누구한테 뭘 부탁한거야. 하마터면 자신의 존경하는 은사님에게 그 자신의 죽음을 직접 보게 만들뻔 했다. 해리는 코코아 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뜨거운 코코아가 식도를 타고 흐르자 늘 서늘한 몸이 조금 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

"리들군이 절 찾아왔어요."

해리는 리들이 그를 오랜만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서재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어릴때 걸어놓았던 암시가 풀린 것 같아요."

"기억력을 조작하는 마법이 쉬운건 아니지... 리들 군은 호그와트 입학 전, 지팡이 없이도 마법을 종종 사용하곤 했네. 암시가 풀리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세. 그래서, 새로운 마법을 걸어놓았나?"

"아니요."

어째서? 라고 묻는 듯한 표정에, 해리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말을 이었다.

"..경황이 없었어서요...."

덤블도어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해리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비록  그가 기억하지 못 한다고 해도 저쪽 세계에서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가 갓난아기일 시절부터 해리를 지켜봐왔으며, 호그와트를 다닐 시절의 해리가 누구보다 믿었던, 그리고 지금도 믿고있는 어른이었다. 그를 신뢰하는만큼 부끄러움은 배가 되었다.

"일이 재미있게 되었구먼."
"...놀리지 말아 주세요."
"오, 미안하네. 결코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하지만 리들군이 자네를 그렇게 의식하고 있다면, 자네도 좀더 준비를 해야할 걸세. 혹시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었나?"

"시간여행에 대한 단서는 아직 찾지 못했어요." 해리가 다소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뱀파이어에 관한 문헌도 수가 적어서... 이렇다 할 단서가 없네요."
"내 생각에...어쩌면 자네가 뱀파이어가 된건 저주가 아닐지도 모르네."
"주기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이성을 잃는 괴물이 되는데도요?"
"괴물이라... 자네는 보름마다 늑대로 변하는 늑대인간이 괴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럴리가요!"
"자네도 마찬가질세. 자네가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면이 있다고 해서, 그 특이점으로 자네의 전부를 규정할 수는 없네."

해리는 덤블도어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지혜로웠다.저쪽 세계에서, 해리는 살아남은 아이였다. 그 증거로 이마에 번개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듣고 그를 선택 받은자라고 명명했다. 그 이름을 지키기 위해 그의 주위에 머물던 사람은 하나 둘 죽음을 맞이했다.

해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매만졌다. 그곳에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번개모양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이 흔적으로 그의 전부를 규정하던 세계가 있었다.

"마음을 정했나보군. 이 늙은이를 찾아주는건 자네밖에 없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방문해 주게."

은회색 수염의 덤블도어 교장이 하던 농담이 붉은 수염의 그에 의해 재현되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교수님은 아직 한참 젊으신데요..."

미래에 있을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처음 위즐리가의 버로우에 초대 받았을때처럼 따뜻한 공기로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해리는 작게 미소지었다. 익숙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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