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망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망쳐져도 너에게만 망쳐질 거라 생각했어, 나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하. 이번에도 로그인, 로그아웃이네.”


 공과금, 식비, 카드값, 교통비, 생활비, 등록금…

 …날 망칠 수 있는 건 참 많더라, 순영아.



구질구질한 로맨스

[#1. 자린고비 커플]



 권순영과 이지훈은 캠퍼스 커플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치원 때부터 이어져온 ‘소꿉친구에서 연인까지’의 정석을 밟아온 비밀 연애 중인 커플이다.


 어렸을 때부터 옆집에서 살아온 인연으로 같은 유치원 같은 반, 같은 초등학교 6년 동안 같은 반, 중학교는 잠시 떨어졌으나 항상 학교가 끝난 뒤 같이 하교를 했었고, 운 좋게 같은 고등학교를 붙어 대학까지 함께 가자는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꿈을 키워가다 결국 같은 대학교 합격. 그와 동시에 서로 고백을 하여 지금 이 캠퍼스 커플이 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커플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재력'이었다.


 순영은 아버지가 외국계 회사를 운영하며 출장을 왔다 갔다 하는 등 외화 벌이를 하고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유명한 스타강사 되겠다. 심지어 형은 유명한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이라 집에 돈이 모자란 날이 없었다.


 그에 반해 지훈은 일반적인 평범한 가정집 정도. 부모님은 회사를 다니시며 맞벌이하시고, 형 역시도 대학원 재학을 하며 논문 연구를 하고 있는, 요약하자면 말 그대로 평범한 가정집. 그런 지훈이었기에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알바를 하며 본인의 용돈은 스스로 벌고 생활력도 키우는 등 갖은 일들을 다 해왔다고 보면 된다.


 그런 두 사람이 이렇게 잘 맞고 알콩달콩한 이유를 묻는다면? 그건 두 사람이 서로 쿵짝이 잘 맞기에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이를테면.


“지훈아, 나 오늘 스테이크 먹고 싶어.”

“어제 고기 먹었잖아. 오늘은 떡볶이 먹자. 단백질만 계속 먹어도 좋지 않아, 순영아.”

“응, 그럼 오늘은 떡볶이.”


 뭐, 이런 거랄까.

 지훈이 순영을 잘 다룬다고 해도 좋고 순영이 지훈의 말을 잘 따른다고 해도 좋다. 과한 것을 바라는 순영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지훈이었으니. 지훈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순영이었기에 가능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커플에게도 하나의 문제가 생겼으니.


“순영아, 나 내일 못 만나.”

“…어? 왜?”

“아니, 그게……”


 너와의 데이트 비용이 모두 로그아웃 돼 버렸거든.

 지훈은 차마 말하지 못한 채로 입만 벙긋 거렸다. 어찌 말할까 하다가 역시 가장 기본적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약속이 있어서.”

“무슨 약속?”

“으음.”


 순영의 물음에 지훈은 잠시 입술을 꾹 닫았다. 정말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리 연인 관계에서 거짓이 없어야 된다고 하지만, 순영에게 이런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너를 못 만나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라고 어떻게 말해, 내가…!


 지훈은 낮은 한숨을 내뱉으며 순영의 시선을 최대한 피해본다. 뭐, 그런다고 해서 본인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시선을 피할 리 만무 했지만.


“어머니 일 도와 드려야 돼서…”

“나도 도와줄게. 어머니 얼굴 안 본지 너무 오래 됐다. 같이 가.”

“아니다. 집에 사촌동생들이 온다고 했던 거 같아!”

“같이 놀아 줄게. 나 또 그런 거 잘 하잖아. 같이 가.”

“아아… 아니다. 은행 업무를 봐야 하는 날 이던가…”

“얼른 끝내고 놀면 되지,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가.”

“그, 그… 아니다! 나 조별과제 모임이 있었던 거 같아!”

“끝날 때까지 너 기다릴게. 같이 가.”

“아아…….”


 그 어떤 갖은 핑계를 대도 순영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애초에 돈 때문에 순영과의 데이트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가. 더 열심히 일을 했다면, 시급이 조금이라도 더 높았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번 학기 장학금만 탔다면…!


 어떤 것이든 그와 만날 수 없는 이유가 ‘돈’이라는 것에 지훈은 입만 벙긋 거렸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모든 핑계가 사라졌다.


 어쩌지. 진짜 여기서 데이트를 해버리면 생활비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데…. 지훈은 한참이나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고민했다. 진짜 뭐라고 하지.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 그치만 그럼 순영이 상처 받잖아. 진짜 어쩌면 좋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 지훈의 손은 갈 곳을 잃어 팔랑 거리고만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지훈아.”


 딱 그러는 사이, 듣다 못한 순영의 손이 팔랑 거리는 지훈의 손 쪽으로 간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손깍지. 순영의 몸이 지훈 쪽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어…?”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과 가까워진 거리에 지훈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져버렸다. 이건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순영이가 너무 잘생긴 탓이다. 그렇게 합리화를 시키며 제 눈동자 안에 순영을 담는 그 사이.


“왜 자꾸 나랑 멀어지려해…?”


 흡사 모 영화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빛을 발사하는 순영에, 지훈은 절로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 반짝거리는 두 눈동자로 바라보는 여린 아이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지훈은 마음이 약해져 한참이나 순영과의 시선 맞춤을 이었다.


“아, 아냐. 아냐 순영아. 오늘 같이 놀자.”

“와아.”


 너무나도 잘생기고 귀여운 이 권순영이라는 존재에, 오늘도 지훈은 져버리고 만다. 어쩔 수가 없다. 이건 권순영이 너무 잘난 탓이다. 지훈의 마음이 결코 약해서가 아니다. 이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겠지?


.

.


.


 결국, 이번 달 생활비도 바닥 나버렸다고 합니다.


* *

에피소드 형식의 캠게 호우 입니다...

계속 연재가 될 지 에피소드만 연결될 지 몰라서 우선 단편 쪽에 올립니다..^.^

자린고비 커플... (이지훈 만) 자린고비 커플ㄹ....<<<

간단하지만 스토리가 쭈욱 이어지는 ㄱ구질구질한 로맨스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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